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1 제 28 장 - 구슬의 정체 =========================================================================
“혹시 내 소울넷 등급이 하급으로 올라가면 차원의 균열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야?”
“물론이지. 그러니까 부지런히 등급을 올리도록 해.”
“알았어. 고마워!”
“마지막으로, 우주의 고차원적인 상위 지성체일수록 인과율(因果律)에 아주 민감해. 그러니까 함부로 막 행동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 병 주고 약 주는 방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인과율?”
소울은 인과율이라는 말을 듣자 뭔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울프리나는 그의 얼굴에 서린 불안감을 보자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울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구는 그녀의 별이 아니고 소울은 지구라는 곳에 있는 이방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위기가 착 가라앉자 그의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참, 그 웨어울프를 죽이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피의 맹세를 시켜봐! 그럼 네가 그놈의 주인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죽이던지 아니면 테이밍을 하던지 한쪽으로 확실하게 선택해야 돼. 어중간하게 다루다간 나중에 반드시 큰 후환이 될 거야.”
“알겠어. 그렇게 할게.”
소울은 울프리나의 단정적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울프리나, 오늘 고마웠어. 우리 조만간 다시 만나서 대화를 하도록 하자.”
“그래. 종종 불러줘. 나도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게.”
“그래.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안녕!”
울프리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져갔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를 통해 자신이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우주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기 때문이다.
‘휴, 지금 당장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난 아직 F급 소환계 능력자에 불과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 더 강해지고 힘이 생긴다면 분명히 내가 뭔가 활약할 일이 있을 거야.’
일단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것보다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가만, 나 아직 차원의 균열 안이지. 일단 이곳을 먼저 탈출하자.’
살아야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다.
지구를 위하던 인류를 위하던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 소울은 그 정도까지 큰 대의(大義)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잘 먹고 잘살 정도로 큰돈을 버는 것이 그의 가장 큰 목표였다.
울프리나가 떠나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옥사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소울은 길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옥사나를 불러들였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옥사나라고 합니다.”
“전 이소울입니다.”
옥사나의 얼굴을 보니 전혀 하프오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밀조밀한 얼굴에 나름 날씬한 몸을 보니 꽤나 귀여운 처녀의 모습이었다.
특히 그녀의 영혼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유사인종으로 구분되지만 그녀의 지성이나 영혼은 100%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대화에 응해줘서 고마워요.”
“천만에요.”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뵙자고 했어요.”
“네, 말씀하세요.”
옥사나는 굉장히 예의 바른 모습을 보여줬다.
“괜찮으시다면 전 계속 영혼체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이유는 잘 아시겠죠?”
“차원의 균열에 관해서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직 차원의 균열 안에서 탐사를 진행하기 힘든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돕겠어요. 차원의 균열 안의 근원에 접근한 후 중심에 있는 코어를 획득하려면 지금의 상태로는 불가능합니다.”
“네?”
소울은 옥사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옥사나가 먼저 차원의 균열에 대한 정보를 풀고 있었다.
그녀의 의도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먼저 정보를 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을 원하시죠?”
그는 일단 돌 직구를 하나 날렸다.
옥사나는 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보상을 원합니다.”
“어떤 보상을 말하는 겁니까?”
“당연히 소울넷에서 받는 보상을 원하지요?”
“혹시?”
“보조 보고자로 제 이름을 올려주세요. 전 그거면 족합니다.”
“아!”
역시 옥사나의 목적도 울프리나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울프리나와 옥사나는 둘 다 인간이 아니라 유사인류였다.
인간인 세이지나 탄탈라스는 어떻게 하던 차원의 균열에 대한 정보를 캐서 혼자 독식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유사인류인 울프리나와 옥사나는 자신에게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협상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혀 자신이 손해를 보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는 유사인류인 울프리나와 옥사나에게 오히려 믿음이 가는 자신의 상태를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좋습니다. 제가 충분히 만족할만한 도움을 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도록 할 겁니다. 그리고 제 제안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옥사나는 겸손한 자세로 그를 존중해줬다.
그녀의 하는 양만 보면 도저히 수억, 아니 수십억의 오크들의 씨를 말린 무서운 주술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참, 옥사나는 오크 주술사지?’
옥사나가 누군지 생각한 순간, 소울은 자동으로 오크샤먼의 사체에서 얻은 노란 구슬과 토마호크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옥사나님, 뭘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참, 저를 그냥 옥사나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편하게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그럼 같이 편하게 말을 놓도록 하죠?”
“좋아요.”
소울과 옥사나는 그렇게 바로 친구처럼 말을 터버렸다.
“옥사나, 먼저 이걸 좀 봐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어떤 용도로 사용을 하는지도 알려주면 고맙겠어.”
“응, 물론이지.”
소울은 소울넷 인터페이스에 자신이 죽은 오크샤먼의 모습을 띄웠다. 그리고 오크샤먼의 사체에서 얻은 노란구슬과 토마호크의 모습도 보여줬다.
옥사나는 차분히 살펴보다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노란 구슬은 저 죽은 오크샤먼의 내단이야. 그리고 저 도끼는 그 내단을 이용해 주술력을 증폭시키는 도구지.”
“내단? 도구?”
소울은 옥사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란 구슬이 마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마석을 복용하면 마석의 독에 중독되어 죽거나 몸이 터져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니 노란 구슬은 당연히 마석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크샤먼의 사리나 그게 아니면 내단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토마호크를 무기가 아니라 도구라고 하는 옥사나의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옥사나, 이 토마호크가 도구라고?”
“토마호크? 아! 이 도끼의 이름인가 보군?”
“맞아.”
옥사나는 소울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해줬다.
“내가 편의상 내단이라고 말했지만, 저 노란 구슬에 관해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오크주술사들이 대를 이어 자신의 주술력을 쏟아 부어 만들어가고 있는 주술환(呪術丸)이야.”
“주술환?”
“정령사에게는 정령력이 있고 소환사에게는 소환력이 있듯이 주술사에게도 주술력(呪術力)이 있어. 하지만 오크들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오크의 영혼과 지능으로는 뛰어난 주술사가 될 수 있는 길은 거의 막혀있다고 봐야지.”
“그럼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주술환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말이네?”
“맞아. 주술환은 오크주술사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주술력을 불어넣어 만든 내단이나 마찬가지야. 이 내단을 죽을 때 자신의 제자이자 다음 대의 오크주술사에게 넘겨주면 새로 등극한 오크주술사는 이 내단을 받아 빠르게 자신의 주술력을 높일 수 있지. 그리고 스승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까지 내단에 자신의 주술력을 불어넣어 더욱 강력한 내단을 만들어가는 거야.”
“그럼 그 내단을 다시 다음 대의 오크주술사가 이어 받아 계속 주술력을 불어 넣겠구나.”
“정답이야. 주술환은 이렇게 몇 대에 걸쳐 내단이 커지고, 압축되고, 순수하게 정제되어 만들어 진 것을 말해.”
“그럼 나중에는 오크주술사가 감당할 수 없게 커지기도 하겠구나?”
“물론 그런 일이 벌어져 큰 불상사가 나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 주술환에는 모환(母丸)과 자환{子丸)이 있는데 일정이상 커지고, 압축되고, 순수하게 정제가 된 모환을 만들고 나면 모환에서 주술력의 일부를 빼다가 자환을 만들거든.”
“그거 재미있네.”
소울은 오크주술사들이 그런 방식으로 다음 대의 오크주술사의 능력을 키워준다는 얘기를 들으며 놀라워했다. 사람이라면 욕심 때문이라도 이런 방식으로 제자의 능력을 키워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주술환 모환은 하나지만 자환은 여러 개를 만들 수 있어. 모환과 자환은 어차피 주술력이라는 근본적으로 같은 힘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서로 연계가 가능하지.”
“그럼 저 노란 구슬이 주술환 모환이겠구나?”
“맞아. 그리고 내 생각이 맞는다면 토마호크라고 이름붙인 저 도끼에 주술환의 자환이 들어가 있을 거야.”
“뭐시라?”
소울은 그제야 옥사나가 왜 토마호크를 무기라고 말하지 않고 도구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됐다. 주술사의 주술력을 높여주고 보조해주는 도구가 바로 토마호크였다.
그런데 소울은 그것도 모른 채 토마호크가 무기인줄 알고 몬스터의 대갈통을 부셔버리는데 참 많이도 사용했었다.
그는 절대로 옥사나에게 자신이 토마호크를 도끼로 사용했다고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 도끼는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주로 오크주술사들이 주술을 쓸 때 주술력을 증폭하거나 주술을 안정시키며 보조하는데 사용하지.”
“으음.”
옥사나는 소울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미 옥사나는 소울이 토마호크를 어떻게 사용하고 다녔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혹시 오크샤먼이 가지고 있는 이런 반지, 팔찌, 목걸이, 귀고리는 뭐에 쓰이는 거지?”
소울이 옥사나에게 오크샤먼이 차고 있던 액세서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자 옥사나는 한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설명해줬다.
“오크주술사들이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는 이유는 주술력을 높이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뿐이야. 저 액세서리에는 주술력을 이용해 만들어 놓은 실드 마법 같은 것이 들어가 있어.”
“실드 마법?”
“응, 그것과 아주 비슷해. 하지만 물리방어력보다는 마법방어력이 좀 높고 영혼을 방어하는 힘도 좀 가지고 있어. 물론 아주 대단한 아티펙트는 아니야.”
“혹시 등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 수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어. 하지만 죽은 오크샤먼의 복장으로 봤을 때 하급 아티펙트를 넘기지는 못할 거야.”
소울은 옥사나의 말에 무척이나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아티펙트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엄청난 보물이 된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크샤먼의 액세서리는 어떻게 사용하지?”
“어렵지 않아. 간단한 주술만 배우면 금방 사용할 수 있어. 내가 가르쳐줄게.”
“아! 고마워.”
옥사나는 그에게 주술에 대한 기초이론과 실제 응용방법을 아주 쉽게 풀어서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소울은 이제 오크샤먼의 액세서리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옥사나, 고마워. 덕분에 주술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됐어.”
“천만에,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그리고 토마호크의 손잡이 부분을 꼭 열어봐. 그 안에 아마 주술환 자환이 들어있을 거야.”
“그래? 알았어. 그런데 토마호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거야?”
“그것도 알려줄게. 그것은 말이지. 먼저 자신의 피를…….”
소울은 다시 옥사나에게 토마호크의 바른 사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가지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오크주술사의 주술력은 인간의 주술력과는 그 성질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만약 옥사나같이 오크와 인간의 중간적인 존재가 없었다면 소울은 주술환과 토마호크를 사용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을지도 몰랐다.
‘오크주술사처럼 100% 활용을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부 기능이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된 게 어디냐? 오늘 정말 옥사나의 덕을 철저히 보는구나.’
소울은 속으로 옥사나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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