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 제 6 장 - 이세계의 마법사 =========================================================================
“목소리가 안 들려요! 제 목소리는 들리나요?”
소울은 노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을 건넸다. 노인도 손짓 발짓을 해가며 뭐라고 얘기를 했다. 하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왜 안 들리는 거지?”
소울이 실망한 표정으로 말하자 역시 노인도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노인이 뭔가 생각난 듯 얼굴을 굳히며 허공에 마구 손짓을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냥 손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판을 두드리는 듯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저게 도대체 뭐하는 짓이지?”
따단!
그때였다.
갑자기 그가 보고 있는 창문 앞에 예쁘게 포장된 상자 같은 입체 아이콘이 나타났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소울은 상자 아이콘은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창문 안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자꾸 누르는 시늉을 했다.
“누르라는 건가?”
소울은 상자 아이콘을 눌러봤다.
뽀복!
팡파라팡!
상자 아이콘이 열리면서 팡파레 소리가 들렸다.
소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안을 살펴봤다. 상자에서 나온 것은 메가폰 모양의 또 다른 입체 아이콘이었다.
노인은 계속 누르라고 손가락으로 독촉을 했고, 소울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메가폰 모양의 입체 아이콘을 눌러야 했다.
뽀복!
메가폰 모양의 입체 아이콘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창문의 한쪽 구석으로 기어 들어가 떡 하니 자리를 잡았다.
“אתה יכול לשמוע אותי?”
“어? 이제 말이 들리네?”
소울은 드디어 노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메가폰은 소리를 듣게 해주는 아이템인 모양이었다.
“נתתי לך את הנשמה נקודת נטו שלי. בגלל כוח הנשמה שלך הוא כל כך נמוך”
“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혀 이해가 안 됩니다.”
“אלוהים אדיר! אתה משגע אותי. הפעם אני אקנה לך מכשיר תרגום בשבילך.”
“도대체 뭐라는 거야? 이래서는 얘기가 안 되겠는데…….”
소울은 빠른 속도로 말을 하며 손을 움직여대는 노인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따단!
그때였다.
또다시 창문 앞으로 예쁘게 포장된 상자 같은 입체 아이콘이 나타났다.
“또 뭔가 보냈네?”
소울은 같은 일이 두 번이나 일어나자 저 노인이 자신에게 뭔가를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소울이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자 창문 안의 노인은 열심히 손가락을 누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역시 누르라는 거겠지?”
그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상자 아이콘을 눌렀다.
뽀복!
팡파라팡!
팡파레가 울려 퍼지며 이번에는 붉은 입술 모양의 입체 아이콘이 떠올랐다.
“이것도 누를까요?”
소울은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한숨을 쉬면서 계속 누르라고 손가락을 움직이며 재촉했다.
말은 못 알아들어도 눈치는 100단인 소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뽀복!
소울이 붉은 입술 아이콘을 누르자 역시 입술 아이콘도 허공으로 붕 뜨는 것 같더니 메가폰 아이콘 옆자리로 날아가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고 보니 그곳이 원래 입술 아이콘이 있어야 할 자리인 것처럼 보였다.
“이보게! 이제 내 말 들리나?”
“네, 들립니다. 들려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하하하! 이거 소울넷(soulnet)에서 대화 한번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소울넷? 그게 뭐에요?”
소울이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묻자 노인은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자네는 이게 소울넷인지도 모르고 접속을 했다는 말인가?”
“접속을 하다니요? 그럼 혹시 이게 무슨 SNS나 인터넷 또는 통신 네트워크 입니까?”
“호오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접속을 했네? 아니 그냥 접속이 된건가? 자네 혹시 소울넷에 처음 접속하는 건가?”
“네, 처음인데요.”
소울의 말에 백발의 노인은 손바닥으로 박수를 치며 어린아이같이 좋아했다.
“하하하! 그럼 내가 조언자(mentor)가 된 거구나!”
“조언자요?”
“그렇군. 자네가 소울넷에 처음으로 접속해서 조언자를 신청했고 내가 마침 근처에 여행 중이어서 조언자가 될 수 있었던 거야.”
“그 조언자라는 것이 되면 어르신에게 좋은 건가요?”
“물론이지. 앞으로 자네가 얻는 소울넷 포인트에 따라 나도 조언자 포인트를 일정 비율로 받게 되거든…….”
“소울넷 포인트요?”
“아차! 자네 소울넷 접속이 처음이라고 했지? 그럼 제일 먼저 인터페이스부터 배우고 그 다음 튜토리얼을 해야겠군. 도움말을 찾는 것도 배워야 하고…….”
“인터페이스, 튜토리얼? 설마 이거 무슨 꿈속에서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겠죠?”
소울은 온라인게임에서 들었던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자 살짝 노인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노인의 얼굴은 북유럽의 산타클로스처럼 볼이 붉고 어린아이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와 하얀 수염이 없었다면 젊은 사람으로 오해를 할 것 같았다.
‘외계의 인류인가?’
그의 특이한 복장을 보면 절대 지구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정식으로 내 소개부터 하겠네. 나는 아트란의 위자드 마스터 ‘세이지’라고 하네.”
“아트란의 위자드 마스터 세이지라고요?”
“그래. 정확했어.”
세이지는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 당당함에 소울은 왠지 자신이 한 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저, 저는 대한민국에 이소울입니다.”
“대한민국이라면 어디에 있는 곳인가?”
“지구라고 태양계에 있는데요?”
“그렇군. 대충 어떤 은하계에 속해 있는지 알 것 같아. 우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어떻게 보면 우주의 끝에서 끝이라고 볼 수 있겠어.”
“아트란이라는 곳이 그렇게 먼 곳에 있군요.”
세이지는 그가 생각한데로 확실히 외계인이었다. 아니 외계의 인류였다.
생김새가 완전히 사람과 똑같으니 외계인이라고 하기는 뭔가 좀 미안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앞으로 외계의 인류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럼 서로에 대해서는 영혼체험을 통해 알아가기로 하고 오늘은 소울넷의 기본적인 개념과 인터페이스 그리고 튜토리얼을 해보도록 하지.”
“네, 감사합니다.”
“소울이 살고 있는 은하계와 내가 살고 있는 은하계가 너무 멀어서 그리 오래 대화를 나눌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내 말을 끊지 말고 계속 듣도록 하게! 알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제일 먼저 소울넷이 뭔지 설명해주겠네.”
그때부터 소울은 정신을 집중해서 세이지로부터 소울넷에 대한 기본 개념과 근원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소울넷(Soulnet)은 우주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중 가장 고차원의 상위 지성체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영혼의 유희 시스템이다.
물론 우주선을 타고 직접 몸을 움직여 우주를 여행을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소울넷은 생각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지성체의 영혼을 보다 안전하게 우주 반대편이나 다른 차원의 은하계로 여행시킬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전 우주적인 영적 네트워크 또는 영적 여행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고차원의 상위 지성체들은 소울넷을 통해 종종 하위 지성체의 몸을 빌려 영혼의 유희를 떠난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소울넷의 최상위 레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세이지 같은 위자드 마스터도 소울넷의 등급은 중급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인류와 유사인류는 영혼과 육체의 구조상 영혼의 유희는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같은 지성체의 꿈속에 들어가 기억을 읽거나 삶의 체험을 공유할 수는 있다.
또한, 소울넷 포인트를 많이 사용하면 잠깐이나마 빙의까지도 가능해진다.
소울넷에 접속하는 지성체의 99%는 다른 지성체의 꿈속에 들어가 그들의 기억을 읽거나 삶의 체험을 공유하는 영혼체험을 주로 한다.
“소울넷의 기본 개념에 대해 이해했는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 인터페이스에 대해 설명하겠네.”
세이지는 마치 시간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소울은 세이지로부터 소울넷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드림하우스라는 것이 소울넷에서 제공하는 인터페이스의 한 파트(part)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그동안 루시드 드림을 꿨다고 생각한 것은 오해로구나. 루시드 드림이 아니라 소울넷의 인터페이스 안에 들어와 있었던 거였어.’
그제야 소울은 꿈이 너무나도 현실감이 넘치고 생생하다고 느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울은 세이지로부터 스마트폰의 각종 입체 아이콘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차분하게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소울넷의 인터페이스에 대해 모두 이해했는가?”
“네,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이해가 가지 않거나 궁금한 점이 있다면 입체 아이콘 중에 책 모양의 아이콘을 눌러서 도움말을 찾아보게.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세이지는 말을 빨리하는 것이 조금은 힘들었던지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소울은 그의 노고에 살짝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세이지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라도 하듯 한층 밝은 얼굴로 두 눈을 반짝거렸다.
“이제 드디어 튜토리얼을 해보는 시간이 돌아왔네. 내가 자네의 조언자가 된 기념으로 특별히 영혼체험을 시켜주도록 하지.”
“영혼체험을 공짜로요?”
“그래. 소울넷에서 영혼체험을 하려면 반드시 영혼체험 대상자의 허락과 함께 소울넷 포인트가 있어야 하네. 소울넷 시스템을 통해 소울넷 포인트를 지불하면 그중 일정 비율로 영혼체험 대상자에게 소울넷 포인트가 지불되지.”
“아! 그럼 누군가 제에게 영혼체험을 하고 싶다고 접속해오면 제가 허락해야만 가능하고, 소울넷 포인트도 획득하게 되겠군요.”
“정확하게 이해했군.”
소울은 영혼체험을 허락한 대상자에게 소울넷 포인트를 준다는 말에 회가 동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이지를 통해 인터페이스에 대해 배우면서 현재 자신에게는 소울넷 포인트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금세 냉정을 회복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자네에게 특별히 소울넷 포인트를 받지 않고 영혼체험을 하게 해줄 테니까.”
“아! 감사합니다.”
소울은 세이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세이지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하며 웃었다.
“하하하! 오늘은 자네가 수지맞은 날이야. 내가 영혼체험도 시켜주고, 내가 직접 자네를 영혼체험 대상자로 선택했으니 소울넷 포인트까지 벌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그렇군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잊지 말게. 나는 자네의 조언자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물어보라고.”
“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시간이 다 됐으니 이제 서로 영혼체험을 시작하도록 하세.”
“그러지요.”
소울은 살짝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우주의 반대편에 있다는 아트란의 위자드 마스터 세이지의 기억과 삶을 체험할 수 있다니, 이게 얼마나 대단하고 엄청난 모험인가 말이다.
소울은 소울넷에 접속 중인 세이지에게 영혼체험을 신청했다. 그러자 세이지도 소울에게 영혼체험을 신청했다.
[세이지가 당신의 기억과 삶을 체험하는 영혼체험을 하기 원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알림창이 내려오자 소울은 바로 허락버튼을 눌렀다. 거의 동시에 세이지도 그의 신청을 허락하는 버튼을 눌렀다.
[세이지가 당신의 영혼체험을 허락했습니다. 영혼체험의 단계는 최하급입니다. 즐거운 영혼 체험 여행이 되십시오.]
파앗!
알림창을 읽은 순간, 소울은 자신의 몸이 붕 뜨며 어디론가 쏜살같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워터파크의 긴 워터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과 흡사했다.
“으아아아아아!”
소울은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자신의 몸이 점점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강해지더니 이제는 엄청난 속도로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콰하아아아아아아!
우주(space), 그 광대하고 광활한 미지의 개척지가 그의 눈앞에 활짝 펼쳐졌다.
소울은 자신이 마치 SF 영화에서처럼 일정한 크기의 보이지 않는 공간, 아니 터널 속을 빠르게 쏘아져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보기만 해도 자신에게 온통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엄청난 별빛 속을 가로지는 기분에 소울의 비명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엄청나구나. 내가 우주로 나온 건가?’
그제야 소울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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