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제 24 장 - 수상한 선물 =========================================================================
유중한의 말대로 대 몬스터 장벽 위로 올라가자 양쪽 끝에 기관총 진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얼핏 살펴보니 12.7mm K6 중(重)기관총이었다.
벌써 모래주머니를 이용해 튼튼한 진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중기관총 뒤쪽에는 탄약이 잔뜩 쌓여 있었고 여분의 총열도 넉넉히 비치되어 있었다.
‘오오, 중기관총이네. 이러면 굳이 내가 손 아프게 쇠뇌를 쏠 필요가 없잖아? 잘 됐다. 오늘은 적당히 해도 되겠어.’
하지만 그것은 그의 꿈같은 생각일 뿐이었다.
첫날에 큰 피해를 입은 오크군단은 오늘은 아주 단단히 준비를 했는지 어마어마한 규모의 병력을 끌어 모아 남하하고 있었다. 그것도 전면에는 지난 공격 때보다 몇 배는 더 되어 보이는 소형 몬스터들을 줄줄이 앞세우고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강남필드 하늘 위에 뿌려놓은 드론을 통해 속속 강남필드 남부 전진기지에 있는 방어사령부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헬멧에 있는 통신모듈과 통신기를 통해 강남필드에 나와 있는 전 능력자들에게 전해졌다.
-제1 공격대 대장 을지문이다. 방금 통신으로 현재 강남필드의 상황에 대해 들었을 줄 안다. 누구든지 좋다. 첫날 보다 훨씬 전력이 강화된 저들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기탄없이 각 조장을 통해 의견을 전해주기 바란다. 또한 현재 각 지역에 만들어 지고 있는 기관총 진지 작업에 적극 협조해주기 바란다. 이상이다.
을지문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 각 조에서 현재 주둔하고 있는 전장을 조금 더 유용하고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들이 속출했다.
소울도 전장의 지형을 지키는 쪽이 좀 더 높은 곳에 위치하도록 중장비를 동원하여 땅을 팔 것을 제안했다. 또한, 구간 별로 크레모아를 설치하여 지속적으로 적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다.
다른 조에서도 소울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들이 할 일은 별로 없었고 건설 그냥 노무자들에게 땅을 파달라고 부탁하거나 공병대 폭파병에게 크레모아를 설치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편, 포병대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 각 필드의 방어를 위해 105mm 곡사포와 155mm 곡사포를 있는 대로 가져다가 몬스터들에게 포격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340만발에 달하는 105mm 포탄 재고를 모조리 소비할 기회를 얻은 포병대는 공군까지 불러들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멍텅구리 폭탄과 유효기간에 걸린 재고 유도탄을 소비하도록 유도했다.
육군에 의해 공군까지 오크군단의 침공에 끼어들자 해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광주, 울산 총 7개 대도시 근처에 있는 필드 중 바다와 접해있는 부산, 인천, 울산 앞바다에 전투함을 배치하여 함포사격을 지원하기로 했다.
바야흐로 육, 해, 공 전군(全軍)이 모두 오크군단과의 전쟁에 뛰어들어 전투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었다.
-제1 공격대 대장 을지문이다. 현재 오크군단에 앞서 출발한 소형 몬스터들이 숲 입구에 모여들고 있다. 너무 풀어져 있지 말고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도록 하라.
을지문의 적절한 경고에 능력자들의 주의가 강남필드의 숲쪽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울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일단 포병대의 포격이 먼저 시작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품속에서 오크샤먼의 사체에게 얻은 노란 구슬을 꺼내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아무리 능력자협회 홈페이지를 뒤져봐도 노란 마석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소울은 노란 구슬을 쥐고 정체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알 수가 없었다.
‘까망이가 반응을 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정령이나 소환수와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은데……. 오크샤먼의 몸속에서 나온 것을 보면 내단(內丹]이나 사리 같은 건가? 정령석이 몬스터의 몸에서 나올리는 없고…….’
[규규!]
쓸데없이 까망이만 노란 구슬을 보며 잔뜩 흥분해 있었다.
[까망아, 너 혹시 이거 먹고 싶니?]
[규!]
역시 기대했던 대답이 나왔다.
먹성 좋은 까망이는 일단 무조건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거 먹으면 너 강해지니?]
[규우!]
먹고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일까?
[혹시 내가 먹으면 강해지는 거니?]
[…….]
까망이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모른다는 뜻이다.
‘하아, 이거 골치 아프네. 이게 대체 뭔지를 알아야 먹던지 갈아서 쓰던지 할 것 아냐?’
그는 일단 노란 구슬은 그냥 가지고 있기로 했다. 나중에 소울넷에서 알아보다가 정 안되면 탄탈라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노란 구슬을 품속에 넣고 이번에는 야구공을 꺼내 들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은 직구, 커브, 슬라이더이다.
야구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몬스터를 맞추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이 세 구종이면 충분했다.
그는 대 몬스터 장벽 위에 앉아 벽에다 가볍게 야구공을 던져봤다.
휙 툭 데구루루, 휙 툭 데구루루…….
몇 번 장난처럼 야구공을 던지고 있자 그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서는 것을 느꼈다.
“야구공이네요? 혹시 투수세요?”
“아닌데요.”
소울은 자신의 옆에 서서 구경을 시작한 젊은 청년의 말에 응답했다.
“그럼 왜 야구공을 가지고 다니세요?”
“그냥 심심해서 투구 연습하는 거예요.”
“혹시 사회인 야구단 들어가려고 그래요?”
“네에?”
자신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한 말인데 상대방은 그렇다는 대답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시구나. 제가 사실 사회인 야구단에서 투수를 하고 있거든요.”
“정말이요?”
“네, 혹시 사회인야구팀인 매니악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뇨. 전혀요.”
소울은 당연히 몰랐다.
누가 전국에 산재한 5000개가 넘는 사회인 야구단(서울에만 1000여개)의 이름을 알고 있겠는가? 모르는 게 당연한 것이다.
“그러시구나. 이번에 브릴리안 사회인 야구대회에서 제가 선발 투수로 나와서 무한공룡팀을 8:0으로 이겼거든요.”
“불리한 사회인 야구대회요?”
“불리한이 아니라 브릴리안인데요.”
“브릴리안?”
“네.”
젊은 청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인 야구단 자랑을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저 입이 간질거려서인지 소울의 옆에서 가지 않고 계속 쫑알대고 있었다.
소울은 살짝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선발투수라면 공 잘 던지겠네요?”
소울의 말에 드디어 청년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생겼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팀에서 제가 1선발이거든요. 뭐 그럭저럭 던지는 편입니다.”
“그래요? 그럼 제 투구 폼 좀 봐주실래요?”
“투구 폼이요?”
소울의 갑작스런 요청에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제가 요새 직구, 커브, 슬라이더를 연습하고 있거든요.”
“그러지요. 뭐.”
“참, 제 이름은 이소울입니다. F급 소환계에요.”
“네, 저는 이재훈입니다. F급 힐러입니다.”
“힐러시네요?”
소울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능력자 중에 힐러는 귀족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 부류였다.
이재훈은 물론 힐러이다. 하지만 자신이 F급 힐러라서 실질적인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그리 많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소울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혹시 구속이 얼마나 되십니까?”
“130km 정도 나옵니다.”
“무척 빠르시군요. 그 정도면 사회인 야구경기에서는 유명한 투수겠는데요.”
“하하하, 뭐 유명하다기 보다는 좀 알려진 편이지요.”
이재훈은 야구를 주제로 얘기를 하게 되자 신이 나서 소울에게 더 친근하게 굴었다.
“글러브가 없어서 직접 공을 주고받지는 못하겠네요.”
“잠깐만요.”
이재훈은 자신의 가방이 있는 곳으로 뛰어 가더니 곧바로 글러브를 두 개 가져왔다.
“제가 투수입니다만 포수를 할 때도 있어서 늘 가지고 다닙니다.”
“참 준비성이 있으신 분이네요.”
“하하하, 뭐 그렇죠.”
그렇게 두 사람은 대 몬스터 장벽 위에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좀 좁긴 하지만 두 사람이 있는 곳은 대 몬스터 장벽이 꺾이는 모퉁이라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기관총 진지가 있었다.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어린 병사들이 기관총 진지에서 고개를 내밀고 그들이 볼 캐치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
10번 쯤 볼을 던지고 받자 이재훈이 기관총 진지를 뒤로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제 한번 직구로 투구 폼을 잡고 한가운데로 던져 보세요.”
“네.”
소울은 이재훈이 시키는 대로 야구공을 직구로 잡고 던져봤다.
휙 착!
“좋습니다. 다시 한 번 던져 보세요.”
“네.”
휙 착!
그렇게 한 10번쯤 던졌을까 이재훈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뭐가 문제인지 하나씩 투구 폼을 잡아줬다.
“다리를 조금 더 위로 들고 던질 때 체중이동을 하세요. 그리고 공을 던지지 말고 뿌린다는 기분으로 하시고 몸에 균형을 유지하세요. 몸이 흔들리면 제구가 흔들려서 안 좋아요.”
소울은 이재훈의 조언에 따라 자세를 조금 바꿔 보았다. 뭔가 훨씬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왔다.
몇 번 빈손으로 공을 던지는 포즈를 취하고 이재훈이 다시 자세를 잡아줬다.
“이제 다시 공을 던져 보세요. 가지고 있는 힘의 70% 정도만 쓰시면 됩니다.”
“네.”
이재훈이 포수 자리에 가서 다시 앉아 주먹으로 글러브를 팡팡 치자 소울은 이재훈의 말을 기억하며 힘차게 공을 던졌다. 아니 뿌렸다.
휘익 턱!
포수 글러브에 박히는 소리가 아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좋아요. 다시 한 번.”
휘익 턱! 휘익 턱!
“빠르게 던지려고만 하니까 자꾸 몸이 흔들리잖아요. 균형을 유지하고 어깨에 힘을 더 빼세요.”
휙익 텅! 휘익 텅!
“좋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 던지세요.”
휙익 텅! 휘익 텅! 휙익 텅! 휘익 텅…….
“이제 자세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됐으니 조금씩 볼을 빠르게 던져 보도록 해요.”
“네.”
소울은 이재훈의 지도에 따라 제법 폼을 잡으며 와인드업을 했다.
그리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휘익 팡!
“바로 이겁니다. 130km는 나오겠는데요? 이 속도로 10개만 던져보세요.”
“네.”
휘익 팡! 휘익 팡! 휘익 팡! 휘익 팡…….
그동안의 체력강화훈련과 실전기초훈련이 헛되지 않았는지 100개도 채 던지지 않았는데 소울의 폼이 그럴싸하게 바뀌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재훈은 소울이 F급 소환계치고는 힘과 체력이 무척 좋다고 느꼈다.
일반적으로 힐러나 소환계나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재훈 같은 경우는 어린 시절 야구를 한 적이 있었고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와 취미삼아 야구를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다른 힐러들에 비해 몸도 좋고 체력도 좋은 편이었다.
“이게 최선인가요?”
“좀 더 빠르게 던져 볼까요?”
“그러세요.”
휙 팡!
이제는 포수 글러브에 야구공이 파고드는 소리가 제법 옹골찼다.
“140km는 되겠는데요? 스피드건이 없는 게 한이네요.”
이재훈은 그의 공을 받아주면서 슬쩍 소울에게 스카우트나 할법한 소리를 했다.
“우리 팀에 투수가 한 명 비는데 취미 삼아 주말에 한번 나와 볼래요?”
“제가 어떻게 투수를 하겠어요?”
“뭐 어때요? 재미로 하는 건데……. 그냥 장난삼아 나와도 되요. 꼭 가입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한번 스피드건으로 속도나 재보자고요. 아무래도 사람이 서 있을 때 던지는 것과 없을 때 던지는 것은 기분이 많이 틀리거든요. 실전을 겪어보면 확실해져요.”
“흐음, 한번 생각해볼게요.”
“그럼 제 명함 드릴 테니까 주말에 시간 되시면 미리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소울은 그렇게 약속을 하고 투구 폼 교정을 마쳤다.
100개가 넘는 투구를 하고 나니 몸이 적당히 데워지고 살짝 땀도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전투배낭에 넣어둔 생수를 꺼내 마시며 하나를 이재훈에게 줬다.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오늘 제 투구 폼을 봐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하하, 투수로 들어오면 아마 어지간한 타자들은 다 씹어 먹으실 거예요.”
이재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에게 은근히 자신의 팀에 대한 광고를 해댔다.
“재훈 씨는 지금 무슨 일 하세요?”
“전 직장 다니다가 힐러가 된 후에는 때려치웠어요. 앞으로 병원에서 일을 해볼까 하고 생각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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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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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