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제 8 장 - 탈출 =========================================================================
‘카카오커를 사냥한 사냥꾼 타이로스, 에퀴테스 왕국의 구국의 영웅인 기사 바론, 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역시 포기하지 않는 불굴(不屈)의 정신이 아닐까? 나에게도 불굴의 정신이 있긴 하나?’
소울은 바론에게 받은 감동을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이제 돌아가면 자신은 쥐뿔도 없는 시궁창인 현실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던 자신도 포기하지 않고 타이로스와 바론처럼 멋진 인생을 한번 살아보리라 다짐했다.
소울은 드림하우스로 돌아왔다.
소울넷 포인트가 얼마나 남아있나 확인해보니 14p 가 남아 있었다.
최하급 영혼체험 4번, 하급 영혼체험 1번을 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나쁘지 않아. 절대 나쁘지 않아.”
그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속 한 곳에서는 이 광대한 우주에서 누가 자신의 인생을 보려고 소울넷 포인트를 지불할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솔솔 피어올랐다.
“아껴야겠네.”
결론은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안 쓰고 움켜쥐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언제 세이지 같은 영혼체험 여행자가 나타나 자신의 인생을 엿볼지 알 수 없으니 가지고 있는 소울넷 포인트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영혼체험이라면 그는 소울넷 포인트를 아끼지 않고 사용할 생각이었다.
“이제 돌아가자.”
소울은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편안하게 누웠다.
눈을 감고 몇 번 심호흡을 하고나자 그는 곧 나른한 느낌을 받으며 어딘가로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고른 숨소리만 방안을 울리고 있었다.
* * * * *
“불이야!”
“불이 났다.”
“뭐야? 정말이야?”
“갑자기 웬 불이야?”
갑자기 8층 병실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다.
누군가 불났다고 소리치자 병실에 누워있던 환자들까지 몽땅 복도로 나와 데스크를 향해 뛰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현이 크게 한숨을 들이쉬더니 천지가 떠나갈 듯 큰소리를 질렀다.
“닥쳐!”
그제야 마치 8층 전체가 정지(pause) 버튼을 누른 것처럼 조용해졌다.
“어떤 놈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고 다니는 거야?”
“…….”
사람들은 서로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면서 제일 처음 불났다고 소리친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도 국정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디서 불이 났는지 아는 사람 없어요?”
국정현은 윽박질러서는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예의 있게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손을 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북쪽 창가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래요? 정혜자 수간호사, 간호사 한명 보내서 확인해줘요.”
“네.”
정혜자는 어린 간호사 한명을 바로 북쪽 유리창이 있는 곳을 향해 보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간호 데스크와 그 주변을 밝히던 전등이 일제히 꺼졌다.
“으헉!”
“불 나갔다.”
“전기가 나갔어요?”
“왜 갑자기 전기가 나갔지?”
“고블린이 껐나?”
…….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을 굳히고 천정을 쳐다봤다.
현대사회에서 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바로 18세기로 돌아간다.
밤이 두렵지 않은 불야성을 이룬 거리가 이제는 어둠의 공포로 물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이 병원 안에 수많은 고블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기가 나간 어둠은 몬스터인 고블린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야간 시력이 떨어지는 인간들에게 이제 밤은 공포로 물들게 될 것이다.
“소울이 어디 있니?”
“소울이 아까 자던데요?”
“그럼 좀 데리고 오세요.”
국정현은 즉시 소울을 찾았다. 정혜자는 국정현의 말에 즉시 1인실을 향해 걸어갔다.
“누가 옥상에 올라가서 주변을 좀 살펴보세요. 그리고 옥상에 있는 저격병 중 한 명을 모시고 오세요.”
“네, 제가 다녀올게요.”
송강우가 직접 옥상으로 움직였다.
“일단 다들 병실로 돌아가 있으세요. 불이 나면 큰일이니까 다들 함부로 불 피우지 마세요.”
“네.”
국정현의 당연한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국정현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낮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저들은 혹 덩어리나 마찬가지다.
사지 중 어느 하나 이상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은 전쟁으로 치면 당연히 후송해야 마땅한 자들이다. 이들을 지키며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일은 사실 너무나 힘이 들었다.
안 그래도 자원이 모자란데 쓸데없이 많이 먹어대는 입이 많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갔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온갖 쌍욕을 하면서 자신을 저주할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간호사들조차 없었다면 그는 진즉에 그들을 포기하고 탈출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또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있구나. 사람을 보지 않고 임무만 보면 남는 것은 후회뿐이거늘…….’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국정현은 자신의 이런 습관화된 사고체계가 어서 빨리 바뀌기를 학수고대했다.
“부르셨어요?”
“아! 소울아, 너 어디서 지금까지 뭐했어?”
“그냥 침대에서 잤는데요?”
소울은 눈을 뜨자마자 어떻게 자신이 방금 잠에서 깨어났는지 알고 왔는지 모를 정혜자의 손에 이끌려 국정현의 앞으로 오게 됐다.
그는 데스크 주변의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에 국정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 일 생겼어요?”
“끝내 전기가 나갔다.”
“이런!”
소울은 국정현의 말에 바로 탈출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 병원에서 탈출하려면 헬기를 타야하는데…….”
“너도 알고 있었구나.”
“우리가 있는 2동에 고블린들이 바글바글한데 어떻게 걸어서 탈출하겠어요. 헬기로 환자들을 후송해야지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국정현은 소울마저 탈출부터 생각하자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던지 탈출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게 다가 아니야. 어디선가 불이 난 것 같아.”
“설마 이 건물에서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북쪽 창문에서 연기가 올라온데…….”
“이런 제기랄.”
소울은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그럼 시간이 없잖아요? 계획은 있으세요?”
“일단 저격병을 불렀으니 그가 오면 본부에 연락을 취하라고 부탁해봐야지.”
“휴우! 이 많은 환자들을 모두 실어 나르려면 대형 군용수송기인 치누크 헬기가 몇 대는 와도 힘들겠네요.”
“그렇지. 모든 환자를 후송하려면 아마 헬기가 여러 대 와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 거야.”
“제일 중요한 것은 제 시간에 헬기가 와주겠냐는 거네요?”
“그건 그렇지.”
그렇다. 그게 정답이었다.
헬기가 오지 않으면 백날 계획을 세워봐야 모든 것이 끝인 것이다.
‘이거 잘못했으면 자다가 죽을 뻔 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이 사태가 빨리 해결되지 않고 있지? 강남에 그렇게 몬스터가 많이 돌아다니나?’
소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종합병원이면 서울에서도 아주 중요한 시설로 분류된다. 전시(戰時)에는 이 정도 규모의 종합병원은 무조건 군대를 보내 지키게 한다.
하물며 지금의 고블린 사태라면 병원의 중요성은 100번을 얘기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남 한복판에 있는 이 종합병원을 정부와 군(軍)에서 방치하다 시피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뭔가 부정부패가 끼어 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울아, 아무래도 네가 옥상에 올라가서 탈출할 방법을 찾아봐라.”
“네에? 제가 어떻게요?”
소울은 국정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자신이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옥상에 가서 탈출할 방법을 찾는단 말인가?
그는 국정현이 혹시 대가리 어디에 총을 맞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아이, 정말 너무하네요? 지금 그게 3일 전에 칼침 맞아 죽을 뻔한 놈에게 할 말이에요?”
“미안하다. 지금 믿고 맡길 사람이 너 밖에 없어서 그래. 부탁한다.”
국정현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울은 화를 내려다가 그의 얼굴 표정을 보자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는 현재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런 사람에게 막 화를 낼 정도로 소울은 몰상식하지 않다.
거기에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국정현은 지금 7, 8층 전체 환자와 간호사의 생명을 지키려고 나름 노력중이 아닌가?
“확실히 국씨 아저씨는 머리가 좀 이상하네요. 일단 옥상에 한번 올라가 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소울은 고개를 흔들며 계단을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저격병들이 옥상에 있다고 했지? 지금까지 이들은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
그는 호기심에 일단 저격병들을 찾아봤다.
당장 옥상 한쪽 끝에서 저격병과 얘기하고 있는 송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소울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그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제가 지금 바빠서 조금 있다 내려갈게요.”
“우리 국 대장이 빨리 데리고 오라고 했단 말입니다. 어서 갑시다. 잠깐 가서 얘기만 하고 올라오세요.”
“아저씨, 정말 답답하시네. 지금 저희들이 고블린 저격하는 것 안보이세요?”
“그럼 허구한 날 저격을 하면서 왜 우리는 구출해주지 않는 거요?”
“저도 환자 후송할 수송헬기 보내달라고 몇 번 무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당장 급한 일이 있어서 나중에 보내준다고만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합니까?”
“왜 못해요? 부사관 이시잖아요?”
“제 계급이 수송헬기를 막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계급인줄 아십니까? 그런 일은 최소한 장교는 돼야 가능해요.”
소울은 옆에서 둘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가만히 고개를 흔들고는 병원 옥상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저격병은 2인1조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옥상 모서리에 각각 자리를 잡고앉아 눈에 보이는 고블린들을 하나씩 저격하고 있었다.
대부분 지상에서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이었는데 가끔 건너편의 1동이나 3동의 창문에 고블린의 얼굴이 보이면 저격을 해서 제거하기도 했다.
소울은 불이 났다는 북쪽으로 가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빌어먹을, 정말 불이 난 것 같은데? 이러면 곤란해지는데…….’
그제야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옥상 서쪽으로 가서 냉철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봤다.
왼쪽에 도곡 중학교가 보였고 북쪽에는 삼호 아파트가 보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열어 지도 어플을 열어 거리를 확인했다.
‘탈출은 개뿔, 여기서 어디로 탈출하란 말이야? 2동 옥상 꼭대기에서 줄을 내린다고 해도 북쪽의 삼호 아파트는 직선으로 거의 95m나 되고, 서쪽의 도곡 중학교 옥상을 목표로 한다고 해도 40m 는 될텐데…….’
소울은 깨끗이 포기하고 남쪽으로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가서 주변을 살펴봤다.
오른쪽에는 대로변에 붙은 상가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큰길과 사거리에는 장갑차가 몇 대 서 있었는데 고브린들이 눈에 보이는 데로 족족 기관총을 쏴서 제거하고 있었다.
소울은 병원 입구 쪽에 있는 상가건물 옥상을 보면서 지도 어플로 거리를 확인했다.
‘10m? 하늘위에서 본 거리는 멀지 않네. 그런데 우리 2동 건물 옥상에서 상가 2층 건물 옥상까지 연결할만한 로프가 있을까?’
지상으로 직선으로 로프를 내려서 바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직도 고블린들이 주변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입구에 있는 상가 옥상으로 로프를 연결해서 탈출을 하는 것을 사거리에 있는 장갑차에서 보고 지원을 해준다면 충분히 안전하게 탈출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사지가 멀쩡한 젊은 사람이나 로프를 타고 저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겠다. 환자나 간호사는 힘들겠어.’
소울은 일단 로프를 타고 상가 옥상으로 탈출하는 방안은 머릿속 한쪽에 잠시 접어놓았다.
‘다른 방법은 없나? 화재가 났으니 본격적으로 불길이 치솟으면 빠져 나갈 시간이 얼마 없을 텐데…….’
소울은 다시 한 번 옥상을 둘러보고는 8층으로 내려갔다.
그의 눈에 승강기가 들어왔다. 당장 사용할 수만 있으면 이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전기가 나갔으니 승강기를 쓰는 것은 불가능해. 설사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도 중간에 문이 열려버리면 고블린들에게 식량 자동판매기가 되어 버릴 수도 있어.’
그는 승강기를 한참동안 노려봤지만 결국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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