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4화 (34/492)

00034  제 9 장 - 능력자  =========================================================================

“여긴 누군가 입구를 틀어막고 지켜야겠다.”

지동운은 소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현우 아저씨가 하세요.”

“나? 나 못해?”

“못하면 누가 대신 해요? 여기 있어요. 이 소총 가지고 잘 지켜보세요.”

소울는 강현우에게 자신이 들고 있는 소총을 넘겨주었다. 탄창만 넘겨줬다가는 또 무슨 핑계를 댈지 몰라 아예 소총을 넘겨 준 것이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송헬기가 내려오고 있는 옥상 서쪽으로 걸어갔다.

남이 싸질러놓은 똥을 치우는 것도 한 두 번이다. 그는 더 이상 호구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환풍기 통로에 소총을 가져다 대고 한두 방씩만 쏴도 고블린들이 옥상으로 올라오기는 힘들었다. 설사 올라온다고 해도 떼로 올라오기 힘들어 하나씩 밖에 올라올 수 없는 구조였다.

강현우의 황당하고 멍청한 행동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그에게 자신의 소총을 던져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회가 되지는 않았다. 차라리 속 시원했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수송헬기가 환자들을 후송하는 장면과 전투병과 저격병들이 고블린들의 침입을 막으려고 환풍기 통로를 봉쇄하는 모습을 찍어 강강한 편집부장에게 보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전투병들이 간간히 총을 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고블린들이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기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국정현 아저씨 차례가 됐는지 간호사들이 힘을 합쳐서 그를 수송헬기 위로 낑낑대며 옮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울은 얼른 달려가서 그를 수송헬기에 태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다 탔으면 출발합니다.”

“네, 잠깐만요.”

헬기 조종사가 고블린을 보더니 불안했는지 자꾸 출발하겠다고 보챘다.

국정현이 수송헬기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소울은 수송헬기에서 내리려고 몸을 돌렸다.

순간, 국정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소울아, 기왕 올라온 것 그냥 타고 가자.”

“네? 아직 간호사들도 남았는데요?”

“그냥 가자. 이리 앉아라.”

“어어?”

소울은 국정현의 손에 이끌려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양심이 있지, 어떻게 간호사들도 아직 다 타지 않았는데 먼저 빠져 나가겠는가? 소울은 국정현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몸을 엉덩이로 밀어 붙이며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묵직한 간호사가 한 명 있었다.

뚱보마녀 박은영이었다.

“그냥 좀 가만히 앉아 있어요. 소울씨는 할 만큼 했어요.”

“네에?”

박은영이 소울의 귀에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하자 소울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푸타타타타타!

그 사이 수송헬기는 헬기 조정사의 불안감으로 인해 허공으로 바로 이륙해 버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수송헬기가 이륙을 해버리자 소울은 내리려는 생각을 접었다. 그냥 이대로 탈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말은 안했지만 소울은 때맞춰 탈출을 하지 못할까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수송헬기가 병원 상공을 벗어나자 그는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옆자리를 쳐다봤다. 뒤룩뒤룩 살이 찐 뚱보마녀 박은영 간호사가 오늘만큼은 아주 귀여워보였다.

‘살만 빠지면 얘도 참 귀여울 텐데……. 그놈의 살이 문제구나.’

그는 박은영을 조금은 동정어린 시선으로 쳐다봤다. 자기처럼 키도 작고 능력도 없는 놈을 뭐가 좋다고 저러는지 알 수 없는 박은영 간호사다.

그렇다고 그녀와 썸을 타겠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생각해주는 마음을 보니 조금은 감동이 되기도 했다.

수송헬기는 멀리 가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도곡 중학교 운동장에 내렸다.

정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고, 위쪽으로 고개만 들어도 병원 2동의 모습이 잘도 보였다.

“이렇게 가깝다니…….”

소울은 자조 섞인 한숨을 쉬었다.

가까워도 너무 가까운 곳에서 생존을 위해 며칠 동안 생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자 빨리 구해주지 않은 정부의 처사가 원망스러웠다.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수송헬기에서 내리는 환자들을 부축했다.

소울은 국정현을 안고 내렸다. 미리 준비되어 있는 휠체어에 앉히자 국정현의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마치 잃어버린 발을 찾은 표정이라고나 할까?

운동장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앰뷸런스가 다가왔다. 그들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부터 하나씩 태우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시작했다.

나머지 환자들은 일단 학교 안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병실에서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은 후 거취를 결정한다고 했다.

국정현은 두 손으로 휠체어를 살살 밀면서 소울을 향해왔다. 그러다 갑자기 속도가 확 나는 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다. 자신을 밀고 있는 것은 박은영 간호사였다.

소울은 국정현이 앰뷸런스를 타지 않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왜 앰뷸런스 안타고 이리로 오지?’

그의 시선이 국정현에서 휠체어를 밀고 있는 박은영의 얼굴로 옮겨졌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촉촉이 젖어 있는 모습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그냥 미친척하고 한번 사귀어봐? 총각귀신 되는 것보다는 낫잖아? 헉!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훠이훠이! 사탄아! 물러가라.’

그는 그동안 고블린들로 인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것은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됐다.

그때 국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아! 넌 어떻게 할 거니?”

“네, 뭘 어떻게 해요?”

“퇴원할거냔 말이다.”

“퇴원이고 자시고 할 게 뭐가 있어요. 어차피 입원하고 있는 병원이 불에 타고 있는데…….”

소울은 병원이 불에 타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우울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도 그러네. 하지만 너 보상금 받아야 한다면서?”

“아차, 보상금!”

그제야 소울의 눈에서 총기가 돌아왔다.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병원이 불타던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내 병원도 아니고 내가 불을 낸 것도 아닌데 말이야. 지금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보다 빨리 보상금을 챙기도록 해야겠다. 참, 그런데 보상금을 많이 타려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소울은 지금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얻은 정보라는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말이고 병원의 환자들로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소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박은영 간호사를 불쌍하다고 동정을 할 때가 아니구나. 나야 말로 당장 어디 갈 데도 없는 신세였어. 찜질방이나 고시원으로 가야하나?’

산 너머 산이었다.

몬스터의 난입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자 병원에 화재가 일어났고, 병원에서 탈출하자마자 이제 차가운 현실이 그의 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두메산골에 사시며 간신히 목구멍에 풀칠만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단호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아니야. 지금 돌아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정말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으면 그때 돌아가자. 그전에 능력자 테스트를 받아봐야겠다.’

소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 결국 능력자 테스트부터 한번 받아보고 나서 뭐를 하던 결정하기로 했다.

“소울아! 소울아!”

“어? 네? 왜 불렀어요?”

소울은 국정현이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자 퍼뜩 상념에서 벗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이 해?”

“아아!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생각 좀 해봤어요.”

“그럼 우리 여기 같이 있을까?”

“여기요? 이 도곡 중학교에서 말이에요?”

“그래.”

“여기서 어떻게 먹고 자요?”

“중환자는 이미 다른 병원으로 전부 이송됐어. 남은 환자들이라는 게 전부 우리 같이 밥만 제대로 먹여줘도 되는 사람들이야. 임시로 병동을 만들어 운영을 한다고 하니 여기 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소울은 계속 총소리가 나는 강남 세븐 종합병원 2동 옥상 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 이대로 머물러도 정말 괜찮을까? 의사와 간호사도 있고 전투병도 충분하니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한데…….’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탈출한 병원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때였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갑자기 학교 정문 입구 쪽에서 총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뭐야?”

“또 고블린이야?”

소울과 국정현이 동시에 소리쳤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투루르르륵 투루르르륵…….

이번에는 총소리에 기관총소리가 섞여 있었다.

박은영은 거듭 들려오는 총소리에 깜짝 놀라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통통한 몸을 마구 떨어대고 있었다. 공포는 몸무게와는 상관없으니 그녀가 떠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었다.

“아저씨, 설마 아니겠죠?”

“아니길 바라야지.”

소울은 한숨을 쉬며 말하는 국정현을 보다 학교 안으로 들어가던 자신의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탈출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고블린이야? 이 새끼들 정말 양심이 없네.’

그는 속으로 고블린들을 욕하며 학교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고블린들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 싶으면 안전한 방향으로 도망을 치려는 생각에서였다.

학교 정문으로 전투병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학교 안으로 난입을 시도하는 고블린들의 파상적인 공격을 맞아 열심히 소총을 쏘고 있었다.

언제 만들어 놓았는지 기관총 진지가 학교 정문 입구 양쪽에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접근하지 않고 뒤쪽에서 그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했다.

푸타타타타타!

운동장 상공에서는 수송헬기 하나가 착륙하려고 내려오다 총소리에 놀라서 다시 위로 급상승 하는 모습이 보였다.

펑 쾅!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얼마 전 자신이 입원해 있던 병원 2동 옥상에서 화염이 치솟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잘 탈출했겠지?’

자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한때 고블린을 상대로 같이 전투를 벌였던 사이인 송강우와 나이롱환자 6인방이 무사히 탈출했기를 기원했다.

“모두 학교 안으로 들어가세요.”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소울은 전투병들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학교 안으로 달려갔다.

학교를 공격하는 고블린들을 격퇴하는 것은 군대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싸움은 더 이상 자신의 싸움이 아니었다.

그는 부리나케 달려서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 학교 안이라고 정말 안전할까?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는데?’

그는 오히려 학교 안에 갇히면 빼도 박도 못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옥상이다.’

일단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옥상은 보통 철문으로 되어 있으니 최악의 경우 문을 잠가버리면 고블린들이 쉽게 난입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지만 옥상에는 선객이 있었다.

전투병들이 학교 건물 옥상의 각 모서리에 기관총을 거치해 놓고 저격병까지 운용하고 있었다.

“여기는 올라오시면 안 되는데요?”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겠습니다.”

소울은 자신을 막아서는 병사를 피해 걸어갔다.

그의 뒤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올라오자 병사는 옥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전투하는데 방해가 안 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다.

병사의 말에 오히려 성인 남자들은 코웃음을 지었다.

“헛소리 말고 총이나 더 가져와요.”

“예비군 훈련 괜히 시켜? 이럴 때 써먹어야지. 급하면 우리도 도울 테니까 가서 일보슈!”

계급을 보니 이등병이다.

현역 이등병이 병장 제대한 예비역과 예비군들의 입심을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장난질은 오래가지 못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투루르르륵 투루르르륵…….

옥상에 거치된 기관총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냈다.

기관총 옆에 대기 중이던 소총들도 동시에 총성을 울렸다.

소울은 옥상의 난간으로 가서 학교 정문을 살폈다.

“좆 됐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이 딱 벌어졌다.

1층에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옥상으로 올라와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학교 사방에서 고블린들이 떼거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특히 정문 쪽에는 가히 고블린의 물결이라 할 만한 숫자가 몰려들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조금 늦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오늘 아침에 인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지금 막 이스탄불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여긴 섭씨 35도나 되는 무더위로 푹푹 찌고 있습니다.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네요.

거기는 이제 새벽 12시 반쯤 됐겠지요. 여기는 저녁 6시 반 입니다. 날이 환하네요.

즐겁게 읽어주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수정공지: 완강기가 나오는 씬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교정작업이 있었습니다. 작품에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면 확인하고 싶으시면 4-1과 4-4, 5-1 이후로 쭉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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