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제 22 장 - 크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
소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딱 벌렸다. 생각해보니 이런 가능성이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 그의 말이 맞았다.
소울넷을 만들고 운영하는 존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소울넷을 통해 악명을 저지른 세이지를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이 만약 소울넷의 운영자라면 세이지를 바로 제명시켜 버렸을 것이다.
“혹시 소울넷과 무슨 뒷거래라도 하셨습니까?”
“뭐라고? 푸하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자네는 정말 소울넷과 뒷거래 같은 것이 통하리라고 보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겠죠.”
“그래. 바로 그거야. 난 소울넷을 이용하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소울넷의 규정을 어긴 적이 없네.”
“그런 제가 들은 말이 다 거짓이란 말입니까?”
“아니 다 거짓은 아니지. 하지만 원래 거짓이라는 것은 99%의 진실과 1%의 거짓이 섞여도 거짓이 되는 법일세. 진실은 100%가 되어야 진실이지.”
소울은 세이지의 말을 듣지 살짝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차원, 다른 세계의 유사인종의 육체를 통해 빙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네. 그리고 소울넷에서도 빙의가 불법이 아니야.”
“그럼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빙의를 했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도대체 그 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간단하네. 대상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빙의를 하면 불법이네. 하지만 허락을 받고 빙의를 하면 합법이라고 할 수가 있지.”
“설사 그것이 대상을 속이는 방법이라도 말입니까?”
“그렇지 않아. 자네는 소울넷을 너무 만만히 보는구먼. 빙의는 아무에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빙의를 하려면 나름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네. 또한, 무조건 빙의만 한다고 해서 당장 다른 사람의 몸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세이지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열변을 토했다.
“난 몇 번의 합법적인 빙의를 거치는 동안 내가 빙의한 대상이 그 세계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부(富)를 얻고 힘을 얻는 것을 도와줬었네. 하지만 그걸 좋아하지 않는 자들도 있더군. 예를 들면 내가 빙의했던 대상의 경쟁자나 원수 들은 확실히 그걸 싫어하지.”
“아!”
말이라는 것이 정말 ‘아’ 다르고 ‘어’달랐다.
탄탈라스와 세이지의 말은 정말 정 반대의 의미로 소울에게 다가왔다.
소울은 잠시 생각하더니 날카로운 질문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게 빙의 시도한 적이 있지요?”
“있네.”
“그건 제게 허락을 받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빙의를 시도하면 빙의가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있네. 난 단순히 자네에게 내가 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 가능성을 타진했을 뿐이네. 만약 가능했다고 나왔다면 당연히 자네에게 허락을 구하고 빙의를 했을 거야.”
“그럼 제게 빙의는 불가능했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자네의 정신력과 영력이 아직은 빙의를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더군.”
“빙의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단계가 필요한 겁니까?”
“물론이지. 자네의 소울넷 등급이 최하급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하급까지만 올라와 보게. 그럼 내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네.”
“정말입니까?”
“내가 마법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겠지?”
“네, 그렇습니다.”
“마나의 맹세에 대해 아는가?”
“들어봤습니다.”
“그럼 나의 마나를 걸고 맹세하겠네. 내가 오늘 자네를 만나서 한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말일세.”
“으음.”
이건 정말 의외의 결과였다.
탄탈라스의 말을 들었을 때, 소울은 세이지가 100% 악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이지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더군다나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걸고 맹세를 했다. 이건 도저히 거짓일 수가 없었다.
“좋습니다. 한번 믿어보지요.”
“고맙네.”
세이지는 소울의 말에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가지 더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게.”
“제게 가르쳐준 문신강체술 말입니다. 그거 빙의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이었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문신강체술을 통해 제 몸을 빼앗으려고 한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던가? 내가 자네에게 가르쳐준 문신강체술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아트란의 비전 문신강체술이네. 비록 좀 복잡하긴 하지만 문신 하나 하나가 따로 작용하면서 또한 협력해서 더욱 강력해지는 놀라운 비법이란 말일세.”
“그렇습니까?”
소울은 세이지의 말에 이제는 자신이 정말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하지만 세이지 말이 100% 맞는다고 해도 결국 50%의 확률에 불과했다.
그 말은 세이지나 탄탈라스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둘 다 진실을 말하거나 둘 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그건 확률이 무척 낮았다.
“혹시라도 내 말이 믿기지 않으면 소울넷을 통해 빙의를 막아주는 여러 가지 비법을 배우도록 하게. 소울넷 포인트만 있으면 그런 것을 살 수도 있네.”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몸 안으로 안착시키는 빙의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네. 최하급 에뮬렛만 만들어 착용을 하고 있어도 소울넷 등급이 상급인 유저의 빙의가 전혀 통하지 않네. 소울넷 포인트가 넉넉하지 않다면 차라리 빨리 소울넷 등급을 하급으로 올려보게 그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게 될 거야.”
소울은 세이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제가 오해를 할 뻔 했군요.”
“자네의 오해가 풀렸다니 정말 다행이군. 이번 일을 계기로 나도 앞으로 나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네. 또한, 자네의 조언자이면서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지 못한 내 잘못을 반성하고 보상하고 싶네.”
“네? 보상이요?”
“응, 난 자네에게 보상을 하고 싶어. 그러니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게.”
“뭐 꼭 굳이 보상을 하시겠다니 제가 말릴 수 있어 보이지도 않는군요.”
소울은 뻔뻔하게 사양도 하지 않고 준다는 것을 바로 챙길 생각을 했다. 세이지는 그의 행동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는 듯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자네에게 얘기했던 보상을 먼저 지급하도록 하겠네.”
“혹시 제 능력의 등급을 한 단계 올려줄 수 있다던 그것 말씀이십니까?”
“맞아. 지금 바로 보낼 테니 이것을 받고 그동안 내가 자네에게 소홀히 했던 점을 이해해주기 바라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당한 보상을 할 테니 영혼체험을 계속할 수 있게 허락해주게.”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소울은 바로 그렇게 하겠다고 승낙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제대로 된 보상이 들어왔는지 확인 한 이후에 해줘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세이지는 웃으면서 떠나갔다.
그가 떠나자 소울은 곧바로 그가 보낸 보상이 뭔지 확인했다.
“아트란의 영단(靈丹)?”
소울은 혹시나 해서 아트란의 영단을 확인해봤다.
그러자 소울넷에 접속을 해제한 상태에서 복용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거 아주 특별한 거네. 소울넷에서 접속을 해제한 상태라면 현실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 아니야? 이게 가능한 거야?”
그는 잠시 생각을 해봤지만 차원의 균열에서 몬스터가 튀어 나오는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내가 맛있게 먹어주지. 푸하하하하하!”
소울은 일단 탄탈라스와 다시 한 번 얘기를 더 해본 후에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하고 소울넷 접속을 해제했다.
그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
* * * * *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온 몸이 정말 가뿐했다.
“오오, 이거 확실히 뭔가 느낌이 다른데……. 정말 효과가 있구나.”
늦잠을 자고 일어난 몸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양팔을 옆으로 벌려보기도 하고 아픈 허리를 돌려보기도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 정도로 몸이 가벼운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없었던 것 같았다.
느낌만으로 지금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나집적진이 새겨진 은판을 확인하자 완전 충전되어 있었던 것이 전부 방전된 상태였다.
은판 위에 눈에 보일정도로 충전되어 있던 마나가 지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 것이라는 것쯤은 바보가 아닌 이상 바로 알 수 있었다.
‘세이지의 말이 맞았어. 확실히 마나집적진 위에서 잠을 자니까 몸이 좋아지네. 계속 이렇게 이 위에서 잠을 자고 수련을 하면 더 강해지게 되겠지? 그럼 아예 은판을 더 크게 만들면 어떨까? 더 빨리 강해질까?’
그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은판을 더 크게 만들어 볼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는 법이다. 오늘 처음으로 마나집적진의 효과를 체험해봤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크게만 만든다고 효과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는 차근차근 효과를 확인해보며, 돌다리도 두들겨보면서 건너가기로 했다.
‘이제 아트란의 영단(靈丹)을 먹어볼까? 그런데 어떻게 꺼내서 먹지?’
그는 현실에서 복용할 수가 있다고만 알았지 어떻게 현실에서 불러내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흐릿하게 소울넷의 인터페이스 일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에서도 보이네? 대단하다.’
소울넷은 영혼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현실로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자 새삼 소울넷의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트란의 영단을 꺼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오른손을 펼쳐주십시오. 아트란의 영단을 이동시킵니다.]
[응.]
그는 오른손을 얌전히 펼쳤다. 그러자 곧 그의 손바닥 위에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반투명한 황금빛의 영롱한 구슬이 나타났다.
‘이게 아트란의 영단이구나.’
소울은 이 영단을 보면서 정말 먹음직도 하고 보이는 것이 예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다.
‘드디어 내가 F급에서 E급으로 올라가겠구나.’
그는 아트란의 영단을 쳐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천히 오른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입을 벌려 아트란의 영단을 입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했다.
[규!]
그때, 그의 팔뚝 위로 까망이가 굴러오며 소리를 냈다.
아트란의 영단과 자신을 한 번씩 쳐다보며 호기심을 느끼는 까망이가 눈에 들어오자 소울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내가 지금 뭘 믿고 세이지가 보낸 이 영단이라는 것을 덥석 복용하려는 거지? 세이지의 말을 내가 언제부터 100% 믿었지? 그리고 탄탈라스의 말도 마찬가지야. 어차피 그들은 나에게 차원 저편의 타인일 뿐이다. 그들의 인생을 영혼체험으로 체험해봤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소울넷 등급 정도면 얼마든지 자신의 인생의 부정적인 부분을 편집할 수도 있어.’
생각해보니 아트란의 영단이라는 것도 세이지가 붙인 이름일 것이다. 또한 이게 정말 영단이 맞기나 한 것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설사 영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세이지가 이 영단에 무슨 수작을 부렸을지 누가 알겠는가?
소울은 입속에 거의 들어갔던 아트란의 영단을 도로 꺼냈다.
그리고는 손에 쥐고서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을 했다.
[규!]
그때 까망이가 마치 ‘너 뭐하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까망이에게 먹여볼까? 혹시 뭔가 수작을 부렸어도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반정령이라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을 거야.’
소울은 아트란의 영단이 아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걸 먹고 세이지의 노예나 종으로 전락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까망이에게 아트란의 영단을 내밀었다.
[까망아, 이건 세이지라는 노인네가 나한테 선물이라고 준 아트란의 영단이라는 거야. 진짜 영단인지 확신할 수도 없고, 혹시 내가 먹으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안 먹었어. 너 이거 먹어볼래?]
[규!]
까망은 생각과는 달리 영단에서 풍겨오는 기운에 반했는지 팔뚝 위에서 통통 뛰었다.
[좋아. 먹어도 돼. 대신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조심해야 해.]
[규규!]
까망이가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내자 소울은 쥐고 있던 영단에 힘을 풀고 손바닥을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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