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5 제 9 장 - 능력자 =========================================================================
‘이게 요새 말하는 몬스터 웨이브라는 것은 아니겠지?’
뉴스를 즐겨 보다보니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났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으아악!”
“뚫렸다.”
“안 돼!”
갑자기 옥상 위에서 고블린들과의 전투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비명성을 질러댔다.
고블린 한 떼가 파도처럼 밀려들더니 무수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학교 정문을 단숨에 돌파해버린 것이다.
“정문 방어선이 무너진 것이 아니야. 그냥 고블린 한 무리가 난입한 것이지.”
누군가 패닉에 빠지려는 사람들의 정신을 바로 잡아 주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은 고블린 무리라고 해도 학교 안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리면 얼마나 골치가 아픈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설마 옥상까지 올라오지는 않겠지?’
소울은 계속해서 냉정한 눈으로 학교 주변을 살펴봤다.
점점 고블린들의 숫자가 불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고블린의 숫자가 마구 불어나면 이 학교도 절대 안전한 곳이 될 수 없었다.
소울은 보상금이고 뭐고 기회를 봐서 도망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때였다.
푸타타타타타 푸타타타타타!
하늘에서 수리온 기동헬기 편대가 학교 주변을 감싸며 내려왔다.
부아아아악 부아아아악!
기동헬기에 거치된 중(重)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고블린들이 무리를 지어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엄청난 화력이 땅바닥을 순식간에 녹색의 피로 물들였다.
“이야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소울은 그들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저런 식으로 중기관총을 쏴대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보급을 하러 기동헬기들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동헬기들이 일제히 하늘로 오르더니 보급을 위해 떠나가 버렸다. 그러자 고블린떼가 더욱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또 뚫린다.”
“어어, 안되는데…….”
사람들이 또다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간단하게 뚫리지 않았다.
쾅 콰앙!
누군가 몰려드는 고블린들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기 시작하자 고블린들의 난입은 저지되었다.
아까 학교 안으로 난입에 성공했던 고블린 무리는 조용했다. 아무래도 모두 학교 안에서 사살된 것 같았다.
“또 몰려온다.”
“이번에는 숫자가 엄청나다.”
“저쪽을 봐! 남쪽 벽이 뚫렸어.”
“동쪽에서도 담을 넘어오고 있어.”
사람들은 마치 중계방송이라도 하듯 소리쳤다.
소울은 오늘 이 자리가 자신이 죽을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투루르르륵 투루르르륵……
쾅쾅쾅 쾅쾅쾅……
펑펑펑 펑펑펑……
소총, 기관총 소리가 끝도 없이 귀청을 때려댔다. 수류탄과 유탄발사기가 터지는 폭음이 연속적으로 울려댔다.
전투병들은 고블린이 학교 안으로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다. 덕분에 거대한 고블린의 물결은 이리 찢기고 저리 찢겨서 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학교 정문에서 그들의 난입을 저지하는 병력을 쓸어버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안 돼!”
“으아아아!”
사람들은 순간 비명을 질렀다.
고블린의 무리가 단숨에 바리게이트를 돌파하고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한 명당 서너 마리의 고블린이 육탄으로 달려들자 아무리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는 전투병이라고 해도 버틸 재주가 없었다.
으아악 아아악 크아악 커어억……
구슬픈 비명소리와 함께 병사들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고블린들의 날카로운 발톱에 찢겨 고기조각이 되어갔다.
그 끔찍한 모습에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갔다.
“이제 나는 죽겠구나.”
“우린 다 죽었어.”
“제기랄, 괜히 여기 남아 있었네.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어떻게든 앰뷸런스 얻어 타고 갈걸 그랬어.”
동, 서, 남 삼면에서 고블린들이 몰려왔다. 학교 운동장은 순식간에 거대한 고블린들의 집합소가 되어갔다.
소울은 그 무시무시한 장면에 손도 떨지 않고 동영상을 계속 찍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무수한 고블린들에 의해 잡혀 먹힐 것이 뻔한데도 이상하게도 두렵거나 떨리지 않았다.
소울도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간이 크고 담대해졌지. 이런 상황이라면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어야 정상이 아닌가? 설마 소울넷에서 영혼체험 한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는 건가?’
영혼체험 밖에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비록 신체적인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정신적인 변화, 즉 이런 대범함과 침착함은 위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울은 자신의 목숨을 고블린들에게 쉽게 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동영상을 촬영하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을까?
어디로 가야 고블린들의 눈을 피할 수 있을까?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학교 운동장에는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고블린들이 몰려들었다.
이제 고블린 떼나 고블린 무리라는 말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가히 고블린 군단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사람들은 고블린 군단의 모습에 질려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댔다.
저항을 하거나 반항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라야 가능하지, 이렇게 무식하게 많은 숫자의 고블린들이 학교 건물을 향해 뛰어든다면 고블린의 똥이 되는 수밖에 더는 방법이 없었다.
옥상 위에 기관총을 잡고 있는 병사들도 어느새 사격을 중지한 채 등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학교 옥상 위에는 공포와 절망이라는 아우라가 점점 짙게 번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화르르르륵!
번쩍! 파츠츠츠츳!
슈슈슈슈슉 슈슈슈슈슉!
쾅 콰콰쾅 쾅쾅!
도곡 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있는 고블린 군단을 향해 어디선가 강력한 불과 얼음 그리고 벼락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케엑 컥 칵 크악……
아까와는 반대로 이제는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아니 강렬한 폭음 소리에 비명소리가 묻혀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사람들은 고블린 군단을 공격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옥상 난간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목을 길게 빼며 살펴봤다.
학교 담을 단번에 휙휙 넘어오며 날려대는 사람들의 능력에 고블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능력자다.”
“능력자가 나타났다.”
누군가 운동장 밖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사람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
“저게 뭐야? 저거 진짜 사람 맞아?”
“우와아! 대단하다. 슈퍼맨이 따로 없네?”
“세상에, 능력자가 대단하다고 하더니 정말 끝내주네?”
“죽어나가는 고블린들이 더 이상은 몬스터인 고블린이 아닌 것 같다.”
…….
소울의 마음도 그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능력자가 되면 저런 것도 가능해지는 거였어?’
일단 겉모습은 능력자나 일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숫자도 20명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서 불덩이와 얼음덩이 그리고 푸른 스파크가 튀는 번개가 고블린 군단을 향해 날아와 빠르게 쓸어버리자, 저들이 일반 사람이 아닌가 하는 금세 생각은 십리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능력자들은 뭔가를 날려서 공격하는 원거리 딜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맨손으로 자신의 몸을 이용해 공격을 하고, 칼과 방패를 들고 직접 고블린 무리 속으로 들어가 도륙을 해대는 근거리 딜러도 있었다.
그들이 칼과 창을 휘두를 때 마다 반드시 고블린들의 사지와 몸이 잘려 나갔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찰 때 마다 고블린들의 사지가 터지고 몸이 터져 버렸다.
이들은 마치 양떼 속을 헤치고 다니는 늑대처럼 고블린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파괴력은 원거리 딜러가 몇 수는 위였지만 고블린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전열을 무너뜨리는 것은 역시 근거리 딜러들이 뛰어났다.
“졸라 멋있잖아!”
소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능력자들의 신위에 그만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압도적인 무력, 환상적인 초능력, 폭발적인 움직임, 눈부신 전과…….
이들에 의해 수천 마리의 고블린 군단이 박살나고 산산조각이 나서 전멸을 당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능력자들의 손을 피해 살아서 학교를 빠져 나간 것은 몇 십 마리 되지도 않은 것 같았다.
졸지에 전장(戰場)이 되어버린 도곡 중학교 운동장 안의 광경은 참혹했다.
대부분이 타고, 얼고, 지져지고, 사지가 잘리고, 몸통이 터진 고블린 사체였지만 간간히 병사들의 찢겨진 시체조각을 보면 절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야호, 이겼다.”
“승리했다.”
“고블린이 전멸했다.”
“능력자 만세!”
“와아아아아…….”
옥상 위에서 능력자들의 활약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두 손을 마구 흔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제야 능력자들도 이쪽을 돌아보며 가볍게 한 손을 흔들어주었다.
소울도 정신없이 손을 흔들며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동영상은 잘 찍혀 있었다. 아니 정말 기가 막히게도 멋지게 찍혀 있었다.
“소울아!”
“어? 아저씨?”
언제, 어떻게 올라 왔는지 모르지만 국정현이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어떻게 올라왔어요?”
“그게, 신세를 좀 졌어.”
국정현이 조금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켰다.
박은영이 옥상 바닥에 주저앉아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휠체어는요?”
“저 병사가 도와줬어.”
“아!”
가만히 살펴보니 박은영의 큰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왜소한 체구의 병사 하나가 아예 대자로 옥상 바닥에 뻗어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 민폐시네요?”
“그러게 말이야. 하하하!”
국정현은 겸연쩍은 표정을 하며 웃음으로 얼버무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옥상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다.
고블린 군단이 운동장에 모여들자 놀라서 옥상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능력자들이 학교 정문을 통해 빠져 나가고 있었다.
올 때도 바람처럼 나타나더니 갈 때도 바람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소울은 그들을 따라가서 사인이라도 받아올까 생각하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소울아! 그런데 너 혹시 동영상을 찍은 거니?”
“네, 맞아요.”
“그럼 고블린들을 물리친 그 능력자들의 활약도 다 찍은 거야?”
“네, 그런데요?”
“나 좀 구경하자. 나는 중간에 와서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못 봤어.”
“그래요? 여기 있어요.”
“저도 같이 봐요.”
소울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국정현에게 넘기자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박은영이 다가왔다.
그는 잠시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시선을 운동장으로 돌렸다.
학교 운동장에는 고블린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능력자들이 하도 태우고 지저대는 바람에 고기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소울은 그 냄새 가운데에 비릿한 고블린들의 피 냄새가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지독한 냄새로구나. 그런데 이 많은 시체는 누가 다 처리하지? 내가 가서 마석(磨石)이라도 좀 채취해볼까?’
사람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앞으로 마석(磨石)은 돈이 된다. 시체를 뒤져 챙길 수만 있으면 하나라도 빨리 챙기는 것이 장땡이다.
하지만 어느새 운동장에는 병력이 충원되었는지 병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은 커다란 트럭을 가져와서 고블린의 사체를 손가락 조각 하나까지도 참으로 알뜰하게 챙겨 담고 있었다.
소울은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소울아! 이거 아주 잘 찍은 동영상이다. 나중에 정부에서 꼭 필요할지 모르니 잘 보관해라.”
국정현이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하자 소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안돼요. 이거 고구려일보 강강한 편집부장에게 보낼 거예요.”
그러자 박은영이 놀라서 물었다.
“그거 보내면 돈 준대요?”
“아니요. 돈 준다고는 안했어요.”
“그런데 왜 보내주려고 해요?”
소울은 할 수 없이 국정현과 박은영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야했다.
“네가 그렇게 애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잘 몰랐구나. 늦었지만 고맙다.”
“고맙긴요.”
국정현이 그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하자 소울은 괜히 얼굴이 붉어지며 쑥스러워졌다.
“돈 안 받기로 한 것은 참 잘하셨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동영상을 아무런 대가 없이 넘기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박은영이 태클을 걸었다.
============================ 작품 후기 ============================
푹 잤습니다. 덕분에 여기 시간으로 아침 일찍 깨어나서 맑은 정신으로 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편 올려봅니다. 여러분도 즐겁게 읽어주시고 스트레스가 쫙 풀리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선호자,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