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6 제 9 장 - 능력자 =========================================================================
“네? 그럼 이거 넘겨주고 돈 받으란 말이에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
박은영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녀는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소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땀을 많이 흘렸는지 땀 냄새가 훅하고 그의 코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가 곤란해질까 봐 내색을 안 하고 꾹 참았다.
“소울 씨는 혹시 돈 안 필요하세요? 고시원에서 방도 빼고 짐도 다 뺐잖아요.”
“그, 그걸 어떻게?”
소울은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자신은 절대 얘기한 적이 없는데 그녀는 이미 자신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말아요. 저 스토커 아니거든요? 고시원 총무가 찾아와서 소울 씨 찾는 것 도와준 게 저에요. 그리고 병실에 있는 환자들도 두 분이 얘기할 때 옆에서 다 들었잖아요.”
“아!”
소울은 그제야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지 이해가 갔다. 그는 괜히 그녀를 스토커로 의심한 것에 대해 미안해졌다. 그런데 박은영은 언제부턴가 꼬박꼬박 그에게 ‘소울 씨’라고 ‘씨’자를 붙여 부르고 있었다.
친근감의 표현인지 그녀의 소울에 대한 의지인지는 잘 몰랐지만 어쩐지 소울은 자신과 그녀가 이제 단순한 간호사와 환자의 관계는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울 씨 같은 환자가 어디 한두 명 인줄 아세요? 고시원 방 빼고 병원에서 버티다가 보상금 많이 받고 나가려는 것 맞죠?”
“마, 맞아요.”
소울은 박은영의 돌 직구에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굴리고 있었지만 박은영을 비롯한 간호사와 의사들 그리고 환자들은 소울의 통박을 이미 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울은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슬그머니 내려갔다. 그 모습에 박은영이 오히려 화를 냈다.
“왜 그렇게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요? 누가 그걸로 소울 씨 탓하려고 그러는 줄 아세요?”
“…….”
소울과 국정현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은영을 쳐다봤다.
박은영도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높았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혹시 유튜비라고 아세요? 동영상 올리는 인터넷 사이트인데…….”
“네, 잘 알아요. 우리나라 가수 한 명이 그곳에 동영상을 올려서 세계적인 스타가 됐잖아요.”
“맞아요. 유튜비에 소울씨가 찍은 동영상을 올려 봐요.”
“네에? 거기에다 왜요? 혹시 거기에다 동영상 올리면 돈 줘요?”
“네, 돈 줘요.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돈 더 많이 줘요.”
“그래요?”
돈을 준다는 소리가 소울의 귀에는 마치 천둥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조회 수에 비례해 광고 수익을 배분하는 유튜비 파트너십 제도와 구들의 애드센스라는 콘텐츠에 광고를 붙여 게시자들이 돈을 버는 서비스가 있어요. 제 친구가 장난삼아 동영상을 올렸는데 한 달 뒤에 정말 돈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아주 쉬워요. 원하시면 당장이라도 제가 올려드릴게요.”
소울은 박은영의 말에 혹해서 고구려일보 강강한 편집부장에게 보내기로 결심한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자신의 귀가 살짝 팔랑 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박은영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 그만 홀라당 넘어가고 말았다.
박은영은 유튜비를 자주 보고 가끔 재미있는 동영상이 있으면 올리기도 해서 동영상을 어떻게 올리는지 구들의 애드센스 가입은 어떻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울에게 개인정보와 은행구좌를 받아 10분 만에 가입과 등록을 완료하고 동영상을 업로드 했다. 그리고 나름 자극적인 제목을 영어와 한국어로 같이 달아놓았다.
동영상을 유튜비에 올려놓자 서서히 조회 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울은 정말 이 정도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정말 돈 벌 수 있는 것 맞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동영상이라면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할 거예요.”
“어떤 식으로 돈을 버는 건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유튜비 수익구조는 구들의 애드센스 연동 후, 페이지뷰(페이지 RPM) 1000회당 3달러 정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하지만 어떤 종류의 광고가 달렸느냐에 따라 수입은 천차만별이라고 하더군요. 일반적으로 1억 페이지뷰를 달성하면 30만 달러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해요. 물론 3억 페이지뷰를 가지고 10만 달러도 못 버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요.”
“30만 달러요? 그럼 3억5천만 원?”
소울은 억 단위가 넘어가자 뭔가 자신과는 안 맞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오히려 미망에서 빠르게 깨어났다.
“일단 1억 페이지뷰 정도는 돼야 3천만 원이던, 1억이던, 3억이던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이네요. 아니 1천만 페이지뷰만 되도 몇 백은 쉽게 벌겠군요. 참! 돈은 한 달에 한 번씩 받나요?”
“네, 그렇다고 알고 있어요.”
소울은 가만히 생각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당장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자신은 고시원이나 찜질방으로 가야한다.
유튜비에 올린 동영상을 앞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수준이라 그는 일단 유튜비에 올린 동영상에 관해서는 잊기로 했다. 당장 들어올 돈이 아니니 그냥 잊고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박은영 간호사, 고마워요.”
“천만에요. 고맙긴요? 별로 한 일도 없는데요.”
박은영은 소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몸을 비비꼬며 부끄러워했다.
땀 냄새가 풀풀 나고 커다란 덩치와는 안 맞는 귀여운 표정이었다.
‘이게 주먹을 부르는 애교라는 거로구나.’
소울은 박은영의 모습을 보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고개를 돌려 국정현을 보자 그도 저건 좀 아니라는 생각을 했는지 의미심장한 썩소를 날리고 있었다.
“저건 또 뭐지?”
그때, 누군가 큰소리로 하는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울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학교 입구로 모아졌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검은 색의 국산 최고급 차량들이 줄줄이 학교 건물 앞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부우우웅!
딱 봐도 뭔가 한가락 할 것 같은 정부의 고위 관계자와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관용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강남 세븐 종합병원에서 탈출한 환자들과 간호사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위로했다.
하지만 곧 학교 밖에서 방송국 차량과 카메라맨,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와 플래시를 마구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대자 이것이 그냥 순수한 위로 차원의 방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제 명에 못살 것 같네요. 전 나가야겠어요.”
“소울아! 너 어디 갈 데라도 있냐?”
“저요?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베개 삼으면 제 한 몸 뉘일 자리 없겠어요?”
“너 무협지 좋아하는구나?”
“헉, 어떻게 아셨어요? 그게 무협지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나도 한때 무협지와 장르소설에 미쳐 살았던 시절이 있었단다.”
“그렇군요.”
소울은 국정현의 말에 뭔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국정현이 조심스럽게 소울에게 물었다.
“갈 때 없으면 우리 집이라도 갈래?”
“아저씨 집이요?”
“그래. 사실 우리 집 옥탑 방이 비어 있거든.”
“그거 얼마에 내놓으신 거예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50만원, 관리비 4만원이다.”
소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국정현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안 나가는 옥탑 방을 세놓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그때 박은영이 소울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가격이야 일단 물건부터 보고 얘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박은영의 똑 부러지는 소리에 국정현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그녀는 소울을 대신해서 스마트폰에 담긴 옥탑 방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요. 위치가 어디에요?”
“서초동이야. 교대 근처인데 교통도 괜찮아.”
소울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박은영에게 국정현의 스마트폰을 넘겨받아 옥탑 방을 살펴봤다.
넓고 깨끗한 방 하나에 넓은 화장실이 딸려 있는 곳이었다. 벽은 깔끔하게 도배 되어 있었고 방은 커튼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와 책상, 서랍 등 가구일체가 완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부엌도 보였다.
40인치는 되어 보이는 LED TV와 양문형 냉장고까지 있는 것을 보니 누가 살려고 했는지 꽤나 신경 쓴 모습이었다.
화장실에는 욕조에 세탁기가 있었는데 공간이 꽤 넓었다.
“가구와 가전제품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갈 때 까지 그냥 쓰면 된다. 관리비 4만원도 주1회 청소를 해주고 관리를 해주는 조건으로 감해줄 수도 있어.”
박은영이 국정현에게 물어보고 국정현이 소울을 보며 대답하고 있었다.
“집이라면서요?”
“집이었지. 난 그동안 4층짜리 건물 4층에 살고 있었는데 내 몸이 이렇게 된 이후에는 불편해서 근처에 따로 집을 얻어서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소울 씨가 살 옥탑 방은 4층 빌딩의 옥상이라는 말이네요. 혹시 승강기가 없는 건물인가요?”
“어, 없어.”
국정현의 대답에 왜 옥탑 방이 안 나가고 있는지 알만했다.
“4층 건물을 주1회, 한 달에 4번 이상 청소시키고 겨우 관리비 4만원을 감해준다고요? 그냥 관리비 4만원 내는 것이 좋겠네요. 그리고 승강기도 없는 빌딩 옥탑 방에 관리비 4만원이 다 뭐예요?”
“승강기는 없어도 건물 뒤쪽에 주차장과 지하주차장이 있어. 경비원도 있고.”
“소울 씨는 차도 없는데 무슨 주차장 타령이세요? 옥탑 방에 사는 사람에게 경비는 또 왜 필요하고요? 국정현 환자는 소울 씨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아닌 모양이네요.”
“아,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소울은 박은영의 날카로운 말에 속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자신도 국정현의 말에 기분이 약간 나빠져 있었던 것이다.
“도와주려면 팬티까지 다 벗고 도와주려는 말 모르세요? 4층 빌딩에 집까지 따로 가지고 계신분이 그깟 보증금 1000만원 받아서 뭐하시려고 그러세요? 그냥 보증금 빼고 월세 40만원만 받으세요. 당연히 관리비도 없어요. 아셨죠?”
“그, 그러지 뭐.”
지화자!
소울은 당장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와주려면 팬티까지 다 벗고 도와주라는 말은 처녀가 쓰기에는 좀 부적절한 말이었지만 그 의미만큼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었다.
박은영은 어떻게 자신이 보증금 낼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보증금을 받지 말라고 하고, 월세도 10만원이나 깎는다는 말인가?
모름지기 여자라면 저렇게 야무진 데가 있어야 한다. 이제 보니 박은영은 살림도 꽤 잘할 것 같았다.
‘살만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소울은 오늘따라 박은영의 거대한 체구가 정말 안쓰러웠다. 정말 살만 쏙 빠지면 얼굴은 참 오밀조밀 귀엽게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저기 죄송한데 제가 당장은 30만원밖에 없는데 1달 뒤에 다음 월세 낼 때 10만원 같이 드리면 안 될까요?”
“그래. 그렇게 해라.”
소울의 치명타에 국정현은 그만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시한부 환자의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어차피 안 나가는 옥탑 방, 소울에게 선심 쓰는 셈 치려는 것이리라.
“그럼 우리 모두 소울 씨의 옥탑 방으로 가도록 해요.”
박은영의 말에 어느새 옥탑 방은 소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좋지. 일단 나도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새로운 병원을 알아보고 소울이하고 월세 계약도 체결하고.”
“박은영 간호사는 안 바쁘세요?”
“병원이 저렇게 됐는데 제가 무슨 일을 할 게 있겠어요. 전 그냥 당분간 집에서 쉴래요.”
그녀가 옥탑 방을 보증금도 없이 싸게 얻어준 것은 고마웠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옥탑 방까지 가겠다는 것은 어째 좀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미 국정현의 휠체어를 돌려 옥상의 문을 향해 가고 있는 박은영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어쩐지 자신이 거절할까봐 서두르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나를 스토킹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소울은 가늘게 박은영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그러자 박은영은 갑자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한 여름에 오한이 걸릴 것 같은 냉기를 느꼈던 것이다.
옥상 입구에서 몸을 돌린 박은영이 소울을 쳐다봤다. 소울은 그녀의 빛나는 눈빛을 보자 살짝 기가 죽는 것을 느꼈다.
“뭐하고 계세요? 빨리 와서 업고 내려가지 않고?”
“아!”
소울은 그제야 허겁지겁 달려와 국정현을 업고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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