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4 제 11 장 - 기초공사 =========================================================================
소울은 어디 가서 소환사라고 말하기도 창피할 정도로 미미한 소환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 개미 똥만큼의 소환력을 가지고 있으니 자신도 반쪽은 소환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펠이나 탄탈라스의 삶을 통해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도 해보았다.
‘라펠의 삶과는 달리 탄탈라스의 삶은 어떻게 보면 참 밋밋하다고 할 수 있구나. 하지만 난 여기서 소울넷 포인트를 무려 10p나 잡아먹는 하급 영혼체험을 해야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탄탈라스가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한 초 간단 소환마법진은 꼭 배워야해.’
소울은 탄탈라스가 개발하고 최근에 업그레이드 한 소환마법진이 탐이 났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소환력이 조금밖에 없는 사람도 이 초 간단 소환마법진을 이용하면 최하급 정령이나 최하급 소환수를 쉽게 소환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울은 과감하게 여기서 승부수를 던지기로 했다.
그의 영혼이 또다시 탄탈라스의 기억의 창고에 접속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하고 업그레이드한 초 간단 소환마법진을 배우기 위해 정확한 시간을 조정했다.
‘소울넷 포인트를 10이나 잡아먹는 하급 영혼체험이다. 이번 한 번에 반드시 배우고 와야 한다.’
소울은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의욕을 불태웠다.
스팟!
‘아! 이게 하급 영혼체험이란 말인가?’
소울은 3D 영화를 감상하는 수준의 최하급 영혼체험과는 너무나도 다른 하급 영혼체험에 매료됐다. 확실히 급(class)이 달랐다.
그가 먹고 마시고 걷고 뛰는 모든 행동이 마치 자신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강렬한 현실감에 황홀할 정도로 기분이 고양된 소울은 어느 순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탄탈라스가 기존에 있던 알라모아나 왕국의 비전 소환술을 기초로 새로운 소환마법진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울은 탄탈라스가 그 자신의 연무장 대리석 바닥에 은을 가공하여 만든 소환펜을 이용해 소환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마치 본인의 손으로 그리듯 느끼고 있었다.
탄탈라스는 수십 개의 소화마법진을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했다.
그가 소환마법진을 새로 그릴 때마다 소울은 자신이 그리는 것처럼 정확하게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다. 새벽에 시작한 작업은 해가 지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집중력, 끈기, 집념, 정확도, 계산력……. 정말 탄탈라스는 엄청나구나.’
소울은 탄탈라스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탄탈라스는 해가 지고서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물 한잔 마시지 않고 하루 종일 정신을 집중해서 소환마법진을 그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울은 만약 자신이라면 하루 종일은커녕 한 시간도 넘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됐다.”
탄탈라스가 드디어 소환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놓은 상자에서 각종 보석을 꺼내 새로 개발하고 또 업그레이드를 반복한 소환마법진의 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소환력을 이용해 소환마법진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공명을 느낀 그는 보석의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소환마법진에 들어간 마법문자를 바꾸기도 했다.
“이건 너무 복잡해. 소환마법진은 소환사의 소환력의 사용을 최대한 줄여주고 반대로 소환마법진에 소환되는 대상에게는 최대한 소환력이 증폭되게 해야 한다. 간단한 것이 가장 강력한 소환진이 될 것이다.”
탄탈라스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개량하고 업그레이드 새로운 소환마법진의 손질을 계속했다.
한참을 소환마법진을 손질하고 여러 가지 보석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 그는 마침내 소환력이 모자라서 소환을 하지 못하는 최하급 소환사들에게 꿈과 희망이 되어 준 새로운 초 간단 소환마법진을 완성했다.
“바로 이거야.”
탄탈라스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소환마법진을 살펴봤다.
그의 몸에서 빠져 나간 미약한 소환력에 의해 소환마법진의 공명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아! 성공했구나.’
소울은 마치 자신이 만들기라도 한 것처럼 큰 성취감을 느꼈다.
그만큼 탄탈라스의 감정에 동화가 많이 된 것이다.
‘이 정도는 나도 충분히 그릴 수 있겠어.’
탄탈라스가 하루 종일 수백 개의 소환마법진을 그리는 바람에 그도 소환마법진을 그리는 데는 도통하게 됐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그가 그려야 하는 것은 처음의 복잡한 소환마법진이 아니라 탄탈라스가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고 업그레이드에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초 간단 소환마법진이었다.
하급 영혼체험의 시간이 다 됐는지 소울은 탄탈라스와 자신이 분리가 되고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다 됐구나.’
소울은 기뻐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탄탈라스의 얼굴을 끝으로 소울넷 영혼체험 인터페이스 앞으로 돌아왔다.
“휴우! 하급 영혼체험을 한번 해보고 나니까 다시는 최하급 영혼체험은 하고 싶지도 않네.”
인간의 마음의 간사함이 원래 그렀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3D 영화보다 훨씬 현실감을 주는 최하급 영혼체험에 감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하급 영혼체험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모양이다.
소울은 세이지가 접속을 했는지 확인해보고 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곧바로 드림하우스의 안방으로 돌아가 누웠다.
오늘은 탄탈라스에게 초 간단 소환마법진을 배운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눈이 감기자 곧 그의 숨소리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 * * * *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소울이에요.”
“그래. 잘 지내니?”
“네, 그럼요. 거긴 어때요? 별일 없지요?”
“별일이 있을 게 뭐가 있어. 넌 어떻게 좋은 직장이라도 잡았니?”
큰 아들 걱정하는 마음이 목소리에 절절이 묻어 나왔다.
소울은 미소를 지으며 약간 과장되게 말했다.
“네, 그럼요. 놀라지 마세요. 제가 이번에 능력자가 됐어요.”
“능력자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능력자 모르세요? TV 안보세요?”
“TV 볼 시간이 어디 있어?”
소울은 순간 당황했다. 능력자라는 것만 밝히면 금세 뛸 듯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TV자체를 시청하지 않으시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하여간 그런 게 있어요. 이번에 능력자 등록증도 나오고 해서 두 군데나 계약을 했거든요. 제가 선금 받은 돈 중에서 500만원 은행으로 지금 부쳤어요. 필요한데 쓰시고 소현이와 소망이에게 용돈이라도 보내주세요.”
“뭐야? 500만원? 너 혹시 무슨 나쁜 짓 한 건 아니지?”
소울은 이미 그런 소리를 할 줄 짐작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아버지 오시면 제가 능력자가 됐다고 말씀하세요. 그럼 무슨 말씀이신지 아실 거예요. 원래 능력자만 되도 지원금을 300만원 주거든요.”
“그래? 난 또 네가 못쓸 놈들하고 어울려서 나쁜 짓이라도 하는 줄 알았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언제 속썩여드린 적 있었어요?”
“아니지. 아니고말고. 우리 큰 아들같이 부모 속 안 썩이고 잘 큰 아들은 세상에 없을 거야.”
“아이 참, 부끄럽게 왜 그래요.”
“호호호, 사실인데 뭐.”
소울은 얼굴이 절로 붉어지고 뜨끈뜨끈 해졌다.
부모에게 자기 자식이 최고라는 말은 들었지만 막상 어머니가 직접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그동안 변변히 효도도 못해드린 것이 생각나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기어 들어가고 싶었다.
“엄마, 돈 아끼지 마시고 맛있는 것 좀 팍팍 사드시고 화장품도 사서 바르세요.”
“화장품은 무슨, 그런데 너 여긴 언제 오냐? 한번 와야지?”
“네, 저도 시간이 되면 가볼 생각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할 일이 있어서 당장 가지는 못해요. 죄송해요.”
“아니다. 아니야. 그런데 돈 생겼으면 너 필요한데 쓰지 돈을 왜 이렇게 많이 보내니?”
“아니에요. 저한테도 쓸 만큼 돈 많이 남았어요. 그리고 잘만 하면 앞으로 돈 걱정은 하지 않고 살날이 올지도 몰라요.”
“그래? 잘됐구나. 이제 돈 얘기는 그만하고, 너 언제 장가 갈 거냐?”
“네에? 뜬금없이 장가가라는 말이 여기서 왜 나와요?”
“내가 볼 때는 너 어리숙한 데가 많아서 야무진 처녀에게 장가를 보내지 않으면 내가 불안하다. 이곳에 참한 색시 몇 있는데 사진 좀 보내주랴?”
“아, 아니에요. 전 연애해서 결혼할거에요. 그러니까 제발 이상한 일 만들지 마세요. 알았죠?”
“흐응, 알았다. 그럼 좀 더 두고 보도록 하마.”
“네, 감사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그래. 내 아들 나도 우리 소울이 사랑한다. 밥 잘 먹고 다녀라. 항상 몸조심하고?”
“네, 그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들어가자.”
전화를 끊고 나자 소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버지도 보고 싶고 어머니도 보고 싶고 소현이와 소망이도 보고 싶었다.
정말 건강은 괜찮으신 건지? 쌍둥이 동생들은 대학교 잘 다니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당장 집으로 내려가 봐야 내가 할 일은 없어. 두메산골에서 농사를 지을 것도 아니고 심마니 한다고 산을 타고 다닐 것도 아니니, 능력자가 된 이상 능력자로 끝장을 봐야한다.’
소울은 주먹을 불끈 쥐고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부지런히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은행 잔고를 다시 확인해봤다.
800만원에 가까운 은행 잔고가 남아있었다.
뿌듯한 마음에 자연스럽게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소울의 화려한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야!’
그는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안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유리창을 통해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역시 여름은 은행이야.’
그는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밖은 지금 꽤 더웠기 때문이다.
역시 여름은 은행 안이 시원하고 쾌적했다.
은행경비의 부담 주는 눈초리만 이겨낸다면 하루 종일 이곳에서 놀고먹고 싶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더위를 식힌 소울은 아쉽지만 다음번에 많이 이용해주기로 하고 은행 문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엄습해왔다.
그냥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은 그는 버스를 잡아타고 강남대로를 따라 북상하다 교보타워 사거리가 보이자 내렸다.
사거리 모퉁이로 가자 언제 저렇게 빌딩이 높게 올라갔는지 모르지만 새로 올린 현대식의 웅장하고 높은 고층 빌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가?”
소울은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자신이 온 곳이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서울지부가 맞는 지 확인을 해보고 나자 그의 발걸음이 경쾌해졌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한글 정자체로 써져 있는 표지판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소울은 빌딩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갔다. 그는 주머니에서 능력자 등록증을 꺼내 목에 두르며 주위를 살폈다.
빌딩 출입구에는 곳곳에 보안검색대가 만들어져 무장을 한 경비원들이 철통같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소지품 검사를 위한 검색대와 문형 금속탐지기 등 공항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보안검색 장비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니 소울은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능력자는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소울의 목에 걸린 능력자 등록증을 확인한 경비원 한 명이 친절하게 그를 맨 끝에 있는 문형 금속탐지기로 안내했다.
소울은 소지품을 바구니에 담아 보안검색대에 넣고 문형 금속탐지기를 통과했다.
보안검색대 반대편에서 자신의 소지품을 찾은 그는 안내 데스크로 가서 단정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안내원에게 물었다.
“능력자 지원물품을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하죠?”
“지하1층으로 가시면 능력자 지원센터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안내원의 안내로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으로 내려갔다.
<능력자 지원센터>
큼지막하게 써져 있는 표지판을 확인한 소울은 능력자 지원센터 데스크로 가서 자신의 능력자 등록증을 내밀었다.
“능력자 지원물품을 수령하기 위해 왔습니다.”
“이소울 능력자님이시군요. 저쪽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가셔서 받으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능력자 등록증을 내밀기만 했는데도 벌써 스캔을 했는지 능력자 지원센터 데스크의 직원들은 이미 소울의 이름을 알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 작품 후기 ============================
어제 이스탄불은 6시간 이상 정전이 되었습니다. 저녁 늦게 불이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할일을 하나도 못봤네요. 오늘은 정전이 안되기를 기원합니다. ㅠㅠ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시원한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