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6 제 7 장 - 영혼체험 =========================================================================
어린 타이로스는 걷기 시작하면서 나무칼과 장난감 활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뛰기 시작하면서 마을 주변으로 아버지와 같이 사냥을 다녔고 16살이 되기 전에 어지간한 동물은 혼자서도 척척 사냥을 할 수 있게 됐다.
성인식을 치르고 난 타이로스는 아버지와 같이 타크 산맥에 있는 다른 사냥꾼 마을로 갔다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의 딸 제이카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의도적인 만남인줄도 모르고 아버지가 깔아 놓은 미끼를 덥석 물어 버린 타이로스는 결국 1주일 만에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마을이 떠들썩하게 결혼식 파티까지 마친 타이로스는 3일후, 제이카를 데리고 당당하게 집으로 귀환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혼 생활은 그의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그렇게 3남 1녀를 얻을 때까지 꿀처럼 달고 행복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였을까?
아니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기한 하늘의 시샘이었을까?
타이로스가 마을 최고의 사냥꾼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할 무렵, 마을에는 결국 큰 사단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다크 산맥의 중심부에 살던 대형 몬스터인 ‘카카오커’ 한 마리가 같은 수컷과 벌인 영역싸움에서 패하고 타이로스가 살고 있는 마을 근처까지 나와 둥지를 튼 것이다.
카카오커는 새로 정한 영역에서 최상급 포식자로 군림하기 위해 제일 먼저 사냥꾼의 마을을 습격했다. 대부분의 사냥꾼이 마을 밖으로 사냥을 나간 터라 마을 안은 카카오커에 대항할 전력이 없었다.
노인과 여자 그리고 아이들만 남아있던 사냥꾼의 마을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고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카카오커가 충분히 배를 채우고 사라지고 난후, 마을로 돌아온 사냥꾼들은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마을에 남아 있던 그들의 부모와 아내와 자식들은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카카오커에게 살해당했던 것이다.
복수를 다짐한 타이로스와 사냥꾼들은 그때부터 카카오커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형 몬스터인 카카오커와 사냥꾼들과의 싸움은 달걀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카카오커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그를 죽이기는커녕 자신들이 거꾸로 하나씩 죽어나갔다. 마지막 사냥꾼까지 잡혀 죽고 나자 타이로스는 피눈물을 흘리며 타크 산맥에서 도망쳐 나왔다.
타이로스는 마을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크리켓 왕국의 수도로 옮겨갔다. 그는 카카오커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끝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그 시간이 무려 40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이용해 용병을 구해 보내기도 하고, 기사나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했지만 결국 그들 누구도 카카오커를 잡아 죽이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카카오커의 먹이가 되었을 뿐이다.
절망한 타이로스는 결국 모든 것을 자포자기 하고 높은 절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급류 아래로 뛰어 내렸다. 하지만 하늘은 그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크리켓 왕국의 현자인 아리스토의 눈에 띤 타이로스는 그에게 목숨을 구함을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또한 아리스토의 도움으로 전 우주적인 영혼체험 여행시스템인 소울넷에 접속할 수 있는 행운도 얻게 됐다.
타이로스는 아리스토의 가르침과 소울넷을 통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열심히 수련을 거듭하여 10년 만에 카카오커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사냥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카카오커의 목을 잘라 자신의 부모님과 아내, 자식들과 사냥꾼 마을 사람들의 영전(靈前)에 바친 타이로스는 그제야 소리 내어 엉엉 울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타이로스는 수십 년 동안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크리켓 왕국의 공주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가정을 꾸리고, 크리켓 왕국의 새로운 현자로써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게 됐다.
때때로 소울넷을 통해 영혼체험을 하며 여생을 즐기는 것은 하늘이 그에게 내려준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타이로스의 인생의 전반을 본 소울은 큰 감동을 받았다.
카카오커에게 가족을 잃고 슬퍼할 때 그는 같이 울었고, 복수를 다짐할 때 그는 같이 분노했다.
카카오커에게 쫓겨 타크 산맥을 나오며 이를 갈던 그를 보며 소울은 같이 이를 갈았고 절벽에 떨어져 죽을 때는 그도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현자 아리스토에게 구함을 받고 가르침을 받을 때 그는 타이로스를 응원했고 카카오커의 목을 칠 때 그와 같이 그는 통쾌감을 느꼈다.
소울은 타이로스의 인생을 체험하며 정신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게 됐다.
타이로스가 산 인생이었지만 소울에게는 마치 자신이 타이로스가 되어 한평생을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타이로스의 인생을 체험해보며 세이지의 기억의 창고에 접속하여 영혼체험을 했을 때와는 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이지의 기억의 창고에 접속해서 영혼체험을 할 때는 지금과 같은 감동과 현실감이 없었어. 아무래도 이상해. 이것은 마치 세이지가 다른 영혼체험자들이 자신의 기억의 창고를 접속해서 영혼체험을 할 때 어떠한 깨달음도 얻지 못하도록 무언가로 막아놓은 느낌이야. 도대체 이 자식이 자신의 기억창고 속에 무슨 개수작을 부려 놓았지?’
그는 생각할수록 세이지가 괘씸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은 일단 자신의 가설에 불과했다. 그러나 소울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맞는다고 확신했다.
‘한번 확인을 해볼까?’
자신의 가설을 확인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다른 대상자를 하나 더 물색하여 영혼체험을 해보는 방법이었다.
그때 불연 듯 소울은 현실에 있는 자신의 몸이 걱정되었다. 배에 칼침을 맞았는데 무사한지? 혹시 덧나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내가 이렇게 소울넷에 오래 있어도 괜찮은 건가? 혹시 이러다가 바로 골로 가는 것은 아니겠지?’
소울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일단 돌아가서 자신의 몸이 멀쩡한 지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아무리 즐거운 영혼체험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육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이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곧바로 드림하우스로 돌아왔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멋진 체험을 다시 한 번 했지만 마음에 근심이 있어서 그런지 아까와 같은 감동은 없었다. 그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확인해보니 세이지는 이미 모든 영혼체험을 마치고 자신의 기억창고와의 접속을 끊은 채 사라지고 없었다.
“어라? 소울넷 포인트가 또 올랐네?”
소울은 기록을 확인해봤다.
[세이지, 1주일 전 기억을 열람]
[세이지, 1주일 전 기억을 재 열람]
[잔여 소울넷 포인트 15]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세이지는 소울의 1주일 전 기억을 두 번이나 열람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덕분에 2 소울넷 포인트를 더 획득하여 15 소울넷 포인트가 되었지만 소울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있어. 세이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뭔가가 내 기억 안에 있어. 그게 뭘까?’
소울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지구에 나타난 몬스터에 관심이 있나?’
그는 여러 가지 추리를 해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르는 것은 아무리 때려 죽여도 모르는 것이다.
세이지에 대한 생각은 나중에 천천히 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머리가 빠개지도록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굳이 스트레스 받으며 뇌를 혹사시킬 이유가 없었다.
소울은 오늘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안방으로 갔다.
넓은 침대에 몸을 뉘었다.
푹신한 침대가 마치 자신의 몸을 물 위에 띄워 놓은 것 같은 편안함을 선사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잠시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자 그의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소울은 그렇게 잠에 빠져들었다.
* * * * *
눈을 깜빡 거렸다.
기분이 좋았다.
몸의 상태는 최상인 것 같았다.
마치 하루 종일 푹 잘 잔 것 같이 심신이 가뿐해져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봤다.
병실 안이었다. 그것도 무려 1인실이었다.
“휴우우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자는 사이 몬스터 난동 사건은 이미 끝나 있는 것 같았다.
“어머? 깨어나셨네요?”
“어? 안녕하세요?”
“네에? 호호호, 그게 뭐에요? 3일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니 일어나자마자 그런 인사에요?”
“네?”
정윤이 간호사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소울의 이마에 손을 대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열은 없네요.”
“아! 네.”
소울은 눈을 깜박거리며 정윤이를 쳐다봤다.
하얀 피부에 호수처럼 맑고 커다란 눈은 마치 순정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주인공의 모습이었다.
괜히 이 종합병원의 3대 미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혈압 좀 재 볼게요.”
“네.”
소울은 ‘네’라는 말 외에는 다른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자신의 팔을 만지작거리고 석류 같은 입술이 바로 눈앞에서 아른거리자 그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제기랄! 더럽게 예쁘네!’
바로 눈앞에서 정윤이의 얼굴을 보게 되니 ‘얼짱 간호사’라는 그녀의 별명이 오히려 부족할 정도였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체향인지 향수인지 알 수 없었지만 폐부로 들어오는 그 냄새는 그에게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소울은 슬쩍 이불을 끌어 당겨 자신의 아랫배를 덮었다.
하지만 이미 성이 날대로 난 녀석은 이불을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티가 났다.
다행히 정윤이는 그런 소울의 사정은 전혀 알지 못했다.
“혈압은 정상이네요. 드레싱 할게요.”
“네?”
“배에 난 상처 소독해야 돼요.”
“윽! 네에!”
소울은 당황해서 계속 단답형으로 밖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윤이는 소울의 환자복을 걷어 올리고 그의 배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 상처가 다 낫네?”
“예?”
“소울씨는 고블린인가 뭔가 하는 몬스터가 들고 있던 칼에 복부가 뚫려서 급히 수술을 했거든요. 그런데 수술 후 상처를 봉합한 자리가 다 나았어요.”
그는 정윤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확실히 고블린에게 칼침을 맞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잠깐만요.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
정윤이가 급히 병실 밖으로 나갔다.
소울은 상처가 나았다는 말에 잘됐다고 생각하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제야 병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어? 저건 총소린데, 아직도 몬스터 사태가 끝난 것이 아닌가? 설마 3일 동안 그 상태 그대로는 아니겠지?’
소울은 어쩐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칼침까지 맞아가며 8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옥상에서 고블린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자신이 쓰러지기 전(前)과 후(後)가 똑같다면 그는 무척 억울할 것 같았다.
갑자기 병실의 문이 활짝 열리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소울씨, 깨어나셨네요?”
“괜찮으세요?”
“소울아! 괜찮니?”
“어머, 정말 정신을 차렸네?”
…….
송강우가 사람들을 밀치고 제일 먼저 그의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강우 아저씨?”
“그래. 몸은 좀 어때?”
“저요? 멀쩡한데요.”
“다행이다. 난 또 네가 죽는 줄 알고 걱정했잖아.”
소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송강우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고하라와 채희라 그리고 정윤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만 해도 안구가 정화되는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녀들로 인해 뒤쪽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최우석, 강현우 등은 마치 투명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소울의 주의를 전혀 끌지 못했다.
‘이건 꿈이야. 세상에 병원의 3대 미녀가 모두 나를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니…….’
소울은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옆으로 좀 비켜요!”
그때, 정혜자 수간호사가 초를 쳤다.
“정말 수고했어요.”
“아니 뭘요.”
정혜자는 소울의 옆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넸다.
“의사 선생님, 뭐하세요. 빨리 살펴보시지 않고요?”
“아! 네.”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재촉을 하자 뒤쪽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안경을 쓴 젊은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가만히 살펴보니 저번에 본 바로 그 인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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