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2 제 11 장 - 기초공사 =========================================================================
지하자원도 풍부하지 않고 석유도 안 나오는 이 좁은 한반도 반쪽 땅덩어리에 5천만이나 되는 인구가 몰려 살고 있었다. 그것도 세계의 강대국 순위 1번에서 5위 사이에 있는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이제 이 좁은 땅덩어리에 몬스터까지 나타나 설쳐대고 있었으니 앞으로 한민족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능력자라도 많이 나와야 한다. 아니 능력자들이 많이 나와도 시스템이 받혀주지 않으면 결코 성장할 수가 없다.
그런데 몬스터가 나타난 지 40일도 채 되지 않아 벌써 길드시스템과 파티시스템이 도입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몇 가지 유명한 철칙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강력한 몬스터라고 해도 여럿이서 협력하여 공격을 하다보면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불멸의 진리를 굳건히 받쳐주는 토대가 바로 길드와 파티 시스템이다.
소울은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가 꼭 우리나라 정부나 단체가 아닌 것 같이 느껴졌다. 부정부패와 무능으로 대변되는 현실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이런 생각은 소울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몬스터 사태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 그리고 군(軍)의 모습에 국민들은 지금 심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렇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혁혁한 활약을 하고 있는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 그리고 군(軍)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기도 했다.
‘나쁘지 않아. 이렇게만 간다면 대한민국에도 희망이 있어. 아니 정말 능력자 강국이 되어 큰소리를 칠 날이 올 수도 있어. 다른 것은 몰라도 제발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 미꾸라지 새끼들만 끼어들지 마라.’
소울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자신의 작은 소망을 외쳤다.
“현재 능력자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10개의 길드에서는 능력자의 등급과 종류에 상관없이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능력자는 무조건 길드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길드에 들어가시던지 그건 본인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길드에 가입하는 조건이 점점 까다로워질 겁니다.”
“그럼 탈퇴는 어떻습니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탈퇴가 가능합니까?”
“당연히 그래야지요. 가입과 탈퇴는 그 어떤 조건이나 압박도 없이 능력자협회가 규정한 길드 운영규정에 따라 자유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이곳에서 당장 결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이 좋은 기회는 3달간만 유효합니다. 3달 뒤에는 전(全) 길드에서 자유롭게 길드가입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규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소울은 천명훈의 말을 100% 이해했다. 아니 1000% 알아들었다.
쉽게 말해 지금 소울은 초심자의 행운에 해당하는 좋은 기회 속에 들어와 있었다.
비록 그것이 3개월의 짧은 행운의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원하는 길드를 선택해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좋은 기회야. 3개월 안에 최선을 다해 내 능력을 키워서 내가 원하는 길드에 들어가야겠다.’
소울은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길드 관련 서류 다음에는 능력자들에게 지원하는 각종 지원책과 의뢰서입니다.”
“의뢰서요?”
“네, 그렇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연구기관들이 몬스터에 대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도 그들과의 경쟁에서 언제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것은 모두 국내의 연구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구해달라는 의뢰서입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금 같은 시점에는 누가 먼저, 몬스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해나가느냐가 아주 중요했다.
마석을 이용한 발전(發電) 같은 아주 간단하고도 기초적인 발견만으로도 이미 떼돈을 번 사람과 연구기관이 존재했다.
몬스터 가죽을 이용해 방탄복을 만들면 기존의 방탄복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뛰어난 방탄, 방검(防劍) 성능을 지닌 방어구를 만들 수 있다. 벌써부터 각국의 특수부대에 몬스터 가죽을 특수처리해서 만든 방어구가 보급되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었다.
이렇듯 몬스터는 인류에게 양면의 날을 가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지 빨리 알아내고 빨리 만드는 놈이 선점의 효과를 톡톡하게 누릴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져 가고 있었다.
소울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능력개발청에서 발견한 비슷한 서류를 하나 발견해냈다.
‘능력자 능력개발과 훈련에 대한 효율성 연구?’
소울은 빠르게 조건을 읽어보고 바로 서류를 챙겼다. 이후에는 그 어떤 제안서나 서류도 그의 마음에 들지 못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군가 체계적으로 나를 훈련시켜 신체능력을 극대화시켜주고 몬스터를 사냥할 전투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하루 6시간만 받으면 되니 이건 무조건 잡아야해.’
소울은 백인천과 천명훈을 쳐다보며 각각 서류 한 장씩을 손에 잡고 말했다.
“저는 이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호오, 이소울 능력자는 취향이 좀 색다르시네요. 하지만 뭐 좋습니다. 능력자 등급과 포메이션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몬스터 사냥법 연구는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연구이니 지원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죠. 당장 계약하시겠습니까?”
“계약하겠습니다. 계약금으로 1달 치를 선금으로 준다고 했으니 계약을 하고 나면 바로 제 은행 구좌에 입금을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5백만 원을 바로 입금시켜드리지요.”
소울은 먼저 백인천과 능력개발청에서 진행하는 ‘능력자 등급과 포메이션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몬스터 사냥법 연구’에 관한 3개월 단기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를 확인한 백인천은 청년을 불러서 입금을 시키라고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곧바로 컴퓨터를 만지더니 백인천에게 소리쳤다.
“입금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백인천은 그를 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고는 소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입금 확인해보세요.”
“네.”
소울은 자신의 거래 은행에서 5백만 원이 입금되었다고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온 것을 보고는 곧바로 해당 은행의 어플을 열어 잔고를 확인했다.
소울의 입 꼬리가 절로 위로 올라갔다.
아까만 해도 은행 잔고는 0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8백만 원이었다.
능력자 지원금 3백만 원과 능력자 등급과 포메이션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몬스터 사냥법 연구 지원 계약금 5백만 원이 거의 동시에 은행으로 입금이 된 것이었다.
소울은 지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여기 능력자 등록증이 나왔네요.”
“감사합니다.”
천명훈이 청년에게 소울의 능력자 등록증을 받아 그에게 건네줬다.
소울은 능력자 등록증을 손에 쥐고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있어야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홈페이지에 접속이 가능해집니다. 각종 능력자 지원도 이걸로 받을 수 있고요.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시고 혹시라도 잃어버리시면 바로 능력자협회로 연락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직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다.
“능력자 능력개발과 훈련에 대한 효율성 연구에 지원하시겠습니까?”
“네.”
“그럼 계약하실까요?”
“그러지요.”
천명훈은 소울이 ‘능력자 능력개발과 훈련에 대한 효율성 연구’에 지원하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자 곧바로 청년에게 입금을 하라고 지시했다.
“이거 가져가고 바로 입금해줘.”
“네, 지부장님.”
청년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그는 곧바로 인터넷을 이용해 소울에게 계약금을 입금했다.
“입금이 끝났습니다.”
“고마워.”
천명훈은 청년에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소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확인해보시죠?”
하지만 이미 소울은 확인 중이었다. 소울은 은행 어플을 통해 또다시 5백만 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은행 잔고가 1300만 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아! 들어왔네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이런 연구가 아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지원자가 없어서 고민이 됐는데 이소울 능력자 덕분에 저희가 한시름 놓았습니다.”
백인천과 천명훈은 밝은 웃음을 보여줬다.
“그럼 계약서에 나온 데로 빠른 시일 내에 지정한 장소로 가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참, 길드 가입은 당장 안하실 겁니까?”
“네,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급하게 결정할 이유는 없으니 충분히 생각해서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능력자협회 서울지부에는 꼭 한번 들려주세요. 능력자들에게 지급하는 기본 장비들을 무상으로 지급하니 받아가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러세요. 다시 한 번 능력자가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백인천과 천명훈은 차례로 그에게 악수를 하며 축하를 했다.
소울은 그들의 축하인사에 잠시 마음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기분이 되었다.
그때였다.
“지부장님, D급이 떴습니다.”
“뭐야? 정말이야?”
청년이 갑자기 놀란 표정을 하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백인천과 천명훈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소울이 나왔던 문 위쪽을 봤다.
거기에는 모니터가 하나 붙어 있었고 알파벳으로 선명하게 ‘D’라고 쓰여 있었다.
“대박이다. 꼭 잡아야겠어.”
“무슨 소리를 하고 있습니까? 이런 능력자야 말로 길드에 들어가서 몬스터를 잡아야지요?”
“왜 이러세요? 능력개발청에 들어온 능력자는 몬스터를 안 잡습니까? 나랏일도 하고 몬스터도 잡고 그러는 거지?”
백인천과 천명훈은 소울을 쳐다보지도 않고 문 앞으로 가서 섰다.
문이 열리고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잘 생긴 청년 하나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죽었던 갑부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반가워했다.
“어서 오세요. 반가워요. 당신은 이 나라의 보배입니다.”
“능력자가 이렇게 잘 생기기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소울은 그들이 D급 능력자에게 온갖 칭찬과 아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급격히 작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탈칵!
소울은 결국 밖으로 나가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리고 조용히 그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뒤통수를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청년의 모습이 문틈으로 살짝 소울의 시야에 걸렸다.
‘빌어먹을…….’
소울은 문을 꼭 닫으면서 절로 나오는 욕을 속으로 삼켜야했다.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은 금방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신의 주제파악이 오토매틱으로 되었다.
터벅터벅 걸어서 병원 밖으로 나오자 박은영과 조은혜가 그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능력자가 된 것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조은혜의 말에 소울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울 씨, 축하해요.”
“네, 고마워요.”
소울은 아까와는 달리 그들의 축하인사가 별로 기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가버릴 수는 없었다.
“식사 안하셨으면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어요?”
“아니에요. 전 근무 중이라서 다시 들어가야 해요. 대신 우리 은영이 맛있는 것 사줘요.”
“아! 네.”
조은혜는 미소를 지으면서 손만 한번 흔들고 병원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남은 소울과 박은영은 어색한 아우라를 푹푹 풍기면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박은영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아니에요.”
“피곤하시면 그냥 집에 들어가실래요?”
“네? 아니에요. 우리 같이 밥 먹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
소울은 박은영의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박은영이 도와준 것들을 생각하면 그냥 이대로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배도 고프기도 했다.
은행에 1300만 원이나 있으니 밥 한 끼 정도는 자신이 사야 당연할 것이다.
그는 박은영과 함께 근처에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여기 괜찮으세요?”
“네, 좋아요.”
소울이 그녀에게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지금 박은영은 소울이 아까 자신에게 ‘우리’라고 한 말에 감동을 받아 뭐를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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