소설리스트

SOULNET-114화 (114/492)
  • 00114  제 29 장 - 탈출로  =========================================================================

    “קליטה!(흡수)!”

    그리고는 또 다른 주문을 외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문신이 새겨진 가죽조각이 나무그릇에 가득한 웨어울프의 피를 몽땅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지켜보다가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던 전투슈트를 벗었다.

    양쪽 어깨와 두 허벅지에다 웨어울프의 피를 잔뜩 머금은 문신이 새겨진 가죽조각을 하나씩 잘 붙였다.

    그리고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주문을 외쳤다.

    “ספיריטואליזם הקעקוע להפעיל!(문신강체술 활성화!)”

    문신이 새겨진 가죽조각에서 주홍빛 광채가 터져 나왔다.

    “크윽!”

    양쪽 어깨와 허벅지가 불로 지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그는 신음을 흘렸다. 다행히 고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뭔가 시원하면서 따뜻한 기운이 양쪽 어깨와 두 허벅지로부터 흘러들어오더니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소울은 순간 몸이 새털같이 가벼워지고 팔다리에 힘이 넘치는 것을 느끼자 문신강체술이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켜서 제자리에서 통통 뛰어 보았다. 그러자 자신의 양 어깨와 두 허벅지에 붙여 놓은 웨어울프의 가죽조각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신이 새겨져 있던 웨어울프의 가죽조각은 어느새 문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가죽 자체도 푸석푸석해서 금세 헤어질 것만 같았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소울은 고개를 위로 치켜들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려 보았다.

    팡 파팡 파파팡!

    공기가 갈라지는 파공성이 날카롭게 울렸다.

    이번에는 제자리에서 높이 뛰면서 발차기를 해보았다. 너무도 쉽게 허공으로 몸이 치솟았고 발이 움직이는 동작도 아주 부드러웠다.

    ‘우와! 문신강체술이 괜히 좋은 것이 아니구나. 팔다리에 힘이 넘치고 몸이 이렇게 가벼워지다니……. 이제야 내가 진짜 능력자가 된 기분이네.’

    소울은 문신강체술을 통해 확실히 자신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그저 막연하게 세졌다고만 생각했다.

    나중에 능력자협회 서울지부에 가면 능력자 테스트를 다시 한 번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는 빠르게 흐르는 강물에 왼손을 담갔다. 아까부터 계속 쓰라려왔다.

    토마호크로 상처를 내서 피를 좀 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날이 좀 깊이 들어간 것 같았다.

    소울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아, 혹시 내 손에 난 상처 치료할 수 있어?]

    [규!]

    [그래? 한번 해봐!]

    [규!]

    까망이는 자신감 넘치는 소리를 내며 그의 왼손 손바닥 위로 통통 튀어서 올라왔다.

    그리고는 토마호크의 날로 베어진 상처를 살펴보더니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으로 살살 문질렀다.

    잠시 후, 까망이에게서 뭔가 청량한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신기하게도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 치유되는 속도가 절대 일반 상처치료제나 연고를 발랐을 때의 속도는 아니었다.

    힐러가 주는 힐에 감히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운디네의 능력을 흡수해서 이 정도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소울은 까망이가 대견스럽기만 했다.

    [까망아, 잘했어. 훌륭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규! 규규!]

    까망이에게 소울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까망이가 눈에 띄게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하는 일만 남았군.’

    손을 깨끗이 씻고 모닥불 근처로 돌아오자, 그의 눈에 웨어울프가 게거품을 흘리며 기절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장면에서 소울은 문뜩 탈출로가 보이는 듯 했다.

    삭삭삭삭 삭삭삭삭…….

    소울은 일단 글레이브의 날을 돌에 갈기 시작했다.

    글레이브의 날이 날카롭게 서자 샴쉬르의 날도 갈았다.

    이제 슬슬 몬스터와 드잡이 질을 벌이는 한이 있더라도 차원의 균열 밖으로 탈출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 왔다.

    사실 그동안 방향감각을 상실해서 차원의 균열 안에서 어느 쪽으로 가야 탈출할 수 있는지 정확히 몰랐는데 이제는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좀 쉬었다가 새벽에 움직여야겠다.’

    소울은 웨어울프를 날카롭게 한번 쳐다보더니 모닥불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전투슈트의 보온기능이 뛰어나서 그는 바위 위에 몸을 뉘였지만 전혀 춥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입이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을 한 그는 모닥불에 나무토막을 넉넉히 집어넣었다.

    [까망아, 해가 뜨는 기미가 보이면 나를 깨우도록 해.]

    [규!]

    [졸지 말고 경계 잘 서!]

    [규!]

    까망이가 졸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농담을 했다.

    언젠가는 까망이가 자신에게 이런 썰렁한 농담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탁 타다닥 탁탁…….

    모닥불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강물이 바위섬을 스쳐 지나가며 소리와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 * * * *

    “비스크, 아직도 멀었냐?”

    “네, 조금 더 가야합니다.”

    “그 말 한지 벌써 1주일이 다 지나간다.”

    “죄송합니다.”

    소울은 웨어울프 비스크의 뒤를 따르면서 연신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리 까망이가 세지고 자신이 문신강체술을 통해 강해졌다고 해도 차원의 균열 안의 먹이사슬에서 여전히 그의 위치는 바닥에 불과했다.

    차원의 균열 안은 아무리 지나치게 경계해도 모자라지 않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까망아!]

    [규!]

    [좀 쉬었다 가야겠다. 근처에 물이 있는 곳이 어디지?]

    [규규!]

    비스크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까망이가 자신의 몸의 가시를 만들어 2시 방향을 가리켰다.

    “비스크, 2시 방향으로 가자.”

    “네.”

    비스크는 소울의 말에 즉각 몸을 2시 방향으로 돌렸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비스크의 반항기가 상당히 줄어 있었다. 좋게 말하면 길들여 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야성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울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나마 비스크를 묶은 오크의 힘줄을 줄어준 것만 해도 그는 지금 엄청나게 봐주고 있는 것이었다.

    졸졸졸…….

    얼마 지나지 않아 골짜기에서 흐르는 작은 개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규!]

    [하하하, 그래 잘했다. 역시 까망이가 최고다!]

    [규규!]

    물소리가 나자 까망이는 소울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까망이는 마치 소울의 칭찬을 먹고 자라나는 것만 같았다. 매번 듣는 그의 칭찬이건만 조금도 질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울도 까망이를 칭찬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물에 대한 친화력이 좀 더 올라간 모양이네.’

    운디네를 흡수하면서 생긴 능력은 물을 접하면 접할수록 강해졌고, 운디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조금씩 강해지는 것 같았다.

    까망이의 물에 대한 친화력이 어느 정도 높아지자 이제는 근처에 물이 모인 곳을 곧잘 찾아냈다.

    “비스크, 여기서 잠시 쉬고 간다.”

    “네.”

    “네가 먹을 점심은 직접 잡아오도록 해.”

    “네.”

    비스크는 소울을 묘한 눈빛으로 한번 쳐다보더니 숲속으로 들어갔다.

    소울은 신기하게도 그의 움직임이 저절로 읽혀졌다. 집중을 하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감이 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까망이가 웨어울프 비스크의 몸에서 그의 마석을 꺼내오고 그의 피와 섞어서 문신강체술에 사용해 자신의 몸에 흡수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울은 비스크의 어깨에 까망이를 붙여놓았다. 지난 1주일동안 10번도 넘게 도망가려고 했던 전력(前歷)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빈 수통에 개울물을 받으면서 바위섬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바위섬에서 온갖 협박과 고문을 해서라도 차원의 균열 안을 탈출할 마음을 단단히 먹었던 소울은 막상 새벽에 웨어울프가 깨어나자 크게 당황했다.

    이놈이 깨어나자마자 마치 자신을 잃어버렸다 찾은 애인을 보는 것 같은 느끼한 눈빛으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당연히 열이 받은 소울에게 한차례 매타작을 당하고 나서야 비스크의 눈에서 이상야릇한 눈빛이 사라졌다.

    하지만 당황한 것은 비스크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소울에게 친밀감이 느껴지고 있어서 자신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매에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비스크의 요상한 행동과 눈빛은 곧 소울에 의해 힘으로 강제 진압됐다.

    그때부터 비스크는 소울의 말을 쉽게 거역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차원의 균열에서 탈출하는 있는지를 묻자 비스크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비스크 자신에 대한 질문과 차원의 균열에 대한 질문도 자신의 입을 통제하는데 실패해서 모조리 조잘대고야 말았다.

    놀란 비스크는 그 후로 어떻게 하던지 소울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도망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비스크는 자신의 어깨에 설마 까망이가 붙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비스크가 도망가려고 하면 까망이는 즉시 자신의 몸에 흡수해놓은 거대말벌의 독침을 꺼내 비스크의 목을 찔러버렸다.

    거대말벌의 독침에 쏘인 비스크는 무지막지한 고통에 이어 온몸이 순간적으로 마비되는 것을 느끼며 허무하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뒤로는 무자비한 소울의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10번 이상 같은 짓을 반복하게 되자 결국 비스크는 도망가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10번 이상 도망을 가려고 시도했지만 단 한번도 100m 이상을 벗어나 본적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지독한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또한 몇 시간동안 몸이 마비되어 꼼짝도 못하는 상태로 소울에게 매타작을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소울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목숨을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1주일 만에 비스크는 완전히 소울에게 몸과 마음이 굴복당하고 말았다.

    야성을 잃은 맹수는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다.

    야성을 잃은 맹수는 애완동물일 뿐이다.

    웨어울프는 야생의 세계에서 강력한 숲의 포식자였지만, 비스크는 이제 애완동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비스크의 몸에서 빼낸 마석이 하고 있었다.

    소울은 수통을 가득 채운 물을 조금 마시고 주머니에서 어포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밤에는 모닥불에 말린 어포는 이제 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식량이었다.

    어포 몇 개를 씹어 먹는 사이, 비스크가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뭘 잡아 왔어?”

    “토끼 두 마리입니다.”

    “가죽은 잘 벗겨서 가져오도록 해.”

    “네.”

    비스크는 개울 한쪽으로 가서 토끼 두 마리의 가죽부터 조심스럽게 벗기기 시작했다.

    토끼 가죽을 다 벗기자 그는 허겁지겁 토끼 두 마리를 통째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 하도 소울에게 글레이브의 창대로 맞아서 그런지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도망치다 잡힐 때마다 장기와 뼈 한두 개는 기본으로 부러지고 박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몇 번이나 뼈와 장기를 재생해야 했다. 재생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영양분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서 비스크의 현재 몸은 전에 비해 아주 날씬 해진 상태였다.

    비스크는 소울의 행사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자신이 소울을 1주일동안 치를 떨게 만들 정도로 괴롭혔다는 사실은 이미 그의 기억에서 사라져있었다. 비스크에게 만약 전생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닭이었을 것이다.

    “다 먹었으면 이리 와서 하던 얘기마저 하도록 해.”

    “네.”

    차가운 소울의 말에 비스크는 얼른 일어나 개울물에 토끼의 피로 범벅이 된 손과 입을 깨끗하게 씻었다.

    조심스럽게 토끼 가죽을 들고 다가오던 그는 소울을 보자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친밀감에 어찌할 바를 몰라 눈을 깔았다.

    ‘도대체 저 인간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힘도 예전보다 훨씬 줄었고 어깨와 허벅지에 해놓은 문신강체술은 다 어디로 간 거야?’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퍽!

    깨갱!

    순간 비스크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이 똥개새끼가 하라는 말은 안하고 왜 청승을 떨고 있어?”

    “죄, 죄송합니다.”

    “빨리 말 안 해?”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얀데스 산맥을 따라 북동쪽으로 가면 남동쪽으로 흐르는 아주 커다란 강이 나옵니다.”

    “강의 이름이 뭐였지?”

    “아마조나입니다.”

    “진짜?”

    “네, 아마조나 강 맞는데요.”

    “뭐 비슷한 이름이 있을 수도 있겠지. 계속해봐!”

    “네, 아마조나 강을 타고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하류에 알제 왕국이 나옵니다. 거기까지는 얘기했죠? 그 다음은…….”

    비스크는 개울을 쳐다보면서 믿을 수 없는 얘기를 계속했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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