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5 제 7 장 - 영혼체험 =========================================================================
“휴우!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다 내가 경험이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야. 지금이라도 영혼체험의 단계를 하급으로 바꾸면 된다. 그리고 다시는 누가 내 육체를 대상으로 빙의를 시도할 틈을 내주지 않아야해.”
소울은 도움말을 참조해서 소울넷의 설정으로 들어가 영혼체험의 단계를 중급에서 하급으로 설정했다.
최하급으로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영혼체험의 단계가 너무 낮으면 소울넷을 이용하는 영혼체험자들이 아예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그의 생각이 아니고 도움말의 조언이다.
그는 설정에서 빙의 페이지를 찾아 누가 빙의를 시도하던지 반드시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도록 바꿨다. 이제 빙의는 원천적으로 완전히 봉쇄됐다.
그는 도움말을 충분히 살펴보고 소울넷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또한, 여러 가지 설정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바꿨다.
“휴우, 이제 다됐다. 세이지는 아직도 영혼체험을 하고 있군. 이참에 세이지를 나의 조언자 자리에서 삭제하고 새로운 조언자를 찾아 바꿔버릴까?”
그는 순간적으로 세이지와의 관계를 이쯤에서 정리해버릴까 생각해봤다.
“아니야. 괜히 굳이 그를 자극할 필요는 없어. 당분간 모른 척 하며 지내다가 나를 찾아오면 그때부터 필요한 정보만 뽑아먹으면 되는 거야.”
소울은 세이지에 대해 더 이상의 기대를 접었다. 그리고 세이지가 자신을 대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도 그를 대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그를 차갑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한 위치에 있는 자가 다시 자신 앞에 또 나타난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세이지를 최대한 얼레고 달래서 최대한 우려먹어야 한다.
“뭐 굳이 당장 무 자르듯 인연을 끊을 필요는 없겠지. 나중에 좀 더 지내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그때 자르자.”
소울은 그렇게 세이지와의 관계정립을 해나가기로 하고 소울넷의 영혼체험 인터페이스에서 나왔다.
그의 몸은 어느새 드림하우스 안에 서 있었다.
사실 드림하우스 자체도 소울넷에서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중 하나이니 결론적으로 그는 아직도 소울넷에 접속 중이었다.
자신이 루시드 드림을 꾸는 것이 아니라 소울넷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울은 마구 음식을 퍼먹거나 격한 운동을 하는 삽질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소울넷 상점으로 들어갔다.
소울넷 상점은 소울넷 포인트가 생기자 그의 스마트폰에 새롭게 등장한 입체 아이콘이었다.
“뭐를 팔고 있을까?”
소울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소울넷 상점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뽀복!
화아악!
그의 눈앞으로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소울넷 상점>
영혼체험
삶의 체험
전송
아이템
미션
빙의
영혼의 유희
기타
설정
소울넷 상점은 다양한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영혼체험부터 설정까지 각각의 카테고리를 한 번씩 눌러서 살펴봤다.
먼저 제일 앞에 있는 영혼체험 카테고리를 열어봤다.
[최하급 영혼체험: 1p]
[하급 영혼체험: 10p]
영혼체험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최하급에서 한 등급 위인 하급의 영혼체험이 10포인트나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도움말에서 하급 영혼체험 한 건당 5포인트를 준다고 했는데 그럼 10포인트 중 반은 소울넷이 가져가는 구조인가?”
소울은 순간 영혼체험자가 지불하는 총 포인트의 50%나 가져가는 소울넷이 좀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영혼체험이라는 말도 안 되는 영혼 여행 메커니즘을 개발한 소울넷이라면 이 정도 이득을 가져가는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르긴 해도 유지 & 보수를 하는데도 이 정도 포인트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았다.
“가만 최하급 영혼체험은 1포인트를 주니까 결국 소울넷은 최하급 등급의 영혼체험 제공자에게는 무료 봉사를 하는 셈이네.”
이 정도면 아주 양심 없는 시스템은 아니었다.
소울은 현재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확인했다.
[소울넷 포인트: 14p]
최하급 영혼체험을 14번 하거나, 하급 영혼체험 1번에 최하급 영혼체험을 4번 할 수 있는 포인트였다.
소울은 이미 세이지를 통해 최하급 영혼체험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급 영혼체험을 한번 해봐야겠다.”
최하급 영혼체험은 3D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하급 영혼체험은 분명히 그것보다 뭔가 더 깊은 체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무 기억에나 10포인트나 되는 하급 영혼체험을 쓸 수는 없었다. 반드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자의, 꼭 필요한 기억을 위해 써야했다.
소울은 다음 카테고리인 삶의 체험을 열어봤다.
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등급이 낮아서 안 보이는 걸까? 아니면 포인트가 모자라서 뜨지 않는 것일까?”
당장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포인트를 더 모은 다음에 확인 해보기로 했다.
다음 카테고리인 전송을 열어봤다.
대상자의 위치와 이름을 알면 포인트와 아이템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진 칸이 보였다.
만약 어떤 대상자에게 1000포인트를 보내고 싶다면 2000포인트를 집어넣으면 된다. 쉽게 말해 보내는 포인트의 반은 전송비가 된다는 것이다.
소울은 어째 아직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꿈같은 얘기라고 생각했다.
“흥, 나한테 누가 포인트를 낭비하면서까지 포인트를 전송해주겠어.”
그는 바로 다음 카테고리인 아이템을 열어봤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로는 가장 싼 아이템도 살 수 없나 보다.
미션, 빙의, 영혼의 유희 카테고리도 연속적으로 열어봤다. 예상한데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는 기타 카테고리를 열어봤다.
<기타>
기부
신고
보고
조언
관계
작은 카테고리가 주르륵 나타났다.
기부는 말 그대로 소울넷을 포함한 누군가에게 기부할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다.
신고는 소울넷에서 금하고 있는 여러 가지 불법행위를 하고 있는 영혼체험자를 고발하는 곳이다.
보고는 자신이 영혼체험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지식과 정보를 소울넷을 통해 보고하고 공유하는 장소 같았다.
비록 소울에게 개방이 되지 않았지만 소울넷 안에 어떤 학회나 연구단체가 활동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소울은 조언을 열어 보았다. 그리고 눈을 빛냈다.
조언은 포탈사이트인 ‘너입어’의 지식인 서비스보다 훨씬 전문적인 소울넷의 조언(advice) 시스템이다.
최소 사용 등급이 하급이라서 당장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영혼체험 등급이 하급으로 올라가면 아마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관계를 열어보자 대뜸 세이지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 옆에 조언자라는 마크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으음, 확실히 내 조언자가 분명하군.”
소울은 조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그대로 넘기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설정을 확인해 본 그는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얼마나 최하급 영혼체험을 해야 하급으로 등급이 올라갈까?”
도움말이 도움이 많이 됐지만 결정적으로 이럴 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가 알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그냥 열심히 영혼체험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올라가게 될 것이었다.
소울은 결국 최하급 영혼체험을 한 번 더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그 대상자가 세이지는 아니었다.
“세이지는 도대체 얼마나 더 내 기억의 창고 속을 유영하고 다닐 생각이지?”
그는 세이지가 아직도 영혼체험을 진행하고 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그는 자신의 어떤 점에 호기심이 끌려 영혼체험 대상자로 선택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소울은 작게 한숨을 쉬며 소울넷 상점의 카테고리 중 영혼체험을 선택했다.
소분류 중 최하급 영혼체험을 다시 선택하자 그의 앞에 거대한 홀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점과 선 그리고 원으로 만들어진 입체 홀로그램에는 붉은 점과 푸른 점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붉은 점 하나를 콕 찍어봤다.
[영혼체험 불가능 상태입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영혼체험이 불가능하다고 나왔다.
이번에는 푸른 점을 하나 찍었다.
[영혼체험 가능 상태입니다.]
영혼체험이 가능한 상태의 푸른 점을 선택하자 홀로그램의 좌우에 대상자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이런 식으로 대상자를 선택하는 거구나.”
소울은 고개를 끄덕이면 다른 푸른 점 하나를 콕 찍어봤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대상자의 정보가 나타났다.
“가만 무조건 눈에 보이는 대상자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대상자를 선택해야겠다.”
소울은 검색창에 생존, 사냥, 무공 같은 몇 가지 단어를 입력하여 대상자를 줄여나갔다. 갑작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한 몬스터에 의해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기왕 영혼체험을 한다면 지금같이 험한 세상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법을 배울만한 대상자를 선택하는 것이 좋지.”
소울은 직업이 사냥꾼인 대상자 중 10년 이상을 같은 직업에서 종사한 노련한 사냥꾼 한 명을 영혼체험 대상자로 선택했다.
[켈로그 행성 타이로스를 영혼체험 대상자로 선정하시겠습니까?]
소울은 ‘네’ 버튼을 눌렀다.
[타이로스는 영혼체험 등급을 하급까지 일반 개방했습니다. 영혼체험을 시작합니다. 선택한 영혼체험의 단계는 최하급입니다. 즐거운 영혼체험 여행이 되십시오.]
영혼체험을 시작했다.
파앗!
알림창을 다 읽자, 소울은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우와!”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롤러코스트를 탄 사람처럼 기대 섞인 감탄성을 냈을 뿐이다.
콰하아아아아아아!
그는 또다시 우주를 가로지르는 신비한 체험을 시작했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엄청난 별무리 속을 가로지는 기분에 소울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뒤를 돌아봤다.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태양계가 멀어지고 그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아스라니 멀어져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소울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이번에는 또 어느 행성으로 가는 거야? 켈로그 행성이라고 했는데…….’
그는 새로운 모험을 시작하는 초보자 모험가처럼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세이지의 경우에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영혼체험을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한번 경험이 있는 상태라 처음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타이로스의 기억의 창고에 접속한 소울은 눈(目)과 같이 커다란 창문을 보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지? 타이로스의 전체적인 삶의 기억을 체험할까? 아니면 세이지의 경우처럼 일정 기간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살펴볼까?’
둘 다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었다.
전체적인 삶의 기억을 체험하면 말 그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타이로스의 삶 전체를 빠르게 모니터링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의 기억을 집중적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게 살피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울은 잠시 고민을 하다 이번에는 타이로스의 전체적인 삶을 한번 체험해보기로 했다.
‘그래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야지. 나무만 보다가는 숲을 놓칠 수가 있어.’
소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울넷 포인트가 14포인트나 있다고 생각하니 한번 정도는 이렇게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는 마음의 결정을 하자 곧 손가락을 들어 눈처럼 커다란 창문에 가져갔다.
희미하게 빛나는 기억의 편린들이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소울은 설정을 바꾸고 타이로스의 기억 전체를 러프(rough)하게 훑어보기를 선택했다.
화아악!
창문 안에서 환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타이로스의 기억이 3D 영화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갓난아기에서 시작한 그의 기억은 조금씩 그의 몸을 키워가며 여러 가지 독특한 추억들을 소울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타이로스는 켈로그 행성의 중앙 대륙에 있는 타크 산맥의 한 사냥꾼 마을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사냥꾼을 하늘이 내려 준 천직(天職)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은 광활한 타크 산맥을 무대로 각종 동물과 몬스터를 잡아 생계를 유지했다.
주로 동물과 몬스터의 가죽을 모아 분기별로 마을에 내다팔고 필요한 무기와 생필품을 얻어 온 이들은 그 어떤 영주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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