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제 10 장 - 능력 확인 =========================================================================
휠체어는 이등병 하나를 꽤서 1층으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등병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소울은 자신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국정현이 탄 휠체어를 밀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길에 박은영은 몇 번이나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참아야 했다. 그것은 소울이나 국정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사람과 몬스터가 갈가리 찢겨 죽은 사체를 목격한 그들은 가급적이면 땅만 보고 움직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았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소울은 큰길까지 휠체어를 낑낑대며 밀고나가 택시를 잡으려고 했지만 택시가 없어 역삼로와 논현로가 만나는 구역삼세무서 사거리까지 나와서야 간신히 택시를 한 대 잡을 수 있었다.
“서초동으로 가 주세요.”
택시를 타고나자 소울와 국정현 그리고 박은영은 그만 맥이 탁 풀리는 것만 같았다.
“박은영 간호사는 집이 어디에요?”
“밖에 나와서도 간호사 타령이세요?”
“네에? 아니 그럼 뭐라고 불러요?”
“제 이름 부르면 되잖아요?”
소울은 박은영의 성화에 못 이겨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네, 알겠습니다. 은영 씨는 어디 살아요?”
“방배동에서 살아요.”
“혼자 자취하시는 거예요?”
“그런 셈이죠.”
박은영은 살짝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소울은 그녀에게도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는가 보다 하고 모른 척 넘어갔다.
라디오를 통해 나오는 뉴스를 들어보자 구룡산과 대모산을 묶어서 몬스터가 나오는 통제구역으로 설정하고 대 몬스터 방어벽을 세우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10m 가 넘는 콘크리트 방벽을 저 넓은 공간에 세우려면 무지하게 돈도 많이 들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수도 서울, 특히 강남을 지키려면 당장 이런 방법이 제일 효율적이라는 능력자들의 조언에 정부와 서울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은영 씨, 혹시 능력자 테스트 어디서 하는지 알아요?”
“아, 그거 저희 병원에서 하려고 했었는데, 능력자 테스트 받아보시려고요?”
“네.”
“하긴 소울 씨가 능력자일수도 있겠네요. 소울 씨는 일반인과는 다른 놀라운 회복능력이 있으니 말이에요.”
박은영은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능력자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그녀는 왜 낯빛이 어두워지는지 소울은 알 수 없었다.
“은영 씨, 한번 알아봐줄 수 있어요?”
“네, 제가 알아볼게요. 다른 병원의 간호사인 동기들에게 물어보면 대한민국 능력자협회에서 지정한 병원이 어딘지 알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박은영은 소울의 고맙다는 말에 금세 얼굴빛이 밝아지더니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치기 시작했다.
소울은 택시의 창문을 통해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이상한 강남의 대로를 보며 잔뜩 위화감을 느꼈다.
“찾았어요. 서초동에 있는 대일병원에 능력자 테스터가 들어왔다고 하네요.”
“그래요? 어떻게 가면 되요?”
“설마 지금 당장 가시려는 것은 아니죠?”
“가능하다면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데요.”
“잠시 만요. 한번 시간을 알아볼게요.”
박은영은 소울의 말에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문자를 날렸다.
잠시 후, 박은영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오늘 저녁 6시에 가능하다고 해요. 물론 제가 같이 가야하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요.”
“같이 가야한다고요?”
“네, 요새 능력자 테스트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종합병원 마다 줄을 서고 있어요. 예약을 해도 1달 안에는 찾기 힘들 거예요. 다만 강남 세븐 종합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인 제가 가면 오늘 저녁에 특별히 능력자 테스트를 해준다고 해요.”
“그럼 같이 가 봐요.”
“고마워요.”
“아니 은영씨가 고마울 것이 뭐가 있어요? 제가 고맙지요.”
소울은 웃으면서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박은영은 또다시 얼굴을 붉혔다.
그때 국정현이 택시기사에게 이리저리 가라고 말하다가 참견을 했다.
“아니 둘이 연애 하냐? 뭐가 그렇게 고마워?”
“네에?”
“예?”
소울과 박은영이 동시에 국정현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짓자 국정현은 이크 하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아마 조금만 늦었으면 박은영의 강력한 등짝 스매싱을 맞았을 것이다.
“저기 하얀 4층 빌딩 앞에 세워주세요.”
“네.”
국정현이 손가락으로 빌딩 하나를 가리키자 택시기사는 힘차게 대답을 하더니 곧 원하는 장소에 부드럽게 차를 댔다.
소울이 얼른 내려서 트렁크의 문을 열고 휠체어를 꺼내서 펴자 국정현은 그를 슬쩍 돌아보더니 택시비를 냈다.
‘당연히 돈 많고 나이 많은 아저씨가 택시비를 내야지.’
고소한 표정을 짓는 소울을 얄밉다는 듯 노려보던 국정현도 자신을 안아 휠체어 위에 태우는 그를 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난 잠시 집에 다녀 올 테니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네.”
“예!”
국정현은 빌딩 뒤쪽에 있는 집으로 휠체어를 밀고 갔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소울은 박은영을 쳐다봤다.
“집에는 안가세요?”
“올라가서 확인해보고 계약하는 것 보고 갈게요.”
“그래요?”
소울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라고 하기도 뭐해서 같이 기다리기로 했다.
박은영은 잠시 그의 눈치를 보더니 빌딩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잠시 후, 음료수를 사가지고 나왔는데 그새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오는 것을 보니 1층 화장실에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온 모양이었다.
곧이어 국정현이 전동식 휠체어를 타고 쌩하니 달려왔다.
“많이 기다렸지?”
“아니에요.”
“이것 좀 드세요.”
“고마워.”
국정현과 소울은 나란히 서서 박은영이 사온 음료수를 빨대로 빨아먹었다.
“여기 열쇠 있으니 가서 올라가 보고 와라. 여기 1층 커피 전문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네.”
소울은 국정현에게 열쇠를 받아 박은영과 함께 4층 건물의 옥상에 있는 옥탑 방으로 올라갔다.
“헤엑 헤엑…….”
“후우 후우…….”
둘은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오자 절로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특히 박은영은 얼굴이 다 노랗게 뜨는 듯 상당히 힘들어 했다. 역시 운동부족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봤다.
옥상은 상당히 넓었다.
옥탑방도 밖에서 보니 꽤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국정현의 스마트폰에서 보여준 그대로 넓은 방과 넉넉한 크기의 화장실이 보였다.
“보증금 없이 40만원이면 괜찮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구와 가전제품이 이렇게 다 있으면 더 받아도 할 말이 없는데 다행히 국정현 환자께서 많이 양보해주셨네요.”
“그런 건가요?”
“네.”
박은영이 맞는다면 아마 맞을 것이다.
소울은 3년간 서울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이런 옥탑 방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방을 빌려 자취를 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숙식제공을 해주는 직장이나 고시원을 전전했으니 어떻게 보면 이제야 제대로 된 자취 생활을 해보는 셈이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계약 하실 건가요?”
“네, 해야지요.”
“그럼 우리 그만 내려가요.”
“그럽시다.”
소울은 박은영과 같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은행에 다녀올테니 먼저 가 계세요.”
“네.”
박은영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가자 그는 바로 은행 ATM으로 가서 전 재산 30만원을 현찰로 찾아왔다.
‘일단 오늘은 지르고 보자. 당장 내일부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굶어죽겠구나.’
소울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각각 커피를 한잔씩 시켜 마시고 앉아 작게 뭐라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국정현과 박은영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와라. 뭐 마실래?”
“사주시는 거예요?”
“어? 내가 사야하는 거야?”
“그럼 전 안 마실래요. 계약이나 하죠. 계약서는 어디 있어요?”
한 푼이 아쉬운데 한 끼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사 마실 이유가 없는 소울이었다.
“나 참, 알았다. 내가 살게. 커피는 아메리카노로 마실 거지?”
“아뇨. 캬라멜마끼아또 마실 거예요.”
“그러던가.”
국정현은 쿨하게 캬라멜마끼아또를 사줬다.
소울은 커피 중에 캬라멜마끼아또가 가장 비싸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에는 비싸서 사먹을 생각조차 못했지만 공짜로 마시는 거니 당연히 제일 비싼 이놈을 마셔도 한다.
소울은 달디 단 캬라멜마끼아또를 마시며 미소를 지었다. 역시 단 게 몸에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졌다.
계약은 박은영의 도움과 국정현의 양해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차피 보증금도 없이 한 달에 월세 40만원만 내면 되는 옥탑 방 1년 월세계약이라 크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나중에 우리 빌딩 경비원에게 담배 한 보루 사다줘라. 관리비도 안내고 사는 거니까 그렇게 인사라도 해야지.”
“네, 그렇게 할게요. 집주인 아저씨.”
국정현과 소울은 서로 쿨 하게 웃으며 도장을 찍고 서명을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앞으로 우리 자주보자.”
“그래요.”
두 사내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굳게 악수를 했다.
“축하드려요. 소울 씨!”
“고마워요. 오늘 은영 씨 도움 많이 받았네요.”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이따가 시간 맞춰서 전화할게요. 그동안 좀 쉬고 계세요.”
“여러 가지로 고마워요. 은영 씨.”
“아니에요. 저희들의 생명을 지켜주시느라 다치기도 하셨는데 제가 더 고맙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소리에요? 그건 그냥 나 살자고 발버둥 치다가 일어난 일인데요 뭐.”
소울은 정말 자신이 살려고 발버둥을 친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현과 박은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설사 정말 그렇게 했다고 해도 소울이 강남 세븐 병원 2동 7층, 8층 환자들과 간호사들, 간병인 아주머니들과 방문객 등을 위해서 고생한 노고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국정현이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미쳤다고 보증금 천만 원도 안 받고, 월세까지 10만원이나 깎아 주고, 관리비 4만원도 안 받겠는가?
세상일이란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박은영이 택시를 하나 잡아타고 사라지자 국정현도 좀 피곤했는지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소울은 다시 계단을 열심히 걸어 옥탑 방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자 그제야 여기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야할 보금자리, 스위트홈(Sweet Home)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샤워부터 하자.”
감동도 잠깐, 그는 자신의 코를 찌르는 악취가 풍겨나는 것을 인식하고 얼른 화장실로 들어갔다. 고블린의 피와 자신의 땀으로 젖은 옷을 모두 벗어 세탁기에 집어넣은 그는 세재를 왕창 풀어 넣고 돌렸다.
세탁기가 쌩쌩 돌아가는 사이, 그는 발가벗고 샤워기 앞으로 갔다.
쏴아아아아!
차가운 물로 샤워를 시작하자 그는 온몸의 세포가 알알이 일어나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샴푸로 머리를 감고 린스로 헹구고 샤워봉에 바디 클린저를 묻혀 거품을 내고 온몸을 박박 닦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차가운 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뿌려대자 몸 전체가 새로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옥탑 방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네? 그냥 몸만 쏙 들어와서 사는 기분이구나.’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나자 한 가지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내 옷!”
그렇다. 그는 지금 옷이 없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은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화장실에서 나왔다.
서랍을 뒤져 봤지만 옷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제일 커다란 수건을 하나 찾아내어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혹시나 해서 냉장고를 열어봤다.
아까는 박은영이 그를 대신해서 뒤져 보느라 직접 확인을 하지 못했다.
“생수가 있네?”
정말 다행이었다.
자신의 지갑에는 지금 딱 만 원짜리 지폐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 저녁 식사와 내일 아침 식사를 하면 사라질 돈이었다. 이런 상황에 비싼 생수를 사 마실 돈은 없었다.
소울은 냉장고에 들어 있는 시원한 생수병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시원한 생수가 몸에 들어오자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지 힘이 솟고 피로가 풀렸다.
‘이따 박은영이 오면 무조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겠구나.’
교통카드에 얼마간의 돈을 집어넣어 놔서 1주일은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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