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제 23 장 - 수련(修練) =========================================================================
까망이는 아트란의 영단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시듯 묘한 소리를 내고는 그의 손바닥에서 허공으로 뛰어 내렸다.
그때였다.
허공으로 뛰어 내리는 까망이의 몸 안에서 갑자기 마치 연쇄폭발 같은 것이 일어났다.
실제로는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까망이와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소울은 까망의 몸 안에서 뭔가가 연속적으로 터지면서 밝은 빛을 쏟아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빛의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까망이의 몸이 순간적으로 축구공 정도로 커졌다가 다시 당구공 크기로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저 정도면 배가 터져도 몇 번은 터졌을 텐데 용케 버티는 것을 보니 까망이의 배와 먹성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망이의 뱃속에서 일어나는 빛의 폭발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채 1분도 넘지 않고 끝나 버렸다.
하지만 그 결과만큼은 놀라울 정도였다.
까망이의 크기가 일단 당구공에서 야구공 정도로 커졌다. 색깔도 더 진해지고 또렷해졌다.
무엇보다도 까망이에게 느껴지는 기운이 전혀 예전 같지 않았다.
[까망아?]
[규! 꺼어억!]
소울은 바닥에 떨어져서 꼼짝하지 않고 있는 까망이를 불러봤다. 그러자 까망이는 마치 뭔가를 포식하고 난 후 트림을 하는 소리를 내며 소울을 쳐다봤다.
그의 눈동자도 전에 비해 훨씬 선명해져 있었다.
[규규!]
까망이가 데구루루 굴러서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다리를 타고 올라와 배를 거쳐 가슴과 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 위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 속도가 예전에는 간신히 혼자 굴러올 정도라면 지금은 마치 사람이 볼링공을 굴렸을 때처럼 속도가 빨라져 있었다.
소울은 직감적으로 까망이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까망아! 괜찮아?]
[규규! 규규!]
소울은 기분이 좋은지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계속 통통거리며 뛰어 다녔다.
[아무런 이상 없는 거지?]
[규!]
[너 혹시 전에 비해 더 강해진 거니?]
[규!]
[잘됐다. 정말 잘 됐어.]
[규규!]
까망이는 아트란의 영단을 자신에게 준 소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듯 그의 어깨를 타고 머리로 올라가 마구 통통거리면서 뛰어다녔다.
소울은 까망이의 성장이 진심으로 기뻤다. 소환수의 성장은 곧 소환사의 성장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F급에서 E급으로 등급을 단번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날린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곧 그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버렸다.
까망이의 뱃속에서 폭발한 연쇄폭발의 의미를 100%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최소한 세이지가 뭔가 수작을 부려놓았다는 것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아! 세이지 이 씹원짜리 새끼! 하마터면 속을 뻔 했네. 앞으로 이 새끼의 말은 절대로 액면 그대로 믿지 말아야지. 가만, 그렇다면 탄탈라스도 나한테 모든 진실을 다 말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는 거잖아? 이놈도 뭔가 이상해. 앞으로는 이놈도 조심해서 상대해야겠다. 소울넷에 접속하면 이 둘이 진짜 어떤 놈들이 한번 조사를 해봐야겠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다.
소울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세이지와 탄탈라스에 대한 정보수집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까망이도 성장을 했으니 나도 성장을 해야겠다. 타이로스를 통해 배운 카카오커가 배우면 큰일 나는 사냥법과 쉐도우 스텝을 연습해봐야겠어. 그리고 까망이를 어떻게 전투에서 사용을 할 수 있을지도 확인을 해봐야한다.’
소울은 전투슈트 세트를 한쪽에 고이 모셔 놓고 훈련복을 입었다.
그리고 5층으로 내려가 자신의 능력 한계치에 맞춰 헬스기구를 조절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1시간 쯤 운동을 하고 나자 온몸에 땀이 가득했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훨씬 수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계치를 조금 더 올려도 될 것 같았다.
그는 간단히 샤워를 하고 새로운 훈련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2층 뷔페식당으로 갔다. 냄새만 맡아도 뱃속의 식충이 들이 요동을 치는 것을 느끼며 그는 뷔페식당의 음식을 욕심껏 퍼서 접시에 담아왔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할 때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을 들어보니 ‘유마녀’라고 화면에 떴다. 소울이 유정아 박사의 전화번호를 받아 놓았을 때 별명으로 붙여놓은 말이다.
‘정아가, 아니 유정아 박사가 무슨 일이지?’
둘 사이의 사적인 관계는 서로 비밀에 붙이기로 했으니 생각에서조차 그녀의 호칭을 구별하는 것이 좋았다.
“여보세요?”
-자기야! 나야. 정아!
“근무시간에 그런 말을 하시면 누가 들을 것 같은데요?”
-호호호, 걱정도 팔자네. 내 방에서 문 잠가놓고 전화하는 거야. 듣기는 누가 듣는다고 그래? 참 간도 작으시네.
“그래 간작은 놈에게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셨습니까?”
-아잉, 자기야! 왜 그래? 간작다고 말해서 삐졌어?
“안 삐졌거든…….”
-삐진 것 같은데?
“대낮부터 내 복장 긁으려고 전화한 거야?”
-아, 아냐.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랬어.
“괜히 엄한 사람 가슴 떨리게 만들지 말고 전화 건 이유나 말해.”
소울은 그녀가 보고 싶다는 말에 정말 심장이 떨리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아이, 참 무드가 없네. 무드가…….
“할일이 어지간히 없나보다.”
-그게 아니라 나도 오랜만에 사랑하는 애인 설정 좀 해봤어. 적당히 좀 맞춰주면 안 돼?
“나 여기 2층 뷔페식당이야. 여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아예 공개적으로 우리 관계 까발리고 싶어서 그래?”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하지만 앞으로 개인공간에 있을 때는 내 설정에 좀 맞춰줘. 알았지?
“생각해볼게. 그나저나 정말 아무 일 없이 그냥 전화한 거야?”
-사실은 오늘 저녁에도 만나려고 했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볼 것 같다고 미리 전화한 거야.
“그렇구나. 할 수 없지. 열심히 일 잘하도록 해라.”
-그래. 미안해! 자기야. 나중에 내가 화끈하게 서비스해줄게.
“크흠, 아, 알았어.”
소울은 그녀가 화끈하게 하는 서비스가 뭔지 생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호호호, 귀여운 우리 자기, 밥 많이 먹고 정력 잘 키워놓도록 해. 나중에 내가 건강해졌는지 확인해 볼 거야.
“헐, 수고해라. 안녕!”
소울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정말 누가 들으면 둘이 사귀는 사이라고 오해를 할 것 같았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잠자리 정이라도 든 것인지 자꾸 그녀가 달콤한 소리를 내뱉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몸 어딘가가 간질거린다는 것이다.
그는 강하게 머리를 흔들어 그녀의 매혹적인 잔상을 털어버렸다.
눈앞에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아서 심장이 다 두근거렸지만 소울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그녀와의 관계를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묶어두기로 했다.
‘그래. 유정아! 너하곤 이 정도가 딱 적당해. 너무 가까워지면 내가 불안해서 안 되겠어. 넌 너무 위험한 여자야.’
그는 자신의 물건에 주사기를 꽂아대는 끔찍한 경험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주는 약은 무엇이든 절대로 먹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접시 위에 놓인 맛있어 보이는 요리로 향했다.
입속에서 아밀라아제를 비롯한 다당류를 가수분해하는 각종 효소들이 실시간으로 분비되고 있었다.
“맛있겠다.”
그는 시선을 접시에서 떼지 못하고 열심히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비록 혼자 먹는 식사 시간이었지만 2층 뷔페식당의 음식 맛은 최고였기에 그는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중에 3개월 단기 계약이 끝나면 이곳이 가끔 그리워질 것만 같은 기분이 벌써부터 팽배해지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커피 한 잔의 사치를 즐긴 그는 옆 건물에 새로 단장해서 오픈한 능력자 개인수련장을 가보기로 했다.
능력자의 위상이 커지면서 능력자협회의 위상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래서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도 주변의 건물들을 하나씩 집어 삼키며 날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었다.
특히 이번의 오크군단의 침공은 하늘에서 방송용 헬기가 몇 대나 떠서 실시간으로 방송을 했기 때문에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의 위상은 물론 군의 위상까지 덩달아 수직상승을 하는 효과를 보았다. 이런 것을 보고 윈윈(Win-Win) 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또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사체를 수거할 수 있어서 재정적으로도 크게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었다.
덕분에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는 곧 더 큰 장소로 이전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능력자 개인수련장은 탁한 색의 그리 높지 않은 건물에 있었다.
어지간한 충격에도 잘 견딜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고 해서 소울도 한번 와 본 것이었다.
물론 고위 능력자들이 수련을 할 만큼 튼튼하진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F급에서 E급, 잘해야 D급 능력자까지만 수용해도 다행일 것이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내 자리에 앉아 있는 청순한 미모의 안내원이 웃으면서 소울에게 말했다.
그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능력자 등록증을 그녀의 시선이 빠르게 한번 훑어간 것을 본 소울도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능력자 개인수련장을 한번 써보고 싶은데요.”
“잘 오셨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은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능력자협회에 등록된 능력자들에게는 현재 무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공짜라고 하니 소울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능력자 등록증을 확인하겠습니다.”
“네, 여기 있어요.”
능력자 등록증을 보안기에 스캔한 그녀는 다시 그에게 돌려주며 친절하게 말했다.
“3번 수련장을 쓰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간제한이 있나요?”
“아니요. 지금 당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후 12시에는 문을 닫습니다.”
“아! 네. 잘 알겠습니다.”
소울은 그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3번이라고 써져 있는 개인수련장을 찾아갔다.
문 입구에 도착하니 목에 걸린 능력자 등록증을 자동스캔하고 알아서 문을 열어주었다.
“우와아! 이거 좋은데…….”
생각보다 시설이 훌륭했다.
문 입구 바로 옆에 방탄유리로 덮인 터치스크린이 보였는데 훈련 모드에 따라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바닥과 벽이 변형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흐음, 일단 쉐도우 스텝부터 익혀볼까?’
그는 훈련 모드 중에 몬스터의 공격회피 모드를 찾아 설정했다.
그러자 천장에서 레이저빔 같은 것이 쏘아지며 허공에 흐릿하게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기능도 있구나.’
약간 놀란 얼굴로 중앙 필드로 다가선 그는 하급 영혼체험을 통해 타이로스에게 배운 쉐도우 스텝을 사용해봤다.
그의 몸이 비틀거리면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아무래도 처음이라서 그런지 이게 쉽지 않았다.
삑삑삑…….
“아! 이게 이렇게 작동되는 거구나.”
소울은 허공에 흐릿하게 만들어지는 몬스터들이 자신의 몸에 닿으면 버저(buzzer)가 울리는 것을 보고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봤다.
‘쉐도우 스텝을 처음부터 쓰려고 하면 안 되겠다. 아리스토가 타이로스에게 가르쳤던 방식으로 기본기부터 익혀야겠다.’
소울은 처음부터 쉐도우 스텝을 써보니 이게 절대 쉬운 스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리스토가 타이로스를 가르치기 위해 고안한 기본 스텝을 차근차근 배우기로 했다.
이미 모든 방식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상태라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작은 왼발로 12시 방향, 9시 방향, 6시 방향으로 한 발짝씩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발로 역시 12시 방향, 3시 방향 6시 방향으로 한 발짝씩 움직였다.
쉽게 말해 동서남북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말이다.
삑 삑 삑…….
버저가 계속 울렸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기본스텝에 익숙해져 단 한 발짝만으로도 고블린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훈련모드는 익숙해질 만하면 다음단계로 어려워지는 것이 정석이다. 그는 도저히 첫 번째 단계의 기본스텝으로는 2번째 단계로 올라간 고블린들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삑삑삑 삑삑삑…….
버저가 처음 시작할 때처럼 마구 울려대자 소울은 자신도 아리스토가 만든 기본스텝의 다음단계로 넘어갔다.
그것은 대각선으로 움직이는 방법이었다. 북동, 북서, 남동, 남서 4가지 대각선 방향으로 왼발과 오른발이 한 발짝씩 움직이자 그것만으로 다시 버저 소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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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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