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74 제 19 장 - 별리(別離) =========================================================================
승강기에서 나온 소울은 피트니스 센터 보다 더 피트니스 센터 같은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5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아이유, 왜 이렇게 심장이 쫄깃거리냐? 그냥 보상만 받고 가면 되는 건데……. 지금 나 떨고 있는 것 아니겠지?’
소울은 유정아 박사가 아무리 예쁘고, 쭉쭉 빵빵한 글래머 미녀이고, 뇌색녀라 해도 별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정말 보상만 아니면 그냥 쭉 이렇게 만나지 않고 서로 다른 갈 길로 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만난 첫날, 인체실험에 해당하는 신체검사를 받은 좋지 않은 경험으로 인해 그녀에 대한 엽기적인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었다.
탁!
“으헥!”
소울은 갑자기 누가 자신의 어깨를 치자 깜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유정아 박사가 눈을 말똥거리며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었다.
“왜 이렇게 놀라지? 혹시 여기서 무슨 나쁜 짓 했어요?”
“아, 아니에요.”
소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을 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자신의 뒤에 와서 어깨를 쳤는지…….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게 움직이는 게 꼭 귀신같은 여자였다.
‘나 이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아냐?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이런 심리적 반응이 발생한다던데…….’
소울은 아직도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정아 박사를 보며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도착했으면 바로 내 사무실로 들어오면 되지 여기 서서 뭐하고 있어요?”
그녀가 눈치 채지 않게 심호흡을 하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소울은 당당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막 들어가려는 참입니다.”
“그래요? 그럼 어서 같이 들어가요.”
“네? 아! 네.”
유정아 박사는 주변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갑자기 소울에게 다가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뭉클한 감촉이 소울의 팔을 짓눌렀다. 순간 짜릿한 느낌에 이성이 다 날아갈 뻔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이러는지 몰라 소름이 돋기도 했다.
“어? 왜 이러세요?”
“뭐가요?”
유정아는 소울의 팔에 매달리듯 자신의 몸을 기대오며 말했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그녀에게서 달착지근한 체향이 느껴지자 왠지 불끈한 마음과 나른한 기분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이씨, 졸라 예쁘게 생겼네.’
그는 마음속의 생각과는 반대로 자신의 팔에 팔짱을 낀 그녀의 팔을 풀어냈다.
“이건 좀 놓고 가죠?”
“싫은데요.”
유정아는 소울이 자신의 팔을 풀자마자 다시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는 자신의 풍만한 가슴으로 눌러댔다.
소울은 옷 사이로 튀어 나올 것 같은 그녀의 가슴이 자신의 한쪽 팔을 완전히 감싸버리자 더 이상 그녀를 떼어 낼 수 없었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그녀의 가슴을 만지게 될 것이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유정아가 또 무슨 트집을 잡아 요상한 일을 만들어 낼지 몰랐기 때문이다.
“우리 이럴 사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남들이 보면 오해해요.”
“우리 사이가 어디가 어때서요? 서로 알고 지낸 게 2주는 됐는데요.”
“그거야 연구팀의 박사님과 연구 지원자의 사이로 안 거잖아요.”
소울이 볼멘소리를 해대자 유정아는 오히려 눈을 빛내며 소울을 쳐다봤다.
“호호호, 은근히 하는 짓이 귀엽네요. 누가 뭐라고 했어요? 내가 잡아먹을까봐 그래요?”
“아, 아니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팔짱 낀 게 싫어요?”
“아니, 뭐 꼭 싫다는 것이 아니라…….”
“싫지 않다면 좋은 거네. 그럴 줄 알았어요. 에이 엉큼하긴, 지금 혹시 느끼는 건가? 아래쪽에 반응은 좀 오나요?”
“헉,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소울은 유정아와 더 이상 말을 섞으면 위험하겠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확실히 미국에서 온 사람이라 아주 개방적이었다. 모르긴 해도 미국에서 여러 남자가 그녀에게 성희롱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소울은 그냥 고개를 돌려버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아무래도 남자가 빠르게 걸으면 여자들은 걸음에서 뒤져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울은 한 가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키보다 유정아의 키가 조금 더 크고 다리는 훨씬 길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도 뒤쳐지지 않고 걷는 유정아를 보며 소울은 바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미하게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쉰 소울은 그냥 깨끗이 포기하고 그녀의 팔에 이끌려 그녀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탈칵!
사무실로 들어온 그녀는 갑자기 문을 잠갔다. 소울은 겁이 덜컥 났다.
“아니 왜 문은 잠그고 그래요?”
“어머? 이 반응은 뭐지? 혹시 기대하고 있었던 거예요? 호호호, 난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역시 엉큼하네요.”
소울은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또 오버한 것 같아 민망했기 때문이다.
“이거 어쩌지요? 나 지금은 바빠서 안 되는데…….”
“뭐, 뭐가 바빠서 안돼요? 난 유정아 씨와 전혀 그럴 생각 없거든요.”
“유정아 씨? 오호. 날 그렇게 부르고 싶었군요? 참, 무슨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혹시 야릇한 생각하고 있었어요?”
“…….”
소울은 도대체 왜 이 여자와 말을 섞기만 하면 자신이 이상한 놈이 되는 분위기로 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병신이지. 그냥 상대를 하지 말자. 저건 괜히 남자에게 잔뜩 기대를 하게 만들어 놓고 나중에 약점을 잡으려는 고도의 술책인거야. 보상이나 빨리 받고 나가자.’
그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 유정아 박사의 책상 맞은편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준다는 보상이나 빨리 주세요.”
“이런 삐졌구나?”
“안 삐졌거든요? 쓸데없는 소리 좀 그만하시고 보상금 주세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니까 정말 남자다워요. 반해버릴 것만 같아요.”
유정아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책상 위로 두 손을 모으며 눈을 반짝거렸다. 마치 크게 감동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소울은 순간 멍한 표정이 되어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가 모은 두 손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모아진 그녀의 가슴이 흉기처럼 하얀 가운 위를 뚫고 나오려고 모습이 보이자 또다시 불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다가가 마구 입술과 손으로 괴롭혀주고 싶었다.
‘어라,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여우에게 홀렸구나. 홀렸어! 정신 차리자!’
소울은 급히 그녀를 보던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뭔가 또 크게 진 느낌이 들어 힘이 빠졌다.
“아쉽네요. 내가 지금 좀 바빠서요. 우리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해요.”
“생각은 무슨 생각을 다시 한다는…….”
소울은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는 유정아를 쳐다보다 문뜩 뭔가를 깨달았다.
‘어쩌면 난 그녀에게 쉬운 남자인가 봐. 그녀의 말에 일일이 반응을 해주니 재미있어서 계속 놀리는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자꾸 쓸데없이 대꾸를 하다니…….’
TV나 영화에서만 봐왔던 미녀가 자신의 앞에서 저렇게 예쁜 짓을 해대자 예쁜 여자와 만난 경험이 거의 없는 소울은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경험만을 따지면 자신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이로스, 라펠, 탄탈라스, 이들의 삶을 체험한 나에게도 미녀들을 무수하게 상대했던 간접 경험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소울은 갑자기 자신감이 샘솟았다.
막 소울이 자신감을 가지고 그녀를 상대하려고 할 때, 유정아는 하던 짓을 딱 멈추고 그의 앞에 여자들이 쓰는 아이(eye)크림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 용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홉고블린의 사체에서 나온 마석이에요.”
“네?”
소울은 방금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상대하려고 마음먹었는지를 바로 잊어버리고 플라스틱 용기를 급히 열어봤다.
엄지손톱 크기의 연녹색의 마석이 스펀지에 싸인 채 빛나고 있었다.
물론 자체발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펀지 위에 놓인 마석이 빛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홉고블린은 F급 몬스터인 고블린과 달리 E급 몬스터로 등급이 하나 위에요. 일부 홉고블린은 D급이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럼 이 마석이 E급이라는 말이네요.”
“정확히는 E급 이상이라는 말이지요. 결정체 수치 100까지의 F급 마석의 시세는 100만 원 정도에요. 결정체 수치 101~300까지의 E급 마석의 시세는 1000만원을 호가하죠. 결정체 수치 301~1000까지의 D급 마석의 시세는 1억이 넘어갑니다.”
소울은 유정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 이 마석의 결정체 수치는 얼마나 되죠?”
“안타깝게도 300을 넘지는 못했어요.”
“아!”
소울은 마치 자신의 손에서 1억 원이 들어왔다가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쉬운 탄성(歎聲)을 발했다.
“보상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이것이죠.”
소울의 앞에 유정아가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회색의 디지털 위장무늬가 도색되어 있는 전투슈트, 전투헬멧, 전투화의 모습이 보였다.
“이 전투슈트 세트를 보상으로 준다고요?”
“맞아요. 하지만 이건 기존의 전투슈트 세트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E급 능력자를 위해 개발한 최신형 전투슈트 세트에요.”
“네?”
소울은 깜짝 놀랐다.
전투슈트는 그동안 국내에서 연구 및 개발된 것이 없어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얼마 전, 사냥법 연구팀과 훈련효율성 연구팀에서 지급받아 테스트를 했던 F급 전투슈트 세트도 최근에 개발된 것을 실전을 거쳐 양산 결정이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한 등급 위의 전투슈트 세트가 버젓이 개발되어 있었다.
“정말 이 전투슈트 세트를 나한테 보상으로 주시는 겁니까?”
“왜요? 싫어요?”
“싫다니요. 당연히 좋지요.”
“능력자라면 누구나 이 전투슈트 세트를 간절히 원할 겁니다. 아직 양산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서 빼내는데 힘이 좀 들었어요.”
“감사합니다. 보상이 참 마음에 드네요.”
그렇다. 정말 보상이 마음에 들었다.
홉고블린의 사체에서 나온 마석은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몇 천만 원을 호가했고, 새로 개발된 최신형 E급 전투슈트 세트는 아직 시중에 풀리지 않아 돈으로도 따질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전투슈트의 선구자인 미국은 이미 C급 능력자를 위한 전투슈트를 개발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E급 전투슈트는 사실 미국에서 자국의 능력자에 한해서 판매되고 있는 물건이에요. 하지만 아직 대량생산 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아 자국의 수효를 감당하기도 힘들어서 수출금지 품목에 들어가 있는 물건입니다.”
“그걸 용케도 빼 오셨네요?”
“노노, 오해하셨네요.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네?”
“그건 미국에서 수입한 물건이 아니라 역설계 즉,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design & Engineering) 기술을 이용해서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전신슈트 세트에요.”
“그럼 이거 특허침해 아닌가요?”
소울은 혹시나 이게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우리가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나요? 그럴 염려는 없는 물건이에요. 설사 그게 문제가 되더라고 해도 이소울 대원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가 된다면 개발주체가 문제가 될 테니까요.”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까? 안 된다는 말입니까?”
“호호호, 헷갈리시나 보네요. 미국에서는 전투슈트를 가지고 특허를 신청하지 않기로 했데요. 사실 특허 신청할만한 것도 없죠. F급 전투슈트 판매를 시작하면서 기본적인 골격이나 어지간한 비밀은 다 드러난 상태이니까요. 그리고 사실 전투슈트의 핵심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정제한 E급 마석을 동력삼아 E급 전투슈트 세트가 E급 능력자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에요.”
“좀 쉽게 설명해 주세요.”
“전투슈트는 마석을 정제해서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동력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한꺼번에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이라는 말이에요.”
소울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전투슈트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이게 최소한 F급 전투슈트 보다는 더 강력하단 말이죠?”
“네, 맞아요. 하지만 E급 전투슈트는 E급 능력자가 써야 최고의 능력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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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읽어주시고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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