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1 제 26 장 - 생존을 위하여 =========================================================================
그는 잡고 있는 하피의 발목을 힘주어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살짝 하피의 몸에 달라붙었다.
두 다리로 하피의 하체를 단단히 틀어쥔 소울은 한손으로 하피의 목을 잡고 한 손으로 토마호크를 들고 위협을 했다.
“날 내려줘! 좋은 말 할 때 곱게 내려라. 안 그러면 바로 네 목을 따버리겠다.”
말을 알아듣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눈에 살기를 가득 담아 하피를 노려봤다.
고개를 조금만 내려도 뽀얀 하피의 가슴이 덜렁거려서 상당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건 안보면 그만이다.
하피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한번 치켜들더니 곧 천천히 하강했다. 그러나 자신의 동족을 무참히 죽인 소울을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하피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울은 점차 고도가 아래로 내려가자 그걸로 만족했다. 하늘에서는 정말 하피를 협박하는 짓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땅에 발을 내디뎌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소울은 아래쪽을 살펴보다 고개를 돌려 하피를 쳐다봤다. 마침 하피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왠지 하피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만 나를 내려준다고 해도 그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지? 차라리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 낫겠다.’
소울은 불길한 느낌이 들어 또다시 토마호크로 하피를 윽박질렀다.
“저 아래 호수로 내려가. 당장!”
이번에는 조금 더 강하게 협박했다. 정말 수틀리면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이 정도 고도면 뛰어내려도 최소한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피는 어쩔 수 없이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소울은 하피가 여전히 그를 비웃고 있다는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소울은 오던 길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눈에 폭포가 보이고 벼랑이 보였다. 긴 계곡도 보였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자 대충 감이 왔다.
펄럭 펄럭 펄럭…….
하피가 호숫가 옆에 착륙을 하려고 두 날개를 힘차게 펄럭거렸다.
소울은 하피의 두 발이 땅바닥에 닿는 순간, 몸을 날려 땅바닥으로 가볍게 뛰어 내렸다.
스팟!
그는 하피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새하얀 하피의 목에 빠르게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촤아아아…….
가르르륵 가르륵…….
소울이 땅바닥에 두 다리를 굳건히 내딛는 순간, 하피가 휘청거리며 자신의 목을 잡았다. 하피의 목에서 시뻘건 선혈이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입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오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가 데굴거렸다.
휘익! 차악!
소울은 하피의 피로 물든 자신의 토마호크를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세차게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그리고는 하피를 살기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네가 대충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 나를 사지(死地)에 몰아넣으려고 하는 거지? 아니 아마 이곳이 바로 그곳인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넌 한 가지 큰 실수를 했어.”
“가르르륵…….”
목에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하피는 소울을 원독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며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아무리 막아 봐도 이미 경동맥이 토마호크의 날에 완전히 끊긴 상태라 하피의 손 틈으로 붉은 피는 꾸역꾸역 계속 흘러나왔다.
“넌 나를 하늘에 있을 때 어떻게든 죽였어야 했다. 오크병사들이 있는 곳에서 같이 도망쳤다고 내가 널 살려줄 줄 알았어? 미친년! 애초에 너희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한 것을 잊었어? 난 잊지 않았어. 넌 나의 적이야. 난 너의 적이고……. 내가 너였다면 같이 죽자고 하늘에서 땅으로 그대로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풀썩!
하피는 그의 차가운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차가운 땅바닥에 그대로 얼굴을 처박으며 의식을 잃었다.
소울은 하피에게 다가가 한 발로 뒷목을 강하게 밟아버렸다.
우두두두둑!
목뼈가 부러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호숫가를 울렸다. 하피의 몸이 한 번 크게 들썩이다 잠잠해졌다.
“휴우, 결국 죽여 버리고 말았네.”
소울은 잠시 죽은 하피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호수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그는 호숫가로 다가가 손으로 물을 떠서 조금 입에 넣고 맛을 봤다.
차갑고 시원한 물이 몸속으로 들어오자 왠지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허리에 달린 수통을 꺼내 물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와 토마호크 위에 부었다. 토마호크에 묻은 하피의 피가 수통의 물에 의해 깨끗이 씻겨 나갔다.
그는 다시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운 후 허리에 채웠다.
그리고는 숲을 한 바퀴 돌아봤다.
사방이 전부 의시시한 커다란 거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지?’
하늘에서 볼 때는 대충 감이 왔지만 밀림을 방불케 하는 수해(樹海)속에 홀로 떨어지자 그는 완전히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까망아, 지금 우리 어디로 가야해?]
[규우!]
까망이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소울은 길게 한 숨을 쉬었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그는 일단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호숫가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풀 냄새가 강하게 나는 풀들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런 풀들을 토마호크로 잘라서 모았다. 그리고는 돌로 으깨어 즙을 내고는 전신에 뿌리고 바르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냄새를 지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호숫가에서 진흙을 가져다가 남아 있는 풀 즙과 함께 섞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투헬멧을 벗어 반짝이거나 매끄러운 부분을 칠했다. 혹시라도 햇빛에 반사가 되어 포식자를 불러들이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
숲에서 살아남으려면 숲의 생리(生理)를 알아야한다. 숲은 인간에게 많은 유익을 제공하지만, 숲에 대해 잘 모르고 함부로 숲속으로 들어왔다간 숲에 의해 잡아먹히고 만다.
소울에게는 사냥꾼 출신의 타이로스에게 배운 두 가지 스킬이 있다.
하나는 ‘쉐도우 스텝’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실전에는 써보지 못했지만 이론만은 빠삭한 ‘카카오커가 배우면 큰일 나는 사냥법’이다.
소울은 지금 자신이 위기에 처한 것을 인식했다.
지금 이 숲은 그 어떤 몬스터가 튀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깊고 넓은 숲속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이렇게 깊은 숲속에 혼자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었다. 또한 그에게는 어떠한 생존 장비도, 맹수나 몬스터에 대항할 변변한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그가 장비하고 있는 전투슈트 세트와 토마호크가 없었다면 생존율이 극악으로 치달렸을 것이다.
‘하피가 흘린 피 냄새를 맡고 곧 맹수나 몬스터가 나타날 것이다. 난 그 전에 이 자리를 피해야한다.’
그의 머릿속에 ‘카카오커가 배우면 큰일 나는 사냥법’의 내용들이 하나씩 저절로 떠올랐다. 소울넷을 통해 하급 영혼체험을 한 것이 지금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전투헬멧을 다시 쓰고는 통신모듈을 확인했다. 그 어떤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
전투헬멧의 기능 중에 주변을 레이더처럼 스캔하는 탐색기능을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그의 전투헬멧의 선바이저에 반경 25m 안의 생명체들이 녹색 점으로 표시되었다.
점은 크고 작은 것이 있었는데 두 눈으로 자신에게 보이는 점 하나를 3초 이상 쳐다보자 즉시 확대가 되더니 희미하게 형태가 드러나며 옆에 야생동물의 종류와 학명이 떠올랐다.
‘마이크로파나 밀리미터파 같은 전자파를 쏘아서 형태를 잡아내는 건가?’
자세히 알 길은 없었다. 하지만 몇 번 반복을 해보자 대충 감이 왔다.
녹색 점도 크고 작은 것이 있었는데 큰 것은 사슴이나 노루 같은 덩치가 좀 있는 야생동물이었고 작은 것은 오소리나 너구리같은 작은 야생동물이었다.
주변을 면밀히 살펴보니 아직 맹수나 몬스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하피의 피 냄새를 맡고 이곳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있는 곳이 호숫가였다. 호숫가는 야생동물이 물을 마시러 자주 들리는 곳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몬스터도 이곳을 찾아올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빨리 여기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거지? 아! 해가 있었구나.’
그는 해가 어디에서 떠서 어디로 지는 지를 확인했다.
크지 않은 나무를 잘라 토마호크로 잘라보기도 하고 이끼가 낀 쪽이 어느 방향인지 살펴봤다.
그는 타이로스의 ‘카카오커가 배우면 큰일 나는 사냥법’을 통해 동쪽과 서쪽이 어느 쪽인지 확실히 구별해냈다. 그리고는 남쪽을 목표로 삼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사삿 사사삿…….
쉐도우 스텝을 이용해 움직이는 그의 몸은 가볍기만 했다.
숲속에서 본격적으로 쉐도우 스텝을 써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의외로 그는 쉽게 그것에 적응했다. 역시 하급 영혼체험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쉐도우 스텝을 극성으로 익히면 자신의 모습을 숲의 그림자에 감춘 채 풀잎 스치는 소리만 내며 바람처럼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소울의 경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본 게 있고 느낀 게 있어서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는 상태였다.
소울은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꾸준히 남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오른손에는 까망이가, 왼손에는 토마호크가 들려있었다.
간간히 중간에 전투헬멧의 탐색기능을 사용해 주변을 살펴보고 최대한 맹수와 몬스터를 피해서 움직였다.
운이 좋은 지 5시간이 지나는 동안 소울은 그 어떤 위험에도 노출되지 않고 산비탈을 타고 내려와 계곡을 건너갔다.
꿀꺽꿀꺽!
수통의 물을 마시며 수분을 보충한 그는 자신의 키만 한 빽빽한 수풀을 보자 잠시 수풀 속에 숨어서 쉬어가기로 했다.
어느덧 해는 조금씩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몸이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워낙 긴장한 상태로 걷다보니 정신적으로 좀 피곤했다.
15분 쯤 수풀 속에 앉아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 이번에는 몸에 급격한 피로가 몰려오고 잠이 쏟아져 내렸다. 거기에다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격렬한 전투에 이어 하피에게 납치를 당해 하늘을 날았고, 오크병사들 사이에 떨어져 죽을 뻔 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서 오크병사들을 처치하고 기회를 틈타 간신히 하피를 타고 탈출했다. 이 과정에서 어찌 부상이 없었겠는가?
그는 전투슈트를 입고 있어서 몰랐지만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있었다.
‘에고 삭신이야.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하고 잠이 쏟아지지? 안되겠다. 한 시간만이라도 잠을 자야겠다.’
그는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하면서 한 숨 자고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울은 자신의 한계까지 몸과 정신력을 사용했다는 것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
[까망아, 나 한 시간만 잘게. 혹시 맹수나 몬스터가 다가오면 나를 깨워줘!]
[규!]
까망이가 걱정 말라는 듯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울은 토마호크로 주변의 키가 큰 풀들을 베어 모았다.
수풀 안에 움푹하게 들어간 공간을 찾아내자 풀을 안쪽 바닥에 넉넉히 깔고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남은 풀들로 입구를 막고 바깥의 풀들을 세워 입구를 완전히 가렸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눈을 감고 셋을 세기도 전에 그는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까망이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눈을 빛내며 수풀 위에 둥둥 떠서 불침번을 섰다. 소울은 이날 이후 까망이가 불침번에 특화된 알람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늘이 붉게 달아올랐다.
떨어져 내리는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하늘을 온통 붉은 물감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강남필드, 아니 차원의 균열 안에도 여지없이 자연의 법칙은 지켜지고 있었다.
* * * * *
“어? 소울넷에 접속됐네?”
소울은 자신이 소울넷에 접속되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잠시 한숨 자고 일어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설마 소울넷에 접속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일단 소울넷에 접속되자 그는 바로 소울넷 영혼체험 인터페이스를 띄웠다.
“소울넷 포인트가 무려 710p나 있네? 왜 이렇게 많아졌지?”
지난번에 500p 이하였던 소울넷 포인트가 어찌된 일인지 700p를 넘기고 있었다. 이 말은 소울넷 유저들이 소울의 삶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말 소울의 삶이 그 정도로 다이내믹하고 흥미로운 것일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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