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4 제 6 장 - 이세계의 마법사 =========================================================================
현재 자신의 몸은 반투명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흐릿한 자신의 몸을 보니 영혼 상태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봤다. 지구가 엄청난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태양계가 멀어지고 그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가 아스라니 멀어져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전면에 희미하게 반투명한 긴 터널 같은 것이 쭉 이어진 것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한 차원의 통로처럼 느껴졌다.
소울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니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어느새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되어 자신이 나아가는 통로의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통로를 벗어나 우주로 향했다.
‘아!’
말 그대로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시공간의 터널 속을 빠른 속도로 날아가다 보니 빛의 속도로 수십 년을 가야하는 먼 곳도 눈 한번 깜짝거릴 시간에 휙 하고 뒤로 지나가버렸다.
태양, 행성, 위성, 혜성, 소행성, 항성, 성단, 성운 등 천체(天體, celestial body)의 모든 아름답고 장엄한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놀랍다. 우주는 이렇게 넓고 아름다웠구나. 이런 광활한 우주에 살아가고 있는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왔던 거지? 우주의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구 안에서, 그것도 남북이 갈려 반 토막이 난 좁디좁은 한반도 안에서, 정말 죽어라 아등바등 대며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가고 있구나.’
소울은 광대한 우주를 가로지르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자,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며 시원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정말 자신은 전혀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무조건 전력질주를 해온 것 같았다.
출세를 위해, 성공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나중에 돈 벌면 다 갚아 줘야지’라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마저도 이제는 마음 깊은 곳 어느 한 구석엔가 팽개쳐둔 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고 그동안 돈이라도 많이 모아 놓았느냐? 아니면 크게 성공을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내 보일 것 하나 없이,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오포세대의 중심에서 고졸 알바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존재로 시간만 죽여가고 있었다.
‘그동난 참 한심하게 살았네. 진짜 이제부터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하면서 살아보자.’
소울은 그렇게 다짐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소울이 생각을 바꾸자 그의 운명의 수레바퀴도 조금씩 행로가 바뀌어졌다.
사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은 소울에게 큰 행운이었다. 이것은 그의 좁은 시야가 넓어지고 막혀있던 사고가 깨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그의 영혼의 그릇이 조금씩 확장되어가고 있었다.
비록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앞으로 영혼체험을 하게 될 소울의 입장에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능력이 바로 영혼의 그릇, 즉 영적인 능력의 성장이었던 것이다.
소울은 본능적으로 우주를 가로지르는 이 영혼의 항해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차분하게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를 자신의 눈에 가득 담아 두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그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영혼의 항해는 끝나고 드디어 소울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스팟!
‘드디어 도착했다.’
소울이 도착한 곳은 사방이 어둠에 쌓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어? 여기에도 창문이 있네?’
그의 자신의 바로 앞에는 커다란 눈 모양의 투명한 창문을 하나 발견 했다.
안을 살펴보자 그 안에서 뭔가 희미한 빛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소울은 얼굴을 창문에 바짝 붙이고 들여다봤다. 그러자 희미한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절로 알게 됐다.
‘아! 이건 세이지의 기억이구나.’
소울은 창문에 두 손을 붙이고 반대편에 보이는 수많은 희미한 빛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세이지의 기억의 창고에 접속하셨습니다. 원하시는 기억을 선택하시면 영혼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소울넷 포인트가 모자라 실시간 삶의 체험은 불가능합니다.]
소울은 자신의 눈앞에 내려오는 알림창을 빠르게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보니 이 창문은 바로 눈 모양의 입체 아이콘을 열었을 때 나타난 소울넷의 그 창문과 똑 같이 생겼구나.’
결국 소울은 자신의 소울넷 창문에서 세이지의 소울넷 창문으로 이동한 셈이었다.
‘세이지의 어떤 기억을 봐야 나한테 도움이 될까? 태어날 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볼까? 아니야. 나에겐 소울넷 포인트가 없어. 그런 식으로 하다간 죽을 때까지 봐도 끝이 나지 않을 거야. 그럼 위자드 마스터가 된 다음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볼까? 그것도 아니야. 고차원의 마법을 쓰는 것을 내가 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어? 차라리 마법을 처음 배울 때의 기억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구나.’
소울은 나름 머리를 열심히 굴린 후에 세이지의 어떤 기억을 볼지 결정했다.
기억을 검색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창문에 눈을 고정시키고 원하는 기억을 생각하면 세이지의 기억창고에서 알아서 찾아주었다.
소울은 검색이 된 기억들 중에 원하거나 필요한 기억을 선택하기만 하면 됐다.
그는 세이지가 처음 마법을 배울 때를 생각했다. 그러자 세이지의 몇 개의 기억이 그가 있는 창문 쪽으로 다가왔다.
소울은 그 중에서도 세이지가 가장 어렸을 적의 기억을 선택했다.
화아악!
그의 손가락이 보고 싶은 기억을 선택하자 곧 환한 빛이 터져 나오더니 창문에 세이지의 기억이 확대되어 나타났다.
소울은 마치 세이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세이지가 눈을 깜빡거리자 창문도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놀랍구나. 마치 내가 세이지가 된 기분이야.’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세이지가 들판으로 냇가로 뛰어다니며 돌아 다녀도 그는 세이지의 시점에서 구경만 할 수 있었다.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고 보는 시점조차 바꿀 수 없었다.
하지만 소울은 그런 핸디캡에 신경을 쓰지 않고 마치 자신이 어린 세이지가 된 것처럼 그의 기억속의 편린(片鱗) 사이를 유영하고 다녔다.
‘나쁘지 않네. 영혼체험이라는 것은 마치 영화처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거잖아?’
소울은 사실 별로 불만이 없었다.
우주를 가로지르는 영혼의 항해 체험만으로도 그는 신세계를 체험한 기분이었다.
거기에다 어린 세이지가 산으로 들로 도시로 냇가로 마음껏 뛰어 다니며 노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세이지가 마법을 처음 배울 때를 집중해서 살펴보면 자신도 마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은 기대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억이 진행됐다.
어린 세이지는 그저 신나게 놀러 다니다가 공기 중에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기억은 그게 전부였다.
물론 이런 생각이 단초가 되어 나중에 세이지가 마나를 느끼게 되고 마법사에 입문하게 된다.
하지만 소울에게는 조금 더 명확한 느낌이 필요했다.
어린 세이지의 막연한 생각정도로는 마법은커녕 마나에 대한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 판타지 소설을 많이 봤나? 이 정도만 해도 누구는 잘만 마나를 느끼고 마법사가 되던데…….’
그렇게 첫 번째 영혼체험은 세이지의 즐거운 어린 시절을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 버렸다.
‘대략 1주일 정도를 살펴본 건가? 생각보다 금방 끝났네. 그래도 3D입체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기분이군. 보는 것이나 체험하는 것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구나.’
소울은 얼마 본 것 같지도 않았는데 금세 끝나버린 첫 번째 영혼의 체험을 아쉬워하며 세이지의 기억의 창고를 떠났다.
콰하아아아아아아!
또다시 우주를 가로지르는 영혼의 항해가 시작되었다.
올 때와 비슷하게 갈 때도 역시 장관이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좀 여유롭게 우주를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소울은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자신의 기억 속에 박아 넣기 위해 열심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구경을 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은 원래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아! 돌아왔구나.”
소울은 눈동자 모양의 투명한 창을 바라보며 소울넷의 인터페이스를 살펴봤다.
“어라? 세이지는 아직도 영혼체험 중이네.”
왼쪽 상단에 세이지의 얼굴이 떠 있었다.
그 옆에 그가 보고 있는 기억이 작은 화면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건 내 최근 기억인데…….”
소울은 잠시 그가 보고 있는 자신의 기억이 뭔지 살펴보더니 세이지가 그동안 본 기록을 훑어보았다.
컴퓨터로 말하면 일종의 로그 기록이었다.
“어? 이렇게 많이 봤어? 등급도 나와는 다르잖아?”
소울은 세이지에 관련된 기록을 살펴보다가 조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영혼체험 등급 중급]
[세이지, 1년 전 기억을 열람]
[세이지, 빙의 시도. 본체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실패.]
[세이지, 6개월 전 기억을 열람]
[세이지, 3개월 전 기억을 열람]
[세이지, 1개월 전 기억을 열람]
[소울넷 포인트 14 획득]
“영혼체험 등급이 왜 중급부터지? 분명히 난 최하급이었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빙의 시도라니? 본체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서 실패했다? 그럼 본체가 의식을 회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내 육체를 그대로 빼앗길 수도 있었다는 것 아닌가? 빙의를 시도하는데 내 허락도 받지 않고 임의로 할 수가 있는 거였어?”
소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도움말을 찾아보자.”
그는 즉시 스마트폰을 꺼내 책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러자 텅 빈 책장이 하나 나타났다.
“도움말이 어디 있다는 거지?”
소울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책장 맨 위의 첫 번째 칸에 책이 한 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눈빛을 빛내며 책을 손으로 잡았다.
화악!
그러자 책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그의 눈앞에 커다란 책이 소환되었다.
“이게 도움말인가 보구나.”
소울은 책의 목차를 보며 이 책이 도움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검색 칸에 한글로 ‘영혼체험 등급’이라고 썼다.
그러자 알림창이 하나 내려왔다.
[소울넷의 기본 언어를 지구의 한글로 하시겠습니까?]
소울은 당연히 ‘네’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동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던 소울넷의 글자들이 모조리 한글로 바뀌어 버렸다.
“오오오! 진즉에 기본 언어 설정을 할 걸 그랬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글을 보는 것보다 모국어를 보는 것이 확실히 이해가 빨랐다. 결정적인 것은 도움말 전체가 한글로 바뀌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소울의 손가락이 신들린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소울넷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고 순진했는지 알 수 있었다.
“으음, 결국 내가 병신이었군. 영혼체험의 기초 설정이 중급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둬서 1포인트에 중급까지 볼 수 있게 해놓았다니……. 완전히 호구가 되어 있었구나.”
소울은 도움말을 읽어보지도 않고 무작정 영혼체험부터 한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거기에다 자신의 기억 속으로 영혼체험을 하고 있는 상대방의 기억 속으로 영혼체험을 떠나다니, 이건 뭐 빙의를 해서 내 육체를 뺏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나 진배없었군.”
자신의 조언자가 되었다는 세이지의 말만 믿고 덜컥 그의 기억속으로 영혼체험을 떠난 것은 정말 치명적인 실수였다.
다행히 무슨 이유에선가 자신의 육체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세이지의 빙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도 모르고 처음에는 소울넷 포인트를 14포인트나 벌었다고 좋아했다. 또한 세이지에 대해 고마운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말처럼 남의 말을 너무 쉬게 믿으면 안 되는 것이다. 까딱 잘못됐으면 그는 세이지의 영혼의 유희 대상자가 되어 육체를 빼앗기고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영혼 상태로 지루한 기다림을 이어갔을 지도 몰랐다.
============================ 작품 후기 ============================
좀 늦었습니다. 일이 늦게 끝나서......^^;; 즐거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