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92화 (92/492)

00092  제 23 장 - 수련(修練)  =========================================================================

자신의 생각이 적중했는지 그의 얼굴이 펴지는 것을 보자 그녀는 안심했다.

“윤이 씨는 뭐 드실 거예요?”

“전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서 연어 샐러드 하나 시켜서 먹으려고 해요.”

다이어트는 개뿔, 그녀는 양푼이 비빔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정도로 먹성이 좋았다. 다만 먹는 만큼 활동과 운동으로 에너지를 소비를 하고 있어서 몸매를 건강하게 잘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살인적인 간호사의 스케줄도 살을 찌지 않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긴 했다.

“아! 다이어트 중이시구나. 그런데 그 몸매에서 더 뺄게 어디 있다고 다이어트를 하세요?”

“호호호, 아니에요. 저 살 많이 쪘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뺄 것이 없는 완벽한 몸매였다. 비록 가슴이 C컵이 아니라 B컵이라서 좀 불만이었지만 그것만 뺀다면 어디 가서 꿀릴 몸매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대놓고 자랑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은근하게 드러낼 수밖에는 없는 부분이었다.

일단 어느 쪽이던 말의 물고가 트이자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공통의 관심사인 강남 세븐 병원의 일부터 시작해서, 박은영을 통해 전화번호를 땄다는 것으로 넘어갔다. 그녀가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쳐서 끝내 소원하던 간호사가 된 얘기도 재미있었다. 막상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자 자신이 상상하는 간호사 생활이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했다는 얘기는 누가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한 얘기였다.

소울도 병원을 나온 이후, 고블린 떼의 습격으로 죽을 뻔했던 것과 능력자 테스트를 받고 능력자가 된 다음 훈련 받는 얘기를 했다. 오크군단의 침공을 막은 스토리 등을 박진감 있게 전하자 그녀는 그의 말을 듣는 내내 눈이 초롱초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소울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정윤이는 소울에 관해 관심이 높은 상태에서 그가 능력자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음속으로 모종의 결심을 굳혔다.

그것이 꼭 능력자가 현재 대한민국의 미혼 여성들이 가장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신랑감 순위 1위에 등극해서만은 아니었다. 또한 미래의 가장 핫(hot)한 직업 순위 1위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의 결심은 전적으로 그녀의 취향과 외상 후 스트레스에서 오는 강한 수컷에게 보호받고 싶어 하는 여자의 본능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초콜릿 복근에 힘 좋고, 앞으로 돈 잘 벌게 될 직업이라는 것은 그냥 그녀의 선택에 보너스처럼 따라오는 것일 뿐이었다. 최소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울 씨는 그럼 앞으로 능력자로 살아가시겠네요.”

“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럼 계속 그렇게 몬스터와 위험한 싸움을 해야 하는 거예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몬스터와의 싸움은 위험한 게 맞지만 전 몬스터와 결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대신 사냥을 할 거예요.”

“아!”

정윤이는 소울이 말하는 결투와 사냥의 미묘한 뉘앙스를 바로 캐치했다.

“그리고 영원히 몬스터 사냥을 할 생각도 없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전 몬스터 부산물 사업을 해볼 생각이에요.”

“그게 돈이 좀 되나요?”

“뭐 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내가 사냥한 몬스터를 직접 처리해서 판매하면 아마 먹고 사는 것은 문제없을 거예요.”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울은 무척 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무모하지는 않네. 결혼한 아내를 청상과부로 만들지는 않겠어.’

정윤이는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이 찾는 조건에 딱 부합된 남자가 아닌가 싶었다.

소울과 정윤이 모두 맛있는 식사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척 만족했다.

정윤이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자신을 어필하며 그에게 호감을 주는데 신경을 기울였고, 비록 하룻밤이지만 인간 세계의 엘프녀인 유정아에게 단련된 소울은 정윤이의 미모에 혹해 쉽게 마각을 드러내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봐도봐도 젠틀맨의 모습을 보여줬다.

스테이크와 연어 샐러드로 저녁식사를 먹고 후식으로 커피와 차 한 잔씩을 즐긴 그들은 어느새 어두워진 압구정동의 하늘을 바라보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냥 이대로는 헤어지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여기서 너무 앞서나가면 헤프게 보일수도 있어. 그렇다고 이대로 헤어지면 분명히 고하라와 채희라가 끼어들어 여우 짓을 할 텐데…….’

소울의 전화번호는 자신만 딴 게 아니었다. 박은영을 통해 자신에 못지않은 미모를 지니고 있는 고하라와 채희라 까지 따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기에다 수간호사인 정혜자가 소울에 대한 칭찬을 입에 거품을 물면서 해대고 있었고, 능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까지 흘려대는 통에 그를 노리고 있는 간호사가 지금 한 둘이 아니었다.

소울은 소울대로 나름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이도 동갑에다 대화를 해보니 말도 잘 통했고 그녀의 성격도 모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을 배려하는 모습이 백의의 천사라는 간호사의 이미지와 너무 잘 부합됐다.

집안도 중산층 가정이고, 부모님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곱게 자랐지만 스스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홀로서기를 할 정도로 강단과 독립심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아름다웠다.

정윤이 같은 미녀가 자신의 여자 친구가 되어준다면 정말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할까? 아니면 다음 기회를 볼까? 첫날인데 너무 들이대면 싫어할 지도 몰라.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소울은 정윤이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윤이 씨,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에 만나면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호호호, 아니에요. 다음에 만나면 우리 맛있는 곱창구이 집 가도록 해요.”

“우와, 윤이 씨도 곱창 먹을 줄 알아요? 다른 여자들은 질겁하던데?”

“왜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건 아마 맛을 잘 몰라서 그럴 거예요.”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제가 곱창구이는 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윤이가 잽싸게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고나자 둘은 밖으로 나와 큰 길을 향해 걸어갔다.

정윤이는 걷는 것이 힘들다는 듯이 은근슬쩍 그의 팔을 잡아 기대면서 걸었다.

소울은 움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빼라고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볍게 서로의 몸이 스치듯 부딪치는 가운데 정윤이는 소울의 팔에 과감히 팔짱을 꼈다.

뭉클한 감촉이 팔을 통해 느껴지자 소울은 심쿵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남미 미녀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글래머인 유정아나 몸짱 간호사로 한 몸매 하는 고하라의 것에는 못 미치지만 정윤이도 꽤나 속이 꽉 찬 실속파였다.

그의 입 꼬리가 절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소울이 미소를 짓자 정윤이도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이 길을 걷자 남자들은 죄다 자신을 보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죄다 소울을 보고 있었다. 그가 큰 키에 미남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능력자용 전투슈트 때문이었다.

눈치가 빠른 정윤이는 여자들의 시선이 무엇을 말하고 또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능력자는 1000명 당 1명꼴로 나온다고 했다.

대한민국 5000만 인구 중에 5만 명 정도가 능력자가 될 거라는 말이다.

능력자라는 검사, 변호사, 의사 같은 전통적인 선호 직종들을 한순간에 물리치고 앞으로 대세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았다.

몬스터가 도시를 습격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현실에서 능력자라는 힘과 재력을 동시에 가지게 될 이들에게 여자들이 몰리게 되는 현상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집이 어디세요?”

“전 길 건너 한양 아파트에 살아요.”

“아! 압구정동에 사시는구나.”

“네, 저희 집은 제가 어렸을 적부터 여기 살았어요.”

“그럼 여기 아파트 들어설 때 들어오신 거예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이 선견지명이 있으셨네요.”

“호호호, 뭐 그런 셈이죠.”

사실은 정윤이의 할아버지가 압구정동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이사 오자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 또한 그것을 적극 찬성했으니 두 분 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다.

압구정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당시는 그렇게 아파트 가격이 높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무시무시한 가격으로 치솟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압구정동을 비롯한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불패신화의 대표적인 사생아일지도 몰랐다.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고마워요.”

정윤이는 한 번도 남자에게 집까지 바래다달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모두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내려 달라고 해서 헤어졌다.

남자들과의 스킨십이 일어날 상황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소울에게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그 모습이 남들에게는 아마 연인처럼 보였을 것 같다.

혹시라도 부모님이 보시기라도 한다면 아마 오늘 저녁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영혼까지 털려 버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직접 가는 길보다 조금 떨어진 길을 선택했다.

그 말은 조금은 더 으슥한 곳을 선택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어느새 한강 방향으로 서 있는 마지막 아파트를 돌아 나무로 우거진 길을 걸어갔다.

주변의 가로등 불빛이 가장 약해지고 나뭇가지가 도로 위를 잔뜩 덮어서 어둠으로 덮여 있는 곳에 다다르자 정윤이가 자리에 멈춰서더니 소울의 왼쪽 팔을 잡아 자신 쪽을 향해 보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거의 안고 있는 포즈를 취하게 되었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소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달착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금만 더 가면 제가 사는 아파트에요. 여기까지 바래다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당연히 바래다 드려야지요.”

소울은 그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마주서자 자신도 모르게 꿀떡 침을 삼켰다.

“소울 씨, 병원에 있을 때 제 생명을 구해준 것 정말 고마워요.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너무 놀라서 경황이 없었네요. 늦었지만 다시 한 번 감사 드려요. 이것은 제 감사의 표시에요.”

쪽!

정윤이는 소울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다가와 그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그는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가슴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자 그 안에 뭔가 알 수 없는 기대와 열망을 섞어 놓은 듯 했다.

“흐읍!”

“음!”

소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손으로 잡아 자신의 가슴을 향해 당겼다.

말랑말랑하고 보드라운 입술을 지나 뜨겁고 매끈한 설육(舌肉)과 설왕설래(舌往舌來)를 시작한 소울은 잠시 무아지경에 빠진 듯 그녀의 달콤한 숨결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정윤이는 생각보다 거칠고 짜릿한 그와의 키스에 숨이 차고 심장이 마구 두근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리와 등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용감한 한손이 그녀의 민소매 니트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순간 깜짝 놀란 그녀가 눈을 뜨고 몸을 뒤로 빼려는 찰라, 그의 손이 빠르게 브래지어 아래를 뚫고 들어가 이미 원하는 목표를 한손 가득 잡아 쥐었다.

이미 앙탈을 부리기에는 늦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정윤이는 다시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했다. 판을 아주 깨버릴 생각이라면 모를까 지금 거부하면 오히려 소울이 불쾌감을 느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왼쪽 가슴이 마구 일그러지며 짜릿한 달달함이 은근하게 온몸으로 퍼져 나가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더욱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숨을 헐떡거렸다.

정윤이는 자꾸만 갈증이 느껴졌다. 뭔가 더 강렬하고 짜릿한 것이 있을 것 같은데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소울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달콤한 숨결과 그녀의 달달한 체향에 휩싸이자 그는 당장이라도 호텔로 가서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였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울 씨!”

“윤이 씨!”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격렬하게 껴안았다. 이 정도면 서로의 마음이 충분히 전해졌을 것을 믿은 두 사람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았다.

“전화 할게요.”

“네, 기다릴게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정윤이가 먼저 몸을 돌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다.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사진처럼 눈에 와 박혔다.

소울은 그녀가 아파트 안으로 잘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움직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걸어가는 소울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도 즐겁고 가벼워 보였다.

* * * * *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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