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90화 (90/492)

00090  제 23 장 - 수련(修練)  =========================================================================

‘이거 재미있는데? 뭔가 나하고 맞는 것 같다.’

빠르게 피하는 것도 아니고 한 발짝씩만 움직여서 고블린의 공격을 피하는 방식은 의외로 쉽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훈련모드가 눈치를 챘는지 바로 3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고블린이 하나씩 오는 것이 아니라 둘씩 덤벼들고 있었다. 공격을 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있었다.

삑삑삑 삑삑삑…….

소울은 콧방귀를 끼며 자신도 기본스텝의 단계를 올렸다.

사실 이 단계야말로 아리스토가 고안한 기본스텝의 정화(精華)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 시작했던 기본스텝인 동서남북과 두 번째로 했던 북동, 북서, 남동, 남서 대각선 스텝이 합쳐지고 여기에 한 발짝씩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두 발짝 이상 움직이는 것이 조합되었다.

그러자 엄청난 경우의 수가 생기면서 소울의 머릿속에 그가 피할 가상의 선들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이상 버저가 울리지 않았다.

훈련모드는 바로 4단계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고블린이 최대 3마리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소울도 이제 기본스텝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어 쉽게 잡히지 않았다.

간간히 버저가 울리는 일은 있었지만 연속적으로 울리는 일은 없었다.

훈련모드가 5단계로 올라갔다. 고블린들이 맨손에서 이제 무기를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러자 또다시 버저 소리가 삑삑대며 시끄럽게 울려댔다.

소울도 그에 맞춰 기본스텝의 최종단계로 넘어갔다.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서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허리를 숙이거나 살짝 뛰는 방법이 섞이자 또다시 버저 소리가 급격히 줄어갔다.

만일 누가 이 장면을 보면 소울이 고블린들과 같이 칼춤이라도 추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단계까지 오는데 벌써 1시간은 넘게 걸린 것 같았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숨소리도 약간 거칠어졌다.

‘기본스텝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이제 본격적인 쉐도우 스텝을 익혀봐야겠다.’

그는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쉐도우 스텝을 배우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더욱 몰아 붙였다.

버저가 울렸다는 것은 고블린의 칼에 맞았다는 것을 뜻한다.

진짜 고블린이었다면 그는 벌써 잘 다져진 고기조각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이 개인수련장에서 버저소리를 내면서 수련한 땀 한 방울이 실전에서 진짜 피 한 방울을 아낄 수 있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쉐도우 스텝은 기본적으로 숲과 같은 곳에서 소리 없이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지형지물에 잘 감추면서 움직이는 신법이다. 또한, 1:1의 상황에는 공격을 하는 이의 움직임이 순간순간 허공에서 꺼지는 착시 효과를 일으키게 해주고 다(多) 대 일의 상황에서는 뒤로 몸을 움직이면서 적들에게 포위되지 않게 해주는 유투술(游鬪術)의 효과를 일으킨다.

유투술은 지형지물 같은 것을 이용해서 혹은 날쌘 몸을 이용해서 도망을 다니다가 상대방이 포기하거나 방심하면 역습을 하는 전술을 말한다.

그러나 쉐도우 스텝의 강정은 무엇보다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몸을 피하고 도망갈 수 있다는 것이다.

쉐도우 스텝 자체가 아리스토가 타이로스를 위해 카카오커와 싸우다가 위험하면 몸을 피하기 위해서 고안한 신법(身法)이기 때문이다.

이제 소울은 무조건 움직이지 않았다. 속도를 조절하고 강약을 조절했다.

허리를 이용해서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을 분리했다. 그리고 여덟 개의 방위를 상하로 나눠서 16개의 방위로 만들어 움직였다.

그러자 고블린 3마리가 아무리 칼질을 해도 맞지 않았다.

‘성공이다.’

소울은 잠시 훈련을 중지했다. 거의 시간이 2시간이나 흘렀기 때문에 조금 쉬려는 것이다.

그는 문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마른 수건으로 땀을 닦고 생수를 따서 벌컥거리며 마셨다. 좀 피곤했지만 땀을 쭉 빼서 그런지 몸이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10분 정도 쉬고 다시 1시간 동안 몬스터 회피모드 5단계로 쉐도우 스텝을 연습했다. 이제 거의 고블린의 공격에 당하지 않게 되자 센서가 달린 막대기로 고블린의 몸을 후려쳤다.

그러자 고블린들이 빠르게 사라졌다. 아마 죽었다는 설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사라진 만큼 새로운 고블린들이 나타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정면과 좌우에서 달려오는 고블린들을 피하면서 공격하는 연습을 하게 됐다.

그러자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고블린들의 다양한 공격과 공격루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무척 실감났다.

고블린들의 모습을 질리도록 보게 되자 그는 고블린 대신 다른 몬스터로 설정을 바꿔봤다.

코볼트, 놀, 오크, 오크병사 등을 차례대로 실행해서 상대해봤다.

확실히 고블린이 가지고 있는 공격 패턴과는 많이 달랐다.

또한, 그냥 피하는 것보다 자신도 공격을 함께하니 훨씬 상대하기 쉬웠다.

소울은 무려 4시간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수련을 했다. 그리고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훈련모드로 쉐도우 스텝을 연습하는 것은 사실 애초부터 무리다. 진짜 몬스터와 싸우게 되면 저렇게 쉽진 않을 거야. 분명히 더 다양하고 변칙적인 공격도 해올 거야. 이제 쉐도우 스텝 연습은 그만하고 까망이의 능력을 확인해봐야겠다.’

그는 15분쯤 충분히 쉰 다음 훈련모드를 사격모드,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투척모드로 바꿨다.

그러자 벽에서 오크의 모습을 한 강철판이 하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과녁이 아닐까 생각됐다.

주머니에서 세경이 준 야구공을 꺼냈다.

야구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살짝 울적해졌다. 하지만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그래 잘 가라. 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는 까망이를 불렀다.

[까망아! 나와서 이 야구공 속으로 들어가 봐!]

[규!]

까망이가 순식간에 그의 팔을 타고 굴러 내려와 야구공 속으로 쏙 들어갔다.

[저기 과녁이 있지? 내가 저 과녁에 이 야구공을 던져서 맞힐 거야. 그러니까 과녁에 최대한 충격을 줘봐. 알았지?]

[규!]

[그래. 내가 딱 10번만 연습 삼아 야구공을 던져볼게. 그런 다음에 내가 말한 대로 해.]

[규!]

소울은 일단 직구를 던지기로 했다. 진짜 야구 경기를 위해서 던지는 것이 아니라 몬스터를 맞추기 위함이라 그는 최대한 동작을 작게 그리고 빠르게 가져갔다.

휘익! 탁!

과녁에 명중하자 과녁이 뒤로 넘어갔다.

그는 야구공을 주우러 걸어갔다. 야구공을 손으로 잡아 다시 거리를 벌리고 두 번째 과녁을 향해 다시 직구를 던졌다.

휘익! 탁!

이번에도 과녁에 명중하자 과녁이 뒤로 넘어갔다.

다시 야구공을 주우러 걸어가자 야구공이 살아있는 것처럼 스르륵 움직이더니 그에게 데굴데굴 굴러왔다.

[어? 이거 까망이 네가 한 거야?]

[규!]

[하하하, 잘했어. 그리고 고마워!]

[규규!]

소울은 까망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시 직구를 던졌다.

이번에도 과녁에 명중했고 역시 과녁이 뒤로 넘어갔다.

‘뭐야? 나 원래 이렇게 잘 던지는 녀석이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투수로 한 번 인생을 걸어보는 건데…….’

자기 딴에는 잘 던졌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15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상체만한 과녁을 맞히는 것이 과연 투수의 재목이 되는 것인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참고로 성인야구의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는 18.44m이다.

이번에는 커브와 슬라이더를 던져봤다. 커브를 던졌을 때는 위에서 아래로 뚝 떨어졌고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는 옆으로 휙 꺾였다. 하지만 프로야구 투수들처럼 예리한 각으로 휘거나 떨어지지 않고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변화구를 던지자 과녁에 잘 맞지 않아 두어 번 벽을 치는 일이 생겼지만 소울 그에게는 지금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까망아, 이제부터 시작이다.]

[규!]

소울은 일단 직구를 던지기로 하고 새로운 과녁에 야구공을 빠르게 던졌다.

휙! 탁!

뭔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는 자신을 향해 굴러오는 야구공을 손으로 잡고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런 식으로는 뭔가 제대로 된 훈련이 안되겠는데…….’

터치스크린이 있는 문 옆으로 가서 설정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던진 야구공의 속도를 재는 장치와 과녁이 받는 충격을 수치로 나타내는 장치가 있나 확인했다.

“있다.”

다행히 투척무기의 속도와 충격도를 재는 프로그램과 장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을 이용하면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터치스크린을 조작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정을 바꿨다.

그러자 한쪽 벽에 자신이 던진 야구공의 속도와 과녁이 받는 충격이 숫자로 표시되어 나타났다.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 프로젝터로 벽에 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던진 야구공 속도가 대충 100km 안팎이란 말이지? 슬라이더는 80km, 커브는 60km 정도네. 이걸로 충분한가? 아니야. 속도를 조금 더 올려야해.’

과녁에 받는 충격은 당연히 속도와 무게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야구공을 더 무겁게 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속도를 올려야한다.

그럼 과녁이 받는 충격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들은 100마일(161km)이상으로 던진다고 하던데……. 능력자인 내가 겨우 일반인 수준인 100km 정도로 던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뭔가 투구 폼에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내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자신의 투구 폼을 점검했다.

그러자 생각보다 자신의 투구 폼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는 당장 투수가 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천천히 투구 폼을 고치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누가 그에게 투구 폼을 가르쳐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대충 투구 폼을 가다듬은 그는 야구공을 단단히 잡고 힘을 다해 던져봤다.

휙! 탁!

110km가 찍혔다.

이번에는 몸에 힘을 빼고 좀 더 빠르게 던진다는 마음으로 과녁을 향해 던져봤다.

휙! 턱!

115km가 찍혔다.

몸에 힘을 빼고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과녁을 노려보며 빠른 투구 동작으로 힘차게 야구공을 뿌렸다.

120km가 찍혔다. 그런데 아까와는 달리 과녁이 꺾이는 소리가 좀 달랐다.

고개를 들어 벽을 확인해보니 속도는 5km가 빨라졌는데 과녁이 받는 충격은 거의 2배 가까이 올라갔다.

[까망아, 이거 네가 한 거야?]

[규!]

소울은 절로 미소가 났다. 까망이가 야구공이 과녁에 맞는 순간 속도를 배가한 모양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굴러온 야구공을 잡으며 어깨를 크게 한번 휘둘렀다. 그리고는 마치 투수처럼 폼을 잡아 과녁을 향해 다시 세차게 뿌렸다.

휙! 턱!

125km가 찍혔다. 그리고 처음보다 2.5배에 달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이번에도 까망이가 노력을 기울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최고속도로 던져봐야겠다.’

그는 가볍게 제자리에서 몇 번 뛰다가 몸에 힘을 빼고 왼쪽 다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의 체중을 이동시키고 뒤이어 야구공을 든 자신의 팔을 힘차게 앞으로 뿌렸다.

휙! 퍽!

130km가 찍히고 과녁에 받은 충격이 3배가 넘어갔다.

‘130km가 현재 내 한계인가 보구나. 강속구 투수들이 150km 이상을 던진다고 하니 아직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속도로 던져도 일반 사람이 던지는 야구공보다 3배의 충격을 주니 나쁘지는 않아. 고블린의 대가리를 깰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군.’

하지만 아직 뭔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까망이 네가 야구공 속이 아니라 직접 야구공이 되었다가 때릴 때 당구공 정도로 변하면 좋을 텐데……. 아니 쇠공으로 변하면 더욱 좋겠구나?]

[규!]

소울의 간절한 바람이 전해진 것일까 까망이가 야구공 속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그의 팔뚝 위에서 서서히 야구공처럼 모습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검은 색의 야구공 하나가 탄생했다.

[까망아! 너한테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규!]

소울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야구공으로 변한 까망이를 잡아 허공으로 던졌다 받았다.

묵직한 느낌이 들었다.

[한번 던져보자.]

[규!]

그는 투구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과녁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

휙! 퍽!

140km가 찍혔다. 그리고 과녁이 받은 충격은 무려 4배가 넘어갔다.

[잘했어.]

[규규!]

소울이 기뻐하자 까망이는 데구루루 굴러오다 그의 앞에서 통통 튕기면서 소리를 냈다.

‘가만, 이렇게 되면 굳이 야구공처럼 클 필요가 없잖아? 그냥 내 손에 딱 맞는 크기가 더 좋지 않을까?’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선호작, 추천, 응원의 댓글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