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2화 (32/492)

00032  제 8 장 - 탈출  =========================================================================

소울의 말에 환자들이 하나 둘씩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짐은 모두 버리도록 하고 지갑 정도만 가지고 올라가도록 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은 그러지 못하는 환자들을 부축해서 올라갔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소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이롱환자 6인방이 소울에게 다가왔다.

최우석, 강현우, 지동한, 이병태, 김순호, 오범근, 여섯 명은 모두 소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속에 사복을 입고 겉에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 영 안 어울렸다.

자신들이 환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라도 한 것일까?

소울은 그들의 복장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우리도 옥상으로 대피 해야겠다.”

“아직은 아닙니다.”

“야! 너 그렇게 여유 때리다가 한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저도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울은 인상을 팍 쓰며 최우석을 노려봤다. 그러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울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물론 그는 왜 자신이 소울의 눈을 피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라 저 아저씨가 내 눈을 피하네? 영혼체험을 한 것이 뭔가 효과를 내는 건가?’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이내 머리를 흔들어서 잡념을 털어 버렸다.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만약 우리까지 모두 올라갔다가 고블린들이 대거 밀려오면 바리게이트는 순식간에 뚫릴 것이고 저희들은 고블린들의 밥이 될 겁니다. 그러니 올라갈 땐 올라가더라도 확실하게 통로를 틀어막고 올라가야 합니다.”

“그건 이 친구의 말이 맞아. 고블린들이 아래층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어. 바리게이트를 더 보강해야 돼.”

강현우가 웬일인지 소울의 말에 동의를 했다. 소울은 강현우를 쳐다보면 가볍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었다.

그의 행동에 강현우가 미미하게 미소가 지었다.

“한 가지 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송헬기가 도착하면 당연히 중환자부터 실어 나를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약 시간이 모자라면 남은 사람들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7층과 8층에 있는 완강기를 모두 가져다주세요.”

“설마 그걸 이용해 탈출을 하겠다는 말이야?”

“보험 하나 들어놓는 셈 치고 협조해주세요. 혹시 알아요. 그게 우리 모두의 동아줄이 될지?”

“좋아. 그럼 그렇게 한번 해보자.”

최우석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얼른 대답을 했다. 어차피 분위기가 모두 소울의 의견에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사람들이 다 바보는 아닌지라 곱지 않은 눈빛으로 최우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울은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라주는 그들의 행동에서 뭔지 모를 위화감을 느껴 최우석을 보고 있지 않았다.

‘으응? 이건 마치 온라인 게임속의 카리스마 스탯이 급성장이라도 한 느낌이잖아?’

소울은 자신의 생각이 조금은 황당하다고 느끼며 옥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수송헬기가 어디로 내리면 좋을지, 만약의 경우 시간이 모자라면 탈출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어디로 할지, 미리 알아두려는 의도였다.

아무도 그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며 뭐라고 손가락질 하지 않았다.

그동안 소울이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왔는지 모두 직접 눈으로 봐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뭔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소울도 순수하게 병원을 무사히 탈출하고 싶은 생각에,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에 서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소울은 저격병들에게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아! 네.”

저격병들은 소울을 보면서 살짝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송강우가 옆에서 소울을 보더니 한손을 들고 반가워하자 금세 경계심을 풀었다.

“소울아! 수송헬기 보내 준단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어라? 너 알고 있었어?”

“아니에요. 지금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몇 대 보내준다고 그래요?”

“글쎄?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송강우가 고개를 흔들자 소울은 저격병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지금 정신없이 본부와 무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저기 환자들 올라오는 것 보이시죠? 몸을 가눌 수 없는 분이 많으니 한두 대 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지금 방송국에서 이곳을 생방송으로 중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본부에 그렇게 보고해주세요.”

“그게 사실입니까?”

환자를 위해 많은 수송헬기가 필요하다는 말에는 반응이 없다가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를 한다고 하자 저격병 중 최고참으로 보이는 자가 크게 놀라는 것 같았다.

소울은 대번에 그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살려면 그를 구워삶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름표를 보니 지동운이라고 써져 있었다.

“지동운 상사님, 직접 눈으로 보시고도 모르시겠어요?”

“아! 제가 지금 바로 보고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울이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자 지동운이 얼른 무전기를 들었다.

“그러세요. 그리고 제 시간에 수송헬기 넉넉히 안 오면 여러분도 불에 타 죽을 각오하세요.”

“네에?”

저격병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울은 겁을 주는 김에 아예 한 술 더 떴다.

“저기 연기 올라오는 것 보이시죠?”

“아!”

“우리 모두 불에 타 죽지 않으려면 보고 잘하셔야 할 겁니다.”

“그런데 정말 방송국에서 여기를 찍으러 온답니까?”

그런데 지동운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자꾸 방송국을 신경 쓰고 있었다.

“저 하늘에 떠 있는 방송국 헬기 안보이세요?”

하늘에 여러 대의 헬기가 떠 있었다. 거리가 있어서 정확히 어디 소속의 헬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히 평상시에 볼 수 있는 헬기의 숫자는 아니었다.

소울은 하늘에 떠 있는 여러 대의 헬기 중 최소한 한 대 정도는 방송국 헬기가 분명하다고 믿고 허풍을 쳤다.

그러자 저격병들은 모두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 버렸다.

또다시 무전통신이 오고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울은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옥상의 동쪽으로 이동했다.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 완강기를 타고 내려간다고 해도 곧바로 동쪽 상가 건물 옥상으로 갈 수는 없겠구나. 누군가 처음 내려가는 사람이 줄을 들고 저기 상가 옥상까지 가지고 가야 하잖아? 그리고 줄을 연결했다고 해도 조속기가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네. 그리고 경사가 너무 급해서 조속기가 통할지도 모르고…….’

소울은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의 탈출 계획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누굴 처음 내려 보내지?’

생각보다 줄을 타고 내려가는 것은 문제가 많았다.

그는 저격병들을 쳐다봤다. 직업군인들이니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저들이 먼저 내려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삐뽀 삐뽀 삐뽀…….

그때였다.

어디선가 소방차가 달려오기 시작했다. 무인용수탑차, 고가사다리차, 굴절사다리차 등 각종 소방장비가 총 출동한 느낌이었다. 또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차들이 병원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오오! 잘됐다. 이제 살았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송강우와 저격병들이 몰려왔다.

푸타타타타타…….

“소방헬기다.”

“드디어 우리를 구조하러 오는 모양이구나.”

옥상으로 올라와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환자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돌았다.

소방헬기의 뒤를 이어 군용 수송헬기가 줄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방송국과 신문사에 제보를 하고 인터넷과 SNS를 통해 도움을 청한 것이 결국 정부와 군을 크게 압박한 모양이었다. 역시 정부도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그때였다. 아래층에서 소총을 난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울과 송강우는 서로를 쳐다보며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고블린들이 헬기소리를 듣고 자극을 받았나 봐요.”

“이놈들이 모조리 몰려오는 모양이네?”

소울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저격병의 팔을 잡아끌었다.

“지동운 상사님, 뭐하고 계세요? 빨리 내려가서 도와주셔야죠. 고블린들이 바리게이트를 밀고 올라오는 것을 못 막으면 우리 모두 죽습니다.”

“네에?”

소울이 말하고 있는 시간에도 아래층에서는 총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지동운은 할 수 없이 2조 두 명을 내려 보내야 했다.

“2조가 내려가서 도와줘!”

“네.”

“예.”

두 명의 저격병은 자신의 저격총과 장비를 지동운의 발아래 가져다 놓고는 기관단총과 배낭 하나씩을 매고 아래로 내려갔다.

“소울아! 너 안가니?”

“강우 아저씨, 저 무기 없어요. 내려가려면 소총을 들고 있는 아저씨가 내려가셔야지요.”

“아!”

혹 떼려다 혹을 붙인 격이었다.

송강우는 자신이 말하고도 놀라서 급히 자신의 소총을 풀어 소울에게 주려다 소울이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젓자 그냥 엉거주춤한 상태로 멈춰 섰다.

소울은 송강우에게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옥상으로 올라오는 입구를 향해 턱짓을 했다.

아무 말 없는 무언의 압박에 송강우는 할 수 없이 소총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가 막히네. 이래서 배려가 반복되면 의무가 되고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가 되는구나. 자기가 싸우기 싫으면 그냥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무기도 없는 나보고 내려가라고 난리야?’

소울은 그세 좀 친해졌다고 송강우를 믿는 마음이 생겼다가 이런 일을 당하고 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일은 항상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큰 교훈이 될 것이다.

‘눈 감으면 신장 떼어가는 세상이라더니…….’

그는 더 이상 아래층에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은 이제 할 만큼 했다.

직업군인이 2명이나 내려갔고 하늘위에 소방헬기와 군용 수송헬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헬기가 내리면 제일 먼저 헬기를 타고 이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으아아악!”

“고블린들이 들어왔다.”

“빨리 옥상으로 올라가!”

그때, 아래층에서 환자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왔다. 평소에는 잘 걷지도 못하는 환자들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에 소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빌어먹을, 지금까지 잘 있다가 왜 갑자기 바리게이트가 뚫렸지?’

고민해봐야 아래층에 없었던 그에게 답이 나올 리 없었다.

아래층에서 지속적으로 총소리가 났다. 그리고 잠시 후, 국정현을 업고 올라오는 정혜자 수간호사의 모습이 보였다.

소울이 그들에게 다가가 국정현을 대신 업고 소방헬기가 내릴 장소 근처로 옮겼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고블린들이 환풍기 통로를 타고 들어왔어.”

국정현의 말에 소울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는 고블린들이라면 얼마든지 환풍기 통로를 타고 올라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계단을 올라오느라 힘을 소진한 정혜자와 그녀를 보조했던 간호사들이 세차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헉헉헉, 의사 선생님이 고블린들에게 잡혀 죽었어요.”

소울은 정혜자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그래도 고블린에게 칼침을 맞은 자신의 배를 봉합수술해준 인턴이었다. 그가 고블린들에게 죽었다는 말을 듣자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게 힘이 생긴다면 고블린이란 고블린은 모조리 잡아 지상에서 아예 씨를 말려버리겠다.’

소울은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하지만 당장은 그도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병원에서 탈출하여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었다.

“환자들은 다 올라왔어요?”

“네. 몇몇 환자들이 고블린들에게 붙잡혀갔지만요.”

“대부분의 환자는 모두 옥상에 올라왔어요.”

“간호사들도 무사히 올라오셨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환자들을 옥상으로 이동시키는 일이 조금만 늦었다면 아마 끔찍한 대형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아래층에서 아까와는 달리 규칙적인 총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저격병들이 쏘는 총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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