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5 제 27 장 - 적자생존(適者生存) =========================================================================
[까망아, 수고했다. 아주 잘했어.]
[규!]
소울이 칭찬을 해주자 까망이는 약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톡 튀어나온 배 쪽을 조금 더 볼록하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소울은 까망이의 배를 손가락으로 몇 번 폭폭 찍었다.
까망이는 규규 거리면서 그의 애정이 넘치는 손길을 만끽하며 즐거워했다.
소울은 숲속에서 가져온 넓은 잎을 시냇물로 깨끗이 씻은 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충분히 말려진 무지갯빛 물고기의 살코기 포를 담아 잘 포개서 쌌다. 그리고는 얇고 질긴 풀로 잘 묶어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하피에 매달려 차원의 균열 안으로 순식간에 날아왔지만 걸어서 돌아가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 이렇게라도 식량을 만들어서 가지고 다녀야했다.
소울은 수통의 물을 깨끗이 비우고 시원한 시냇물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얼굴을 시냇물에 처박고 물을 마셨다.
얼굴 가득 차가운 시냇물이 닿자 정신이 번쩍 나는 것만 같았다.
‘자! 이제 돌아가자.’
그는 속으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시냇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 계곡과 벼랑 그리고 폭포를 만난다면 제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시냇물을 따라 시냇가로 걸어 내려간다면 맹수나 몬스터를 만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숲속으로 들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냇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기로 했다.
일단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숲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후, 여러 맹수들과 몬스터들이 물을 마시러 시냇가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소울은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을 활성화시켜 주변을 스캔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능은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바로 배터리를 엄청나게 소모시키는 것이다.
그는 그것도 모르고 꾸준하게 탐색기능을 사용하다가 어느 순간 전투헬멧 선바이저 맨 위에 뜬 충전표시를 보며 자신의 머리통을 한 대 쳤다.
‘아! 이런, 배터리 상태를 좀 보면서 썼어야 했는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그는 더 이상 전투헬멧이 가지고 있는 탐색기능을 사용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예 전투헬멧을 끄고 벗어서 등에 매달고 갔다.
나중에 전투헬멧을 통해 통신모듈이라도 사용해서 구조요청을 하려면 조금이라도 배터리를 아껴야했기 때문이다.
전투헬멧을 벗자 일단 머리가 시원해졌다. 갑갑한 느낌이 사라지고 오감이 조금 더 민감해지는 기분이었다.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숲에서 나는 여러 가지 냄새가 아까보다 훨씬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는 머리 위에 까망이를 올려놓고 토마호크를 오른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전진 했다.
이제 전투헬멧의 탐색 기능이 없으니 순전히 자신의 오감에 의존해서 숲을 가로질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주위환경에 대한 집중이 필요했다.
[까망아, 내가 가고 있는 방향에 혹시 나보다 큰 맹수나 몬스터가 있으면 알려줘!]
[규!]
소울은 까망이에게 색적을 부탁을 하면서도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나 보다는 둘이 나을 것이란 생각에 까망이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크리릭 크릭 크리리릭…….
소울에게 위기상황은 너무도 빠르게 찾아왔다.
갑자기 근처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아! 고블린이다. 이놈들이 이 근처로 사냥을 나왔나 보네?’
그는 대번에 고블린의 소리를 알아듣고 몸을 낮췄다. 그리고는 주변을 빠른 눈으로 살펴보고는 커다란 거목 사이의 틈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규!]
그제야 까망이가 소울에게 고블린의 존재에 대해 경고를 했다.
[고블린이 나타난 것 같지? 고맙다. 알려줘서.]
[규!]
까망이는 그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 소리를 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소울은 까망이를 키우고 훈련시키는데 칭찬이라는 도구를 최대한 활용을 할 생각이었다.
[까망아, 가서 고블린이 몇 마리나 있는지 알아봐!]
[규!]
까망이가 자신 있다는 듯 시원하게 대답을 하고 나자, 그의 머리 위에서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까망이의 모습이 순간 희미하게 흐려졌다. 그리고는 바람을 타고 움직이듯 스르륵 허공을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건 반정령이라서 가지게 된 능력인가? 아니면 운디네의 능력인가? 안개처럼 변한다고 해도 저렇게 돌아다닐 수는 없을 테니 반정령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겠구나.’
그는 까망이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토마호크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언제든지 고블린이 나타나면 던질 준비를 했다.
크르륵 큭 캬아아…….
고블린 두 마리가 마치 다투기라도 하는 지 언성을 높이며 다가왔다.
소울은 그 위치가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오고 있어서 자칫하면 자신의 모습이 발각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수필승!’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적을 공략하기로 했다. 비록 까망이가 옆에 없지만 그렇다고 고블린 두 마리를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능력이 없는 능력자는 아니었다.
드디어 고블린 두 마리가 수풀을 헤치며 밖으로 나왔다. 추하게 생긴 얼굴이 더욱 추하게 변하며 서로에게 뭔가 심하게 욕을 하는 것만 같았다.
소울은 두 마리의 고블린의 정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것을 알자마자 앞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왔다. 그리고는 고블린들을 향해 달려갔다.
크릭 큭!
고블린들이 그제야 소울의 존재를 알아채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댔다.
휙!
하지만 그는 이미 토마호크를 오른쪽에 서 있는 고블린을 향해 던진 상태였다. 토마호크가 빠르게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소울도 토마호크를 따라 번개같이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퍽!
큭!
고블린의 처절한 회피동작에 심장에 맞아야 할 토마호크가 옆구리에 박혀들었다.
녹색의 피가 울컥 배어 나오자 오른쪽에 서 있던 고블린이 힘없이 땅바닥으로 쓰러지며 토마호크를 잡고 뽑으려고 들었다.
소울은 일단 오른쪽의 고블린이 전투불능이 됐다고 판단하고 왼쪽의 고블린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고블린은 쇠꼬챙이처럼 생긴 칼과 독침을 날리는 대롱 그리고 간간히 조잡한 활이나 창을 무기로 들고 다녔다.
동료가 당한 것에 분노를 느끼며 시뻘건 한 눈빛을 빛내고 있는 남은 고블린의 손에도 역시 예전에 한번 당한 적이 있었던 쇠꼬챙이 같은 칼이 들려있었다.
훅!
고블린은 소울이 달려드는 속도에 맞춰 칼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쇠꼬챙이 칼은 베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찌르는 것에는 특화되어 있는 무기였다.
소울은 고블린에게 당한 후에, 다음에 또 고블린을 만나면 어떻게 복수를 할지 생각해놓은 것이 있었다.
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지며 더욱 빠른 속도로 짓쳐들었다.
탁! 퍼억!
고블린이 들고 있던 칼과 오른팔이 허공으로 들리며 잘 익은 수박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울이 칼을 손목으로 후려치고 달려가는 속도를 더해 무릎으로 고블린의 턱을 걷어차 버린 것이다.
빠르게 달려가는 속도와 제대로 된 타점이 맞물리자 니킥 한 방에 고블린의 턱뼈가 산산이 부서지고 이빨이 옥수수 깨지듯 터져 나갔다.
무엇보다 허공으로 들린 고블린의 뇌가 흔들려 뇌진탕을 일으켰다. 고블린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소울은 즉시 쓰러져 있는 고블린에게 다가가서 옆구리에 박힌 토마호크를 잡아 뽑았다.
촤악!
녹색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는 살짝 옆으로 한 발짝 물러나 녹색의 피를 피하고, 토마호크를 잡은 손을 돌려 토마호크의 날 뒤쪽에 있는 뾰족한 부분으로 오만인상을 쓰고 있는 고블린의 머리통을 찍어 버렸다.
퍽!
토마호크의 뒷부분이 깨끗한 구멍을 내며 안으로 푹 들어가 박혔다. 그러자 고블린은 그대로 몸에 힘을 잃고 축 쳐졌다.
그는 고블린의 추악한 얼굴을 발로 밟고 토마호크를 뽑았다.
그때, 옆에 쓰러져 있던 고블린이 입가에 피를 쏟아내며 땅바닥을 기어 어디론가 도망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소울은 도망가는 고블린에게 다가가 등을 발로 콱 밟았다. 그리고는 역시 토마호크의 뾰족하게 튀어나온 뒷부분으로 고블린의 뒤통수를 찍어 버렸다.
퍽!
시원하게 두개골 후면을 뚫고 들어간 토마호크의 뒷부분은 도망가던 고블린을 즉시 지옥으로 보내버렸다.
소울은 두 마리의 고블린을 혼자 깔끔하게 잡아 죽이자 내심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주위에 얼마나 있을지 모를 다른 고블린들의 주의를 끌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블린 두 마리의 다리를 각각 잡아 수풀 속으로 질질 끌고 들어온 그는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조잡한 가방과 무기를 살펴봤다.
자신이 뺏어 사용하려고 해도 무엇 하나 쓸 만한 것이 없었다.
쇠꼬챙이 검은 녹이 잔뜩 슬어 있었고, 창인지 막대기인지 모를 놈은 가볍게 한 대 치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았다.
‘그나마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와 독침을 쏘는 대롱은 쓸 만하겠다.’
고블린들이 가지고 다니는 독침에는 마비독이 발라져 있었다. 아주 강력하지는 않지만 일단 맞기만 하면 천천히 힘이 빠지고 몸이 마비되어 나중에는 산채로 눈을 뜬 채 자신의 몸을 뜯어 먹는 고블린을 마주보며 죽음을 맞이한다고 했다.
그는 고블린의 독침과 대롱 그리고 독이 들어있는 독낭(毒囊, 독이 든 주머니)을 잘 챙겨서 일어났다.
붕붕붕붕…….
그때였다.
갑자기 자신의 머리 위쪽으로 거대한 말벌 두 마리가 다가왔다.
그런데 살펴보니 이게 보통 큰 말벌이 아니었다. 자신의 상체만큼 큰 말벌이었다. 이건 100% 몬스터가 분명했다.
‘아니 저런 괴물 말벌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지? 이 근처에 이놈들의 벌집이라도 있는 건가? 그리고 저 말벌의 침에 맞았다간 한 방에 훅 가겠구나.’
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거대말벌 한 마리는 소울에게 관심을 끊고 고블린의 사체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른 한 마리의 거대말벌은 계속 소울의 주변을 맴돌며 따라왔다.
소울은 고블린의 사체를 거대말벌에게 양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쫓아오자 화가 났다.
‘이 말벌 새끼가 감히 나를 죽이려고 드네?’
그는 일단 다른 거대말벌에게서 이놈을 적당하게 떼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씩 뒷걸음질을 친 그는 어느덧 다른 말벌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자 토마호크를 살짝 고쳐 잡았다.
순간, 그의 살기라도 느꼈는지 거대말벌이 빠르게 쌩하고 날아들었다.
캉!
소울은 반사적으로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그런데 독침과 마주치자 토마호크에서 쇠를 후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말벌의 독침이 얼마나 강한지 능히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번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인해 소울은 거대말벌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왔다.
쌩!
다시 한 번 빠른 속도로 거대말벌이 그에게 독침을 앞세워 날아들었다.
캉!
하지만 이미 단단히 준비하고 있던 소울은 거대말벌의 독침을 토마호크로 막으면서 옆으로 흘렸다.
그러자 거대말벌의 독침이 그가 서 있던 땅으로 푹 박혀 들어갔다. 순간 소울은 기회는 이때다 하고 거대말벌의 날개를 토마호크로 찍어버렸다.
팍 팍!
단 두 번의 도끼질에 거대말벌의 두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소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어렸다.
“날개 없는 거대말벌이라? 어디 한번 또 날 공격해봐. 이 썩을 놈의 새끼야.”
소울은 두 날개를 잃고 땅바닥에서 몸부림을 치는 거대말벌의 대가리를 토마호크로 사정없이 찍어 버렸다.
퍽퍽퍽!
단 세 방에 거대말벌의 대가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다행히 거대말벌의 다른 친구는 고블린의 사체를 먹는지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소울은 그냥 거대말벌의 사체를 버리고 가려다가 자꾸 거대말벌의 독침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저걸 가공해서 쓰면 고블린의 독침보다는 훨씬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죽은 거대말벌의 사체로 다가가 토마호크로 독침을 툭툭 쳐봤다.
캉캉캉…….
역시 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거대말벌의 독침에서 위쪽으로 조금씩 올리며 토마호크로 꾸준히 두들겼다.
캉캉캉 툭툭툭....
그 순간 소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독침이 쇠처럼 강하니 부러뜨릴 수는 없었다. 대신 거대말벌의 사체를 잘라서 가져 갈 수는 있었다.
그는 거대말벌의 독침 위쪽의 연약한 부분을 토마호크로 후려쳐서 잘랐다. 그리고 독침의 중간을 잡아 쭉 잡아당기자 너무나도 쉽게 독낭과 내장까지 한꺼번에 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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