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03화 (103/492)

00103  제 26 장 - 생존을 위하여  =========================================================================

그는 일단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자 생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며 주변을 살펴봤다. 시계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한 시간만 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루 저녁을 통째로 푹 자고 새벽에 깨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계획에도 없던 잠을 잘 자고 나니 몸이 가뿐하네.’

무엇보다도 자신이 인식하기도 전에 하룻밤을 숲에서 안전하게 보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매일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아무데서나 잠을 자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반성이 됐다.

소울은 소울넷에서 최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경험한 옥사나의 삶을 반추(反芻)해 보았다. 그리고 품속에서 오크샤먼의 사체에서 얻은 가죽주머니를 꺼냈다.

가죽주머니 안에서 오크샤먼의 반지, 팔찌, 목걸이, 귀걸이를 꺼낸 그는 자신의 몸에 하나씩 찼다. 그러자 곧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새로워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령력인지, 소환력인지, 아니면 영력인지 모를 그 어떤 자신의 내부의 힘이 좀 더 세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오크샤먼의 액세서리에는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옥사나의 삶을 소울넷의 최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경험한 것이 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다니……. 나중에 시간이 되면 옥사나의 삶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겠다.’

그는 오크샤먼의 액세서리가 정확히 어떤 기능이 있는지 몰라 그동안 가죽주머니 속에 잘 챙겨 넣고 품속에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어제 하프오크 주술사인 옥사나의 삶을 체험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크샤먼들이 차고 있는 액세서리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 지 대충 알게 되었다.

[까망아, 나 어때? 액세서리가 잘 어울리니?]

[응!]

[그렇구나. 뭐? 뭐라고? 까망아!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소울은 까망이의 대답에 깜짝 놀라 다그쳐 물었다.

까망은 오히려 그의 반응에 놀라서 목소리를 죽였다.

[규!]

[어라? 내가 잘못 들었나? 분명히 ‘응’ 이라고 한 것 같은데…….]

그는 살짝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꼬르륵!

좀 더 물어볼까 하던 그는 뱃속에서 나는 소리를 듣자 일단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뤘다. 그는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전투배낭을 가지고 왔다면 그 안에 먹을 음식이 있어서 괜찮았을 텐데, 하피에게 납치를 당하는 바람에 그는 토마호크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뭔가 먹긴 먹어야 하는데……. 뭘 먹지? 아니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하지?’

그는 당장 배가 고파지자 앞날이 막막해졌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리 한쪽에서 어떻게 해야 숲에서 먹을 것을 구할지 방법이 떠올랐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그는 일단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피하기로 했다. 불을 피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잡아서 생으로 회를 떠서 먹거나 아니면 과일을 채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의 뱃속에서 계속 식충이들이 요동을 치자 머릿속에서 더욱 빠르게 여러 가지 방법들이 떠올랐다.

‘하늘에서 봤던 것처럼 이 숲은 그냥 숲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산도 있고 계곡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어딘가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 있을 것이다. 폭포가 있었으니 아마 강도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그 당연한 얘기를 가지고도 일반사람들은 숲에서 생존을 하지 못한다.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울은 비록 숲에 대한 경험은 부족했지만 대신 다른 사람들이 숲에서 살며 얻은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산세가 이런 식이라면 저쪽에 계곡이 있겠구나. 잘하면 강을 볼 수도 있겠어.’

전문가들은 산을 보면 강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산을 타고 어느 쪽으로 모여들어 시냇물을 이룰지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울은 자신의 키만큼 울창한 풀들이 가득한 수풀 속에서 조심스럽게 빠져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이 목표로 한 곳을 향해 이동했다.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을 활성화하여 철저히 맹수와 몬스터를 피하고 야생동물들과의 접촉도 최소화했다.

그렇게 나름 최선을 다해 사냥꾼 흉내를 내며 1시간 정도를 걸어가자 소울은 어느 순간 묘한 기시감(데자뷰, deja vu)을 느꼈다.

‘왠지 근처에 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 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물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물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

그는 자신이 물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해낸 해답은 역시 소울넷의 영혼체험 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10분 정도 앞으로 걸어가자 그는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달려가자 유속도 그리 빠르지 않고 수량도 넉넉한 편에 그리 깊지 않은 개울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그러다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자 서둘러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다행히 맹수나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괜한 일에 혼자 놀랐던 소울은 개울을 따라 조금 아래로 걸어 내려왔다. 그의 눈에 꽤나 깊은 여울목이 보였기 때문이다.

[까망아, 이 안으로 들어가서 물고기가 많이 있는 지 좀 살펴보고 올래?]

[규!]

소울은 까망이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까망이는 한 번도 물속으로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겁도 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규규!]

흥분해서 좋다는 것인지, 위험하다는 것인지, 까망이의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까망아, 혹시 위험하면 얼른 밖으로 나와!]

[규우!]

하는 말을 들어보니 위험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냇가에서 떠나지 않고 까망이가 들어간 물속을 쳐다봤다.

까망이는 차가운 시냇물 속으로 들어와 빠른 유속에 휩쓸려갈 때만 해도 상당히 놀라고 겁을 집어 먹었다. 하지만 곧 물이라는 성질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금세 적응을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지금은 오히려 연어들보다 더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오는 등 물질에 아주 능숙했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알기로 까망이는 시냇물이 처음일 텐데……. 설마 물의 최하급정령인 운디네를 흡수해서 그런가?’

말이 흡수지 운디네를 통째로 잡아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울은 혹시 까망이가 운디네의 능력을 이어받지는 않았을까? 기대가 됐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F급 소환사인 자신에게 최초로 제대로 된 소환수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까망아, 너 혹시 물이 익숙하지 않니?]

[규!]

[내 생각에는 네가 물의 최하급 정령인 운디네를 흡수해서 운디네의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규규!]

소울의 말에 까망이가 물속에서 튀어 올라, 빠르게 흐르는 여울목 물결 위를 도도하게 밟고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 소울의 기대가 더욱 증폭됐다.

‘물의 최하급 정령인 운디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까? 간단한 물 속성 공격을 할 수 있을 테고, 시냇물에서 물고기 정도는 쉽게 잡을 수 있겠지? 그리고 간단한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가 당장 생각해낼 수 있는 운디네의 능력은 그 정도였다.

뱃가죽이 등에 가서 붙게 생긴 상황이라 소울은 일단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물고기 잡는 능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까망아, 내가 볼 때 너는 물고기 정도는 쉽게 잡을 거야.]

[규!]

[기왕 잡는 것 내 손바닥보다 더 큰 물고기로 잡아 올래?]

[규!]

소울의 부탁에 까망이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는 1주일 굶은 강태공이 낚싯대를 잡는 심정으로 시냇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까망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는지 까망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꼬르륵 꼬르륵!

이제 배속에서 배가 고프다고 식충이들이 메들리로 노래를 불러대고 있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눈이 뒤집힌다. 그는 지금 심정이라면 손가락만한 피라미를 잡아와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어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촤악!

그때였다.

갑자기 소울의 바로 앞에서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팔뚝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으헥!”

소울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규규!]

까망이가 물고기 위에서 통통 튀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망아, 이거 네가 잡아온 거야?]

[규!]

[와아, 잘했다. 그런데 어떻게 잡았어?]

소울의 칭찬에 신이 난 까망이는 마구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몸을 연속으로 변형시켰다.

[규 규규 규규규 규!]

그는 까망이의 말 속에서 흘러나오는 뉘앙스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며 까망이의 몸이 변하는 모양과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흐릿하게 변했다가, 물고기 모양으로 변했다. 작은 성게 모양으로 변했다가 이번에는 날카로운 창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보자 소울은 까망이가 대충 어떤 식으로 물고기를 잡았는지 알 것 같았다.

까망이는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소울이 말한 대로 일단 커다란 물고기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목표를 발견하자 물고기 모양으로 변해 빠르게 다가선 까망이는 물고기가 자신을 삼키도록 다시 작은 성게 모양으로 변했다.

팔뚝만한 물고기가 까망이를 먹이로 생각하고 날름 집어삼키자 까망이는 즉시 자신의 몸을 작은 창 모양으로 변화시켜 물고기의 뇌를 단번에 쑤셔 버린 것이다.

물고기가 죽자 까망이는 기분 좋게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 자신의 주인 앞에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내려놓았던 것이다.

[까망아, 고마워! 정말 수고했다.]

[규!]

소울은 까망이의 머리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까망이는 몸을 비비꼬며 즐거워했다.

그는 팔뚝만한 물고기를 들고 일어나 자신의 모습을 충분히 숨길 수 있는 시냇가의 바위 사이로 들어가 앉았다.

토마호크를 꺼내 물고기의 배를 따서 내장을 뽑아내고 비늘을 벗겼다.

머리를 쳐서 잘라내고 뼈에서 살코기를 발라내기 시작했다.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은 아닐 거야. 운디네를 흡수하면서 운디네의 능력까지 어느 정도 사용하게 된 것 같아. 저렇게 자신의 모습을 연속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면 앞으로 까망이의 전투력은 급상승할 거야.’

소울은 다 발라낸 물고기의 살 한 조각을 자신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열심히 씹어 먹었다.

얼굴 생긴 것은 아귀보다도 더욱 험상궂게 생겼는데, 초장도 없이 생으로 먹는 민물고기의 살코기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아마 배가 너무 고파서 더욱 맛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손가락이 더욱 빠르게 움직이자 그의 입도 덩달아 바빠졌다.

‘어? 벌써 다 먹었네?’

소울은 자기 팔뚝만 했던 물고기가 어느새 뼈밖에 남지 않자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금세 환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낚시계의 새로운 고수를 데리고 있으면서…….’

소울은 까망이를 불러서 한 마리 더 잡아오라고 부탁했다. 아니 기왕 잡는 김에 잡을 수 있을 만큼 다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까망이는 신나게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아까보다 훨씬 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종아리만한 크기의 물고기였다.

[까망아, 이렇게 큰 물고기라면 그냥 한 마리만 더 잡아와!]

[규!]

까망이가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소울은 그 사이에 물고기를 손질해서 회를 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종아리만한 물고기 한 마리를 전부 회로 떠서 모조리 먹어 치웠다. 그제야 그는 배가 불러왔다.

[규!]

다시 까망이가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왔다. 이번에는 자신의 허벅지만한 물고기였다.

물고기에도 클래스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지 물고기의 비늘 색깔은 무지갯빛을 띄고 있었다.

차원의 균열 안이라서 그런지 시냇물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아마도 세이지가 언급했던 마나가 풍부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됐다.

소울은 곧바로 물고기의 배를 따서 내장을 제거하고 비늘을 벗겼다. 그리고는 최대한 얇게 회를 떠서 바위 위에 늘어놓았다. 말려서 비상식량으로 만들어 가져가려는 것이다.

‘어? 이게 뭐지?’

그런데 무지갯빛 비늘을 가지고 있던 물고기의 몸속에서 역시 무지갯빛이 나는 작은 구슬이 하나 튀어나왔다.

그는 구슬을 물로 깨끗이 씻어서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려 잘 살펴봤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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