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65 제 17 장 - 오해 =========================================================================
양동주는 빠르게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하고는 롱소드를 들고 홉고블린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차차창 창창창…….
놀랍게도 양동주와 홉고블린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드잡이 질을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맞수를 만난 것이고, 어떻게 보면 필생의 적수를 만난 위기에 처한 셈이었다.
‘저런 개 같은 새끼가 있나? 자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홉고블린을 나보고 유인해 오라고 한 거 아냐? 그리고 왜 퇴각을 안 하고 고블린을 잡으라고 하는 거야?’
소울은 양동주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지금 양동주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10마리의 고블린이 그들을 향해서 밀려오고 있었다.
소울은 고블린들의 시선에서 일단 모습을 감춘 상태로 쇠뇌의 시위를 당겨 시위걸이에 차례로 걸었다.
3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하자 점차 짜증이 밀려들었다.
‘자동장전 쇠뇌 같은 것은 없나? 영화에서 보면 그런 거 많던데…….’
그는 바위 틈 사이로 쇠뇌를 고정시키고 바깥을 살펴봤다.
양동주가 홉고블린을 혼신의 힘을 다해 한쪽으로 밀어 붙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막주가 조금씩 물러서면서 고블린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성막주의 양쪽을 지나 소주용과 위소휘에게 달려드는 고블린들이 점차 그들을 포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막주와 소주용은 몰라도 구현계 능력자인 위소휘는 포위되면 죽었다고 봐야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죽는 것을 소울은 원하지 않았다.
튈 땐 튀더라도 위소휘를 최대한 살려보려고 노력은 하고 싶었다.
핑 핑 핑!
소울은 일단 위소휘를 향해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집중 공격했다.
급소를 노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전투불능만 되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갑자기 동족이 둘이나 쓰러지자 고블린들은 순간 당황하며 주변을 살펴봤다.
소울은 얼른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는 다시 쇠뇌의 시위를 잡아 당겼다.
시위 3개를 시위걸이에 모두 걸고 화살을 장전하고 나자 소울은 다시 슬며시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성막주와 소주용이 필사적으로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었고 위소휘도 열심히 고블린들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 얼음조각을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도망은 잘 다니네.’
소울은 위소휘의 뒤를 쫓는 고블린 3마리를 향해 다시 쇠뇌를 연속으로 발사했다.
핑핑핑!
이번에는 마음이 급했는지 한 발은 미스를 내고 말았다.
그래도 복부와 다리에 쇠뇌를 맞은 고블린 2마리는 바닥에 쓰러져 더 이상 위소휘를 쫓지 못했다.
캬아오 캭!
그때였다.
남은 고블린 중 한 마리가 소울의 위치를 확인하고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이런 걸렸구나.’
소울은 쇠뇌를 다시 쓰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고 쇠뇌를 등으로 돌려 맸다.
그리고 곧바로 숏소드를 뽑았다.
‘싸울까? 도망을 갈까?’
그는 숏소드를 단단히 쥐고 전면을 쳐다봤다.
일단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놈은 한 마리였다.
그는 도망가겠다는 생각을 접고 직접 고블린 한 마리를 상대하기로 결정했다.
고블린이 자신이 숨어 있는 바위 앞으로 달려오자 소울은 오히려 바위 위로 올라가서 아래로 뛰어 내리며 숏소드를 힘껏 내리쳤다.
지겹게 연습했던 정면 내려베기였다.
캉!
의욕이 앞섰던 고블린은 소울의 힘에 밀려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소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고블린의 멱을 따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는 숏소드를 고블린의 목을 향해 똑바로 찔러 넣었다.
휘익 창!
하지만 그의 일격은 허무하게도 뒤늦게 달려든 또 다른 고블린의 공격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그는 놀라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다른 고블린 한 마리가 도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자신의 동족의 앞을 막아서며 살기를 드러냈다.
소울은 슬쩍 눈을 들어 전황(戰況)을 살펴봤다.
양동주는 여전히 홉고블린과 막상막하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성막주와 소주용은 소울의 덕분에 숫자가 3마리로 줄어든 고블린을 여유 있게 상대하고 있었다. 다만 위소휘만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바닥이 났는지 리타이어가 된 상태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튀자.’
소울은 자신이 아직 고블린 2마리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장을 살피자마자 36계 줄행랑을 쳤다.
후다다다다…….
고블린 2마리는 설마 소울이 그대로 내뺄 줄은 몰랐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고함을 치며 그의 뒤를 쫓아 달려왔다.
‘아이유, 한 놈만 따라왔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숲 속을 바람처럼 달려가면서도 뒤쪽을 살펴서 고블린 2마리가 잘 쫓아오나 확인했다.
한 마리만 쫓아왔다면 적당한 곳에서 처리를 하고나서 돌아가 쇠뇌로 남은 고블린들을 잡아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전생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지 죽어라고 자신만 쫓아왔다.
소울은 방향을 무조건 남쪽으로 잡았다.
밀림을 방불케 하는 울창한 숲이 되어버린 구룡산이었다.
괜히 어설프게 방향을 정해서 움직이다 헤매거나 대모산으로 넘어가버리면 그것도 골치 아팠다.
그동안 열심히 체력강화훈련과 실전 같은 기초훈련을 받은 보람이 있어서 그런지 고블린들은 소울의 도망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비록 170cm도 못 넘는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블린보다는 컸고 능력자가 된 후 체력도 비약적으로 상승한 터라 애초에 초등학생의 체구를 가지고 있는 고블린들이 소울보다 빠른 속도를 내서 그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여유가 생기자 소울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따라오는 고블린들을 잡아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한 놈 밖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곳으로 유인을 해볼까?’
마침 그의 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그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폭이 좁고 긴 골목을 찾았다.
뒤를 돌아보니 고블린 2마리가 여전히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담이 높고 좁은 골목으로 그들을 유인했다.
다다다다다…….
골목을 달리는 그의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소울은 골목의 마지막 끝에 도착하자 달리던 몸을 멈춰 세웠다.
그는 몸을 돌리면서 동시에 등에 맨 쇠뇌를 풀어 땅바닥을 향하게 했다.
등자에 한 발을 넣은 소울이 쇠뇌의 시위를 힘껏 당겨 시위걸이에 걸었다.
화살을 꺼내 장전하자마자 대충 보지도 않고 앞쪽으로 발사했다.
핑!
켁!
단 한발의 화살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가 고블린의 가슴에 명중했다.
사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못 맞추는 것이 더 어려울지 몰랐다. 화살에 맞은 고블린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소울은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쇠뇌를 땅바닥에 던져 놓고는 숏소드를 뽑아 휘둘렀다.
창!
달려오는 관성이 있어 고블린이 휘두른 쇠꼬챙이 같은 검에 숏소드가 좀 울리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힘과 체력에서 밀리지 않는 소울에게는 큰 충격이 되지 않았다.
창창창!
소울은 첫 번째 공격을 숏소드로 막아내자 이제부터는 힘으로 찍어 누르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며 고블린을 공격해 들어갔다.
그것은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핍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블린은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소울도 어린아이를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었다.
창창창 창창창…….
소울은 승리를 확신했다.
자신의 숏소드로 지속적으로 내려치기를 감행하자 고블린이 들고 있는 다 녹이 슨 쇠꼬챙이 검은 이제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싹!
드디어 위태위태하던 고블린의 쇠꼬챙이 검이 소울의 숏소드에 잘리면서 고블린의 어깨를 같이 갈라버렸다.
녹색의 피가 훅하고 위로 솟구쳤다.
고통에 절은 고블린은 입을 앙다물고 반쪽이 되어 짧아진 쇠꼬챙이 검으로 간신히 소울의 숏소드를 막아냈다.
하지만 이미 살기등등한 고블린의 위세는 봄날에 눈 녹듯이 녹아버렸고, 부들거리며 떨리는 팔다리는 눈으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서걱!
큭!
결국 고블린의 목에 소울의 숏소드가 스쳐지나갔다.
고블린의 경동맥이 끊어지며 녹색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소울은 더 이상 고블린에게 다가가 어떠한 위협도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목을 잡고 쓰러진 고블린은 저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휴우우!”
소울은 숨을 헐떡거리는 고블린 2마리를 쳐다보다가 뒤로 돌아 쇠뇌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다시 등자에 한 발을 집어넣고 시위를 당겨 시위걸이에 걸었다.
3번을 반복한 그는 화살을 모두 장전하고 고블린에게 다가왔다.
그사이 이미 경동맥이 끊긴 고블린은 눈이 회까닥 뒤집혀 죽어 있었다.
핑!
퍽!
소울은 남은 한 마리의 머리통에 대고 그대로 쇠뇌를 발사했다.
화살은 고블린의 머리를 뚫어 버리고도 힘이 남아 땅바닥에 깊숙이 박혔다.
“에이, 그냥 숏소드로 죽일 것을….”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쇠뇌의 화살을 회수하려면 손을 더럽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그냥 화살 하나를 깨끗이 포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자신의 돈으로 사는 것이 화살이 아닌 까닭에 화살 하나는 그냥 영업 손실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털썩!
소울은 잠시 땅바닥에 앉아 벽을 기대며 숨을 골랐다.
고블린을 피해 도망을 치느라 쉴 새 없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는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셨다.
0.5리터짜리 생수병에 담긴 물이 단번에 그의 목구멍을 타고 모두 들어가 버렸다.
그는 그렇게 지친 몸에 잠시 꿀맛 같은 휴식을 주었다.
그사이 까망이는 소울의 머리카락 속에서 빠져나와 죽은 고블린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소울이 자고 있던 방안의 은판 위에서 느낀 기운과는 전혀 다른, 보다 원초적이면서도 질기고 거친 생명의 기운이 고블린의 심장을 중심으로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규!”
까망은 먼저 소울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나 소울은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기도 바빠서 까망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까망은 잠시 망설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고블린의 사체 위를 굴러 올라갔다.
원초적인 기운은 고블린의 가슴 속 안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규!”
까망은 자신의 몸을 흐릿하게 변화시켰다.
그러자 죽은 고블린의 심장 속으로 스며들듯이 파고들어갔다.
까망은 살짝 고블린의 심장 속에 들어 있는 원초적인 기운의 덩어리를 만져봤다.
짜릿한 느낌의 강렬한 원초적인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까망은 본능적으로 이 기운이 자신에게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즉시 그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소울이었다.
그는 이제 쉴 만큼 쉬었다는 생각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까망은 즉각 자신이 주인이 떠나려는 것을 알고는 원초적인 기운의 덩어리를 흡수하는 것을 멈췄다. 하지만 이 덩어리를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까망은 자신의 몸(입)을 열어 원초적인 기운의 덩어리를 홀딱 삼켜버렸다.
“규규!”
까망은 나중에 시간 있을 때 빨아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까망이 내는 소리를 인지한 소울이 까망이를 부르고 있었다.
“까망이가 어디 갔지? 까망아!”
“규!”
소울은 데구루루 바닥을 굴러서 자신에게 달려오는 까망이를 발견하고 자신의 몸을 낮췄다.
“너, 어디 가서 뭐 했냐?”
“규!”
말이 안 통하는 것은 참 답답한 일이다.
소울이나 까망이나 서로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싶었고, 또 상대방의 의사를 정확히 알고 싶었지만 아직은 둘 다 그것이 불가능했다.
까망이 소울의 손을 타고 팔을 지나 어깨를 거쳐 그의 머리카락으로 다시 쏙 들어갔다.
소울은 그래도 애완견 같은 까망이가 있어서 외롭지는 않다고 자위하며 몸을 돌렸다.
고블린의 사체를 가져가서 팔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6조 조원들의 생사가 시급했다.
언제든지 3연발 쇠뇌를 쏠 수 있게 준비를 한 소울은 다시 숲속으로 들어갔다.
고블린의 피 냄새가 났다.
그의 콧속으로 양동주를 비롯한 6조 조원들의 냄새가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소울은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스스로도 이런 능력이 생긴 것에 대해 무척 신기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동주를 비롯한 6조가 혈투를 벌였던 장소가 나왔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자리를 뜬 상태였다.
고블린의 잘린 팔 다리가 하나씩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고블린의 몸체는 정말 알뜰하게 챙겨서 모조리 쓸어 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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