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제 11 장 - 기초공사 =========================================================================
검사실 안에는 기계를 조작하는 기사 한 명과 간호사 한 명, 그리고 능력자 테스트를 받으러 온 청년 한 명이 서있었다.
“수진아! 이번 것만 하고 끊어. 잠깐 기계 좀 살펴보자.”
“네, 알았어요. 언니.”
조은혜는 간호사에게 살짝 눈짓을 지으며 말하더니 기계를 조작하는 기사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러자 기사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녀를 보고 웃었다.
둘 사이에 뭔가 사전에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두 손을 수정체에 대시고, 살짝 눈을 감고,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주세요.”
“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간호사의 말에 따라 살짝 긴장한 안경 쓴 청년 하나가 엉거주춤 서서 수정체에 두 손을 대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여덟, 아홉, 열!”
“네, 다 됐어요. 왼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벌써 끝났나요?”
“네, 왼쪽으로 가주세요.”
“결과는 어떻게 됐죠?”
안경 쓴 청년은 무척이나 자신의 결과가 궁금했는지 나가달라는 간호사의 말에도 꿈쩍을 안했다. 하지만 수진이라는 이름의 간호사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웃으면서 손짓을 했다.
“결과를 알고 싶으시면 왼쪽으로 나가시면 되요. 거기에서 검사결과를 알려줄 거예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안경 쓴 청년은 서둘러 왼쪽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수진은 안됐다는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곧바로 인상을 펴고 웃으면서 소울을 돌아봤다.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것을 보니 수진이란 간호사도 보통 불여우가 아닌 것 같았다.
“방금 어떻게 하는 지 들으셨죠?”
“네.”
“똑같이 하시면 돼요. 두 손을 수정체에 대시고, 살짝 눈을 감고, 하나에서 열까지 세어주세요.”
“네.”
소울은 세이지에게 이미 자신이 능력자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살짝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수정체에 두 손을 대고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숫자를 다 세고 나자 소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간에 뭔가 찌릿한 느낌이 한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축하합니다. 오른쪽으로 가세요.”
“네?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요?”
“네, 능력자는 오른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
이번에는 능력자 테스터를 다루는 기사가 직접 말했다.
그제야 소울은 왼쪽으로 가면 일반인, 오른쪽으로 가면 능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 축하해요. 그럼 들어갔다가 나오세요. 저는 은영이 불러서 밖에서 기다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소울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쪽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밖이라고 생각한 곳은 밖이 아니라 또 다른 방이었다.
널찍한 방에 편안해 보이는 소파가 깔려 있고, 한 명의 청년과 두 명의 중년인이 각기 다른 복장을 하고 책상에 앉아 있다가 소울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
“능력자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소울 씨 본인 맞으시죠?”
“네, 제가 이소울입니다.”
“신분증을 잠깐 보여주시겠어요.”
“네.”
중년인 한 명이 그에게 신분증을 받아 청년에게 건네주었다. 청년은 소울의 신분증을 가지고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뭔가를 확인해보고 있었다.
혹시 범죄자가 아닌지 경찰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를 해보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소울에게 깍듯하게 대했다.
연배가 자신보다 높은 두 중년인이 저자세로 나오자 소울은 몸 둘 바를 몰랐지만 표정을 흐트러트리지는 않았다.
소울이 소파에 편안하게 앉자 두 사람도 그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저는 능력개발청에서 나온 백인천 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에서 나온 천명훈 이라고 합니다.”
백인천과 천명훈은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그의 앞에 명함을 내밀었다.
소울은 그들의 명함을 살펴봤다.
<능력개발청 인재교육팀장 백인천 과장>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지부장 천명훈>
명함을 살펴보니 둘 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명은 능력개발청의 과장이었고 다른 한명은 능력자협회 서울지부 지부장이었다.
정부조직과 개인단체를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으니 어느 쪽이 꼭 높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일단 무게 중심은 아무래도 능력자협회 서울지부의 지부장인 천명훈에게 기울어있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대화의 시작은 백인천 과장이었다.
“능력자가 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그냥 담담합니다. 사실 정말 능력자가 될 줄은 몰랐거든요.”
소울은 일단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그러자 백인천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능력자가 되면 어떻게 할지 아직 생각을 못하셨군요?”
“이제부터 생각을 해봐야죠.”
“그럼 일단 저희 능력개발청으로 오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능력개발청이요?”
“네, 저희도 능력자를 스카우트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권력을 행사하다보면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거든요.”
“능력자는 몬스터를 사냥해서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얻고 그걸 팔아서 돈을 버는 일은 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능력자라면 당연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돈도 버셔야지요. 하지만 능력자라고 해서 꼭 몬스터만 잡으라는 법이 있습니까?”
“아! 그것도 그렇군요.”
소울은 일단 백인천의 말에 동의했다.
능력자라고 몬스터만 사냥해야 한다는 법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좋은 말이야. 그리고 내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말이기도 하고……. 능력자라고 해서 꼭 몬스터만 사냥할 필요는 없다니 내가 돈을 버는 방법이 좀 더 다양해질 수 있겠군.’
백인천은 소울의 마음속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을 깨닫지 못하고 소울이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하자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앞에 미리 준비한 서류를 보여줬다.
“이건 능력개발청에서 지원하고 있는 능력자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또, 이것은 저희 능력개발청을 도와 일을 하게 되면 작성해야 하는 고용계약서입니다.”
“아!”
소울은 백인천이 내미는 서류를 꼼꼼히 살펴봤다.
‘일단 정부에서, 아니 능력개발청에서 능력자들에게 지원하는 능력자 지원금 3백만 원은 조건 없이 받을 수 있는 돈이구나. 됐어! 일단 이것만 있으면 최소한 3달은 버틸 수 있겠어.’
능력자 테스트를 받고 능력자인 것이 확인이 되면 능력자 등록증이 나온다. 능력자 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는 당연히 능력자 지원금 3백만 원을 능력개발청을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
소울이 능력자 테스트를 빨리 받으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능력자 지원금 때문이었다.
당장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 밖에 없는 상황에서 3백만 원이라는 돈은 정말 구원의 단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아직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아니지만 일단 능력자 지원금이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조금은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흐음, 특별지원팀, 검찰지원팀, 경찰지원팀, 긴급지원팀…… 뭔 놈의 지원팀이 이렇게 많아? 호오! 하나같이 빵빵한 연봉에 각종 장비 무상지원,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특채를 미끼로 능력자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군.’
소울이 만약 나름 계획이 없었다면 당장 이 미끼를 덥석 물었을 것이다. 높은 연봉과 공무원이라는 직위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주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각종 장비의 무상지원이란 말은 보기만 해도 혹할 정도로 유혹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특별한 인생을 살펴본 소울은 조금은 정신적으로 성장을 했고 시야가 넓어졌다. 또한 자신의 주관도 뚜렷해지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는 백인천이 내민 서류를 한 장씩 살펴보고 옆으로 내려놓았다.
백인천은 소울이 자신이 준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며 한 장씩 옆으로 내려놓자 입에 침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소울은 마치 시간이 자신의 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긋하게 서류를 살펴보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겨댔다.
‘능력개발청이 제안한 일자리는 다 좋은데 너무 묶여 있는 시간이 오래 걸려. 마땅한 일자리만 있으면 공무원들과 이런 식으로 끈을 하나 이어 놓는 것도 좋을 텐데…….’
그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지막 서류를 들었다.
‘어 이건?’
그때 소울의 눈이 빛났다. 그는 그 서류를 찬찬히 읽어보고는 자신의 앞쪽에 내려놓았다.
‘능력자 등급과 포메이션 변화에 따른 효과적인 몬스터 사냥법 연구라……. 이건 내가 해야겠다. 사냥한 몬스터에서 나온 마석과 몬스터 부산물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의 50%를 주고, 계약 기간도 3개월이니 해볼 만하겠어. 무엇보다도 하루 8시간만 채우면 되니 꿀 보직이야.’
백인천은 소울이 마지막 서류를 자신 앞에 놓아두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어떤 능력자도 마지막 서류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능력자협회에서는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렇게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천명훈 서울지부장은 미소를 지으며 미리 준비한 두툼한 서류를 보여줬다.
“우와,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사실 여기에 있는 자료나 제안서들은 모두 저희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홈페이지에 들어오시면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중에 서울지부를 찾아 오셔서 같이 의논을 해도 되고요.”
“아! 그렇군요.”
확실히 백인천보다는 천명훈이 여유가 있었다.
“일단 능력자 등록증 발급을 위해 이걸 작성해주세요.”
“네.”
소울은 두말할 것 없이 ‘능력자 등록증 발급신청서’를 작성해서 넘겨주었다.
자신의 신분증을 가져갔던 청년이 테이블로 와서 그의 능력자 등록증 발급신청서를 받고는 천명훈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네주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천명훈은 백인천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말했다.
“축하합니다. F급 소환계 능력자시네요.”
“아! 제 등급이 벌써 나온 겁니까?”
“그렇습니다.”
“F급이면 혹시 등급 중에서 최하급인가요?”
“네, 하지만 소환계는 흔치 않은 능력이니 실망할 일은 아니지요.”
“아!”
하지만 소울은 크게 실망했다. 세이지가 해준 말과 똑 같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소환계 능력자면 뭐하냐고 소환력이 쥐꼬리만큼도 없는데……. 하지만 아직 실망할 단계는 아니야. 당장은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에서 내가 소환수를 소환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어. 이럴 때 내가 챙길 수 있는 것은 미리 다 챙겨야해.’
그는 급히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틀어쥐었다.
몸을 바로 세우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천명후가 내민 서류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의 귀로 천명후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재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에서는 세계 최초로 길드 시스템을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셨다면 아마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길드는 일종의 몬스터를 사냥하는 능력자들의 연합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세계 최초라는 말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었다. 그렇지만 길드 시스템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은 결코 능력자들에게 나쁜 일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나 길드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과 조건이 따릅니다. 길드는 능력자협회가 제정한 책임과 의무를 준수해야 합니다.”
“그럼 이 서류들은 바로 길드 가입신청서로군요.”
“그렇습니다. 지금은 초창기라서 10개 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아마 곧 수십, 수백 개로 늘어날 겁니다.”
“그럼 파티 사냥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당연히 길드에 가입 유무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파티사냥 시스템을 통해 모든 능력자들은 파티사냥이 가능합니다.”
소울은 눈이 번쩍 뜨였다.
대한민국이 괜히 온라인 게임강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e스포츠 관련 채널을 통해 게임방송을 한두 번 정도 시청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또한, 피시방에서 온라인게임 한다고 밤을 하얗게 새워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었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를 이끌어가는 자들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히 온라인 게임에 익숙한 게임세대가 분명했다.
‘길드에 파티사냥 시스템 도입이라……. 잘하면 게임강국에 이어 능력자 강국도 될 수 있겠는데?’
소울은 천명훈의 말을 듣고 무척 고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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