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제 12 장 - 강화훈련 =========================================================================
그들의 말대로 한쪽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입을 딱 벌렸다.
수백 평은 될 것 같은 넓은 전시관에 온갖 종류의 무기와 방어구가 가득했다.
권총, 소총, 기관총과 같은 현대 화약무기에서부터 검(劍), 도(刀), 창(槍), 봉(棒), 도끼(斧) 등 냉병기(冷兵器, Cold Weapon)가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다.
“저, 여기 처음 오셨죠?”
“네, 맞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소울은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보이는 청년을 따라 문 입구 옆에 있는 허름한 데스크로 갔다.
“능력자 등록증을 보여주세요.”
“여기 있습니다.”
소울은 그에게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벗어주었다.
“이소울 씨, 맞죠?”
“네.”
“일단 능력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소울은 일단 그의 인사를 받고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돌려받았다.
“저는 양보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능력자 협회 서울지부 능력자 지원센터에서 능력자들에게 기본 장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구나.”
소울은 양보해를 슬쩍 살펴봤다.
훤칠한 키에 단단한 체격을 지닌 그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보였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을 가지는 사람은 어디에서든 빛이 나는 법이다.
소울은 양보해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느꼈다.
“대한민국 능력자 협회에서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들의 안전과 사냥을 돕기 위해 기본 장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소울 씨도 저기 앞에 진열되어 있는 무기 중 하나를 고르실 수 있습니다.”
“아! 네.”
소울은 그의 손이 가리키는 진열대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무기들을 차근차근 살펴봤다.
검, 도, 창, 봉, 도끼, 망치, 단검, 도리깨, 언월도, 활 등 수많은 냉병기가 주(主)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뭐로 만든 겁니까? 설마 단조를 한 제품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특수강이지요. 도검류를 전통방식으로 단조해서 만들면 인건비가 상승해서 이거 하나 만드는데 싸게는 수십만 원에서 비싸게는 수백, 수천만 원이 들어갑니다.”
“아!”
“이것들은 텅스텐합금계 탄소강에 열처리를 거친 물건들입니다. 어지간한 명검이 아니라면 초보 능력자에게는 차라리 저희가 지급하는 기본 장비가 좋습니다.”
양보해의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소울도 남자라서 한때 장군도나 사인검, 일본도와 서양검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다. 물론 가격이 만만치 않아 한 개도 구입하지 못하고 그냥 눈팅만 하다가 끝났지만 말이다.
당시 전문가라고 알려진 사람이 조언하기를 명장(名匠)이 심혈을 기울여서 전통방식으로 단조를 한 제품이 아니라면 그냥 요새 나오는 특수강에 열처리한 제품이 싸고 튼튼하다는 말을 했었다.
냉간용 합금 공구강인 SKS-3(한국표준규격STS 3, 미국표준규격 AISI O1), 고속공구강으로 절삭용 공구제작에 주로 쓰이는 범용 하이스 강인 SKH-51(AISI M2/42), 강도가 높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여 해외의 도검제조업체가 칼날을 만드는데 자주 이용하는 고탄소강 소재 AISI 1095 이 세 가지를 주로 사용해서 대량으로 뽑아낸 것이다.
“그럼 저기 저 사람들과 키오스크(kiosk, 간이 판매대·소형 매점, 무인단말기)들은 다 뭡니까? 설마 국내외 도검 제작소에서 판매를 위해 나온 겁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떤 분은 저것들을 기본 장비로 주는 줄 알았다가 돈을 내라고 하자 막 화를 내시던데…….”
소울은 자신의 생각이 정확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그쪽으로는 아예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초보 능력자 주제에 싸게는 수십만 원에서 비싸게는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무기를 살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살 수 있다고 해도 결국 돈 낭비에 불과했다.
‘나 같은 F급 소환계 능력자가 명검은 가져서 뭐하게…….’
소울은 자신의 주제파악을 정확히 하고 있었다.
최근에 상위 등급의 몬스터일수록 점(點)의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뛰어나 선(線)이나 면(面)에 대한 공격이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됐다.
능력자들은 당연히 그 소리를 듣고 도검이나 둔기 등을 사용해서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았다. 확실히 총기보다 효과가 월등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 이후, 전 세계의 모든 도검 제작소와 냉병기 제조업체들은 일제히 주가가 폭등하고 현재는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능력자만 수십만 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능력자 무기시장, 특히 냉병기 시장을 놓고 지금 국내외의 해당 업체들의 세일즈 경쟁이 장난이 아니던 것이다.
“어? 저건 소총 아닙니까? 저런 것도 기본 장비로 줍니까?”
소울이 K2소총을 발견하고 묻자 양보해는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능력자들은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잡아야 하니 당연히 현대화기도 지원 대상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능력자들이 점점 화약무기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그렇죠?”
“현대화기의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소울은 양보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중요한 정보는 정말 가끔 생각지도 못하는데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점이 단점이 된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총이 통하는 몬스터라고 해봤자 고블린, 코볼트, 놀, 오크 같은 최하급 소형몬스터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놈들은 대부분 무리를 지어 다니는 놈들입니다. 총소리를 내면 오히려 다른 동료를 불러들이거나 근처의 몬스터를 끌어들이게 됩니다. 사냥을 하고 있는 때 다른 몬스터가 난입한다면 그건 능력자 파티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됩니다.”
“아! 그래서 능력자들이 냉병기를 선호하는군요.”
“네, 그렇죠.”
소울은 양보해를 통해 여러 가지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가 있었다. 이런 정보가 하나 둘씩 모여 피가 되고 살이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저는 소환계라서 도검이나 둔기 보다는 활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럼 이쪽으로 오셔서 활을 보세요. 활을 무기로 선택하시면 단검 하나를 더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아! 그래요?”
소울은 양보해의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양보해는 각종 활을 전시하는 곳으로 가서 철궁(鐵弓)을 하나 들어서 보여줬다.
“이건 철궁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철로만 만든 것은 아닙니다. 합금을 사용해서 대량생산한 제품이죠. 철태궁과 리커브 보우의 중간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쉽게 말해 초보자용으로 만든 대량생산 제품이라는 말이네요.”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하지만 일반인은 시위조차 당기기 힘들 겁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제가 한번 당겨보도록 하죠.”
소울은 겁도 없이 양보해가 말한 철궁에 시위를 걸고 당겨봤다.
‘크윽, 이거 뭐야? 왜 이렇게 강해?’
소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철궁의 시위를 겨우 반쯤 당기더니 도로 내려놓았다.
“정말이군요. 보통 힘 가지고는 시위를 당기는 것은 어림도 없겠어요.”
“크기가 여러 가지니 작은 철궁을 쓰시면 될 겁니다. 아니면 쇠뇌(석궁)도 있으니 그걸 쓰셔도 좋고요.”
“쇠뇌요? 그게 좋겠네요.”
소울은 양보해의 말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활을 제대로 쏘려면 오랜 시간 손가락에 피가 맺히도록 연습과 수련을 해야 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뛰고 달리면서 속사를 해서 적을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것은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나오는 얘기일 뿐이다.
일반 사람들이 그 정도의 경지에 들어서려면 밥만 먹고 활만 몇 년 동안 들고 다니면서 쏴대고 연습을 해도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에다 몬스터의 질긴 가죽을 뚫으려면 보통 활과 화살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지만 쇠뇌라면 다르다. 시위를 당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시위만 당겨놓으면 총처럼 가늠자로 겨냥해서 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명중시킬 수 있는 무기였다.
“어, 이건 줄이 3개나 되네요.”
“3연속 발사가 가능한 쇠뇌입니다.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져 아주 가볍습니다.”
“그렇군요.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정말로 이것으로 하시겠습니까?”
“네, 이게 마음에 드네요.”
양보해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쇠뇌의 고유넘버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는 소울을 단검을 모아놓은 곳으로 데리고 갔다.
대거(dagger)에서 쿠크리(kukri) 나이프까지 다양한 종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소울은 이번에도 양보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단검이야 뭐 보조무기니 자신이 쓰기 편한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몬스터와의 전투를 생각해보면 날의 길이가 좀 긴 게 유리할 것 같네요.”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소울은 그의 조언대로 M9 군용 대검보다 조금 더 날이 긴 대검을 하나 골랐다.
그렇게 무기를 고르고 나자 이번에는 방어구를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먼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사실 방어구라고 말하기에도 창피한 수준입니다. 그냥 군에서 쓰던 군복과 전투조끼 물감 좀 들이고 방탄복 재고 남은 것 전부 이쪽으로 돌린 것에 불과합니다. 나중에 사비를 들여 방어구는 따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아! 네.”
그의 말대로 방어구는 하나같이 허접하기 이를 때 없었다. 그러나 소울은 일단 공짜라는 생각에 그중에서 상태가 괜찮은 놈으로 전투조끼와 방탄복, 수통, 군화 등을 하나씩 골라서 챙겼다.
그렇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들은 전부 하나씩 고르자 군장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가 됐다.
“이거 너무 많은가요?”
“하하하, 아닙니다. 제가 이 배낭을 드릴 테니 여기다 담아가세요. 쇠뇌 가방만 손으로 들고 가시면 되겠네요.”
“이거 정말로 감사합니다.”
소울은 양보해의 도움을 받아 배낭 하나를 꽉 채우고는 뿌듯한 심정으로 능력자 지원센터를 빠져 나왔다.
‘앞으로 할 일이 많네. 쇠뇌도 직접 쏴봐야 하고, 대검을 쓰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하고 말이야. 열심히 수련을 해야겠다.’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다지며 1층으로 올라와 안내 데스크로 다가갔다.
“저 여기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연구센터가 있다고 하던데 몇 층이죠?”
“혹시 능력자 등급과 포메이션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몬스터 사냥법 연구나 능력자 능력개발과 훈련에 대한 효율성 연구 때문에 오셨어요.”
“네, 맞습니다.”
“승강기를 타시고 5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소울은 커다란 배낭과 쇠뇌 가방을 들고 승강기에 올라탔다. 승강기에는 여름 정장을 입은 여자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의 목에 걸린 능력자 등록증을 대번에 알아보고는 그를 향해 묘한 느낌의 시선을 주었다.
소울은 그녀들의 시선에서 어떤 갈망 같은 것을 느꼈다.
‘역시 남자는 능력이구나. F급 최하급 능력자인데도 저런 시선을 주니…….’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살짝 가슴이 뿌듯하기도 했다.
띵!
5층에서 승강기가 멈추자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여자들의 시선을 뿌리치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침 안내 데스크가 승강기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데스크 앞으로 걸어가 물어봤다.
“저, 여기가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연구센터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소울 능력자 되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능력자 등록증을 이곳에 대고 안으로 들어가시면 안내할 사람이 따로 나올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자신의 목에 걸린 능력자 등록증을 안내 데스크에 앞에 붙어 있는 투명한 판에 댔다. 그러자 안내 데스크 옆으로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는 흥분과 기대를 안고 걸어 들어갔다.
“어? 여긴 피트니스 센터 아냐?”
소울은 건물의 한 층 전체가 피트니스 센터처럼 온갖 종류의 운동기구로 가득한 것을 보고는 절로 긴장이 탁 풀렸다.
“어서 오세요. 이소울 능력자 되시죠?”
“네, 맞습니다.”
“저는 장갑산입니다.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네.”
키가 190cm도 넘고 온몸에 근육을 갑옷처럼 두른 청년 하나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짧은 머리에 뭔가 보이지 않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것을 보니 제대한지 얼마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말로만 듣던 특수부대 출신의 능력자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장갑산이 소울을 안내한 곳은 사무실이었다.
한쪽은 능력개발청에서 파견 나온 연구원들이 쓰고, 다른 한쪽은 능력자협회에서 쓰는지 뭔가 양쪽이 다르다는 것이 한눈에 구분이 될 정도였다.
“이리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뭐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닙니다.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원하던 바입니다.”
장갑산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 작품 후기 ============================
즐겁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