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77화 (77/492)
  • 00077  제 20 장 - 오크군단의 침공  =========================================================================

    소울은 순간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그녀와 자신이 몸을 몇 번 섞은 것 외에는 정식으로 사귀지도 않았던,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건 배신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일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마음이 누군가 찬물이라도 확 끼얹은 것처럼 차가워지며 맥이 탁 풀렸다.

    그의 입가에 절로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후, 씨바! 나 차인 거네? 아까 그 놈이 나보다 난 놈이라서 날 차고 떠나가 버린 거네.’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민세경 같은 예쁜 여자가 키도 작고 평범한 얼굴을 가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능력자 등급이 높은 것도 아니고…….

    어딜 봐도 그녀가 자신을 좋아할만한 구석이 없었다.

    그의 마음에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격지심이 슬슬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이봐!”

    그때였다.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소울은 자신의 생각이 방해받자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뭡니까?”

    “그리로 가면 어떻게 해. 저리로 들어가서 공격대에 들어야지.”

    소울은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는 지금 커다란 비행기 격납고 같이 생긴 곳의 옆을 스쳐 숲속으로 통하는 오솔길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덩치 큰 능력자에게 미안한 표정을 하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건물 안을 향해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아까 둘이 이쪽으로 간 것 같은데…….’

    소울은 기왕 이렇게 된 것 도대체 얼마나 잘난 놈이 길래 민세경이 자신을 차고 떠난 것인지 한번 알아보고 싶었다.

    물론 그 마음속에는 민세경이 확실히 자신에게 마음이 떴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미련도 남아 있었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자신의 전화를 안 받고, 세 번째 보는 그 키 크고 잘 생긴 능력자의 옆에 달라붙어서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어도 그녀의 입을 통해 이별통고 정도는 받고 싶은 것이 소울의 심정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정말 비행기 격납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명의 능력자들이 몇 개로 줄을 지어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울은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다른 능력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민세경의 모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손정도와 민세경은 능력자들이 서 있는 줄 중 제일 첫 번째 줄의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제1 공격대’라고 쓰여 있다.

    두 사람을 찾아낸 소울은 자신의 전투헬멧을 쓰고 접수대로 갔다.

    접수대에는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의 유니폼을 각각 입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소울은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제1 공격대로 가겠습니다.”

    “거긴 다 찼어요.”

    “그래요? 그럼 제1 공격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배치해주세요.”

    “네?”

    접수대에 능력개발청에서 나온 남자가 고개를 들고 소울을 한번 쳐다봤다.

    “왜 꼭 거길 들어가려고 그래요?”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럽니다.”

    소울의 말에 능력자협회에서 나온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제1 공격대에 반쪽짜리 힐러 하나 있잖아요? 그 힐러 빼고 넣으면 되겠네요.”

    “아! 민세경 힐러 말이군요.”

    “F급 힐러에다 힐 양도 적어서 실전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차라리 쇠뇌같은 원거리 지원이 더 유용할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소울은 자신의 앞에서 속닥거리는 남녀의 말을 듣고는 절로 미소가 돌았다.

    민세경을 반쪽짜리 힐러라고 부른 것에는 화가 나지만 그녀를 전장에서 빼내고 대신 자신이 들어가는 상황이 되자 오히려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도 F급 소환계네?”

    “정말이네요.”

    “아니 왜 F급 능력자가 여기에 와 있지? 소집한 것은 E급 능력자까지 아니었어?”

    “맞아요. 아! 무기 때문인가 보네요.”

    “으음, 쇠뇌 때문인가?”

    두 사람은 잠깐 소울을 쳐다보더니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F급 능력자는 소집에 응할 의무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어요?”

    약간 딱딱한 그의 말에 소울은 순간 두뇌를 팽팽 돌려댔다. 여기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잠시 생각을 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크 군단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자라면 당연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을 퇴치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라를 지키는 군인에게 이등병은 안 되고 일등병은 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전 비록 F급 소환계 능력자에 불과하지만 제 무기로 E급 능력자 못지않게 몬스터를 쳐 죽일 자신이 있습니다. 제발 싸우게 해주십시오.”

    소울은 비장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마치 연설이라도 하듯 강하게 말했다.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각각 파견 나온 남자 직원과 여자 직원은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벌떡 일어나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군요. 진의(眞意)를 의심한 것 사과드립니다. 제1 공격대로 넣어드리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시겠다는 그 신념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두 사람은 소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울도 얼른 그들에게 맞절을 하듯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다행히 소울이 의도한데로 그는 제1 공격대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주위에 있는 능력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오기 시작하자, 소울은 다시 한 번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잽싸게 자리를 빠져 나와 제1 공격대의 맨 뒤로 슬그머니 가서 섰다.

    전투헬멧의 안면가리개를 내리자 곧 그의 눈에 자신이 제1 공격대 제 10조의 조원으로 배치됐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곧 10조의 조장이 나타나 소울에게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육체 강화계 능력자로 보이는 울퉁불퉁한 근육이 돋보이는 거구의 사내였다.

    “이소울 능력자 맞죠?”

    “네, 맞습니다.”

    “난 제1 공격대 10조 조장 유중한입니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F급 능력자신데도 불구하고 서울을 지키기 위해 자원하셨다고요.”

    “아, 그거 별거 아닙니다. 그냥 당연히 능력자라면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하하하, 뭐 어찌됐던 좋습니다. 저는 당연히 E급 능력자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F급 능력자가 왔네요.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쇠뇌라는 무기는 원거리 지원이 가능하니 말입니다.”

    “아! 네.”

    소울은 1공격대 10조 조장인 유중한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온 게 나쁘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어 잠시 헷갈렸다.

    “이걸 전투헬멧과 전투슈트에 부착해 주세요. 제1 공격대 휘장과 계급장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유중한에게서 제1 공격대 휘장과 계급장을 받아 전투헬멧과 전투슈트에 각각 부착했다.

    유중한은 소울을 비롯한 조원들을 불러 귀에 부착하는 통신기를 나눠주고 통신모듈을 설정해줬다.

    제1 공격대 10조 조원 10명 중 소울처럼 전투헬멧과 전투슈트 그리고 전투화까지 다 갖춰 장비한 능력자는 3명도 되지 않았다.

    소울을 빼고 10조 조원들은 모두 E급 이상의 능력자였다. 하지만 F급 능력자인 소울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어, 소울이 장비하고 있는 전투슈트 세트가 범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F급 능력자인데도 자원을 했다니 소울을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어쨌든 그의 의도와는 달리 졸지에 애국자가 되어 버린 소울은 그렇게 제1 공격대 10조 조원들과 어울리며 출동 준비를 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제1 공격대 1조에 있는 손정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유중한 조장님.”

    “그냥 유 조장이라고 부르세요. 바쁜데 언제 이름을 다 부릅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기 제1 공격대 1조에는 누가 들어가 있습니까?”

    “아! 이소울 대원도 눈치 채셨군요. 제1 공격대 1조야 말로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능력자들이 모여 있는 곳 아닙니까?”

    “그래요?”

    소울은 유중한의 말에 순간 머리에 해머를 맞은 것 같았다.

    이거 어째 시작부터 한 방 먹고 가는 기분이었다.

    “1조는 우리 같은 E급 능력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전원이 C급 이상의 능력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들 중에는 머지않아 B급으로 올라갈 자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만 봐도 저들이 앞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능력자협회를 이끌어 나갈 자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저들 중에는 힐러도 있나요?”

    “그렇습니다. 아주 유명한 힐러가 한 명 있지요. 손정도라고 C급 힐러인데도 C급 같지 않은 강력한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C급 힐러였군요.”

    “소문에는 재벌 3세라던가? 이름만 대도 알만한 대기업 사장을 아버지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으로 유학가려다가 능력자가 돼서 진로를 바꿨다고 하는데 얼굴도 미남인데다 돈도 많으니 주변에 미녀들로 넘쳐나지요.”

    “대단하네요.”

    “부럽지요. 태어날 때부터 금 수저를 물고 나온 것도 부러운데 C급 능력자에 능력자 중에도 귀족이라 칭하는 힐러까지 되었으니……. 아마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재벌들은 전부 그를 사위로 맞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겁니다.”

    “휴우,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소울은 유중한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어깨가 쳐졌다.

    “제일 짜증나는 것은 뭔지 아십니까?”

    “뭔데요?”

    “저렇게 다 가졌는데 저 사람이 인성까지 훌륭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네에? 설마 착하다는 말인가요?”

    “착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국이라는 뜻이에요. 지금껏 저 손정도라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싸가지 없다고 욕 하는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저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이지요.”

    “아!”

    소울은 뭔가 싸우기도 전에 크게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집안 빵빵하고, 돈 많고, 얼굴 잘 생겼고, 키도 크고, C급 힐러 능력자에 학벌도 서울대를 졸업했고 거기에다 인성까지 갖췄다니 내가 여자라고 해도 손정도 힐러에게 대시를 하겠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 어떤 여자가 저 사람을 싫다고 하겠어요?”

    “끄응.”

    소울이 앓는 소리를 내자 유중한의 그의 어깨를 툭 치면서 작게 속삭였다.

    “나도 처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비슷한 기분이었습니다. 하하하하!”

    유중한은 소울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면서 앞쪽으로 걸어갔다.

    ‘빌어먹을, 뭐 재보고 싸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구먼. 엄친아의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놈이네.’

    소울은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질투가 샘솟듯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지이이이잉!

    그때 주머니에 넣어놓은 스마트폰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강남필드로 들어가면 필히 꺼 놓아야 하는데 아직 진입을 안했기 때문에 켜 놓은 스마트폰이었다.

    화면을 보자 민세경의 이름이 떠올라 있었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싶을 때는 전화가 안 되더니, 꼴도 보기 싫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를 기가 막히게 맞춰서 전화를 해왔다.

    “여보세요.”

    -오빠, 저 세경이에요.

    “무슨 일이야?”

    -밖으로 잠깐 나와 주세요. 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알았어.”

    소울은 민세경이 자신을 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온다고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며 민세경을 찾아보자 건물의 모퉁이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소울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민세경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운지 그를 인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건물 사이에 푹 들어간 틈 안쪽에 선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민세경은 소울이 두 주먹을 꼭 쥐고 분노로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절로 목이 메여왔다.

    소울은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 그녀의 처연한 눈빛을 보자 흠칫 몸을 떨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녀는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울에게 던지듯 다 줬던 여자였다.

    그녀의 물기어린 눈빛을 보자 소울은 이상하게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분노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오히려 자괴감이 솔솔 치솟았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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