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1 제 21 장 - 까망이의 첫 수확 =========================================================================
소울은 제1 공격대 부대장의 명령을 무시하고 오크 방패병과 창병을 향해 쇠뇌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오크 센트리온을 저격할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크샤먼을 저격한 것도 사실 운이 좋았다. 두 번 다시 해보라고 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다.
오크 센트리온을 노린다면 당장 그의 옆에 서서 중무장을 하고 있는 오크 전사들이 거대한 방패로 벽을 쌓아 버릴 것이 분명했다.
소울은 괜히 되지도 않는 일에 아까운 쇠뇌 화살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현대 쇠뇌의 총아(寵兒)라는 택티컬 어썰트 크로스보우(Tactical Assault Crossbow) 정도라면 모를까 자신의 쇠뇌로는 시간낭비였다.
소울은 그렇게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오크 백인대의 파도 속에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도록 쇠뇌를 쏘아댔다.
미리 넉넉하게 쇠뇌의 화살을 받아 놓았기 때문에 밤을 새도록 쏴도 모자랄 것 같지는 않았다.
인류의 적인 오크병사들을 쇠뇌로 쏴서 죽이기를 반복하자, 조금씩 민세경과 손정도 그리고 자신을 향한 분노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소울은 이상하게도 자신이 더욱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연의 상처로 인한 큰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영혼체험 덕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민세경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한 가지 짐작이 갔다.
‘세경의 아버지가 신장 투석을 하고 있다고 했지. 그리고 완치를 하려면 C급 이상의 힐러에게 치료를 받거나 장기이식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 손정도 힐러의 등급이 C급이잖아. 그렇게 추리를 해보면 뭔가 딱딱 맞아 떨어지네. 설마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거야?’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의 가설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니 이게 틀림없을 것이다.
소울은 이제 기계적으로 쇠뇌의 시위를 당기고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손에 물집이 생겨 장갑을 꺼내 껴봤지만 좀 덜 아플 뿐이지 고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손정도처럼 재벌3세였으면 돈으로 세경이를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내가 C급 힐러만 됐더라도 세경이가 날 떠나지 않았을 거야. 나에게 힘과 능력이 없는 죄로구나.’
소울은 흥분이 가라앉자 머리가 차가워졌다. 냉정을 회복하자 어떻게 해야 세경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하지만 당장은 자신이 누구를 도와줄 처지가 되지 못했다.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가 주관하는 몬스터 사냥법 연구와 훈련효울성 연구를 지원하면서 받은 계약금 1000만원과 능력자 지원금 300만원은, 이미 집에 돈을 보내고 마나집적진과 소환마법진을 만드느라 다 써버리고 없었다.
이번에 들어온 교통사고 보상금 1000만원도 부여마법을 인챈트하여 아티펙트를 만드는데 쓴다고 생활비 조금 빼고는 전부 소망이에게 계좌이체 해버렸다.
망가진 세경의 아버지의 신장을 고치려면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가던가 아니면 C급 힐러의 호의로 힐을 받아야만 한다.
‘내가 어느 세월에 억 단위의 돈을 벌겠냐? 결국 세경의 입장에서는 이게 최선인가?’
민세경의 입장을 생각하면 할수록 소울은 자꾸 자괴감만 들었다.
지금 상태로 보면 민세경은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3번이나 연속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고민을 계속 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빨리 힘을 키우고 돈을 벌어야겠다. 다시는 내가 능력이 없어서 여자가 떠나가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핑 핑 핑!
그가 쏜 쇠뇌에 얼굴이 뚫린 오크병사들이 실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쇠뇌의 시위를 당기며 자신의 분노의 화살을 날려댔다.
그의 손에서 핏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물집이 생겨 터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쇠뇌의 시위를 당기고 쏘아대자 결국 손가락이 갈라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힐!”
갑자기 자신의 손에서 시원한 청량감이 들었다.
장갑을 벗고 손을 살펴보자 물집이 생겨서 피가 나기 시작한 자신의 손이 멀쩡한 상태로 변해있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에게 힐을 써준 힐러에게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손정도는 정기(正氣)가 가득담긴 눈으로, 맑은 웃음을 지었다.
소울은 연예인 보다 더 잘 생기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을 더 이상 보기가 민망해서 감사인사만 하고는 얼른 다시 쇠뇌의 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세경이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것 같구나. 이 빌어먹을 놈아! 제발 세경의 아버지의 병을 꼭 치료해줘라.’
손정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아버지가 병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그걸 그냥 두고 볼 위인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의 행동이 전부 의도된 거짓이나 연기가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세경의 아버지의 병을 발 벗고 나서서 낫게 해줄 것이다.
소울은 그렇게 세경에 대한 마음을 살포시 접고 자신의 짧은 사랑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쇠뇌를 쏘고 있는 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 *
“수고 하셨습니다.”
“네, 이소울 대원도 수고하셨어요.”
전투가 끝났다.
끝도 없이 밀려오던 오크군단의 공세는 어느새 멈춰져 있었다.
오크군단장은 능력자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는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좌초되자 이런 식으로는 피해만 양산할 뿐이라고 판단을 했는지 퇴각나팔을 불었다.
오크병사들은 마치 썰물처럼 강남필드의 깊은 숲속으로 후퇴했다.
전투가 끝났지만 그렇다고 제1 공격대도 오크군단처럼 전장을 떠나지는 못했다. 오크군단은 얼마든지 마음을 바꿔 다시 쳐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하게 후퇴했다는 것이 확인되거나 전투의지가 분명하게 꺾였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제1 공격대에 속한 대원들은 당장 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전열을 재정비하라!”
“부상자를 뒤로 옮기자.”
“무기와 장비를 정비하라.”
“간단히 요기할 것과 마실 것 좀 가져와!”
…….
전투가 끝나자 오히려 이곳은 걸 그룹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부산스러워졌다.
하지만 반대로 대 몬스터 장벽 위는 한가해졌다.
힐러들은 다친 대원들을 치료하러 대 몬스터 장벽 아래로 내려갔고, 구현계 원거리 딜러들은 주린 배를 채우고 지친 몸을 쉬러 내려갔다.
지금 대 몬스터 장벽 위에 남아 있는 것은 적의 기습을 감시하기 위해 남겨 둔 민첩계 능력자 몇 명과 소울뿐이었다.
소울은 너덜거리는 쇠뇌의 시위를 새것으로 교환하고 어디 고장이 나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여기 김밥과 음료수가 있습니다. 좀 드시고 하세요.”
“감사합니다.”
민첩계 능력자 한명이 대 몬스터 장벽 위에 남아 있는 동료를 위해 김밥을 비롯한 먹거리와 음료수를 한아름 들고 올라와서 나눠주고 있었다.
소울은 안 그래도 배가 조금 고팠던 터라 기꺼운 마음으로 김밥과 음료수를 받았다.
김밥을 하나 집어 입에 넣자 그의 왼손으로 까망이가 굴러들어왔다.
[규!]
[까망아! 그래 기운 좀 많이 흡수했니?]
[규규!]
소울은 기분이 한껏 좋아진 까망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이렇게 김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 지는데 왜 까망이라고 기운을 배불리 흡수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겠는가?
소울은 손 안에서 팽이처럼 몸을 돌리며 애교를 떠는 까망이를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규규규!]
그때, 갑자기 까망이가 뭔가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내려놓는 것이 느껴졌다.
[어? 이건 뭐야?]
그는 슬쩍 손을 펴서 손바닥 안을 살펴봤다.
“헉!”
깜짝 놀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켜다 먹던 김밥이 목에 딱 걸렸다.
“케엑, 큭큭!”
그는 급히 물을 마시며 가슴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민첩계 능력자 하나가 웃으면서 소리쳤다.
“하하하,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좀 천천히 드세요. 누가 안 쫓아옵니다.”
“크흠, 갑자기 김밥이 목에 걸렸네요. 하하하!”
소울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의 말에 대꾸를 해줬다.
민첩계 능력자가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김밥을 먹기 시작하자, 소울은 슬쩍 자신의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상체로 손을 가리고 다시 한 번 손바닥 안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건 마석이 분명하다. 까망이가 이걸 어디서 구해왔지? 설마 오크병사의 사체에서 꺼내온 건가?’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었다. 그의 손에 들린 마석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까망아! 이거 어디에서 가져왔어? 오크병사들의 사체에서 네가 빼온 거야?]
[규!]
까망이 긍정의 뜻을 표하자 소울은 여기서 까망이의 능력 2가지를 발견했다.
자신의 몸 안에 최소한 마석 10개 이상은 담아올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다는 것과 죽은 몬스터의 사체에서 마석을 발견하고 빼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소울은 일단 지퍼가 달린 작은 파우치를 하나 꺼내 마석을 담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F급 마석 10개가 순식간에 그의 품속으로 사라졌다. 이것을 모두 내다 팔면 개당 100만원씩 1000만원은 받을 것이다.
[까망아, 너 마석을 흡수할 수 있는 거야?]
[규!]
[그렇구나. 그럼 마석을 흡수하면 더 강해지는 거야?]
[규!]
놀라운 일이었다.
소환수가 마석을 먹고 강해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환수가 마석을 먹고 강해진다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았다.
[까망아, 그럼 마석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니?]
[규!]
[근처에 마석 많아?]
[규!]
[그렇구나. 그럼 마석을 흡수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규!]
아무래도 강력한 현대화기에 노출된 오크군단의 병사들이 무수히 죽어나갔으니 당연에 전장이었던 이 근처에 마석이 넘쳐 날 것이다.
[까망아, 그럼 마석 중에서도 기운이 더 많은 마석이 있니?]
[규!]
[좋아. 그럼 그것부터 찾아내서 나한테 가져오도록 해.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네가 필요하면 꺼내달라고 해.]
[규우!]
소울은 싫다는 뜻인지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시 질문은 까망이가 단답형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자신의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혹시 네가 흡수할 마석은 따로 가지고 있니?]
[규!]
[아! 그런 뜻이구나. 까망아, 지금 저곳에 마석이 많이 있지만 곧 사람들이 오크병사들의 사체를 모아서 가져갈 거야. 그렇게 되면 네가 아무리 마석을 가져오고 싶어도 불가능해. 그러니까 가급적이면 제일 기운을 많이 담고 있는 마석부터 챙겨서 가져오도록 해.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 알았지?]
[규!]
그는 까망이의 머리라고 생각하는 윗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라.]
[규규!]
까망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위로 통통 튀더니 곧 아래로 뛰어 내려 모습을 감췄다.
소울에게는 까망이가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를 전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푸하하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 구나. 역시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복이 오는 거야. 내가 자원해서 몬스터와 싸우니까 이런 횡재도 하는 거지.’
그는 사실을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멋대로 해석해버렸다.
남은 김밥을 남김없이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그의 얼굴에는 아까와는 달리 미소가 가득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번 전투에 참여한 능력자들에게도 보상금이 좀 나오겠구나. 아무리 못 줘도 능력자들에게 최소한 10%는 주겠지?’
이번에 육군에서 포병대와 항공대를 동원해서 많은 포탄과 유도탄을 퍼부었으니 포탄 값과 유도탄 값으로 꽤 많이 뜯어 갈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크군단의 갑작스런 침공은 막을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챙겨줄 것은 챙겨줘야 한다.
하지만 같이 싸운 능력자들도 목숨을 걸고 싸운 것은 마찬가지다. 논공행상을 하자면 능력자들도 할 말이 있을 테니, 분명히 전투에 참여한 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것이다.
소울은 자신의 은행계좌에 돈 들어오는 소리가 쏠쏠히 들려오고 있었다.
물론 액수가 제법 되는 돈이 들어왔다가 바로 빠져 나가 남은 돈이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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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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