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6 제 19 장 - 별리(別離) =========================================================================
소울은 소망에게 까톡으로 부여마법을 이용해 아티펙트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줬다.
마석을 갈아서 금과 섞어 코인을 만든 후, 코인에 마법진을 새기고 은을 입혀 마감하는 작업이었다.
소망이 코인을 만들어 소울에게 보내면, 소울은 부여마법이 인챈트 된 아티펙트를 마나집적진이 활성화된 은판 위에 올려놓고 저절로 충전시키면 된다.
마찰계수 0의 그리스 마법진을 인챈트 한 아티펙트가 완전히 충전되면 1서클의 그리스 마법을 3번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아티펙트를 활성화 시키는 방법과 또, 아티펙트를 사용하는 시동어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직 그만 알고 있었다. 뭐 알려준다고 해도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언어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소망이와 까톡을 끝내고 진동으로 바꿔놓은 스마트폰이 울려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소울은 화면에 박은영의 이름이 떠오르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 박은영이에요.
“안녕하셨어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전 잘 지냈어요.
박은영의 목소리가 많이 메마르고 힘이 없어진 것을 느낀 소울은 그녀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아프세요? 목소리에 힘이 없으시네요.”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그것보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교통사고 보상금 합의 때문에 전화 드렸어요.
“아, 어떻게 됐는데요?”
-손해사정사를 통해서, 비용을 제외하고도 천만 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상대 보험회사의 담당자와 몇 번 전화 통화를 해서 액수를 조정했다고 해요. 어떻게 할까요? 조금 더 받아 볼까요? 아니면 이 정도에서 합의를 볼까요?
“그냥 합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은 교통사고 보상금 합의금으로 천만 원이면 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합의하기로 결정했다.
-그럼 지금 제가 까톡으로 보내드리는 주소로 가셔서 보상금 받으시고 합의하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큰 신세를 졌네요.”
-아니에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언제 시간 내서 같이 식사하도록 해요. 약속대로 제가 크게 한턱 쏘겠습니다.”
-네.
소울은 박은영 덕분에 교통사고 보상금 문제가 해결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오늘 박은영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 뭐라고 더 말하기가 꺼려졌다.
“참, 혹시 강남 세븐 병원의 간호사나 환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이 있나요?”
-네,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혹시 간호사 분들에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소울은 박은영의 말에 불길한 느낌이 들어 물었다.
-그건 아니고요. 강현우 환자, 오범근 환자, 장사준 환자, 서우석 환자가 돌아가셨어요.
“아! 저런, 몬스터에게 당한 겁니까?”
-네.
소울의 좋은 기분이 급전직하로 떨어져 내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강현우, 오범은 강남 세븐 병원의 나이롱환자 7인방에 속하는 두 명이었다. 고블린의 습격에 맞서 같이 싸우기도 했던 사람들이라서 소울은 그들이 죽었다는 소리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다 서우석이라면 송강우 아저씨의 절친한 친구였고, 장사준이라면 네모난 얼굴에 대각선에 침대가 있던 같은 병실에서 지낸 사이라 그들의 죽음은 소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있을 때는 무사했다가 자신이 탈출하고 난 이후 변을 당한 것 같았다.
“그럼 이분들 말고는 변을 당하신 분은 더 없나요?”
-불행 중 다행으로 없습니다. 간호사들은 모두 무사하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입니다.”
-저…….
박은영은 무슨 말을 꺼내려다 더 말을 하지 않고 그만 멈추고 말았다.
소울은 그냥 가만히, 그녀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정윤이, 고하라, 채희라 간호사가 만나서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네요. 꼭 좀 연락을 달라고 제게 전화번호를 줬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까톡으로 보내주세요.”
소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정윤이, 고하라, 채희라 간호사라면 강남 세븐 병원의 3대 여신으로 통하는 미녀 간호사 삼총사다.
얼짱 간호사, 몸짱 간호사, 날씬이 간호사로 통하는 그녀들과의 만남을 소울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까톡으로 보내드릴게요.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박은영 씨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소울은 박은영과 전화통화를 끝내고 나자 축 쳐졌던 기분이 조금은 살아났다.
‘강남 세븐 병원의 3대 여신인 미녀 간호사 3총사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이거 천지개벽(天地開闢)할 일이네. 아니다.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도 아냐. 자신들의 생명을 구해줬다고 생각하면 고마워서 밥이라도 사주고 싶을 수도 있지. 좋게 생각하자. 이렇게 예쁜 간호사들과 인맥을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소울은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미모의 간호사들인 정윤이, 고하라, 채희라와 같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자 얼굴에 절로 미소가 돌았다.
그러나 강현우, 오범근, 장사준, 서우석의 죽음을 생각하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고인들을 생각하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묵념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점점 죽음에 익숙해져가고 있구나.’
오크 군단이 설쳐대는 강남필드로 가는 F급 소환계 능력자 소울에게 이미 누군가의 죽음은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 *
능력자 전용버스는 구룡산과 대모산 즉, 강남필드의 남쪽에 있는 남부기지에 도착했다. 전에는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으로 불렸고 최근에는 능력자 훈련장으로 불리던 곳이다.
하지만 강남필드로 들어가는데 가까운 곳에 위치한 탓에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는 전격적으로 이곳을 강남필드를 도모할 전진기지(前進基地, advanced base camp)로 만들기로 합의했다.
정식명칭은 강남필드 남부 전진기지, 능력자들은 그냥 짧게 남부기지로 부르고 있었다.
“어째 이곳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냐?”
처음에는 예비군 훈련장이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에 조립식 건물들이 들어서자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전진기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전용버스에서 내린 능력자들은 하나 같이 종종 걸음을 걸으면 북쪽의 커다란 격납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소울은 눈치껏 그들과 헤어져 세경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E급 전투슈트 세트를 장비하고 쇠뇌와 숏소드를 들고 돌아다니는 소울을 공무중이거나 고위 능력자로 생각했는지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곳이 강남필드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능력자들이 많이 몰려오기도 했고, 사실상 남부기지의 주인은 능력자들이나 마찬가지니 소울이 돌아다니는 데는 전혀 방해받을 것이 없었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지?’
소울은 남부기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계속 세경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킁킁!
소울이 남부기지를 한 바퀴쯤 돌았을 때 어디선가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잘됐다는 생각에 소울은 냄새를 따라갔다.
<남부식당>
참 작명센스도 구린 주인이 지었는지 촌스러운 이름의 식당이 하나 나타났다.
설렁탕과 수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식당이었는데 지금 소울에게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마치 천국을 발견한 기분이 되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이제 이곳에도 식당이 들어섰네요?”
“하하하, 어제 허가를 받고 들어왔습니다. 혼자 오셨나요?”
“네.”
“저희 집은 설렁탕과 수육이 전문입니다. 설렁탕 드릴까요?”
“네, 설렁탕으로 한 그릇 주세요.”
소울은 이곳에 왔을 때마다 매번 맛없는 전투식량을 먹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제 이곳에도 식당이 생겼으니 더 이상 전투식량은 안 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돌았다.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설렁탕 전문집이라서 그런지 음식도 빨리 나왔다.
소울은 뽀얀 설렁탕 안에 밥 한 공기를 풍덩 빠뜨리고, 큼지막한 깍두기와 포기김치를 가위로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고 국물과 밥을 숟가락으로 떠서 깍두기와 김치와 함께 한 입에 넣고 씹어대자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이건 서비스입니다. 수육 맛보시고 많이 팔아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주인아저씨가 서비스로 주는 수육이 담긴 접시가 눈에 들어오자 양파절임 소스에 찍어서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설렁탕 그릇에 처박고는 열심히 먹었다.
설렁탕과 수육은 참 맛있었다.
소울은 자신의 배를 두드리며 시원한 보리차를 한잔 마셨다.
역시 사람은 배가 불러야 눈에 힘이 들어가는지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식당의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내실도 있네? 일단 갖출 것은 다 갖춰 놓았구나. 앞으로 이 근처에다 식당을 차리면 돈 좀 벌겠는데…….’
소울은 음식 값으로 만 원짜리 한 장을 주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배부르게 잘 먹어서 기분은 좋은데 세경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강남필드로 들어가 있나? 아니야. F급 힐러라서 전투에 그렇게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어. 그럼 어디에 있는 거지.’
소울은 설렁탕 집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했다.
“호호호호!”
“하하하하!”
그때였다.
갑자기 설렁탕 집 안에서 젊은 남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중에 여자 목소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웃음소리였다.
‘세경이다.’
소울은 고개를 돌려 민세경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의 눈에 키가 멀대 같이 크고 잘생긴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민세경이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매달려 연신 환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두 사람은 마치 몇 달은 사귄 연인(戀人)처럼 다정했다.
소울은 그 위화감 넘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더니 식당 건물 옆으로 몸을 숨겼다.
‘이건 뭐지? 왜 세경이가 저 남자와…….’
그는 순간 멈칫하며 자신의 생각을 중단했다. 자신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려는 단어가 무엇인지 깨닫자 갑자기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정도 오빠, 밥 잘 먹었어요.”
“천만에, 우리 세경이가 원한다면 매일이라도 사줘야지.”
“호호호, 정말이에요? 그럼 매일 사줘요.”
“하하하, 정말?”
“네.”
“좋아. 우리 세경이가 원한다면 그깟 밥이 문제겠어? 그런데 매일 밥 사려면 우리 매일 같이 다녀야 하는 것 아냐?”
“어머,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민세경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몸을 비비꼬았다.
손정도는 민세경의 모습에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민세경도 은근슬쩍 손정도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몸처럼 주변의 여러 사람의 복장을 다 긁어대는 북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남부식당 옆 골목에 몸을 숨겼던 소울이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마치 영혼이 털려 나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 세경이라고? 설마 내가 지금 본 게 환상은 아니겠지?”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머리를 흔들어 봐도 손정도와 민세경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뒷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행동은 절대로 그냥 알고 지내는 오빠, 동생 사이에서는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이건 누가 뭐라고 해도 연인 사이에나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소울은 그걸 믿고 싶지 않았다.
‘세경이 지금 나 몰래 바람을 피우는 건가? 아니지. 바람은 아니지. 세경과 나는 정식으로 사귄 적이 없으니 바람이라고 조차 말할 수도 없구나.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같이 사랑도 나누고 밥도 해먹고 내 여자 친구처럼 행동했잖아.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소울은 너무나 큰 충격을 먹어서 그런지 화도 나지 않았다. 그냥 이 참담한 현실이 믿어지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을 뿐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지금 자신이 바로 그 짝이 아닌가 싶었다.
민세경과 손정도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걸어간 북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에게 무슨 실수라도 한 건가?’
걸어가면서 그는 치열하게 머릿속으로 민세경이 자신에게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그녀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배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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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연참 들어갑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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