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8 제 12 장 - 강화훈련 =========================================================================
육체와 정신을 하얗게 태울 것만 같은 신체검사와 각종 테스트로 인해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기진맥진한 소울이 제 2 검사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민세경의 힐이 곧바로 들어왔다.
“아악, 왜 또?”
소울은 온몸의 근육통이 사라지는 기분 좋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유정아 박사가 또박또박 이유를 설명해줬다.
“능력자의 신체검사와 각종 테스트가 끝났으니 이제 기초훈련 받으셔야 해요. 장갑산 팀장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보세요.”
“그럼 힐을 준 게 그거 때문이에요?”
“네, 이소울 능력자, 누가 보면 우리가 이소울 능력자를 잡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 헤치지 않아요. 그러니 겁먹지 말아요.”
소울은 유정아 박사의 말을 듣자 기가 막혔다. 병 주고 약 주고 이제는 착한 천사 코스플레이(cosplay)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못된 년 같으니라고……. 두고 봐라. 내가 꼭 복수할 테다.’
하지만 소울의 얼굴 표정은 독하게 먹은 마음과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요. 겁을 먹다니요?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들한테 제가 왜 겁을 먹겠습니까?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울은 빠르게 종종 걸음을 걸어 검사실을 빠져 나갔다.
그때 그의 뒤통수에 대고 유정아 박사가 한마디를 했다.
“능력자의 기본능력과 특성을 파악해야 하니 매주 월요일 아침은 이곳으로 오세요.”
“흐엑!”
소울은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았지만 이미 들어온 정보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뭔가 괜히 당한 느낌이 든 소울은 한숨을 쉬며 다른 능력자들에게 훈련을 시키고 있는 장갑산에게 다가갔다.
“장 팀장님.”
“아! 소울 씨! 괜찮아요?”
“괜찮아보이세요?”
“네.”
소울은 그의 당연하다는 대답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그의 아구통을 후려칠 뻔 했다. 물론 정말 그랬다면 누구 아구통이 먼저 작살났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힐 받았죠? 그럼 괜찮아져요. 잠시 여기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 30분 뒤에 시작할게요.”
“네.”
일단 쉬라니 소울은 금세 장갑산의 말에 ‘네’ 하고 대답을 했다.
소파에 앉아 쉬면서 물을 마셨다. 그리고 눈을 돌려 훈련을 받고 있는 수십 명의 능력자들을 쳐다봤다.
장갑산의 근육을 능가하는 괴물 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는 능력자가 있는가 하면 삐쩍 말라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능력자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하나 힘들어 하지 않는 능력자는 없었다.
‘아까 검사한 수치를 이용해 각자 능력에 맞게 훈련을 시키나 보구나.’
소울의 짐작이 맞았다. 장갑산의 손에 태블릿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그는 능력자 한 명 한 명씩에게 맞춤형 체력강화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훈련복을 입은 능력자들 옆에는 전문 트레이너들이 모두 최소한 한명씩 달라붙어 있어 체계적인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30분은 금방 지나갔다.
마침내 장갑산이 그에게 다가오자 소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어났다.
“준비됐나요?”
“네.”
“오늘은 기초훈련을 받기 전에 체력강화훈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초훈련은 언제 받아요?”
“1주일 동안은 체력강화훈련을 하도록 하고, 다음 주에 훈련장으로 이동해서 기초훈련을 할 예정입니다.”
소울은 장갑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있는 능력자 전원은 모두 제가 총괄합니다. 하지만 각 파트마다 전문 트레이너가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훈련을 시켜줄 겁니다. 그러니 꼭 운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트레이너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해야 할 운동을 할당받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곳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체력강화훈련을 마치도록 할게요.”
“네.”
소울은 장갑산의 말에 가볍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막상 피트니스 센터 저리가라 할 정도로의 각종 최첨단 운동기구를 하나씩 경험해보기 시작하자 소울은 이게 절대 만만한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자신처럼 최근 전혀 운동을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운동이 아니라 고통이나 고문이 될 수도 있었다.
러닝머신, 스트레칭, 벤치프레스, 바벨 로우, 밀리터리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딥, 턱걸이, 머신인클라인 체스트 프레스, 펙덱플라이입, 암컬, 바컬, 렛풀다운, 시티드 케이블 로우, 덤벨, 숄더 프레스…….
트레이너들이 손짓에 따라 차례로 운동을 시작하자 그는 곧 온몸에 자극을 주다 못해 아까와는 또 다른 근육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자신이 일반 사람이라면 첫날에 절대 이렇게 무리한 운동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능력자가 가지고 있는 회복력에 대해 이미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소울을 무섭게 몰아붙였다.
‘무지하게 빡세네?’
그는 온몸에 느껴지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이를 악물고 몸을 움직였다.
만약 지금 포기하면 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토해내야 한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놓아둘 수는 없었다.
‘천만 원은 나의 힘!’
온몸에 비 오듯이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소울은 악착같이 최후의 운동기구까지 돌고 나서야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수고했습니다. 이소울 능력자. 내일 뵙겠습니다.”
“헤엑 헤엑, 네, 내일봐요.”
소울은 간신히 트레이너들의 인사에 대답을 했다.
한참 숨을 몰아쉬자 그의 앞에 민세경이 나타났다.
“아까 죄송했어요.”
“힐 넣지 말아요. 또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
소울은 그녀가 나타나자 반갑기 보다는 깜짝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장갑산이 그녀의 옆에 서서 손을 흔들어 그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소울 씨, 오늘 일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다른 능력자들은 모르지만 소울 씨만큼은 꼭 힐 받고 들어가세요. 안 그러면 내일 못 일어나요.”
“정말이죠?”
소울은 장갑산의 말에도 쉽게 믿지를 못해 혹시 주변에 유정아 박사가 숨어 있지나 않은 지 살펴봤다.
그의 행동에 민세경은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에요. 만약 제 말이 거짓말이면 제가 책임질게요.”
“그 말 정말이죠?”
“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들어드릴게요.”
“네? 원하는 것은 뭐든 지요?”
“그렇다니까요.”
소울은 민세경의 말이 어쩐지 조금 끈적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저게 또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야?’
그는 눈을 얇게 뜨며 민세경을 쳐다봤다.
민세경은 소울이 뭔가 자신을 의심하는 듯하자 옆에 있는 장갑산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소울 씨가 절 의심하는 것 같아요. 빨리 해명 좀 해주세요.”
“아! 네. 소울 씨, 정말 오늘 훈련 끝이에요. 진짜에요.”
장갑산이 거듭 그렇게 강조를 하자 그제야 소울은 몸에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알았어요. 믿을게요.”
“힐 한번 주기 참 힘드네요. 힐!”
민세경은 구시렁거리면서 소울에게 힐을 넣어줬다.
소울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번에 통증이 사라지고 몸에서 활력이 치솟았다.
오늘만 무려 3번의 힐을 받았다. 앞으로 또 얼마나 힐을 받으며 버텨내야 할지 그의 앞날이 캄캄했다.
“그럼 저도 이만 들어갈게요.”
“네, 수고하셨어요.”
“잘 가요.”
민세경은 소울과 장갑산에게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원피스가 찰랑거리며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나자 소울은 새삼 그녀가 참 예쁘다는 것을 느꼈다.
‘저런 여자 친구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몸이 멀쩡해지니 이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저는 오늘 여기 숙소에서 자고 가려고 합니다. 소울 씨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도 그냥 여기서 자고 갈래요. 집까지 가는 것도 귀찮고 저녁 식사도 해결할 수 있잖아요.”
“그럼 저하고 저녁 식사 같이합시다.”
“그러죠. 그런데 일단 우리 좀 씻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두 사람은 묘한데 의기투합이 되어 샤워실로 들어갔다.
장갑산은 옷을 입고 있을 때 보다 벗고 있는 모습이 훨씬 대단했다.
특히 사타구니 사이에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는 대물(大物)을 보니 소울은 바로 개인샤워부스로 걷던 방향을 바꿨다.
쏴아아아아아…….
뜨거운 물이 온몸에 떨어져 내리자 삭신이 노곤해지고 온몸이 태양아래 놓인 해파리처럼 해체되는 것만 같았다.
소울은 한참동안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가 샴푸와 린스 그리고 바디워시를 이용해 샤워를 마치고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왔다.
자신의 사이즈에 맞는 훈련복과 새 속옷을 챙겨 입은 그는 벌써 샤워를 끝내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갑산을 만나 2층 뷔페식당으로 갔다.
“우와! 이건 낮의 뷔페 메뉴 보다 훨씬 더 대단하네요?”
“좋죠? 이 정도 뷔페면 호텔 뷔페 저리가라 할 정도의 수준일 거예요.”
“그렇겠네요.”
남자들이 만나서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겠는가?
둘은 공통의 관심사인 먹는 것으로 언어를 대신했다.
서로 접시에 원하는 음식을 조금씩 담아가지고 테이블로 왔다.
조금씩 담았다고 생각했는데도 벌써 접시는 수북해져 있었다.
하지만 고된 신체검사와 테스트를 거치느라 지친 소울과 능력자들의 체력강화훈련을 시키느라 몸을 많이 쓴 장갑산이 식사를 시작하자 수북했던 접시도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두 사람은 욕심껏 원하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1시간 동안 알차게 즐기며 접시 탑을 멋지게 쌓아놓고 뷔페식당을 나왔다.
“잘 먹었네요.”
“그러게요.”
둘은 배를 만지고 있는 서로의 배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럼 이제 숙소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갑산은 소울이 많이 피곤한 것을 알고 바로 16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16층에 연구에 지원한 능력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고, 17층에 능력자협회에 관련된 능력자들이 묵는 숙소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소울 씨는 여기 1601호실을 쓰시면 됩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봬요.”
“네, 장 팀장님도 편히 쉬세요.”
둘은 서로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장갑산에게 카드키를 하나 받은 소울은 곧장 1601호실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오오! 여긴 마치 특급 호텔 스위트룸 같네?”
소울은 이 방이 자신의 옥탑 방보다 10배는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옥탑 방 얻지 말고 바로 이리로 들어올걸 그랬나? 3달간 장기 체류가 가능하다면 40만원씩 3달 곱해서 120만원을 절약할 수 있었잖아?’
이런 쪽으로는 계산이 아주 빠르게 돌아가는 소울이었다.
숙소라고 쓰고 공짜 호텔방이라고 읽는 1601호실의 커튼을 열자 한쪽 면 전체가 통짜 유리로 만들어진 창문을 통해 강남의 아름다운 야경이 보였다.
그는 창문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아 잠시 밖을 멍하니 쳐다봤다.
수많은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렇게 서울의 밤을 밝히는 많은 불빛 가운데 단 한 개도 자신의 불빛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
‘반드시 나만의 불빛을 꼭 가지고 말겠다.’
그는 주먹을 꼭 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잠시 강남의 야경을 구경하던 그는 커튼을 다시 치고 고개를 돌려 커다란 침대와 멋들어진 소파를 확인했다.
침대의 반대편 벽에는 LED 커브드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화장실로 가보니 넓은 화장실에 역시 넓고 깊은 욕조가 놓여 있었다.
이정도면 소울 같은 젊은 남자가 혼자 살기에 딱 좋은 오피스텔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데가 평생 공짜라면 참 좋겠다.’
소울은 되도 않는 상상을 해보며 양치질을 시작했다.
힐을 받아서 몸은 피곤하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피곤해서 오늘은 그냥 일찍 자고만 싶었다.
그는 양치질을 끝내고 속옷을 제외한 옷을 다 벗어 옷걸이에 걸은 후, 침대에 대자로 누웠다.
“아하아아아!”
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자 누군가 자신을 침대 아래쪽으로 잡아끄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그는 곧 잠에 빠져 들었다.
* * * * *
눈을 뜨자마자 그는 오른손 중지를 꺾었다.
“아야!”
통증이 이는 것을 보니 소울넷에 접속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제 내가 너무 피곤해서 소울넷 접속을 안 하고 잤나?’
소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촤아악!
커튼을 한쪽으로 밀어 버리자 새벽의 한산한 신사동 사거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고 웅장한 고층 건물이 즐비한 강남대로의 모습도 한편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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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