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6 제 14 장 - 인맥의 중요성 =========================================================================
“그동안 내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네 아버지에게 좀 소홀히 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버지한테 조만한 찾아가겠다고 전해주렴.”
“네, 그럴게요. 그리고 언제든지 편할 때 오세요.”
“그래. 고맙다. 꼭 갈게.”
대충 안부를 다 물어봤는지 사내의 시선이 그제야 소울을 향했다.
“그런데 옆의 이분은 누구지? 같이 온 일행 같은데 혹시 네 남자친구니?”
사내의 눈이 호기심으로 가득한 채 소울을 쳐다봤다.
“아참, 소개가 늦었네요. 이쪽은 소울 오빠에요. 저하고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어요. 오늘 온 것도 오빠가 보석을 산다고 해서 들린 거예요.”
“아! 그럼 손님이구나. 실례했습니다. 여기 주인인 우정식입니다.”
“네, 이소울입니다.”
우정식이 소울에게 악수를 청하자 소울은 그의 손을 마주 잡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의 손에 이끌린 소울은 옆에 놓인 소파로 가서 앉았다.
옆자리에 세경이 나란히 앉자 우정식은 두 사람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대충 사이를 짐작하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는 명함을 꺼내 소울에게 주었다. 왜 보석상 이름이 우정 보석상인가 했더니 성과 이름 한자씩을 따서 가게 이름으로 만든 모양이었다. 그런 점을 보면 심플한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여기 시원한 음료수 좀 가져다 줘요.”
“네, 사장님.”
진열대 유리창을 닦고 있는 직원에게 음료수를 시키자 직원은 재까닥 하던 일을 멈추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 캔을 가져다가 테이블 위에 놓았다.
“각자 취향대로 골라 마셔요.”
“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아저씨.”
소울이 음료수를 마시는 사이 우정식은 세경에게 아버지의 병세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소울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덕분에 세경의 집안 사정이 생각보다 훨씬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때 잘나가던 보석 세공사로 돈도 꽤 모으셨는데 병 때문에 다 날리고……. 세경과 가족들이 많이 힘들겠구나. 그런데 지금 누가 누굴 도와주는 거지? 원래 내가 세경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야?’
생각해보니 세경은 저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 자신을 도와주겠다고 발 벗고 나서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세경을 도와줄 생각 자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는 절로 반성이 됐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것이 꼭 돈을 많이 벌어서 도와주는 것만은 아니구나. 저런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보면, 돈이 많고 적은 것과는 상관이 없나 보다.’
소울은 그녀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잠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런, 이거 너무 우리 얘기만 하고 있었나 보네.”
“어머, 진짜 그러네요.”
우정식은 소울에게 시선을 돌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물어 볼 것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세경의 아버님 친구 분이시라니 편하게 말씀 놓으세요.”
“하하하, 그래도 초면인데 그럴 수 있나요. 나중에 좀 편해지면 말을 놓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편한 데로 하세요.”
우정식과 세경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향하자 소울은 세경을 한번 쳐다보더니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다.
“거두절미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예산이 400만원입니다.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하나씩을 구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비싸다면 자수정으로 대체할 생각입니다. 꼭 세공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같은 가격의 원석이면 조금 더 큰 것으로 구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원석을 구한다는 말은 선물용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연구용으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쪽으로 와서 이걸 보시죠.”
우정식은 소울에게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4대 보석을 하나씩 보여줬다. 예산이 400만원이니 각 보석 당 100만원에 살 수 있는 보석들을 하나씩 꺼내 보여줬다.
다이아몬드 1캐럿에 가격이 얼마인지 알려주며 자수정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도 해줬다.
소울은 작은 수첩을 꺼내 보석을 보면서 진열대에 놓인 고유번호를 적고 가격을 메모했다.
“대충 보셨으면 이제 원석을 보러갑시다.”
“네.”
우정식은 그들을 데리고 내실로 들어갔다. 문을 통과하자 복도가 나왔는데, 복도 맨 끝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자 규모가 좀 되는 보석 세공 공장이 나왔다.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인지 방탄유리 같은 것이 안팎을 철저하게 갈라놓아서 보석을 세공하고 있는 세공사들은 소울과 세경이 들어와서 구경을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우정식은 그들에게 천천히 보면서 오라고 말하고는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더니 맨 안쪽에 앉아 있는 중년 남자를 불러 원석을 가져오게 했다.
소울과 세경이 천천히 보석 세공 공장을 눈으로 구경하고 마지막에 다다르자 우정식은 미리 준비해 놓은 원석들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세공을 해서 판매할 보석과 연구용으로 쓰는 보석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 보석 원석들은 세공을 거쳐 판매를 해도 그리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는 물건들입니다. 하지만 연구용으로 사용한다면 아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아!”
소울은 그가 말하는 뜻을 분명히 이해했다.
보석은 상업성, 희소성, 아름다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또 보석을 평가하는 기준은 크기, 중량, 보석의질, 커팅 등 다양하다.
우정식이 그에게 보여주고 있는 원석들은 크기는 좀 되지만 모두 보석으로 가공했을 때 제 가격을 받지 못하는 원석들이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 원석들이 현재 소울에게는 보석상의 진열대에서 팔리는 고가(高價)의 보석보다 더 소중했다.
“이거 스마트폰으로 찍어가도 될까요? 의논해보고 사는 것은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세요.”
소울은 종류별로 나란히 놓인 원석들을 빠르게 사진을 찍어 번호를 붙여 놓았다.
나중에 소울넷에 접속하여 세이지에게 물어보고 좋은 놈으로 골라서 사려는 것이었다.
세경이 때문인지 우정식은 소울이 말한 예산의 한도에서 최대한 좋은 원석으로 잘 맞춰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울은 그런 우정식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우정 보석상을 나서는 소울의 얼굴이 수능이 끝난 수험생의 얼굴처럼 밝았다.
“오빠, 이걸로 된 거에요?”
“아마도……. 고맙다. 세경아! 네 덕분에 일이 쉽게 끝날 것 같아.”
“그래요? 다행이에요.”
넓은 종로의 거리를 세경의 손을 잡고 걷는 소울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제 우리 뭐할까? 세경이 하고 싶은 것 있으면 뭐든지 말해.”
“우리 대학로 가요. 거기서 좀 놀다가 저녁 먹어요.”
“그러자.”
소울은 두 말 없이 그녀의 의견에 찬성했다.
저녁 식사 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세경의 말에 소울은 남은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린 그들은 마로니에 공원으로 갔다.
대학로 연극 골목으로 들어서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온 모습이 보이고 젊음을 만끽하려는 커플들의 모습들도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소울은 마치 동지들이 생긴 것처럼 기뻐하며 손안에 들어와 있는 세경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그녀와 데이트를 즐기며 동시에 문화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길거리에는 볼거리들이 넘쳐났다.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젊은 여자들의 모습과 깔깔대는 웃음을 흘리며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고해상도의 산업 공사 현장의 사진들을 무료로 전시하고 있는 곳도 있었고, 묘한 전단지를 나눠주며 요상한 공연을 보러오라는 일명 삐끼들도 있었다.
400 대 1의 신화를 가진 ‘의열단’의 비호 장군으로 불린 쌍권총의 달인 ‘김상옥’ 열사의 상도 보였는데 두 사람은 재미삼아 스마트폰을 통해 그에 대한 기록을 검색하다가 놀라운 역사적 사실을 발견했다.
김상옥 열사를 추적하던 일본 경찰 400여명이 남산을 샅샅이 추적했지만 발견한 것은 김상옥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뿐이었고 그의 발자국 사이의 간격이 5m에 달했다는 기록이 보였다.
쌍권총을 들고 인근의 지붕을 타고 오르내리면서, 몸에 11발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총격전을 벌인 독립운동가 김상옥 열사를 잡겠다고 진두에서 지휘하던 서대문 경찰서 경부 구리다를 비롯한 수십 명의 일본 경찰이 죽어 나갔다.
마지막 순간 한 발 남은 총탄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짖은 뒤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살을 선택한 항일 역사상 유일무이한 시가전의 주인공의 기록은 처절한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선 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잠시 묵념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났는데 소울은 왠지 자꾸 그의 동상이 눈에 밟혀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로니에 공원 주변을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얘기를 나누고 웃고 장난을 치자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이 훌쩍 넘어 버렸다.
두 사람은 유명한 왕만두 체인점에 들어가 왕만두와 메밀냉면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곧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게.”
“아니에요. 우리 그냥 여기서 헤어져요.”
“그래도.”
“호호호, 어차피 월요일에 또 볼 거잖아요.”
“집에 데려다 주고 싶은데…….”
“오빠! 저 늦어서 빨리 집에 들어가 봐야 해요.”
“그래, 알았어. 잘 가!”
소울은 헤어지기 싫어서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세경의 손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세경은 그런 소울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녀는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품에 안겨 그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를 했다.
“으읍!”
소울은 정신없이 그녀에게 당하고 나서야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붉게 물들자 세경은 그의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한 번 더 해주고는 몸을 돌려 뛰어갔다.
소울은 세경이 뛰어가는 뒤에 대고 작게 중얼거렸다.
“잘……가!”
정말 용감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퍼뜩 정신이 든 소울은 슬그머니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그는 세경이 한 용감한 행동을 되새기며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괜히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지하철 안이 너무 덥다고 느껴졌다.
‘참 이제 세경은 내 여자 친구가 된 건가? 그걸 확실하게 안 물어봤네. 뭐 이 정도면 여자 친구보다 애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아냐? 흐흐흐!’
소울은 그렇게 부푼 가슴과 토요일 밤의 열기를 고이 간직하고 옥탑 방으로 들어갔다.
* * * * *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소울넷에 접속하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어느새 드림하우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오오오! 갈수록 소울넷 접속이 쉬워지네.”
그는 웃으며 소울넷 로그 기록을 확인했다.
타이로스, 라펠, 탄탈라스, 세이지가 자신의 기억창고에 접속하여 영혼체험을 하고 간 기록이 보였다.
그중에서 탄탈라스가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메모를 남겼고, 세이지가 현재 접속 중에 있었다.
소울은 탄탈라스가 왜 자신과 대화를 하고 싶을까 생각을 해봤지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아마도 지구의 문명이 신기해서 그런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차원의 균열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위대한 우주의 소환사라 불리는 탄탈라스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소울에게 있어서 영광스런 일이었다.
소울은 탄탈라스의 요청에 쾌히 승낙한다는 말을 그가 보낸 메모에 붙여 보냈다.
소울은 세이지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하지만 세이지는 바로 나오지 않았다.
약 30분 정도를 기다리자 세이지가 소울넷 영혼체험 인터페이스에 등장했다.
소울은 세이지를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자네도 잘 지냈는가?”
둘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람처럼 인사를 했다. 겉으로 서로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둘은 서로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았다.
“혹시 오늘 제가 종로 귀금속 거리를 다녀온 기억을 보셨습니까?”
“봤네. 그래서 자네를 만나러 오는 게 좀 늦었던 거야.”
“아! 그러셨구나. 우정 보석상에서 본 보석과 원석들은 어떻습니까?”
“진열장에는 쓸 만한 보석이 전혀 없더군. 우정식이란 자가 보여준 원석들을 사게 그중에서도…….”
세이지는 소울에게 우정식이 보여준 원석 중에서 꼭 사야하는 원석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번호를 불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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