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17화 (17/492)
  • 00017  제 5 장 - 전투  =========================================================================

    자조적인 미소가 한창 그의 얼굴을 도배하고 있을 때 정윤이 간호사가 그에게 간호사용 카트를 밀면서 다가왔다.

    “소울씨,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뭐에요?”

    “아이 참,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마취 주사에요.”

    “아! 맞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쓰죠? 설마 이 상태로 주사를 놓아야 하는 건가요?”

    “그렇군요. 고블린들이 주사 맞자고 하면 가만히 있을 리 없겠군요.”

    정윤이가 준비를 한 것은 말 그대로 환자들에게 놓기 위한 얇은 주사기였다.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주사기와 주사바늘 모두 좀 더 크고 튼튼한 것으로 준비해주세요. 그래야 저놈들의 가죽을 뚫고 주사하지요.”

    “네.”

    정윤이는 즉시 카트를 다시 밀어 데스크 안쪽으로 들어갔다.

    “소울씨, 이리 좀 와보세요.”

    “네.”

    이번에는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가 소울을 불렀다. 소울은 물먹은 솜 마냥 무거운 몸을 간신히 움직여 다용도실로 갔다.

    “이것 좀 봐주세요.”

    “이게 뭐에요?”

    소울의 앞에는 휠체어를 탄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명이 두 개의 양동이에 뭔가를 각각 쏟아 부으며 긴 막대기로 휙휙 휘젓고 있었다.

    “그건 이분이 설명할 것예요.”

    “이분은 누구세요?”

    “난 국정현이라고 하네.”

    “네? 국정원이요?”

    “아니 그건 내가 일했던 곳이고. 국정현이라고 한다고.”

    “아!”

    국정현은 손목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띠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얘기했다. 이름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 했다.

    “가만, 국정원에서 일했다고요?”

    “하하하, 농담이야. 뭘 그렇게 정색을 하나?”

    “아아! 난 또…….”

    국정현은 머리가 허옇게 센 노인이었지만 어쩐지 정정해보였다. 소울은 정말 그가 국정원에서 일했던 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너무 대놓고 실망하지는 말게. 그래도 이게 만들어 지면 도움이 좀 될 거야.”

    “지금 만드시는 것이 뭡니까?”

    “일종의 화학무기라고나 할까?”

    “네에? 정말이세요?”

    “무하하하하, 자넨 정말 쉽구먼. 이게 화학무기라면 얼마나 좋겠나?”

    소울은 깜짝 놀랐다가 다시 급 실망했다. 국정현은 소울이 놀라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는지 쉬지 않고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으며 그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한참을 그에게 들볶인 소울은 몇 분이 지나서야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최루액이네요. 눈과 피부에 닿으면 따갑고 고통을 느끼는…….”

    “그렇지. 이제 이해를 했구먼. 조합하기가 조금 까다로워서 그렇지 세제와 화공약품 몇 가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손쉽게 만들 수 있지.”

    “그런데 이게 고블린들에게 통할까요?”

    “이 양동이의 것만 사용하면 최루액 정도로 끝나지. 하지만 옆의 양동이의 액체를 섞으면 무섭게 반응을 한다네.”

    “네에? 그럼 최루액이 다가 아니란 말씀이시네요?”

    “난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을 했다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어르신의 말씀을 모두 다 들어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사용법을 알려주세요.”

    소울이 국정현에게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국정현도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우며 짧고 간단하게 말했다.

    “내 옆 병실에 가면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물총이 있어. 그걸 이용해서 고블린들에게 물총처럼 쏘면 될 거야. 처음에는 놀라겠지만 곧 적응을 해서 무서워하지 않을 거야. 그럼 그때 다른 물총을 쏘아버리게. 그럼 아마 볼만한 일이 일어날 거야.”

    “이거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을까요?”

    “고무장갑 끼고 서로 반대쪽에서 사용하는 것이 좋아. 직접적으로 두 액체가 섞이지만 않으면 괜찮아.”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내가 넉넉히 만들어 놓을 테니 부족하면 가져다 쓰게.”

    “네.”

    소울은 채희라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물총1조와 물총2조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채희라는 그의 말에 눈을 빛내며 의욕적으로 앞장섰다. 다행히 그녀의 설명을 들은 고등학생 두 명이 즉각 자원을 해서 곧바로 전력화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병실 복도에는 작은 힘이라도 보태보려는 환자들이 한 줄로 서서 소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울은 그들에게 고개를 한번 숙이고는 고하라 간호사를 찾았다.

    탕비실 안으로 들어가자 고하라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완강기 지지대의 고리에 완강기의 후크가 걸려 있었고 후크 잠금장치도 안전하게 잠겨 있었다.

    릴(줄)은 창밖으로 던져져 지상에 내려가 있었고 창틀에는 완강기의 조속기에 연결된 벨트가 나와 있었다.

    거기에다 혹시 몰라서 여비로 준비해 둔 줄은 탕비실 바깥으로 길게 늘어져 있어 사람들이 잡고 당길 수 있게 준비해 놓았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아래쪽을 계속 살펴봤는데 근처에 고블린은 없는 것 같아요.”

    “다행이군요.”

    “아무래도 무게가 적게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소울은 엉성하게 만들어 걸치고 있던 잡지 갑옷과 의자를 구부려 만든 방패를 내려놓았다.

    “가방은?”

    “여기 있어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지만 천으로 된 가방은 낡았지만 꽤 튼튼해 보였다. 그는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멨다.

    “그래도 무기는 하나 들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소울은 고하라가 내민 날카롭게 갈린 알루미늄 막대기를 받았다. 얼마나 무기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하라는 소울이 벨트를 몸에 걸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녀의 체향이 코에 훅하고 들어오고 나긋나긋한 그녀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스치자 소울은 몸이 잔뜩 긴장되었다.

    그는 오히려 고블린을 창으로 쑤셔대는 것보다 고하라의 손길을 의식하지 않는 일이 더 힘들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손길에 잔뜩 자극을 받은 그는 이미 사타구니 사이가 불룩해 진 것을 느끼며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물이나 곤충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강렬한 번식욕구를 느낀다고 했다. 소울은 자신도 죽음을 눈앞에 둬서 이렇게 평소보다 몇 배나 예민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철컥 철컥!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 소울의 몸에 벨트가 연결되고 완강기 지지대가 밖으로 돌아가 고정이 됐다.

    “다 됐어요.”

    “후우, 감사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심하세요.”

    “네.”

    고하라는 마치 소울이 자신의 연인이라도 되는 듯 그에게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누가 보면 정말 딱 오해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소울은 이런 분위기에 혹할 정도로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절대 미녀 간호사 3총사가 날 좋아할 리 없어. 지금은 내가 자신들의 구명줄이니까 이렇게 하는 거야. 모든 일이 끝나면 아마 눈길도 주지 않겠지. 쓸데없는 데 흥분하지 말고 먼저 생존에 혼신을 다하자.’

    소울은 그렇게 생각하며 냉정을 회복했다. 혈기왕성한 20대 치고는 무척이나 이성을 회복하는 시간이 빨랐다. 그만큼 세상의 쓴 맛을 빨리 그리고 많이 맛보고 살았다는 말도 될 것이다.

    소울이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러자 사람 한 명이 밖으로 나갈 충분한 공간이 확보됐다. 그는 창문 밖으로 몸을 빼고는 줄을 잡아 당겨봤다.

    완강기 지지대의 고리에 연결된 조속기와 로프는 100kg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혹시 제가 손짓을 하면 위로 무조건 당겨주세요. 알았죠?”

    “알겠어요. 신호를 주시면 무조건 위로 당길게요.”

    “그럼 바로 시작하죠?”

    “네.”

    소울은 드디어 몸을 완전히 창밖으로 빼서 바깥으로 나갔다.

    “모두 그냥 줄을 잡고만 계세요. 내려가는 것은 자동이니까요. 제가 신호하면 당겨주시기만 하면 돼요.”

    “네.”

    소울은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두 손으로 창틀을 잡고 두 발로 벽을 짚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두 손을 놓았다.

    그러자 완강기의 조속기에 의해 초당 1m의 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우와!”

    소울은 처음으로 타 보는 완강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무게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몸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소방시설 중 탈출기구 중 최고로 마음에 드는 물건이었다.

    7층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살짝 겁이 났다. 사실 이게 보통 높이가 아니었다. 떨어지면 무조건 죽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욱!”

    그때, 소울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기가 치밀어 올라 입을 막았다. 6층의 창문으로 보이는 안쪽의 상황이 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바닥에는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는 남자의 시선이 창문을 향해 있었다. 그의 가슴팍은 붉은 피로 물들여져 있었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아무래도 고블린들이 심장을 파먹은 것 같았다.

    스르르르!

    완강기는 쉬지 않고 천천히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이런 쓰벌, 때려죽일 놈의 새끼들!”

    5층의 창문을 통해 안의 정경이 드러나자 소울의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간호사로 보이는 젊은 여성하나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죽어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두 다리가 활짝 벌어져 있었고 사타구니 사이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그녀의 배는 텅 비어 있었다. 고블린들이 간호사를 강간하고 내장을 다 파먹은 것이다.

    소울은 구역질이 나는 한편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그런 식으로 한 층, 한 층 아래로 내려오며 병원의 참상을 목격했다.

    4층, 3층, 2층 어느새 땅이 다가왔다.

    소울은 혹시 몰라 살짝 줄을 손으로 잡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고 땅바닥에 무사히 안착했다.

    쿵!

    철컥!

    그는 벨트에 연결된 고리를 끌렀다. 자유의 몸이 된 소울은 몸을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우욱!

    순간, 참고 참았던 욕지기가 미칠 듯이 올라왔다. 고블린들에게 생으로 뜯어 먹힌 전경들의 참혹한 시신이 적나라하게 눈앞에 드러났던 것이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구석으로 달려가 속에 든 모든 것을 게워내고 말았다.

    우웨엑 우에엑 쿠웨엑…….

    커다란 피자 한 판을 만들고 나자 그는 간신히 진정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다. 빨리 움직이자.’

    소울은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고 이곳에 온 목적만을 생각했다.

    전경의 시체는 총 다섯이었다. 그렇다면 소총도 다섯 개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배낭이나 탄약가방도 몇 개는 될 것이다.

    그는 빠르게 주변을 눈으로 훑었다. 일단 미리 보아 놓았던 소나무 근처에 떨어져 있던 배낭 하나와 소총 한 정을 챙겼다.

    K2 소총이었다. 소울은 소총을 손에 들자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친근감이 들었다.

    K-2 소총은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 제식소총으로 육군훈련소에서 5주 훈련과정(보충역 4주)을 수료한 자라면 누구나 사용이 가능한 개인화기다. 그러니 다른 그 어떤 소총보다 익숙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울은 제일 먼저 탄창을 확인했다. 탄창을 분리해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배낭에 들어 있는 새 탄창을 꺼내 교환했다.

    철컥!

    30발 들이 탄창이 들어가는 소리가 마치 구원의 종소리처럼 들려왔다. 그는 연사로 되어 있는 조절기를 점사로 바꾸고 견착을 한 후 가늠좌를 확인했다. 당장 영점 사격을 해서 조절을 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쏘기만 해도 백발백중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소총을 들고 미소를 짓다가 전경들의 시체를 보고는 금세 얼굴이 굳어 버렸다. 이들도 소총이 없어서 고블린에게 잡아먹힌 것이 아니었다. 그는 소총을 손에 넣고 잠시 희희낙락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내가 여기서 이렇게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

    소총을 어깨에 멘 소울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을 빠르게 수색했다.

    K2 소총 2정, 전술조끼 2개, 탄창 8개, 수류탄 4개, 탄약 가방 1개, 대검 3자루

    그는 더 많은 소총과 탄약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당장 이 정도라도 찾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했다.

    그는 전술조끼 하나를 그 자리에서 걸쳤다. 총알이 채워진 탄창 2개를 들어 전술조끼 좌우에 있는 탄창 파우치에 각각 하나씩 집어넣었다. 수류탄은 어깨에 있는 파우치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허리 쪽에 빈 파우치에 남은 것을 집어넣었다. 대검도 1자루 챙겼다.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선추코, 쿠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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