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7 제 12 장 - 강화훈련 =========================================================================
소울은 소의 눈처럼 크고 맑은 장갑산의 눈을 쳐다보자 곧 그의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갑자기 그의 먹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이거 정말 맛있네요. 주방장이 대단한 사람인가 봐요.”
“유명 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 하나가 능력자가 됐습니다. 그는 보조계 능력자로 밝혀졌는데 미각에 관한한 천부적인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하더군요. 아마 앞으로 더욱 맛이 있는 뷔페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오오오! 그런 쪽으로도 능력이 꽃을 피우는군요.”
“소울 씨도 소환계 능력자가 아닙니까? 특이 능력자라면 특이 능력자죠.”
“그런가요?”
소울은 장갑산의 말에 냉정을 회복했다.
‘소환계 특이 능력자가 맞긴 하지. 소환력이 쥐꼬리만큼도 없는 무늬만 소환계 능력자가 바로 나지.’
그는 자신의 상태가 정확히 어떤지 분명히 인식을 하자, 겨우 피 좀 뽑고 신체검사를 빡세게 했다고 칭얼거리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그냥 3달 동안 죽었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훈련을 받자.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보라고 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아.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의 이 허접한 능력은 모두 들통 날 테니까, 쫓겨나가기 전에 최대한 내게 필요한 것을 뽑아 먹자.’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뀐다고 소울은 음식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피와 살이 되고 근육이 되고 나중에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줄 힘이 될 음식이었다. 그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식사가 끝나고 장갑산과 커피를 한잔 뽑아 먹고 나자 어느덧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이만 올라가죠?”
“네.”
두 사람은 5층으로 돌아왔다.
“힐러는 어디에 계세요?”
“저기 오셨네요.”
장갑산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자 하늘하늘한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청순하게 생긴 아담한 사이즈의 여자가 유정아 박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긴 장갑산만 빼고 전부 여자네. 원래 이쪽 계통이 여자들이 강세인가?’
소울은 청순한 미녀의 상(像)을 가지고 있는 힐러를 보며 정말 딱 힐러의 이미지에 부합된다고 느꼈다.
“돌아오셨군요?”
“네, 유 박사님은 식사 안하세요?”
“우린 여기서 샌드위치로 대충 때웠어요. 참! 인사하세요. 이쪽은 우리의 연구를 도와주실 민세경 힐러에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소울입니다.”
“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소환계 특이 능력자라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민세경은 짝 하고 박수를 치며 소울에게 대놓고 관심이 많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만 보면 당장이라도 여자 친구가 되어 달라고 하면 여자 친구 해줄 것만 같았다.
“소환계라면? 그럼 소환수를 소환할 수 있다는 말 아닌가요?”
“마, 맞습니다.”
“그럼 소환수 좀 보여주세요.”
“아, 아직 저는 소환수를 소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요?”
민세경은 땅이 꺼져라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소울은 그녀의 다채로운 표정과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 등에서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거 잘못 걸리면 1달도 못 버티고 잘리는 거 아냐?’
불안한 표정을 억지로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발버둥치는 소울에게 돌연 구세주가 나타났다. 유정아 박사였다.
“자자,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일을 시작합시다. 지혜와 연아는 이소울 능력자 데리고 들어가서 나머지 테스트 진행하도록 해.”
“네, 박사님.”
“예, 박사님.”
지혜와 현아는 소울에게 다가와 그의 양쪽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미소를 지으며 다가선 지혜와 현아의 예쁜 얼굴이 왜 이렇게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운지 몰랐다.
“유 박사님, 이소울 능력자가 신체검사와 여러 테스트를 받느라 근육통이 있는 모양인데 여기 민세경 힐러께서 힐 한방 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울은 장갑산의 말이 마치 천상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처럼 들렸다.
‘아! 역시 의리의 사나이 장갑산이네.’
하지만 장갑산과 소울의 기대는 유정아 박사의 말 한마디에 단칼에 잘려갔다.
“근육통이 있는 것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 상태에서 능력자의 신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 지 확인하는 것도 연구의 과제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니 객쩍은 소리 그만 하고 장갑산 팀장은 빨리 다음 지원자나 모시고 오세요.”
“네, 유 박사님.”
소울은 장갑산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천하의 장갑산도 유정아 박사에게는 게임이 되지 않는가 보다. 이곳에서 절대 갑은 유정아 박사가 분명했다. 장갑산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소울을 쳐다보다 곧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이 씨,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더니…….’
소울은 이제 적진에 남아 홀로 적병을 기다리는 병사처럼 살짝 몸을 떨었다.
오지혜와 성연아는 의외로 완력이 강했다. 소울의 반항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를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악몽의 신체검사, 아니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이 철검을 들고 저 기둥을 위에서 아래로 1000번만 쳐주세요. 혼신의 힘을 다 해주셔야 합니다.”
“자, 이번에는 이 봉을 들고 저 기둥의 옆을 1000번만 쳐주세요.”
“힘드셨죠? 이제 더 안치셔도 되요. 대신 저기 내려오는 철봉을 이 방패로 딱 1000번 만 막아주세요.”
“수고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이제 뒤에서 몬스터가 쫓아온다고 생각하시고 이 위에서 달려주시면 됩니다. 너무 늦게 뛰시면 뒤에 있는 침이 전기 자극을 가하니까 최대한 빨리 뛰셔야 해요.”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으아아악!”
소울은 이날 100번도 넘게 전기 자극이라고 쓰고 전기 고문이라고 읽는 고통에 시달려야했다.
“헥헥헥…….”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정신과 육체가 걸레짝처럼 변한 상태에서 겨우 검사실을 빠져 나왔다. 그는 걸어 나오다가 결국 바닥에 픽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때였다.
“힐!”
마치 천상에서 천사들이 내려와서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노래하는 것만 같은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소울은 자신의 온몸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근육통이 사라지고 힘이 불끈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어라?”
“이소울 능력자,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네.”
소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주먹을 쥐어 보고 통통 뛰어 보기도 했다.
“이거 정말 끝내주네요?”
“호호호, 힐 처음 받아보셨나 봐요?”
“네, 처음이에요. 그런데 이거 정말 장난 아니네요.”
소울은 정말, 진심으로, 혼또니(ほんとうに), 리얼리(really) 감탄을 하고 말았다.
힐러를 괜히 능력자 중에 귀족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능력이면 굳이 몬스터를 잡지 않아도 병원에서만 일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겠구나.’
그는 민세경을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 올렸다.
“어머, 내 팬이 또 한명 생기셨네요.”
“팬? 팬이라뇨?”
“호호호, 그런 게 있어요.”
소울과 민세경의 대화는 유정아 박사가 끼어들면서 끝났다.
“지혜야! 연아야! 뭐하니? 이소울 능력자 힐 받았잖아? 얼른 데리고 들어가서 테스트 한 번 더 돌려라.”
“네, 박사님.”
“예, 박사님.”
“뭐라고요? 테스트를 또 받는다고요?”
“당연하죠. 힐러의 힐을 받았으니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당연히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울이 뭐라고 항의를 하려고 하자 유정아 박사는 오지혜를 바라보며 크게 소리쳤다.
“지혜야! 젖산 분포도와 변화율 체크해서 가져오는 것 잊지 말아라.”
“네.”
소울의 항의는 살포시 즈려 밟히며 무시되었다.
오지혜와 성연아는 즉시 소울의 양팔을 잡고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녀들의 가슴이 양팔을 누르며 자극을 했지만 소울은 지금 그딴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 이건 아니잖아요?”
“이소울 능력자님, 포기하면 편해져요.”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고요?”
소울은 그녀들에게 항변을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예쁜 여자 얼굴의 탈을 쓴 여우들에게 안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또 한 번 지옥 같은 고통을 감수해야했다.
1시간 뒤, 또다시 육체와 영혼에 걸레쪽 같이 변해 버린 소울이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오자 민세경이 그를 보고 반겼다.
“어머, 이제 끝나셨어요?”
“안 돼!”
“네?”
“나한테 힐주지 말아요.”
“아니 왜요?”
민세경은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울은 이미 한번 당한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녀의 힐을 받고 싶지 않았다.
“힐 받으면 저기 또 들어가야 해요.”
“호호호, 아닌데. 오늘 검사는 다 끝났는데…….”
“정말이에요?”
“네, 아까 유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요.”
“힘드시죠? 제 힐 받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고맙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네, 맡겨 주세요. 힐!”
소울은 이번에는 정면으로 민세경이 자신에게 주는 힐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이 하얗게 물드는 순간 자신의 몸에서 같은 색으로 살짝 물들었고 곧이어 온 몸에서 찌릿찌릿 거리던 통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민세경 씨!”
“어머, 그렇게 고마워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저도 돈 받고 하는 일이거든요.”
“그래도 감사드리고 싶어요.”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민세경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온몸의 근육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단번에 통증이 사라진 기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소울은 정말 진심으로 민세경이 고마웠다.
“어라? 이게 무슨 분위기지? 누가 검사실에 분홍빛 가루를 뿌려 놓으라고 했죠?”
“어머, 유 박사님 어디갔다 이제 오셨어요?”
“나 화장실 다녀왔는데요? 그런데 둘이 손잡고 뭐하고 있었어요?”
“손이라뇨? 으헥! 내가 왜 민세경 씨 손을 잡고 있지?”
소울은 깜짝 놀라서 민세경의 손을 놓고는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민세경도 소울의 행동에 좀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거 보기와는 딴 판이시네요? 이소울 능력자 혹시 이쪽 방면으로 진정한 능력자 아니세요? 민세경 힐러 오늘 처음 본 것으로 아는데 벌써 손을 잡다니 말이에요? 진도 너무 빨리 빼시네요.”
“아, 아닙니다. 그, 그게 아니라…….”
그는 당황에서 두 손을 마구 흔들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때였다. 유정아 박사의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그런데 혹시 힐 받았어요?”
“네? 네, 그런데요. 이제 테스트 끝났다면서요?”
“누가 그래요?”
“민세경 힐러가요. 혹시 저 테스트 끝난 것 아니었어요?”
“음, 역시 힐이 중복으로 들어가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확인해놓는 것이 좋겠군.”
“서, 설마?”
유정아 박사는 작게 중얼거렸지만 소울의 귀에는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소리처럼 들려왔다.
“지혜야! 연아야! 이소울 능력자 데리고 들어가서 마지막으로 테스트 한 번 더 돌려라.”
“윽, 민세경 씨, 테스트 끝났다면서요?”
“어어? 아까 끝났다고 말씀하셨는데?”
민세경이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정아 박사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다른 능력자들 테스트 한 것 끝났다고 한 거예요. 이소울 능력자는 소환계 특이 능력자라서 모든 표본 값을 다 구해야 하거든요.”
“그럼 이번 연구에 지원한 능력자들 중에는 소환계가 따로 없나요?”
“네, 이소울 능력자가 유일해요. 그러니 있을 때 확실히 뽑아야지요.”
“이건 아니지요.”
억울함을 호소하던 소울은 오지혜와 성연아의 손이 이끌려 빠르게 제 2 검사실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민세경은 안으로 사라지는 그의 눈에서 순간 눈물이 비춰진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 박사님, 그런데 이소울 능력자처럼 저 테스트를 3번씩이나 받는 능력자가 있나요?”
“없어요. 다른 능력자들은 굳이 한 명이 다 받아야 할 필요가 없어요. 여러 명이니 골고루 나눠서 테스트하면 되요.”
결국 소울은 복불복에 잘못 걸린 케이스라는 말이었다.
한 달에 500만원 준다는 것에 혹해 2개씩이나 연구에 지원한 소울의 판단미스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울의 고생길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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