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78화 (78/492)

00078  제 20 장 - 오크군단의 침공  =========================================================================

생각해보니 자신은 그녀에게 뭘 제대로 해준 것도 없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한 기억이 났다.

과연 내가 그녀에게 뭐라고 화를 내고 비난을 퍼붓는단 말인가?

그의 머릿속에 엄친아 손정도가 생각났다. 유중한의 말을 들어보니 민세경의 옆에는 자신이 아닌 손정도라는 사람이 있는 것이 그녀의 행복을 위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불렀어?”

“이거 주려고요.”

“이게 뭐야?”

“그냥 오빠 가지세요.”

소울은 민세경이 손으로 건네준 것을 받아 자신의 눈앞으로 들어보았다.

다 낡아 빠진 야구공 한 개였다.

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갑자기 자신을 불러내서 준다는 것이 낡은 야구공이라니…….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소울은 시선을 돌려서 민세경을 다시 쳐다봤다.

지금 이따위 야구공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소울은 그녀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나한테 왜 이러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질문이 터져 나오기 직전, 민세경의 입에서 자신의 모든 질문의 해답 같은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오빠, 미안해요.”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입속에 수백, 수천 단어의 말들이 맴돌았지만 그는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해요.”

소울은 두 번째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에 그만 맥이 탁 풀렸다. 그리고 그냥 가슴이 먹먹해졌다.

민세경의 눈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처절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이 자신의 눈빛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자괴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울은 그녀가 저런 눈빛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입이 딱 붙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는 격해진 감정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굵은 남자의 눈물을 흘러내렸다.

소울의 눈물을 보자 민세경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그녀는 마치 세상을 다 산 여자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미안해요. 저를 용서하지 마세요.”

“…….”

소울은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자 정말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입에서는 단 한마디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은데, 욕이라도 좋으니 한 마디 해주고 싶은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민세경이 그의 일그러진 얼굴을 쳐다보다 도저히 못 보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그는 한 손을 들었다.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상하게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고 있었다.

분명히 내 발인데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가질 않고 있었다.

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마음과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사라져가는 자신의 사랑을 보고도 병신처럼 잡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그는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머릿속에는 손정도와 민세경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상상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손정도를 잡아끌어 내리고 자신의 모습을 그곳에 집어넣으려고 해도 들어가지가 않았다.

소울은 결국 자신의 시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왜 그녀를 잡을 수 없었을까?

왜 난 한 마디도 못했을까?

왜 무릎 꿇고 가지 말라고 애원이라도 해보지 못했을까?

뭐가 무서워서?

뭐가 두려워서?

왜?

도대체 왜?

왜……?

그는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속으로 소리쳐도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공허할 따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을 해보니 답이 나왔다.

결국은 자신감 결여인 것이다.

아무리 능력자가 되었어도, 아무리 소울넷을 통해 대단한 사람들의 인생을 체험했어도 자신을 믿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소울, 넌 정말 한심하구나. 네 여자가 떠나는 데도 가만히 쳐다만 보다니……. 넌 너무나도 무력하구나. 계속 이 따위로 살 거야? 정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병신 짓 하고 살래? 능력자가 됐으니 달라져야 하잖아. 소울넷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했으니 너도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오잖아. 넌 예전의 네가 아니야! 이제 너도 능력자야. F급이긴 하지만 능력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정신 차려! 자신감을 가져! 넌 할 수 있어. 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소울은 두 주먹을 피가 나도록 세게 쥐었다.

그리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그래 시발!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자. 내 좆 꼴리는 데로 한번 졸라 멋지게 살아보자고…….”

뚝!

소울은 그동안 자신을 부여잡고 있던 머릿속의 뭔가가 끊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건물 사이의 길을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발자국 소리가 울리며 허공으로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북쪽에서 거대하고 냉혹한 살기가 남하하기 시작했다.

* * * * *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헌인릉 북쪽에 집결한 제1 공격대 대원 100명은 각자 무기와 장비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조용히 북쪽을 바라봤다.

소울도 손정도를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북쪽으로 돌렸다.

그의 두 눈은 예전과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 속 깊은 곳에는 새하얗게 불타오르는 불길이 쉬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내려온다.”

소울은 유중한 조장의 말에 전투헬멧의 안면가리개를 내렸다.

그러자 능력자협회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기치창검을 드높이고 갑옷과 방패로 완전무장한 오크 백인대가 셀 수도 없이 행군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오크 백인대 100개가 모인, 오크 만인대 수십 개가 모인 것이 지금 강남필드 남부로 진격중인 오크군단이었다.

일부 능력자는 저렇게 내려오기 전에 포격을 퍼부어서 쓸어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것은 강남필드에 대해, 아니 차원의 균열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식한 의견일 뿐이었다.

강남필드는 밖에서 볼 때 가로 5.5km, 세로 2.5km에 불과하다. 하지만 강남필드 안으로 들어가 본 능력자들은 그 안이 얼마나 넓고 광대한지 알고 있다.

쉽게 말해 강남필드는 가로 5.5km, 세로 2.5km 정도의 외(外)공간 밖으로 나와야 포격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안으로는 어떠한 포격도 유도무기도 통하지 않았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차원의 균열에서도 작동하게 특수하게 제작된 드론(무인기)들이 강남필드의 하늘 위를 날아다니며 오크군단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찍어 남부기지로 보내왔다.

남부기지에서 다시 공격대로 보내는 동영상을 통해 각 공격대는 자신들이 대기하고 있는 전면의 상황을 눈으로 보듯 알 수 있었다.

소울의 전투헬멧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내지는 오크군단의 남하를 보며 눈에 살기를 흘렸다.

터질 것 같은 분노와 자괴감, 절망 같은 온갖 마이너스 감정이 범벅이 되어 있는 그에게 안 그래도 분풀이를 할 상대가 필요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크군단은 지금 그의 원망을 한껏 받아줄 수 있는 좋은 상대였다. 물론 전투에서 죽지만 않으면 말이다.

소울은 안주머니에 넣어 놓은 세경이 준 낡은 야구공을 꺼냈다.

옥탑 방의 침대에 누워 그녀의 가슴을 이용해 야구공 잡는 법을 배웠던 기억이 났다. 아니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추억이었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세경에게 배운 모든 종류의 야구 구종을 낡은 야구공을 통해 재현했다.

세경은 소울에게 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써클 체인지업, 포크볼, 커터, 스플리터, 팜볼, 너클볼, 스크루볼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야구 구종을 가르쳤었다.

[까망아! 이리 와봐.]

[규!]

소울이 까망을 부르자 까망은 머리카락 속에서 나와 그의 머리에서 어깨를 거쳐 그의 손까지 데구루루 굴러 내려왔다.

[복잡하게 말하지 않을게. 직구, 커브, 슬라이더 딱 세 가지만 배우자. 야구공 안으로 들어가라.]

[규!]

소울은 까망이를 야구공 안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직선으로 날아가는 패스트볼, 즉 직구를 던질 때 잡는 그립을 보여줬다.

[이건 직선으로 날아가는 거야. 내가 너를 이렇게 잡으면 넌 똑바로 날아가게 된다.]

[규!]

다행히 까망이는 소울이 자신에게 한번 가르쳐 줬던 기억이 남아 있었는지 금세 그의 말을 알아먹었다.

커브와 슬라이더를 가르쳐주자 그것도 어려움 없이 알아먹는 것 같았다.

[까망아, 난 소환계 능력자야. 네가 없으면 사실 나는 이 쇠뇌만 죽을 때까지 쏴야 할지도 몰라. 제대로 된 소환수도 없는 F급 소환계 능력자를 누가 파티로 받아주겠어? 난 반드시 성공할거야. 그러니까 네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규!]

소울은 까망이에게 진심을 다해 도움을 요청했다.

탄탈라스가 말했던 반정령의 의미를 되새기면 소울은 까망이가 분명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까망이를 더 이상 없는 소환수 취급을 하지 않았다. 까망이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만 까망이의 능력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부터라도 까망이의 능력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까망이의 비물질에서 물질로 몸을 바꾸는 능력이었다.

[까망아, 모든 생명체에는 약점이 있다고 한다. 인간인 나만해도 날카로운 칼에 찔리면 피를 흘리고 죽게 되거든. 몬스터도 생명체이니까 당연히 가죽이 뚫리게 되면 죽게 될 거야. 만약 네 능력으로 뚫을 수 없으면 몬스터의 약점을 노려서 찌르도록 해. 눈이나 콧구멍, 입이나 귓속 같은 곳 말이야. 생식기나 항문도 괜찮겠네. 내 말 알아들었니?]

[규!]

소울은 까망이가 정확히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알 때까지 가르치면 되는 일이다.

소울이 이렇게 까망이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을 때, 드디어 강남필드 남부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갑사단 포병대의 모든 포문이 일제히 열리기 시작했다.

펑 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수십 대의 자주포에서 일제히 포성이 일어나며 일제사격(TOT: Time On Target)이 시작됐다.

푸슈웅 푸슈슈슈웅 푸슈슈슈슈웅…….

수십 대의 다연장로켓(MLRS) 발사대에서 227mm 무유도탄이 연이어 솟구쳐 올랐다.

227㎜ 무유도탄 1기에는 900여 발의 자탄이 들어 있는데 축구장 3배 면적을 단숨에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정밀타격 화력장비다.

오크군단을 전멸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아주 작심을 한 듯 포탄과 무유도탄이 오크군단을 향해 철의 비가 내리듯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꽝 우르르릉 우르릉 쿵 콰릉 콰르릉…….

오크 백인대 하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고깃덩어리로 변해 산산조각이 버렸다.

만인대 하나가 순식간에 전멸의 피해를 입었다.

“와아아아아아!”

공격대에 속한 능력자들은 일제히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셀 수 없이 많은 오크군단의 남하에 겁을 먹었었는데 생각보다 쉽게 그들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당연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아직 너무 일렀다.

강남필드 남부를 향하는 오크군단이 갑자기 남하를 중지했다.

그리고 일제히 기치창검을 높이 들고 소리를 질렀다.

우르라 우라아아아아…….

그러자 숲 속에서 고블린, 놀, 코볼트, 오크 무리들이 떼를 지어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크군단이 지르는 함성에 눈빛이 벌게지더니 일제히 강남필드 남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숫자가 수만, 아니 수십만은 되는 것 같았다.

그 사실에 놀란 기갑사단 포병대의 모든 포문이 다시 한 번 일제히 열렸다.

펑 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푸슈웅 푸슈슈슈웅 푸슈슈슈슈웅…….

수십 대의 자주포에서 일제히 포성이 일어나고 수십 대의 다연장로켓 발사대에서 유도탄과 무유도탄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콰콰콰쾅 콰콰콰쾅 콰콰콰쾅…….

꽝 우르르릉 우르릉 쿵 콰릉 콰르릉…….

구룡산과 대모산은 기갑사단의 강력한 화기에 노출되어 순식간에 붉은 속살을 드러내며 황폐해져갔다.

하지만 그만큼 쏟아져 나오는 고블린, 놀, 코볼트, 오크 떼들의 피해도 극심했다.

그 어마어마한 포화를 뚫고 헌릉로를 향해 달려오는 몬스터들이 하나 둘 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놈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전차와 장갑차들에게 있어 좋은 사냥감일 뿐이었다.

헌릉로를 따라 만들어 놓은 대 몬스터 방벽과 방어진지에서 일제히 기관총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신히 헌릉로까지 달려온 몬스터들은 허무하게 허공에 팔을 허우적거리며 쓰러져버렸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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