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제 6 장 - 이세계의 마법사 =========================================================================
“모두 제 지시를 잘 따르면 아무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완벽하게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일을 잘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예.”
“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의욕이 넘쳤다.
소총을 3정이나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더 이상 고블린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울은 두려웠다. 소총을 가지러 완강기를 타고 오르내리면서 보았던 끔찍한 장면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소울씨가 가서 고블린들을 살펴보세요.”
“네.”
소울은 국정현의 말에 바로 중앙계단 쪽으로 다가가 잡동사니들 사이로 보이는 빈틈으로 고블린의 동정을 살폈다.
‘고블린들이 계단 아래쪽에 있구나. 지금이라면 계단을 틀어막을 수 있는 적기다.’
소울은 다시 돌아가 국정현을 비롯한 모두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자 국정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작전은 아까 말 한대로 모두가 힘을 합쳐서 바리게이트를 밀어 잡동사니를 중앙계단 아래로 떨어뜨립니다. 그 뒤 넷씩 짝을 지어 계단의 아래와 위로 올라갑니다. 남은 사람들은 잡동사니를 비롯한 바리게이트를 계단 아래로 던져서 통로를 막아버립니다. 모두 잘 아셨지요?”
“네.”
“예.”
국정현이 두 번이나 설명을 했으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해를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럼 이제 시작합시다.”
국정현이 제일 먼저 휠체어를 밀면서 중앙계단 앞으로 갔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자! 하나, 둘, 셋! 힘껏 미세요.”
“으랏챠!”
“이야앗!”
“으아아아!”
…….
소울과 송강우를 비롯하여 나이롱환자 6명, 간호사들 그리고 힘을 쓸수 있는 모든 환자가 다 달라붙어 바리게이트를 힘차게 밀었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와르르르 우당탕쿵탕탕!
중앙계단 방화문 앞을 틀어막았던 잡동사니가 계단 아래로 떨어지자 엄청난 소음이 일어났다. 아래층에 있던 고블린들이 놀라서 마구 소리를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남은 잡동사니와 바리게이트로 쓴 침대까지 모두 아래층으로 밀어요.”
“네.”
“지동한, 이병태, 김순호, 오범근! 계단 아래쪽을 지키세요.”
“네.”
“이소울, 송강우, 최우석, 강현우! 어서 위층으로 올라가세요.”
“네.”
소울과 송강우가 제일 먼저 계단을 타고 8층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를 최우석과 강현우가 쫓아왔다.
소울은 소총을 앞으로 내민 채 계단 위를 쳐다보며 한발씩 올라갔다.
“강우 아저씨, 엄호해주세요.”
“고블린들이 보이냐?”
“네, 몇 놈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있어요.”
송강우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이는 것이 보였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한 번 삼키더니 용기를 내어 올라갔다.
휘익 탁!
계단을 타고 올라가던 소울이 급히 멈추며 몸을 뒤로 뺐다. 고블린 한 마리가 작은 단창을 날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다행히 단창은 벽에 맞아 박살이 났다.
워낙 조잡하게 만들어진 단창이라서 그런지 쉽게 부서졌다. 하지만 단창이 문제가 아니었다. 소울은 단창 끝에 묻은 고블린의 마비독이 무서웠던 것이다.
자동으로 소총이 위로 들리고 견착한 상태가 되었다. 소울은 이번에는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총구를 위로 들고 눈에 보이기만 하면 점사로 쏴버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캬아아아 크르르릉 카르르릉…….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최소한 3마리 이상이었다.
그는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조심스럽게 올라가던 소울은 순간 뭔가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소울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탕!
크아악!
운이 좋았는지 고블린 한 마리가 가슴을 부여잡고 계단을 굴러 내려왔다.
“아저씨, 이놈 좀 맡아요.”
“그래.”
소울은 굴러 내려오는 고블린을 무시하고 옆을 스쳐 계단 위로 올라갔다. 총에 맞아 계단을 구르는 놈을 잡아 죽일 사람은 많으니 그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계속 계단을 타고 올라가 고블린들을 잡아 주이기로 했다.
푹!
켁!
누군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총 맞은 고블린을 황천으로 보내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은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조금도 계단 위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타타탕!
케엑!
이번에는 계단을 구를 새도 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 고블린의 모습이 보였다.
“8층이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8층에 올라와 있었다.
철컥 철컥!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니 방화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잠겼어요. 올라가보죠?”
“그러자.”
“이번에는 우석 아저씨가 앞장서세요.”
“내, 내가?”
“시간 없으니까 빨리 올라가요.”
“크흠, 그냥 네가 올라가지?”
“저 총알 채워넣어야 해요.”
“알았다.”
최우석은 오만인상을 다 쓰며 미적거렸다. 하지만 송강우가 그의 뒤에 서서 한 팔로 툭 밀자 그제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단 위로 올라갔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하지만 옥상 문이 나오도록 고블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겼는지 확인하세요.”
“어, 안 잠겼어.”
“고블린들이 옥상으로 올라갔나 봐요.”
“그럼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요. 올라가서 다 잡아 죽여야지요.”
“위험하지 않을까?”
“좀 위험해도 반드시 잡아 죽여야 편하게 두 발 뻗고 잠잘 수 있어요.”
“그럼 네가 앞장서라.”
“휴우, 좋아요.”
최우석의 말에 소울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작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나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제가 문을 열면 우석 아저씨는 위쪽을 겨눠주시고 강우 아저씨는 정면을 확인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소울도 나름 머리를 썼다.
그는 한손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고 한손으로 소총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심장이 쫄깃해지며 긴장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소울은 셋을 센 다음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열었다.
휘익 쾅!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소울은 총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총을 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정면에서 고블린 하나가 단창을 쥔 채로 쓰러져 있었다. 아마도 문이 열리자마자 단창을 던져 버리려고 한 모양이었다.
“강우 아저씨, 잘하셨어요. 그런데 우석 아저씨는 왜 쏜 거예요?”
“그, 그냥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어. 총소리 때문에…….”
소울도 같은 이유로 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현재까지 고블린을 3마리 잡았다. 옥상에는 과연 몇 마리나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소울은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가 다시 집어넣는 방법으로 좌우를 확인하고 위쪽도 확인했다.
“제가 정면으로 가서 문 위쪽을 맡을 테니까 강우 아저씨가 오른쪽, 우석 아저씨가 왼쪽을 맡으세요.”
“나는?”
나무 봉에다 칼을 꽂아 만든 창을 들고 있는 강현우가 묻자 소울은 자신을 가리켰다.
“당연히 저를 쫓아 오셔야지요.”
“그래?”
인간은 누구나 차별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말이다.
소울은 강현우가 자신을 쫓아오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더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원거리라면 소총으로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갑자기 달려들거나 뒤쪽에서 기습해오면 강현우가 자신을 보호해주던가 대신 몸으로 막아줄 것이다. 소울은 그렇게 순간적인 대응으로 자신의 안전을 단단히 했다.
이번에는 숫자를 손가락으로 셌다. 세 번째 손가락이 접히자 그들은 일제히 동시에 옥상 문을 통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크와아아 캬아아아 카오오오!
좌우에서 동시에 고블린들이 덮쳤다. 그리고 옥상 문 위로 올라간 고블린 한 마리도 소울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3정의 소총에서 동시에 불을 뿜었다.
소울은 허공에 떠 있는 고블린의 가슴과 목 그리고 머리에 차례로 녹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 보였다.
떨어져 내린 고블린은 그대로 바닥에 몸을 부딪치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놀란 강현우는 창으로 이미 죽어버린 고블린을 푹푹 쑤셔댔다.
소울이 고개를 들어 송강우와 최우석을 살피자 둘 다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
자신을 공격한 고블린은 한 마리였지만 옥상 문 좌우에 숨어 있던 고블린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두 마리씩 숨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 사격으로 좌우에 고블린이 한 마리씩 각각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송강우와 최우석은 이미 고블린 한 마리씩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었다.
“현우 아저씩, 우석 아저씨를 도와주세요.”
“응!”
소울은 소총을 위로 들고 빠르게 송강우를 향해 뛰어갔다.
송강우의 허벅지에서 피가 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소울을 소총으로 고블린을 겨냥했지만 송강우의 몸을 피해 고블린을 명중시킬 자신이 없어 계속 달려오기만 했다.
‘총을 쏴서 죽이는 것은 늦었어. 총검술을 쓰자.’
초등학교 6학년 정도밖에 안 되는 몸을 가진 고블린이 휘두르는 쇠꼬챙이 비슷한 것에 송강우는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소총을 쓸 기회만 있었어도 쏴 죽여 버렸을 텐데 어찌나 칼을 잘 쓰는지 그에게 그럴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송강우에게는 소울이 달려오고 있었다. 당장 그를 상대하던 고블린이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저씨! 뒤로 물러나세요.”
송강우는 소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즉시 뒤로 몸을 던지듯 물러났다. 소울이 그의 몸을 스치며 무서운 속도로 고블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퍽!
우당탕 쿵탕!
마치 미식축구에서 바디차지라도 한 것처럼 소울은 전력을 기울여 달려가 고블린의 몸에 소총을 쑤셔 박았다. 고블린과 소울은 한 몸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소총 끝에 있는 대검은 물론 소총의 총신까지 고블린의 몸속으로 깊이 박혀 들어가 있었다.
고블린은 즉사했다.
그가 쑤신 자리가 정확히 심장이라 찔리는 순간 이미 쇼크사 한 것 같았다.
소울은 죽은 고블린의 가슴을 발로 밟고 소총을 쑥 잡아 뽑았다.
촤아악!
고블린의 녹색의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며 소울의 얼굴에 튀었다. 그는 얼굴에 흐르는 고블린의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급히 주변부터 살폈다.
혹시라도 옥상에 고블린이 더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더는 고블린을 찾을 수 없었다.
“강우 아저씨! 괜찮으세요?”
“으윽, 괜찮다.”
“허벅지는 왜 그래요?”
“조금 스쳤을 뿐이야.”
소울은 고개를 돌려 최우석을 쳐다봤다. 다행히 강현우가 제때 도움을 줘서 가벼운 찰과상으로 끝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소울은 소총을 아래로 내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묘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송강우를 비롯한 최우석, 강현우까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 소울아!”
“네?”
“너, 너 칼 맞았어.”
“네?”
송강우가 손가락을 들어 소울의 배를 가리켰다.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자신의 배에 쇠꼬챙이 같은 칼이 깊이 박혀 있었다.
“으윽, 이게 언제?”
소울은 갑자기 뱃속을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까는 급박한 전투의 와중이라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막상 자신의 두 눈으로 자기 배속을 뚫어버린 고블린의 칼을 확인하자 그제야 미칠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소울은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누군가 바닥에서 자신을 끌어 당기는 것만 같았다.
세상이 순식간에 검은 색으로 변하더니 어느새 눈까풀이 너무 무거워 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아련하게 강우 아저씨가 자신을 부르는 것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소울은 자신의 심장의 고동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울린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었다.
* * * * *
“으아아아악!”
소울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내 배!”
그는 두 손으로 상의를 위로 걷어 올리고 자신의 배를 살펴봤다.
“으응?”
피가 흐르거나 배에 구멍이 뻥 뚫렸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배는 너무나 멀쩡했다.
분명히 고블린의 쇠꼬챙이 칼이 자신의 배를 뚫고 들어간 것을 봤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상처나 흉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 작품 후기 ============================
연참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후원 감사합니다.
(수정: 7-21-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