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8 제 10 장 - 능력 확인 =========================================================================
하지만 택시를 타거나 돌발적인 변수가 생기면 돈이 없어서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빨래가 끝나자 소울은 자신의 옷을 모두 옥상 위에 있는 빨래줄 위에 잘 널어놓았다. 커다란 수건 하나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밖으로 나와 빨래를 널고 있어서 절로 낯이 붉어졌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누군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 쪽 팔려!”
그래도 창피하다는 생각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옥탑 방 안으로 들어와 에어컨을 켜고 TV를 켰다. 케이블까지 공짜로 연결해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 채널은 잘나왔다.
뉴스를 틀어보니 온 세상은 차원의 균열 속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다.
국내 방송국의 뉴스는 대부분 서울 강남을 강타한 고블린들의 습격과 그들을 격퇴하기 시작한 능력자들에 대한 기사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해외뉴스도 대동소이했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서방 선진국들은 몬스터가 나오는 차원의 균열에 대한 연구와 탐험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복과 소멸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해외뉴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몬스터 사체의 활용법과 몬스터의 사체에서 나오는 결정체인 마석에 대한 연구결과였다.
고블린과 오크 같은 소형 몬스터의 가죽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기존의 군대가 보유하고 있는 방탄복보다 훨씬 가볍고 강력한 방탄 능력을 가진 방탄복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군수업체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고 있었다.
현재는 방수, 방검 같은 능력과 마법저항 같은 특수능력을 추가시키는데 기술이 집중되고 있었듯 했다.
몬스터의 사체는 처음에는 한데 모아서 태워버렸지만 가죽의 효용성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뼈와 장기, 힘줄과 근육 등 모든 신체 부분까지 매일 새로운 활용도가 밝혀져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어갔다.
바야흐로 몬스터 부산물 가공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의 태동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몬스터 부산물 가공업? 저건 앞으로 눈여겨봐야겠는데…….’
소울은 앞으로 몬스터를 잡으면 털끝하나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나와서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토론하는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가지 고급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마석을 이용한 발전(發電)의 상용화도 초읽기에 들어갔고, 미국을 비롯한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강대국에서는 마석을 이용한 새로운 무기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렇게 몬스터의 활용도가 높아지자 몬스터 사체 가격이 급등했고 정부와 군(軍), 능력자 사이에 몬스터 사체와 마석에 대한 소유권 분쟁도 날이 가면 갈수록 심화되었다.
각국의 능력자협회는 이런 여러 가지 필요에 따라 국제회의를 개최하여 세계 능력자협회를 빠르게 조직했다.
세계 능력자협회는 제일 먼저 능력자 테스터를 통해 능력자 등급을 정하고 각국의 능력자협회에 표준 등급표를 배포했다.
이 등급표로 인해 세계의 능력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또한, 결정도에 따른 마석의 표준 등급과 가격표도 만들었다. 각 몬스터의 사체에 대한 표준 등급과 가격표도 연이어 발표했다.
이로 인해 마석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또 하나의 화폐 같은 역할로 변해갈 것이고 마석의 해외 판매와 각국의 몬스터 사체 무역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마석과 몬스터의 사체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이 빈번해져 인명 피해가 급증했다. 또한, 마석을 노리고 능력자를 습격하는 일도 생겨서 각국의 능력자협회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능력자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능력자를 협박하는 일도 일어나기 시작했고, 범죄에 능력자를 악용하는 케이스도 생겨서 공권력 행사에 능력자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일도 잦아졌다.
‘초능력이 있기 전에도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빼앗았는데 이제 공권력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능력자들이 모두 착하게 살 거라는 생각은 난센스에 불과하다.’
소울은 이런 현상을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로 인해 능력자들에 대한 규제나 감시가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가 걱정하는 일은 곧 뒤이어 나오는 소식에 의해 저절로 밝혀졌다.
이렇게 능력자와 몬스터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가지 분쟁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자 결국 국제 연합과 세계 능력자협회는 긴급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 능력자의 생명과 권익을 보호하는 특별법과 능력자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특별법이 동시에 만들어졌다. 또한, 몬스터 사냥은 반드시 각국의 정부에 등록된 사냥 팀과 각국의 능력자협회가 능력자인 것을 확인해서 발급한 능력자 등록증을 가진 자들만 가능한 국제규약도 만들어 공표했다.
국제규약을 살펴보면 능력자와 사냥 팀에 의해 사냥된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은 반드시 자국의 능력자협회에 우선 판매를 해야 하는 규정과 능력자협회는 자국의 정부에 우선 보급할 수 있는 의무와 권리를 동시에 부여하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능력자와 관련된 특별법과 국제규약이 차례로 공표되자 대한민국도 세계의 추세에 맞춰 발 빠르게 능력개발청을 발족하여 활발한 활동에 들어갔다.
능력개발청은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갖추고 전국에 창궐하는 몬스터를 전력을 다해 처리해 나갔다. 이런 능력개발청의 신속한 움직임은 시민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켰고 능력개발청의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이끌어 나가는데 큰 힘이 실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대 몬스터 퇴치작전의 첨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 첫 번째가 몬스터의 퇴치라면 두 번째는 안정적인 능력자의 수급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능력자협회 본부와 지부 그리고 협회가 지정한 종합병원에서 능력자 테스트를 받아 자신이 능력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곧 한반도는 능력자 테스트 열풍으로 인해 나라전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로 인해 대한민국 능력자협회 본부와 지부 그리고 종합병원은 북새통을 이뤘고 이는 곧 종합병원의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로 번졌다.
대한민국 능력자협회는 긴급 기자회견을 가져 현재의 정책을 약간 바꿔 당장 몬스터 퇴치에 투입이 가능한 만 18세에서 40세까지의 성인 남녀부터 우선적으로 능력자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이런 긴급조치로 종합병원이 마비되는 사태는 간신히 해결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만 18세에서 40세까지의 성인 남녀의 인구는 대략 1천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이들에게 능력자 테스트를 할 만한 능력자 테스터의 숫자도 아직은 충분하지 않았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대한민국 능력자협회는 통계청 자료를 통해 만 18세에서 40세까지의 성인 남녀 1천여만 명 가운데 273만 명에 달하는 대학교 학령인구를 1차 능력자 테스트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중에는 당장 체계적으로 빠른 조사가 가능한 63만 명의 대한민국 국군 장병과 전국의 대학생들이 포함되었다.
1차 능력자 테스트가 시작되자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의 본부와 지부 그리고 지정병원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아! 능력자 테스트를 받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 사람들이 밤을 새며 줄을 서 있네? 알고 보니 박은영 간호사가 내게 크게 힘을 써준 셈이구나.’
소울은 뉴스를 보고 나서야 오늘 저녁에 자신이 받게 될 능력자 테스트가 박은영이 자신에게 베푼 특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 은혜는 꼭 나중에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몬스터 사태가 커질수록 능력자협회에 대한 가치도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특히 최전방에서 몬스터들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는 능력자들은 이미 어지간한 연예인들도 따라올 수 없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강력한 무력과 신비한 능력,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의 이미지로 인해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에 소속된 상위 랭커들은 이미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무기로 광고시장의 신흥 블루칩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각국의 능력자협회는 이러한 능력자들의 인기와 능력을 발판으로 명성과 실익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 나갔다.
사냥 팀(외국에서는 Hunter Team)과 능력자들이 사냥한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구매하여 정부와 각 연구기관, 기업들에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수익을 얻기 시작했다.
또한, 능력개발청도 능력자협회와 각 연구기관, 기업들이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사고파는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세금으로 인해 자체적으로 많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각국은 이제 능력개발청과 능력자협회라는 쌍두마차에 국운을 건채 빠른 속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전 세계적인 불황과 경기침체가 차원의 균열로 인해 등장한 몬스터라는 존재로 인해 흔들리고 오히려 경기가 부양되고 경제가 살아나는 기현상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몬스터의 사체와 마석을 단순히 구입, 가공, 판매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받아들이고, 몬스터 부산물 가공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데 힘써야 한다고 외쳤다.
시나브로 세계는 몬스터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대적(大敵)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자원으로 보기 시작했다.
“드르렁 드르렁 드르렁…….”
소울의 코고는 소리가 옥탑 방에서 메아리쳤다.
뉴스 프로그램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그는 뉴스에서 나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속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 * * * *
침대에서 눈을 뜬 소울은 이미 자신이 드림하우스에 와 있는 것을 인식했다.
가운데 중지를 뒤로 꺾어 현실인지 확인(reality check)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은 그는 제일 먼저 소울넷의 인터페이스를 열어 세이지가 있는지 확인했다.
“들어왔구나.”
그는 미소를 지었다. 세이지가 비록 자신을 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현재 자신에게는 그만한 위치에 올라선 고급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세이지의 이름을 눌러 여러 가지 아이콘이 뜨자 대화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선택해서 전달했다.
소울넷의 인터페이스가 점차 눈에 익자 소울은 소울넷을 사용하는 것이 많이 익숙해졌다. 아직도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울넷 포인트를 사용할 정도는 됐다.
화아악!
그때, 소울넷 인터페이스의 커다란 눈처럼 생긴 창문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멘토이자 아트란의 위저드 마스터 세이지가 당신과 대화를 원합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소울은 즉시 수락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눈처럼 생긴 투명한 창문 건너편에 기하학적인 무늬와 도형이 그려진 새하얀 로브를 입고 고깔모자를 쓴 백발의 세이지의 모습이 서서히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하하하, 그동안 잘 지냈는가?”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세이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나도 자네 덕분에 재미있고 흥미 있는 시간을 보냈네.”
일단 소울과 세이지는 서로의 마음을 숨긴 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오늘도 제 기억의 창고에 접속을 하셨더군요.”
“자네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네.”
“그렇군요. 혹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제게 물어보세요. 성의껏 대답하겠습니다.”
“고맙네. 자네의 호의를 잊지 않겠네. 그런데 왜 나를 보자고 메시지를 보냈는가?”
소울은 세이지의 마지막 말에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사실은 제가 누구에게 저의 처한 상황을 의논해야 할지 몰라서요.”
“자네의 상황이라면 무엇을 말하는 거지? 돈이 없어서 비루하게 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몬스터로부터 살아남을 능력이 없어서 고민이 된다는 건가?”
소울은 속으로 세이지를 마구 욕했다.
‘아니 저 빌어먹을 노인네가 왜 갑자기 남의 아픈 곳을 푹푹 쑤시고 있지?’
하지만 소울은 절대 겉으로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았다. 그냥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 숨을 내쉬며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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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8-2-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