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제 8 장 - 탈출 =========================================================================
국정현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울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옥상을 통해서 탈출하는 방법은 헬기 밖에 없어요.”
“수고했다.”
국정현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도 예상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울도 더 이상 그의 앞에 서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병실로 걸어갔다.
1인용 병실로 돌아온 그는 간호사가 가져다 놓은 자신의 가방을 꺼냈다.
그는 즉시 환자복을 벗어 던지고 옷을 갈아입었다. 낡은 청바지에 티셔츠로 갈아입은 그는 양말을 신고 겨울용 패션스니커를 신었다.
혹시 몰라 허리 가방에 중요한 소지품을 챙겨 넣은 그는 등에 작은 배낭을 하나 메고는 밖으로 나왔다.
간호 데스크에 온 그는 즉시 국정현과 정혜자를 불러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합니다. 이렇게 강남 한복판에 있는 종합병원의 환자를 후송하지 않고 고블린들의 위협에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은 있을 수는 없어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네요.”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당장 전화를 해서 알아봐야겠구나.”
국정현은 급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소울은 그가 듣거나 말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일이 너무 늦어요. 당장 인터넷과 SNS에 우리의 급한 상황을 알려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아직 불길이 치솟고 있지는 않지만 전기가 끊어졌으니 스프링클러도 사용이 불가능 합니다. 머지않아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큰 화마가 닥치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그전에 수송헬기를 이곳으로 불러 탈출해야 합니다.”
“일단 난 내 나름대로 아는 인맥을 동원하여 도움을 청해볼게.”
국정현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지 계속 스마트폰을 붙잡고는 어디론가 자꾸 전화를 걸었다.
“저도 간호사들과 함께 인터넷과 SNS에 저희의 급한 상황을 알리도록 할게요.”
“네.”
소울은 정혜자가 간호 데스크 안으로 들어가 간호사들을 소집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인터넷과 SNS로 들어가 열심히 구조요청을 시작했다.
‘과연 이렇게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소울은 잠시 손가락을 멈추더니 생각을 했다.
그는 하던 짓을 멈추고 즉시 방송국과 신문사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하나씩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방송국 TTN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긴 강남 세븐 종합병원입니다. 저희는 지금 고블린들에게 공격을 당해 고립되어 있습니다. 제보를 하려고 하니 사회부 기자를 바꿔주세요.”
“네에? 그게 정말이세요?”
“제 핸드폰 전화번호 찍혔죠? 장난전화 같으시면 그쪽에서 이리로 전화해서 확인해보세요. 대신 빨리하셔야 합니다. 여기 있는 환자들 모두 정부와 군의 직무유기에 의해 모조리 죽게 생겼어요.”
“알겠습니다. 잠시 만요.”
소울은 일단 정부와 군의 직무유기라는 말로 심각성을 더했다. 법을 잘 모르니 직무유기가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급한데 자신이 한 말이 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알게 뭐란 말인가?
강남 세븐 종합병원이 현재 몬스터들에게 점령됐다고 알려졌으니 장난전화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전화 바꿨습니다. 저는 사회부의 정송화 기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저희는 강남 세븐 종합병원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2동 8층인데 7층의 환자들도 같이 있습니다. 정부와 군에서 후송을 위한 수송헬기를 보내주지 않아 다 죽게 생겼습니다.”
“네에? 정말이세요?”
“정말입니다.”
“혹시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에게 보내 줄 수 있나요?”
얘기를 들어보던 정송화 기자는 바로 증거를 요구했다. 전화 한 통화에 무작정 기사를 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송화 기자의 말에 소울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5분 뒤에 다시 걸게요. 사진과 동영상을 같이 보내드리지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성함과 전화번호 그리고 병원과의 관계도 좀 알려주세요.”
“물론입니다. 기자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세요?”
소울은 기자와 서로 신상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자 즉시 7층, 8층 그리고 옥상을 돌아다니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아차, 그냥 까톡을 하자고 할 것을 그랬구나.’
소울은 어차피 정송화 기자에게만 기사를 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과 동영상을 잘 묶어서 미리 저장을 해놓았다.
그리고는 정송화 기자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네, 전화 기다렸습니다. 이소울 씨 맞죠?”
“네, 맞습니다. 정 기자님 우리 이러지 말고 까톡으로 하죠?”
“좋아요. 제가 까톡 아이디 불러 드릴게요.”
소울과 정송화 기자는 곧바로 까톡을 사용해 사진과 동영상을 교환하고 전화로 대화를 했다.
“정송화 기자님은 혹시 정부와 군이 왜 강남 세븐 종합병원의 환자를 방치해 놓고 있는 지 아십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요.”
“착오라고요? 하하하! 여기 옥상에 저격병이 헬기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그들도 몇 번이나 본부에 이곳 환자를 후송하기 위한 수송헬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급한 일이 있어서 바쁘다는 말만 했다고 합니다. 분명히 뭔가 있습니다. 아까 사진 보내드린 것 중에 저격병들의 모습도 있으니까 확인해보세요.”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이쪽에서 기사를 내면서 한번 알아볼게요. 마지막으로 페이스톡 한번만 하죠?”
“의심이 참 많으시네요. 저도 지금 정송화 기자님과의 대화 녹음 다 했습니다. 나중에 피 볼 생각 없으시면 확실하게 도와주세요.”
“걱정하지마세요. 어떻게 하던지 수송헬기 그쪽으로 빨리 보내도록 해볼게요.”
“좋습니다.”
소울은 까톡의 기능 중 페이스톡을 실행했다. 그러자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를 할 수 있는 영상통화가 시작됐다.
“주변을 보여주세요.”
“그러지요.”
소울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면서 자신이 강남 세븐 종합병원에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뭐 제일 쉬운 일은 창가로 가서 사거리에 있는 장갑차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확실하네요. 혹시 생방송으로 현장을 취재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희 지금 무척 급하거든요? 지금 아래층에 화재가 난 것 같아요.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죠.”
“그럼 부탁드립니다.”
소울은 전화를 끊고 이번에는 포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유명 신문사로 전화를 했다. 온오프라인 양쪽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신문사였다.
“안녕하세요? 한일일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특종제보 때문에 전화했어요. 사회부 기자님과 지금 통화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소울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5분을 기다려도 사회부 기자는 나오지 않았다.
‘한일일보, 너 어디 두고 보자.’
소울은 이를 빠드득 갈고는 곧바로 다른 신문사로 전화를 했다.
“고구려 일보죠? TTN 방송국의 사회부 정송화 기자님의 소개로 전화 드립니다. 특종제보는 편집부장님께 직접 말씀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번에는 고구려 일보의 편집부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TTN 방송국 사회부 기자인 정송화의 이름까지 팔았으니 받으면 좋고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그 사이 북쪽 창문 쪽에서는 점점 연기가 심해지고 있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고구려 일보 편집부장 강강한입니다.”
“네? 강간한이라고요?”
“아닙니다. 강강한입니다.”
“아! 네에.”
이름이 참 거시기 했다.
소울은 얼른 그의 이름에 관한 이미지를 머리를 털어 흩어 버렸다. 그리고 강강한에게 정송화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들려줬다.
“이게 사실이라면 틀림없이 특종이네요.”
“사실입니다. 증거를 바로 보내드리지요. 까톡 아이디 좀 줘보세요.”
소울은 그의 전화번호와 까톡 아이디를 받자 곧바로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줬다.
소울이 보낸 정보를 확인한 강강한은 느닷없이 소울에게 독점 취재계약을 제안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정송화 기자님에게 같은 기사를 넘겨줬어요.”
“하지만 지금부터 나오는 정보는 저희 고구려 일보에서 독점으로 가지고 싶습니다.”
“저희는 그것보다 수송헬기가 빠르게 왔으면 좋겠는데요?”
“아까 저에게 장갑차가 있는 사거리를 보여줄 때 전 이미 이소울씨의 제보를 기사화했습니다. 제 말이 맞는지 지금 바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세요.”
“네에? 그게 정말이세요?”
소울은 얼른 인터넷을 열어봤다. 정말 자신이 한 제보가 인터넷에 속보로 올라와 있었다. 고구려 일보의 편집부장인 강강한은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때요?”
“감사합니다.”
“독점 취재계약을 하시겠어요?”
“어떻게 독점으로 계약을 합니까? 전화로도 가능하나요?”
“물론입니다.”
“왜 이렇게 독점 취재계약에 목을 매세요?”
소울은 강강한 편집부장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거 한방이면 썩은 놈들 많이 쳐낼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독점 취재계약을 해주시면 제가 취재비로 천만 원 드리겠습니다.”
“천만 원이요?”
“네. 혹시 모자라면 더 드릴 의향도 있습니다.”
소울은 강강한의 말에 순간 혹했다. 하지만 더 줄 수 있다는 말에 뭔가 기분이 더러워졌다. 아무래도 강강한은 이 정보를 이용해서 정부나 군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것 같았다. 물론 그의 말대로 구린 놈들을 쳐내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울은 돈을 받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제가 돈을 거절할 만큼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을 구해야하는 일을 돈과 결부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제가 나중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어쨌든 전 빨리 이곳을 탈출하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강강한은 그렇게 전화통화만으로 독점 취재계약이라는 것이 성립되었다고 좋아했다.
전화를 끊은 소울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SNS에 정송화와 강강한에게 넘겨준 사진과 동영상을 무차별 살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강남 세븐 종합병원은 오늘의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소울은 SNS의 놀라운 위력에 새삼 감탄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띠리리링…….
정혜자 수간호사의 스마트폰에 미친 듯이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소울씨, 정부와 군부대에서 자꾸 전화가 와요.”
“다른 말은 하지마시고 수송헬기 빨리 보내달라고 하세요.”
“네.”
정혜자는 소울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었다.
“소울씨! 지금 TV에서 강남 세븐 종합병원에 관한 보도가 나오고 있데요.”
“소울아! 너 무슨 짓을 한 거냐? 아까까지만 해도 난색을 보이던 지인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서로 전화를 해오네?”
“잘됐네요. 수송헬기 빨리 보내달라고 하세요. 저기 연기 올라오는 것 보이죠?”
소울이 북쪽 창문을 가리키자 국정현과 정혜자가 동시에 고개를 위아래고 끄게 끄덕였다.
“알았다.
“네.”
두 사람은 정말 필사적으로 전화에 매달렸다.
수송헬기가 오지 않는다면 고블린들보다 불에 먼저 타서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이 먼저 났는지 전기가 나가면서 불이 났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가다간 모두 죽은 목숨이다. 수송헬기가 빨리 와야 하는데…….’
소울은 불안한 심정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하지만 근심어린 그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간호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게 된 소울은 간호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연기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불길이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예요. 일단 환자들을 모두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세요. 이제부터 우리는 이 종합병원에서 탈출을 하게 될 겁니다.”
“탈출을 한다고요?”
“시간 없으니 어서 빨리 환자들을 옥상으로 옮기세요.”
“네.”
몸이 편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러다 패닉상태에 빠지면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몸을 바쁘게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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