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제 7 장 - 영혼체험 =========================================================================
“아참, 너 배고프겠다. 3일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을 거 아냐?”
“맞다. 정말 그러네요. 밥! 밥 주세요.”
“나한테 말하면 어떻게 해? 간호사들에게 말해야지.”
“아참! 그렇지.”
국정현이 살짝 오해를 해준 덕에 소울은 자신에게 후유증이 남아 있다고 끝까지 우길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덕분에 그는 무거운 의무에서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8층으로 올라오는 계단을 밟을 수가 있었다.
“소울아! 고민하지 말고 하나만 찍어라. 셋 다 쫓다간 하나도 못 잡아.”
국정현이 그의 뒤에 대고 소리를 쳤다.
소울은 도대체 저게 무슨 의도로 하는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 무슨 개소리야?”
그는 국정현의 말을 가볍게 개소리로 치부하며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가 3일을 굶은 것은 맞나보다. 식충이들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자 소울은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소울은 서둘러 8층 데스크로 가서 아는 얼굴을 찾았다. 다행히 채희라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소울씨? 뭐 필요한 것 있어요?”
“저, 배가 고파서요.”
채희라는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어떡해? 정말 배가 고프시겠구나?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기다리자 그녀의 손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그릇이 쟁반에 담겨 나왔다.
“다행히 보급품 중에 곰탕도 있었네요. 이쪽으로 앉아서 드세요.”
“고마워요.”
소울은 데스크 앞으로 의자를 가져왔다.
뜨거운 곰탕에 수저를 넣고 국물을 퍼서 천천히 먹었다.
채희라는 그의 반대편으로 의자를 끌어당기더니 턱을 괴고 앉았다. 그녀가 눈동자를 빛내며 소울을 쳐다보자 그는 얼굴이 괜히 화끈거렸다.
‘아! 이 분위기는 도대체 뭐지? 너희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무슨 희망고문 하는 거야?’
소울은 3일 만에 먹는 곰탕의 맛이 정말 꿀맛이라고 생각했다. 가급적이면 고개를 들지 않고 고개를 곰탕에 처박고 먹는 것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참 맛있게 잘 드시네요?”
“네에?”
소울은 채희라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윽!’
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채희라가 두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아니 그것보다 그녀가 두 팔을 모은 자세가 되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가운데로 절로 모아지며 안에 깊은 계곡을 만들어 낸 모습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와 당황스러웠다.
그는 불연 듯 곰탕보다 다른 것이 먹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이씨, 이거 자꾸 왜 이러지?’
소울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아직 젊고 피가 뜨거워서 그런지 달아 오른 머리가 쉽게 차가워질 것 같지 않았다.
다시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다행히 먹는 것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하나 더 가져다 드릴까요?”
“네? 아니에요. 아니 하나 더 주세요.”
소울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채희라가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소울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날씬이 간호사로 유명한 채희라의 늘씬한 뒤태가 그대로 그의 망막에 비춰졌다.
꿀꺽!
소울은 지금 자신이 침을 삼킨 건지 곰탕 국물을 삼킨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뭔가를 삼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몸의 상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그렇게 채희라가 가져다준 곰탕을 한 그릇 더 먹고 디저트로 초콜릿까지 챙겨 먹은 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 그는 1인용 병실을 자신의 개인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가 혼자 그곳에 들어가 쉬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 배부르다. TV나 볼까?’
그는 게으른 소처럼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규칙적으로 채널을 바꾸면서 보자 어느새 그의 시선이 뉴스 방송에 고정되었다.
“저게 뭐지? 보석인가?”
소울은 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뉴스에 나온 전문가들이 해외뉴스에서 전해오는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활발한 토론을 하는 모습이 그의 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마정석 혹은 마석(磨石)으로 불리는 돌입니다.”
“보석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지구에서는 일체 발견할 수 없는 일종의 에너지 결정체입니다.”
“결정체요?”
“크리스털 아니 수정 아시지요?”
“네, 그렇습니다.”
“미국에서는 에너지 결정체(Energy Crystal)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생긴 것은 수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돌에는 일종의 생체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생체에너지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직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의 유명한 연구소는 지금 모두 이 결정체가 가지고 있는 생체에너지에 대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뉴스의 진행자와 초대 손님인 일명 전문가라고 소개된 남자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정석, 마석, 결정체라고 불리는 정체모를 돌에 대해 설명을 계속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이 에너지 결정체는 오직 몬스터의 사체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모든 몬스터는 이런 에너지 결정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몬스터도 있고 가지고 있지 않는 몬스터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형보다는 중형, 중형보다는 대형이 에너지 결정체를 가지고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강력한 몬스터일수록 더 강력한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는 결정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둘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사전에 약속된 대사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만큼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얘기였다.
‘뭐야? 그럼 고블린 중에서도 마석을 가지고 있는 놈이 있다는 얘기잖아? 혹시 저게 나중에 돈이 되는 것 아니야?’
소울은 마석이란 놈에게 진한 쇳가루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돈일 될 것 같다는 말이다.
그는 일단 생각을 접고 그들이 하는 말을 더 들어봤다.
“몬스터의 몸에서 에너지 결정체라는 것이 나온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의 생활과 무슨 직접적인 상관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정 수치의 결정도를 가지고 있는 에너지 결정체를 이용하면 막대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네에? 그럼 이게 무슨 원자력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까?”
뉴스 진행자는 약간 과도한 표정을 지으며 놀라워했다. 전문가라는 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현재 미국의 실리콘벨리에 있는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연구 자료에 의하면 결정체를 이용한 전력생산의 단가가 원자력발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원자력 발전이나 화력발전과는 달리 그 어떤 환경오염도 일으키지 않는 청정에너지입니다.”
“그렇다면 이건 에너지 혁명이라 부를 정도의 놀라운 발견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에다 결정체를 가공하여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은 그렇게 어려운 기술도 아니라고 합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 지금 강남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는 몬스터 사태가 어떤 면으로 보면 현재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고갈 사태를 해결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도 있겠군요.”
뉴스 진행자는 몬스터 사태로 가족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이 들으면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전문가는 오히려 한 술 더 떴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뛰어난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이 작은 결정체인 마석을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 또는 결정도가 더 높은 상급의 결정체를 누가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따라 국력이 결정되는 사회가 올 것입니다.”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결정체 확보 전쟁에 뛰어 들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반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능력자라는 특수집단만의 리그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 말씀은 능력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가 곧 가장 강대국이 될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같은 인구대국을 주목해야 합니다.”
소울은 TV를 보면서 앞으로 자신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어디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마석, 능력자, 결정체 발전소, 결정체 확보 경쟁, 인구대국, 몬스터 부산물, 능력자를 위한 서비스 산업, 몬스터에 대한 정보, 차원의 균열에 대한 정보…….’
그는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쭉 나열해봤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내가 확실히 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차선으로 능력자와 관련된 직업을 구해야 한다. 과연 그런 직업의 종류는 뭐가 있을까?’
알 수 없었다.
그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그 정도까지 미래에 대한 예측은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충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미래가 어떻게 돌아갈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일단 4일만 잘 버티자. 살아남아서 능력자 테스트를 받자. 나머지는 그 이후에 생각하자.’
소울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다시 뉴스를 시청했다.
“그럼 결정체의 결정도에 따라 등급이 생긴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현재 세계 유수의 연구소들이 내부적으로 결정체의 결정도에 따라 등급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최하 F등급에서 최고 S등급의 결정체가 분류될 것입니다.”
“그럼 결정체의 등급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날 수 있겠군요.”
“물론입니다. 결정체의 결정도뿐만 아니라 등급의 차이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가격에 변동이 있게 됩니다.”
“기하급수적이라는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
“등급은 단순히 결정도의 수치 차이가 아닙니다. 생체에너지의 집적도는 등급에 따라서 작게는 2배 많게는 수백, 수천 배의 효율 차이를 보입니다.”
“그럼 E급 결정체의 가격이 F급 결정체 보다 배 이상이나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배 이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결정도와 등급에 따라 생체에너지의 집적도와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정확한 액수를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현재 F급 최하급 몬스터로 분류되고 있는 고블린의 사체에서 나오는 결정체와 E급 몬스터의 사체에서 나온 결정체의 수치는 최소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가격은 최소 10배 이상 차이가 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소 10배라면 최대는 몇 백 배도 될 수 있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 이상은 더 논할 필요가 없겠네요.”
소울은 뉴스에서 나오는 말이 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뉴스가 끝났어도 소울의 머릿속에 남은 결정체에 대한 잔상(殘像)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소울은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 * * * *
“어라? 드림하우스에 또 들어왔네?”
소울은 자신이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드림하우스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일단 스마트폰을 통해 소울넷 인터페이스를 불러들였다.
혹시라도 세이지가 접속해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 접속해 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위자드 마스터인 세이지가 허구한 날 소울의 기억창고에 접속하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말이 안됐다.
소울은 세이지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 만나고 싶었는데 불발로 끝나자 입맛이 좀 썼다.
“쩝, 일단 들어온 김에 영혼체험이나 한번 하고 가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소울은 기왕 소울넷에 접속했으니 영혼체험을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는 소울넷 상점으로 들어가서 최하급 영혼체험을 구매했다.
이미 두 번이나 체험한 경험이 있어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영혼체험을 빠르게 선택할 수 있었다.
“로만 행성의 에퀴테스 왕국의 기사 바론이라…….”
소울이 선택한 대상자는 로만 행성의 왕국 에퀴테스의 기사단장인 바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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