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7 제 17 장 - 오해 =========================================================================
소울은 양동주 조교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의 태도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영상을 확인해보니 정말 오늘은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따져봐야 입만 아플 정도로 이번 일의 윤곽이 명확하게 드러나자 장갑산 팀장은 6조 조원들을 돌려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정도면 6조 조원들 간의 오해는 풀렸으리라 봅니다. 이소울 대원을 제외한 조원들은 그만 돌아가도 좋습니다.”
장갑산 팀장의 말에 위소휘가 제일 먼저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얼굴은 수치감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성막주와 소주용도 밖으로 나가려다 돌연 몸을 돌려 소울에게 다가오더니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내가 오해했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살려줘서 고맙습니다.”
소울은 성막주와 소주용이 진심으로 자신에게 사과하는 태도를 보자 두 사람에 대한 미움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아닙니다. 살다보면 오해도 할 수 있죠. 이렇게 남자답게 사과하시니 저도 남자답게 깨끗하게 잊겠습니다.”
“하하하! 이거 이소울 대원을 다시 봐야겠네요. 이렇게 마음이 넓은 분이신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나중에 밖에서 제가 거하게 벌주를 사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지갑 두둑하게 준비해놓으세요.”
성막주와 소주용은 연신 소울의 두 손을 잡고 흔들었다.
장갑산과 조교들은 성막주와 소주용 그리고 소울이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소울도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성막주와 소주용과는 오히려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에 이기적인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내답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막돼먹은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성막주와 소주용이 밖으로 나가자 장갑산은 양동주 조교에게 다시 질문했다.
“홉고블린과 고블린 10마리면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뻔히 알았을 텐데 왜 전투를 시작했습니까?”
“…….”
“만약 제 질문에 그렇게 계속 묵비권을 행사하시면 전 양동주 조교를 포기하겠습니다.”
장갑산의 최후통첩에 양동주의 고개가 위로 번쩍 들렸다. 그러더니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유정아 박사를 한번 쳐다봤다.
장갑산 팀장은 그의 행동에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지금 그건 무슨 뜻입니까? 왜 유 박사님을 쳐다본 거죠? 둘 사이에 제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양동주는 무거운 한숨을 한번 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유정아 박사님을 통해 위에서 제게 직접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전투가 너무 쉽게 끝나서 전투슈트에 대한 실전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으니 조금 더 치열한 전투 상황으로 이끌어 달라고 말입니다.”
“뭐라고요?”
장갑산 팀장은 양동주의 말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유정아 박사를 쳐다봤다.
“유 박사님, 그게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아무리 데이터가 필요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이렇게 장난질을 칠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왜 제게 미리 얘기를 해주지 않고 이런 일을 벌였습니까?”
장갑산 팀장이 흥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유정아 박사가 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이런 얘기는 여기 이소울 대원을 내보내고 우리끼리 하는 것이 좋겠어요.”
“아!”
그제야 장갑산은 소울을 쳐다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소울 대원, 미안합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네? 그냥 이대로 사과 한마디 못 받고 그냥 나가라고요?”
“으음.”
장갑산은 소울의 말에 유정아 박사와 양동주 조교를 한 번씩 쳐다봤다.
양동주가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일이 어떻게 되었던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양동주의 사과는 깍듯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고 약간의 울분과 억울함이 배어 있었다.
“그 사과가 진심이라는 전제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유 박사님, 지금 제가 들은 말이 사실이면 그냥 이대로 대충 넘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갑산 팀장님은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네, 잘 알겠습니다.”
장갑산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정아 박사는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이번 일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는 말을 왜 그렇게 빙 돌려서 하는 거죠? 그냥 원하는 만큼 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넉넉히 챙겨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보세요.”
소울은 자신의 말에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또박또박 얘기하는 유정아 박사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년이야 말로 진짜 또라이네. 그래 마음대로 생각해라. 청산에 나무가 떨어지지 않는 이상 땔감 걱정은 하지 말아야지. 언젠가 너도 내게 아쉬운 소리를 할 날이 있을 것이다.’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아댔지만, 솔직히 자신에게 유정아 박사가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있을지, 빈틈이나 약점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소울은 그렇게 군용막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 식사시간이 되자 전투식량을 하나 받아다가 언덕의 조용한 나무 아래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까망이의 재롱을 보면서 느긋하게 혼자 밥을 먹었다.
때마침 그의 시선에 세경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키가 훤칠하게 크고 미남으로 보이는 남자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연신 배를 잡으며 깔깔대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계속 이런 일만 생기는 거지? 지난번에도 저놈하고 같이 있었던 건가?’
살짝 열이 받은 소울은 남자를 노려봤지만 당시 뒤통수만 봐서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놈이 그놈일 것 같긴 했다.
그는 두 사람의 웃고 떠들며 친한 척 하는 모습에 괜히 벨이 꼴렸다.
밥맛이 떨어져서 먹던 것을 확 내동댕이쳐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 먹으면 결국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에 그냥 꾹 참고 식사에 집중했다.
‘주말에는 볼 수 있으려나? 세경은 도대체 내게 뭐지? 아니 나는 세경에게 어떤 존재일까?’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자 오히려 두 사람이 더욱 신경 쓰였다.
이러다 체하겠다는 생각이 든 소울은 몸을 아예 숲 쪽으로 돌려 버렸다.
확실히 둘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꾸역꾸역 밥을 목구멍으로 모조리 집어넣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점심식사 이후에는 최동원 팀장이 진행하는 사냥법 연구팀 A조에 합류해야 한다.
소울은 주머니 속에 챙겨온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쓰레기를 챙겨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더 이상 꼴 보기 싫은 키 큰 사내와 세경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말에 만나서 세경과 진지하게 얘기를 해봐야겠다. 아니라면 그냥 때려치우지 뭐!’
남자답게, 가겠다면 보내주겠다는 결심을 하고나자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경이 정말 가겠다고 하면 진짜 보내주기 싫을 것 같아 마음이 싸했다.
“안녕하세요?”
“아! 이소울 대원, 어서 와요.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최동원 팀장은 웃으면서 소울을 반갑게 맞이했다.
“점심 먹고 바로 왔습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잘 먹었습니다.”
두 사람이 가벼운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자 곧이어 한 명씩 사냥법 연구팀 A조의 조원들이 모여들었다.
“오늘은 다들 일찍 오네요. 다 모이면 좀 일찍 나가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빨리 갔다가 빨리 돌아와 쉬는 것이 좋다. 소울에게는 오히려 고마운 얘기였다.
그때, 탱커인 유지광이 최동원의 옆으로 오더니 넌지시 물었다.
“미국 능력자협회에서 날아온 공문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역시 그렇지요?”
소울은 두 사람이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환도를 손질하고 있는 양병호에게 다가가 무슨 말인지 물어봤다.
“혹시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아십니까?”
“아! 얼마 전에 미국 능력자협회에서 공문을 보낸 것 가지고 그러는 모양이네요.”
“무슨 공문인데요?”
“별거 아닙니다. 최하급 소형 몬스터인 고블린, 코볼트, 오크, 놀 등의 무리들이 빠르게 무장을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강남 필드에서는 아직 그런 현상을 찾아 볼 수 없었지요.”
“강남 필드요?”
“몬스터들이 튀어 나오는 구룡산과 대모산 일대를 강남 필드라고 부르기로 정했습니다.”
“아!”
사소한 정보이지만 절대 사소하지 않다.
‘강남 필드’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야 어차피 다 알려질 사실이니까 그렇다고 해도, 최하급 몬스터들이 빠르게 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소울에게 아주 중요했다.
소울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인 3연발 쇠뇌는 당장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몬스터들이 갑옷을 입어 무장을 하면 치사율이 확 떨어 질 것이 분명했다.
그럼 그동안 짭짤하게 재미를 봤던 쇠뇌의 효용성이 문제가 되고, 앞으로 자신은 상대적으로 작은 과녁인 몬스터들의 목이나 얼굴, 팔다리를 노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한 번에 전투불능을 만들 수 있는 적을 두 번, 또는 세 번 이상 쇠뇌를 쏴야만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쇠뇌는 강하고 치명적인 무기이다. 일발필살(一發必殺)의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총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 무성(無聲)무기라 몬스터들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한다.
바로 매번 미리 시위를 당겨 시위걸이에 걸어 놓아야 사용할 수 있고,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지속적인 공격이 불가능한 무기라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걸리적거려 땅바닥에 던져 놓고 싸워야 하는 무기다.
‘이거 활쏘기라도 배워 놓아야하나?’
소울은 소환계 능력자인 자신의 성향 상 몬스터와의 근접박투나 도검, 창봉을 쓰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활쏘기를 배운다는 것이 하루 이틀 만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막상 활쏘기를 배워 어느 정도 실전에 쓸 수 있을만한 실력이 된다고 해도 문제였다.
활을 쏠 수 있는 것은 자신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민첩계 능력자가 활을 들면 엘프의 재림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노력해도 민첩계 능력자가 작심하고 활쏘기를 배우면 평생을 노력해도 못 따라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직 확실한 한 방이 없는 소환계 능력자인 소울의 입장에서는 앞날이 걱정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
양병호의 수다를 들어주며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을 해보던 소울은 최동원 팀장의 출발 신호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급히 쇠뇌의 시위를 3번 당겨 시위걸이에 걸고 화살을 장전했다.
“오늘은 학익진을 사용해볼 예정이니 모두 각별히 주의 해주세요.”
“네.”
소울은 학익진이 뭔지도 모르고 대답을 했다.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썼다는 말은 들어 봤다. 하지만 그게 왜 그리고 어떤 효용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사냥법 연구팀 A조 파티는 샘마을길을 통해 새말로 올라가지 않고, 헌릉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안골길을 타고 올라가 양지말을 거쳐 자연학습장으로 갔다.
비닐하우스 단지 같이 보이는 지역으로 들어가자 숲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강남 필드에서 이 지역이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곳입니다. 모두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최동원은 그렇게 경고를 한번 하고는 파티를 북쪽으로 이끌었다.
“지금부터 학익진으로 포메이션을 바꿉니다. 공격은 일점사(一點射)로 합니다. 아군을 공격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 주세요.”
“네.”
탱커인 유지광이 가운데에 서고 강화계 근거리 딜러인 최동원과 박종현이 양쪽 끝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 중간에 소울을 비롯한 원거리 딜러들이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양병호는 민첩계 근거리 딜러의 특성상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공격과 방어의 임무를 맡기기로 하고 프리롤로 지정했다.
“박승락 대원이 공격을 지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투창을 하면 그에 맞춰 전 대원은 대상을 일점사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들의 대화는 곧 끊겼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고블린과 오크들이 나타나 화끈하게 환영식을 벌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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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건강하시고 유쾌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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