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제 13 장 - 옥탑 방에서 =========================================================================
소울은 팬티 바람으로 창가에 서서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아주 멀쩡했다. 역시 자신이 능력자가 맞기는 맞는가보다.
화장실에 들어와 양치질을 하던 그는 화장실 입구 벽에 붙어 있는 전신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는 하던 양치질을 멈추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이게 뭐지? 겨우 하루 밖에 안됐는데 올챙이 배 같은 뱃살이 쏙 들어가고 몸에 근육이 생겼네?’
매달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써가며 몸매 관리를 받는 강남의 유한부인들이 보면 기절할 노릇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6개월 동안 죽어라고 땀을 흘리며 고생해야 간신히 가질까말까 하는 초콜릿 복근이라는 것을 1달 안에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울은 갑자기 의욕에 불타기 시작했다.
모든 남자라면 배에 왕자가 새겨진 초콜릿 복근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소울도 여타 남자들과 다르지 않게 멋진 몸매를 가지고 싶었다.
비록 체력강화훈련이 좀 힘들긴 했지만 능력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회복력이라면 얼마든지 일반인의 6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제처럼 힐러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1달을 1주일로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장갑산 팀장이 어제 나한테 체력강화훈련을 1주일만 한다고 한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남들은 6개월 이상을 해야 할 운동을 단 1주일만 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소울은 없던 의욕도 불태워야 할 판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일반인의 6배 효과가 아니라 25배 이상의 효과를 얻게 되니 소울은 새벽부터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서둘러 샤워를 하고 6시가 되기 전에 5층에 도착했다.
“소울 씨, 잘 잤어요? 오늘 일찍 나오셨네요.”
“아! 네, 들어가자마자 잤더니 이렇게 일찍 일어나게 됐어요. 장 팀장님도 잘 쉬셨어요?”
“네,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같이 들어가서 출퇴근카드 체크하고 아침 먹으러 가죠?”
“좋습니다.”
소울은 그의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두 사내는 사무실로 가서 자신의 출퇴근카드를 꺼내 타임체크기에 넣고 체크를 한 후, 곧바로 2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물론 아침 메뉴도 동서양의 아침식사를 한곳에서 즐길 수 있게 만든 뷔페였다.
“난 누룽지를 먹어야겠어요.”
“전 토스트와 햄을 먹을래요.”
두 사람은 눈을 빛내며 서둘러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가져다가 배를 채웠다.
“참 맛있네요.”
“예술 그 자체에요. 백씨 아저씨가 오면 절로 반성을 할 것 같네요.”
소울과 장갑산은 너무 맛있다고 서로 엄지손가락을 앞 다퉈 세우는 것에 인색해하지 않았다.
“저는 능력자협회가 있는 이 건물 안에서 사실 이곳을 제일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둘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도 접시 탑 쌓기 놀이를 시작했다.
즐거운 아침 식사가 끝나자 소울과 장갑산은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한잔 한 후, 잠시 휴식을 가졌다. 사내들끼리 별로 할 얘기가 없어서 멀뚱멀뚱 창밖만 쳐다보다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다시 5층으로 올라왔다.
“이제 본격적으로 체력강화훈련을 시작해볼까요?”
“네, 준비됐습니다.”
아직 다른 능력자나 연구원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소울과는 다르게 출근 시간이 9시였기 때문이다.
곧 장갑산의 주도 아래 소울은 체계적인 체력강화훈련을 시작했다.
강도는 어제보다 두 배 이상 올렸는데 운동을 시작한지 몇 달은 될 정도의 성인 남자의 강도보다 훨씬 빡셌다.
하지만 첫날인 어제 워낙 힘들게 된통 당해서 그런지, 온몸의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에도 그렇게 못 견디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갑산의 말에 의하면 아직 여유가 좀 있다고 말할 정도여서 기운이 좀 빠지긴 했지만 확실히 강도만 놓고 보면 프로 헬스 트레이너 저리가라 할 정도가 분명했다.
“허억 허억…….”
소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그의 몸은 어느새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죽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탈진이 되어 버리면 민세경이 귀신같이 나타나서 힐을 넣어주곤 해서 그럭저럭 잘 버틸 수 있었다.
“더 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요. 소울 씨!”
“이야얏!”
장갑산과 민세경의 격려의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소울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며 바벨을 들어올렸다.
이렇게 소울은 장갑산과 민세경의 도움을 받아가며 밥 먹고 운동하고 또 밥 먹고 운동하며 매일 체력강화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그렇게 5일 동안 체력강화훈련을 받자 그의 몸은 근육으로 탄탄해지고 날렵한 몸매가 되었다. 배에도 이제 복근이라는 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뚜렷한 초콜릿 복근 같은 왕(王)자가 새겨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왕(王)자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복근임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닷새 동안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시고 월요일에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장 팀장님도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럼 불금 잘 보내세요.”
“네, 소울 씨도요.”
소울은 장갑산과 기분 좋게 악수를 하고는 몸을 돌려 승강기를 타고 능력자협회 서울지부를 빠져 나왔다.
그는 건물을 나오자마자 크게 심호흡을 하며 중얼거렸다.
“후와! 이제 자유다.”
“갑자기 무슨 자유요?”
그때 그의 옆에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민세경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빛내며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라? 아직 안 갔어요?”
“네, 그런데 아까 그 말 무슨 뜻이에요?”
“별거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소울은 자신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민세경이 들었다고 생각하자 속으로 뜨끔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는 소울 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니 이제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니 오빠라고 해야 하나요? 저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당, 당연하죠.”
오빠란다.
남자에게 있어 오빠라는 말은 마법의 언어와 같다.
물론 여기서는 친 여동생에게 불리는 오빠의 그 의미가 아니다.
아직 여자를 한 번도 제대로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소울에게 오빠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제가 오빠보다 어리니까 편하게 말 놓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대할 수 있죠.”
“그럼 그럴까?”
“네.”
민세경은 소울이 편하게 말을 놓자 곧바로 그의 팔에 매달리더니 그를 강남 방향 쪽으로 잡아끌었다.
가냘픈 팔다리와 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깊은 볼륨감이 그의 팔을 통해 전해졌다.
“오빠, 오늘 저녁 약속 없으면 저하고 놀러가요.”
“둘이 놀러가자고?”
“네.”
“어디로?”
“어디로든요.”
그녀의 말의 뉘앙스가 참 묘했다.
오늘은 불금, 불타는 금요일 저녁이다.
소울은 그녀의 놀러가자는 말을 듣자마자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야사시한 상상이 시작되고 사타구니 사이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오빠, 안가요?”
“어? 그래. 가자.”
그의 야릇한 상상과 바지가 꽉 끼는 불편한 진실은 곧바로 민세경의 청아한 목소리로 인해 깨져 버렸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하고는 그녀와 나란히 거리를 걸어갔다.
길을 걷는 내내 주변의 남자들이 민세경을 힐끔거리는 것을 보자 소울은 민세경이 마치 자신의 여자 친구라도 되는 듯 기분이 우쭐해졌다.
‘이래서 다들 예쁜 여자 친구를 사귀려고 하는 거구나.’
그렇게 팔로는 민세경의 뭉클거리는 가슴의 짜릿함을 즐기고, 정신적으로는 다른 수컷들이 부럽다는 시선을 즐기며 걸어가던 소울은 문득 둘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몰라 궁금해졌다.
“세경아!”
“네?”
“내가 세경이라고 불러도 되지?”
“물론이죠. 그리고 이미 부르고 있잖아요?”
“아차, 그렇지?”
민세경의 미소에 소울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우리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
“강남대로를 타고 쭉 가면 강남사거리가 나오잖아요?”
“그렇지.”
“거기 가기 전에 왼쪽에 영화관이 하나 있어요. 일단 우리 영화 한편 같이 봐요.”
“그러자. 그런데 너 배 안고파?”
“아까 2층에서 뷔페 먹었어요.”
“그랬어? 난 못 봤는데…….”
“저는 유 박사님이랑 반대편에 있었어요. 장 팀장님하고 둘이 아주 뿌리를 뽑던데요?”
“크흠, 그걸 봤어?”
“이미 그 건물에서 오빠하고 장 팀장님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정말?”
“네, 식신(食神)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식, 식신?”
소울은 솔직히 살짝 충격을 먹었다.
‘아니 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식신이래?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 장갑산 팀장이 나보다 몇 배는 더 먹는데…….’
그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2층 뷔페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한 그로서는 예상치 못한 태클이 시작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공짜에다 맛도 좋고 얼마든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2층 뷔페식당을 안갈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음식이 맛있어서 내가 좀 과식을 하긴 했나보네.”
“하긴 거기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긴 해요. 공짜이기도 하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당근이죠.”
둘은 급할 것이 없다는 듯 느긋하게 강남대로를 걸어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세경이는 언제까지 이 연구에 참여하게 되는 거야?”
“앞으로 쭉 이요.”
“그럼 학교는 어떻게 하고?”
“저 학교 안다녀요. 사실은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은 구경도 못했어요. 고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쭉 편의점에서 일했어요.”
소울이 조심스럽게 민세경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럼 혹시 소녀 가장?”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고 아버지가 좀 많이 아프세요.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시고 제가 벌어서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어요.”
“동생들은?”
“고등학교 다니는 여동생이랑 이제 중학교 다니는 남동생이 있어요.”
민세경은 의외로 자신이 물어보는 질문에 순순히 대답을 했다.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의 상황을 얘기하자 오히려 소울이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오빠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거예요?”
“일단 3달만 하고, 그 뒤에는 헌터가 되려고 해.”
“역시 몬스터를 잡으려고 생각하고 계시군요. 오빠는 소환계 특이 능력자시니까 소환수만 잘 소환해도 크게 성공할 거예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소울은 민세경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하지만 차마 스스로 소환력이 쥐뿔도 없는 소환계 능력자라는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왠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 오빠는 대학 졸업은 안하실거예요?”
“세경아! 나도 대학은 들어가지 않았어. 집의 경제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쌍둥이 동생만 대학을 갔어.”
“그러시구나.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 아니에요?”
“음, 지금은 당장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나중에 내가 특별히 뭘 배우고 싶거나 하면 그때 생각을 해보려고.”
“저도 당장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꼭 한번 대학물을 먹어 보고 싶긴 해요. 나도 비슷한 심정이야.”
그때 소울과 민세경의 눈에 분식점이 들어왔다.
“우리 저기 가서 떡볶이 먹고 갈까?”
“순대랑 어묵도 먹어요.”
“좋아.”
소울과 민세경은 환경이 비슷해서 그런지 의외로 말이 잘 통했고 죽도 잘 맞았다.
두 사람은 떡볶이, 순대, 어묵을 시켜서 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먹고 왔는데도 분식 먹을 배가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우리 영화보고 나면 ‘빙설(氷雪)’에 가서 인절미 팥빙수 사먹어요?”
“좋아. 나도 그거 한번 먹고 싶었어.”
“그럼 그거 아직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응, 사실은 나도 최근에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신세였거든.”
“호호호, 우리 이제 보니 같은 업종에서 근무한 사이네요.”
“그러게…….”
둘은 입술을 온통 떡볶이 국물로 범벅을 해놓고는 좋다고 웃어댔다.
계산을 하려고 소울이 지갑을 꺼내들자 민세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 이건 제가 낼게요. 대신 영화는 오빠가 보여주세요.”
“정말?”
“네.”
“그렇게 하지.”
소울은 돈을 내겠다는 세경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아무리 가정형편이 어렵다고 얻어먹기만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 세경, 그녀가 그런 것을 싫어할 수도 있었다.
물론 요새 젊은 여자들 같지 않은 세경의 행동이 소울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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