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1 제 13 장 - 옥탑 방에서 =========================================================================
괜히 불을 꺼서 그녀를 놀라게 할까봐 조마조마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방안에 소파가 없어서 막상 둘이 앉을만한 장소가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다. 한 명은 무조건 침대에 앉아야해.’
소울은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침대 옆으로 의자를 가져왔다.
침대와 의자 사이에 작은 탁자를 들어서 옮겨 놓자 세경이 두 손에 접시를 하나씩 들고는 그 위에 내려놓았다.
“오빠, 캔 맥주 가져오셔야죠.”
“아, 그렇구나.”
소울은 냉장고에 넣어둔 캔 맥주 6개짜리를 통째로 가지고 왔다.
그 사이 소울의 고민은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제가 침대 위에 앉을게요.”
“응, 그럼 난 의자에 앉을게. 앉을 만한 곳이 없어서 미안해.”
“아니에요. 이 정도면 남자 혼자 사는 것치고는 훌륭한 편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정말이에요. 자 우리 건배해요.”
치익 치익!
“좋아.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건배!”
“건배!”
두 사람은 캔 맥주를 따서 가볍게 부딪치며 건배를 외쳤다.
차가운 맥주가 목구멍을 자극하며 안으로 들어가자 둘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생겼다.
“안주로 뭘 먹을까? 일단 땅콩부터 시작해볼까?”
“그러고 보니 프라이드치킨을 사오는 것을 깜빡했네요.”
“치킨 먹고 싶어?”
“아니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에요. 지금은 됐고요. 다음에는 치맥으로 해요.”
“콜!”
두 사람은 빠르게 캔 맥주 하나씩을 마시고 두 번째 캔 맥주를 따서 마셨다.
역시 술은 사람들 사이에 거리감을 빠르게 없애 주었다.
분위기 있는 음악소리가 더해지고 조명도 은은하게 빛이 나자 세경과 소울은 둘 사이에 남아 있던 어색함이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오빠는 계속 서울에 있었어요?”
“응,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군에 입대했다가 제대한 후에는 계속 서울에 있었어.”
“그동안 무슨 일 하고 사셨어요?”
“무슨 일은? 그냥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했지.”
“사람들은 다 비슷하군요.”
술이 한 잔 들어가서 그런지 세경은 살짝 분위기가 다운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와 소울의 과거 얘기가 시작되었다.
세경은 소울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었고, 반대로 소울은 세경의 험난한 삶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세경이는 중학교 때부터 일을 했다는 말이네?”
“네, 신문도 배달하고 우유도 배달했어요.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김밥을 말아서 파는 장사도 해봤어요.”
“고생이 심했겠구나.”
“뭐 사는 게 다 그렇죠.”
소울은 나름 자신의 삶이 가난하고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 세경의 삶에 비교해보니 자신은 비교적 무난한 편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에다 자신은 남자였고 세경은 훅 하고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여자였다.
비교 자체가 되지를 않았다.
“그런데 세경이는 얼마동안 이 연구에 참여할 계획이지?”
“가능하면 오랫동안이요.”
“벌이는 괜찮은 거야? 나는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진행하는 각각의 연구로 한 달에 500만원씩 받기로 하고 3달 동안 단기계약을 맺었어.”
“저는 조금 더 받기로 해서 700만원씩 3달 계약했어요. 하지만 오빠처럼 두 개씩이나 지원할 생각은 못했네요.”
“그럼 세경이나 나나 3개월 뒤면 실업자가 되는 거네?”
“일단은 그런 셈이죠.”
소울은 새로운 캔 맥주를 하나 더 따서 마셨다. 그러자 세경도 질세라 자신도 캔 맥주를 하나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럼 그 뒤에는 뭐할 생각이야?”
“아직 생각 중이에요. 제 능력자 등급이 F급에 불과해서 병원에서 일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하긴 병원에서 일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겠지.”
“하지만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는 돈을 많이 못 벌잖아요. 오빠는 이일 끝나면 몬스터 잡으러 다니실 거죠?”
“아마도 그래야겠지?”
“좋겠다.”
세경은 소울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세경이 아직 자신의 상태를 잘 몰라서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만간 밝혀지겠지. 소환수가 없는 소환능력자라……. 꼭 앙꼬 없는 찐빵이나 속없는 만두 같은 느낌이 드네.’
소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세경은 자신의 신세한탄을 했다.
“사실 오빠에게 주는 힐도 제대로 된 힐이 아니에요. 등급이 낮아서 큐어(cure)나 원기회복 정도의 효과밖에 나지 않아요. 이 정도로는 몬스터를 잡는 헌터 파티에는 명함도 못 내밀 거예요.”
“그래도 꾸준히 연습을 하면 등급이 올라간다고 하던데…….”
“휴우! 그것도 잠재력이 높은 사람이나 가능해요. 아무나 연습을 한다고 등급이 올라가지는 않아요.”
“그래?”
소울은 세경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잠재력 테스트는 어떻게 받는 거야?”
“처음에 능력자 테스트를 받을 때 같이 받아요. 그러니까 능력자 등급이 정해질 때 능력자의 잠재력도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능력자협회에서는 능력자의 등급과 잠재력만으로도 이 능력자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대충 유추가 가능하다고 해요.”
“능력자협회는 그런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얻는 거지?”
“미국 능력자협회에서 얻는다고 알고 있어요.”
“누가 그래?”
“유정아 박사님이요.”
“유정아 박사님은 그걸 또 어떻게 알고?”
“유정아 박사님은 원래 미국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 미국으로 입양 갔다가 다 커서 한국으로 친부모 찾으러 왔다고 하던데요.”
“그렇구나.”
소울은 유정아 박사가 전혀 한국 여자 같지 않게 터프하고 이상한 성격을 가진 게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갔다.
“듣기로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물리학과 생명공학을 복수 전공한 천재라는 말도 있어요.”
“아이비리그에서 물리학과 생명공학을 복수 전공했다면 천재 맞네.”
소울은 세경의 말에 유정아 박사가 이제 엄청나게 똑똑한 여자로 느껴졌다.
“난 앞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러 다닐 거야. 하지만 절대 무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확실한 안전이 보장될 때만 움직일 거야.”
“그럼 봐서 나도 데리고 가 줘요.”
“세경이도?”
“네.”
“내 생각에는 유정아 박사님에게 잘 붙어 있으면 더 도움이 될 텐데…….”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항상 만약의 사태는 대비를 해놓아야 하잖아요.”
그 말을 하면서 세경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살짝 울컥하는 심정이 되어 눈에서 이슬이 비췄다.
“혹시 아버지 병원비 때문에 그래?”
“네, 투석기 돌리는데 들어가는 돈이 장난 아니에요.”
“높은 등급의 힐러에게 힐을 부탁하면 안 돼?”
“최소한 E등급 이상이라야 조금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고, 완치할 가능성은 C등급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C등급의 힐러에게 힐을 받으려면 돈이 아주 많이 들어요. 물론 그 정도의 힐러가 병원에서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럼 혹시 신장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거야?”
“가족들이 제일 잘 맞는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우리 가족 중에는 아빠에게 맞는 신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해요. 면역 적합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형, 항 백혈구 항원(HLA), 교차 반응 검사를 했는데 부적합 판정을 받았어요.”
“특이하네.”
“그렇죠? 수술비는 둘째치더라도 빨리 아빠에게 신장을 줄 수 있는 장기 기증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혈액 투석을 보통 한번에 4시간, 주 3회 하는데 부작용과 후유증 때문에 많이 힘드신가 봐요. 옆에서 보는 사람이 다 지칠 정도에요.”
“아! 그렇구나.”
소울은 세경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집에 환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이해가 됐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자기를 기준으로 세상을 본다는 말이 있는 거로구나. 앞으로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그는 세경의 상황을 들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를 반성하고 오히려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자 그녀 앞에서 자신은 너무나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소울은 세경을 통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됐다.
세경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소울이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자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복받쳐 오르는지 눈물을 흘리면서 지나간 여러 가지 억울한 일들을 털어놓았다.
세경은 워낙에 발육이 좋고 미인이라 고등학교 때부터 기획사를 사칭하는 사기꾼이나 룸살롱 마담들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몸을 팔고 웃음을 팔고 싶지는 않아서 그녀는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집안을 도왔다.
그러나 편의점이나 주유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도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가게 주인은 물론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까지 그녀에게 치근덕대고 수작을 부리기 일쑤였다. 동네 양아치는 물론이고 물건을 사러온 손님이나 주유를 하러 온 남자들까지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개중에는 납치해서 강원도 별장으로 끌고 가려고 한 또라이 까지 있었다고 한다.
“많이 힘들었겠다.”
“흐흑, 오빠 나 사실 너무 힘들어요. 이번에 힐러가 되지 않았다면 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했었을 지도 몰라요.”
소울은 그녀에게 티슈를 주면서 위로했다.
“그렇구나. 이제 힐러가 됐으니 앞으로는 점점 더 나아질 거야. 나도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한번 알아볼게.”
“고마워요. 오빠!”
“고맙기는, 오히려 이런 얘기까지 털어놓으니 내가 더 고맙지.”
소울은 그녀의 말을 듣자 가슴에 뜨겁게 타오르던 욕망의 불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가뜩이나 남자들의 욕망으로 인해 힘든 세경이다. 자기까지 그녀를 힘들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 깨끗이 포기하자. 그녀와 이렇게 한 방에서 얘기도 하고 영화도 같이 보면서 프렌치 키스를 한 정도로 만족하자.’
소울은 심호흡을 한차례 하고는 맑고 투명한 눈빛으로 돌아와 세경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하지만 세상일은 마음먹는다고 다 원하는 데로 되지는 않는다. 기껏 불을 꺼 놓았더니 세경이 오히려 그에게 불을 붙이고 있었다.
“오빠, 우리 침대에서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자 오빠가 거기 앉아 있으니까 내가 내려 보기가 힘들어.”
“그래? 알았어. 내가 옆으로 갈게.”
소울은 아무 생각 없이 침대로 올라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오빠, 우리 건배해요.”
“그럴까?”
“아니다. 러브샷해요.”
“러브샷?”
“네.”
“좋아.”
소울은 러브샷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세경이 먼저 권하자 그는 당연히 오케이를 했다.
하지만 막상 러브샷을 하자 꺼진 줄로만 알았던 그의 욕망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러브샷이라는 것이 서로의 팔을 크로스 하고 마시는 것이다. 옆에서 러브샷을 시도하자 대번에 그의 팔이 자꾸 그녀의 가슴에 닿고 그녀의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원샷!”
“원샷!”
거기에다 세경이 원샷을 외쳤다.
캔 맥주로 원샷을 하기 시작하자 자연히 팔이 들리면서 서로의 몸이 엉켜버렸다.
“카아! 시원하다.”
“나도…….”
소울과 세경은 또다시 서로의 숨결이 닿을락 말락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소울은 방금 전 결심한 바가 있어서 먼저 팔을 풀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세경은 오히려 그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리고 키스를 해버렸다.
“으음?”
소울은 놀랐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오는 세경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막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라와 그에게 적극적인 프렌치 키스를 하자 소울은 끝내 자신의 이성의 끈이 뚝 끊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세경과 진한 딥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허리와 등 그리고 엉덩이를 마구 만졌다.
“아흥!”
세경은 조금도 반항하지 않고 오히려 살짝 비음을 흘리며 그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자극했다.
소울의 간이 조금씩 커졌다.
그는 세경의 원피스를 위로 밀어 올려 두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그녀의 맨살을 타고 올라갔다.
왼손으로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만지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가는 허리와 탱탱한 둔부를 쓰다듬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에는 정말 엄청난 괴리가 존재했다.
============================ 작품 후기 ============================
독자님들의 성원 속에 노블레스 투베 3위를 찍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애정어린 응원 계속 부탁드리며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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