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6 제 17 장 - 오해 =========================================================================
소울은 다시 코를 벌름거리며 그들의 발자국을 살펴봤다.
그들의 냄새와 흔적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길이 눈에 보이듯 선 했다.
어디를 통해서 어디로 갔는지도 알 것 같았다.
‘만약 저쪽으로 갔다면 좀 돌아오겠네?’
지름길을 아는데 굳이 일부러 돌아갈 마음 따윈 없었다.
소울은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 내려갔다.
새말이 나오고 샘마을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자 마을 끝에 헌릉로가 보였다.
6조의 조원들은 모두 헌릉로 옆의 커다란 냉동 컨테이너 차량 앞에 모여 있었다.
“모두 무사했구나.”
소울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아! 이소울 대원, 무사하셨군요.”
“네, 다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양동주가 소울을 반갑게 맞이하자 소울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성막주와 소주용은 그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소울은 혼자 쭈뼛거리며 남아 있는 위소휘에게 다가갔다.
“무사히 빠져 나오셨군요?”
“네, 아까는 신세 많이 졌습니다.”
“하하하, 신세라뇨? 다들 열심히 해준 덕분이죠.”
소울은 그래도 위소휘만은 자신을 반갑게 맞아준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고블린 사체를 담은 자루를 모두 냉동 컨테이너 차량에다 넘겨준 성막주와 소주용이 소울에게 다가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소울 대원,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도망가는데 일가견이 있으시네요?”
“네?”
“선견지명(先見之明)도 있으세요. 처음부터 도망가도 되냐고 물어 보신 것을 보면 이게 다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뭐라고요? 뭔가 지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소울은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해대는 성막주와 소주용의 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침착하게 말을 받아쳤다.
“그만하세요. 같은 조원끼리 이러시면 안 되지요?”
“위소휘 대원은 빠지세요. 우리 한번 따질 것은 따져 봅시다.”
“맞아요. 아닌 말로 누구는 고블린 잡고, 누구는 도망갔는데 나중에 고블린 사체를 처분한 돈은 동일하게 나눠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위소휘가 중간에 끼어들어 말리는 시늉을 했지만 성막주와 소주용은 막무가내였다.
소울은 황당했다.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들이 누구 때문에 살아났는데 저런 헛소리를 한단 말인가?
소울은 속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성막주와 소주용이 열을 내는 것을 보자 당장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사정을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양동주가 조원들의 말을 듣고도 말릴 생각조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왠지 싸한 느낌이 왔다.
‘설마 저 새끼가 지금 자신의 잘못을 전부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여기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양동주였다.
무장한 홉고블린이면 일반 고블린보다는 최소한 등급이 하나에서 둘 정도 위였다. E급 능력자 파티나 돼야 잡을 수 있다고 알려진 몬스터란 말이다.
비록 양동주가 E급 강화계 근거리 딜러라서 홉고블린을 간신히 일 대 일로 상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조원들은 10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상대해야했다.
F급 능력자 4명으로는 10마리의 고블린을 상대하기는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양동주는 마땅히 퇴각을 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퇴각은 고사하고 자신이 홉고블린을 상대하는 사이 나머지 10마리의 고블린을 모두 잡으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양동주가 얼마나 조직에서 신임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지휘 능력을 의심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조용히 넘어가? 아니면 이걸 확 터트려버려?’
소울은 점입가경(漸入佳境)으로 목소리가 올라가고 있는 성막주와 소주용을 쳐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때였다. 갑자기 양동주가 뭔가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급히 성막주와 소주용을 보고 손짓을 했다.
“그만 둡시다. 이소울 대원은 처음부터 본인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도주를 택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걸 탓해서는 안 됩니다.”
“뭐라고요?”
소울은 갑자기 머릿속의 뭔가가 픽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소울은 더 이상 참고 있기도 힘들었고, 이런 식으로 가다간 나중에 자신이 아예 후레자식으로 몰리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제대로 한 따까리 하려고 마음을 굳혔다.
그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양 조교, 무슨 일입니까?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요?”
“별일 아닙니다. 사냥을 하다가 조원들 간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요?”
소울은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장갑산 팀장님!”
“아! 이소울 대원.”
그제야 소울은 양동주가 왜 성막주와 소주용을 말렸는지 알 것 같았다.
‘인생 참 좆같네. 구해주고도 내가 이렇게 욕을 먹다니…….’
그는 눈 딱 감고 그냥 질러버리기로 결정을 내렸다.
“조원들 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양동주 조교 때문에 우리 6조가 모두 죽을 뻔 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성막주 대원과 소주용 대원은 내가 도망을 갔다고 오해를 하고 있고요. 제일 황당한 것은 몇 번이나 고블린들에게 쫓겨서 죽을 뻔 한 것을 살려줬더니 그걸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 소극적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대원입니다.”
쿵!
양동주는 소울의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입을 딱 벌렸다. 위소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성막주와 소주용은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소울의 말을 이해 못해 발작을 시작했다.
“아니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도망친 주제에 큰소리는?”
“뭐야? 이거 완전히 생 또라이 아냐?”
“그만! 더 이상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6조는 모두 절 따라오세요.”
“네? 따라오라고요?”
장갑산의 말에 성막주와 소주용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양동주 조교, 쓰고 있는 전투헬멧을 벗어서 저에게 주세요.”
“아!”
양동주의 얼굴이 장갑산의 말에 흙빛으로 변해갔다.
장갑산은 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던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전투헬멧을 회수하여 옆구리에 끼었다.
“몬스터가 코앞인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시면 절대 안 됩니다. 능력자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능력자 특별법이 있는데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
장갑산의 냉정한 말에 소울도 입을 꼭 다물었다. 터트리더라도 이곳이 아닌 훈련장이 됐어야 했다. 소울은 자신의 미숙함을 반성했다.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것 한번 제대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장갑산이 이끌고 있는 1조의 조원들과 6조의 조원들이 모두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장갑산은 1조를 해산시키고 6조의 조장인 양동주 조교와 6조의 조원 4명을 데리고 한 군용막사로 들어갔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곧 돌아오겠습니다.”
장갑산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군용막사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은 6조의 조원들 사이에는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성막주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소울 대원, 아까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 양동주 조교 때문에 우리가 모두 죽을 뻔 했다니요?”
“휴우, 참 답답하시네요. 그냥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럼 저절로 밝혀질 내용입니다.”
소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성막주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소주용은 보기보단 눈치가 없어서 그런지 아직도 소울이 도망친 주제라며 투덜대고 있었다.
소울은 성막주와 소주용보다 위소휘를 쳐다봤다.
그는 소울이 자신을 쳐다보다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반대로 돌려버렸다.
‘저거 괜히 살려줬네.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둘 것을 그랬나?’
위소휘의 태도에 그는 속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먼저 화내는 놈이 불리하다. 아니 지는 것이다. 소울은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백산이 각조의 조장으로 있는 조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유정아 박사가 들어왔다.
조교들은 군용막사 안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양동주 조교가 썼던 전투헬멧을 연결했다.
“자!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보겠습니다.”
장갑산 팀장이 자리에 앉아 6조의 조원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양동주 조교는 그만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이거,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왜 말이 없어?”
유정아 박사가 대뜸 큰소리를 냈다.
그때 눈치 없는 소주용이 벌떡 일어나 소울을 향해 대놓고 삿대질하며 욕을 했다.
“일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저기 이소울 대원이 전투 중에 조원들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남은 우리들은 몬스터들을 잡느라 죽어라 고생했죠. 잡은 고블린을 자루에 담아 낑낑 매고 들고 와 냉동 컨테이너 차량에 집어넣자 이소울 대원이 나타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있더군요. 그래서 화가 나서 몇 마디 따끔한 소리 좀 했습니다. 뭐 잘못됐습니까?”
소주용의 거침없는 말투에 다들 소울을 날카롭게 쳐다봤다.
“소주용 대원의 말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양동주 조교의 변명을 들어볼까요?”
소울은 장갑산 팀장이 말을 들어보자고 하지 않고 변명을 들어보자고 한 말을 듣고 그가 이미 사건의 전모를 눈치 채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울은 사르르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양동주의 말에 소주용이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막주는 속으로 설레발 안치고 가만히 있었던 것이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주용이 먼저 나서서 그가 다 뒤집어 써줄 것 같아 한편으로는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럼 성막주 대원과 위소휘 대원은 이번 일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까?”
“없습니다. 혹시라도 오해가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풀리길 바랍니다.”
성막주는 의외로 눈치가 빨랐다. 벌써 최악의 사태를 예상하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막기 위해 미리 스크린을 치는 순발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도 없습니다.”
소울은 위소휘가 할 말이 없다는 말에 상종 못할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최소한 자신의 편을 들어줘야 했다.
‘이 치사한 새끼, 어디 두고 보자.’
장갑산 팀장은 이제 소울을 쳐다봤다.
“이번에는 이소울 대원의 말을 한번 들어보죠?”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소울은 차분한 목소리로 어떻게 홉고블린과 10마리의 고블린을 만났는지부터 설명했다. 전투가 어떻게 흘러갔고 또 소울은 조원들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도 다 밝혔다.
“아아아!”
“이런!”
“그런 일이…….”
조교들은 소울이 결정적인 얘기를 할 때마다 마치 자신이 그가 된 것처럼 감탄사를 터뜨렸다.
얘기를 다 듣고 나자 양동주 조교는 얼굴이 벌겋게 달궈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성막주는 소울을 쳐다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주용은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부끄러워했고, 위소휘는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홉고블린과 10마리나 되는 고블린의 숫자에 있었네요. 그리고 이소울 대원은 모 대원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도망을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을 구하기 위해 무려 7마리의 고블린을 죽이거나 전투불능을 만들어 놓았네요.”
장갑산의 말에 6조의 조장과 조원의 멘탈은 초토화가 된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동영상을 봅시다. 확실한 증거가 저기 있으니까요.”
“네.”
장갑산의 명령에 동영상이 틀어졌다.
소울은 조교들의 전투헬멧에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깨끗한 동영상 화면이 나오기 시작하자 누구도 속일 수 없는, 100% 소울의 말이 사실이라는 명명백백한 증거가 드러났다.
혹시나 하고 쳐다봤던 소주용은 양동주가 중간 중간 전장을 확인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찍혀버린 소울의 대활약에 놀라 입을 딱 벌렸다.
그 모습을 보니 정말 소울이 아니었으면 자신들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홉고블린을 봤으면 바로 퇴각을 해야지. 왜 싸웠습니까?”
“…….”
“고블린이 10마리면 퇴각을 하는 게 정석 아닙니까?”
“…….”
장갑산의 낮은 중저음이 군용막사를 울리자 양동주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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