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4 제 4 장 - 난입 =========================================================================
“어떻게 해요?”
정혜자는 소울의 팔을 잡고는 애가 달아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소울도 뭐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문이 안 열리도록 무거운 물건들을 최대한 많이 쌓아 놓는 수밖에 없었다.
후다다다닥 후다다다닥!
마태권이 아까 탕비실 옆 휴게실에 앉아 있던 나이롱환자들을 데리고 왔다. 소울은 그들을 보고 반색을 했다.
“어서 오세요.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뭐 그런 것 까지는 아니고…….”
마태권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서 데리고 왔는지 그들은 소울의 말에 일제히 마태권을 쳐다보며 인상을 팍 썼다. 소울은 이들의 마음을 조금은 돌려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다.
“지금 상황에서 고블린들이 이곳으로 난입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어차피 우리 모두는 다 죽은 목숨입니다. 제때에 아저씨들이 나서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소울이 말을 하며 고개를 90도 각도로 숙이자 더 이상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몬스터들이 난입하면 같이 다 죽는다는 말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싸우는 것은 우리가 할 테니 아저씨들은 이곳 말고 나머지 2곳의 방화문 쪽에 가셔서 경비를 서주세요. 어느 쪽이던 하나도 뚫리면 안 됩니다.”
“그 정도는 어려울 것 없지.”
“그런데 우리는 무기 안줘?”
“너희들만 들고 있지 말고 우리도 무기를 줘야지?”
소울은 기가 막혔다. 갑자기 웬 무기타령인지? 그는 이들의 심리상태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잘 구슬려서 끝까지 데리고 가야했다. 지금은 한 손이라도 아쉬운 상황인 것이다.
“당장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강우 아저씨한테 공구가 있으니 저기 나무 의자라도 분해해서 몽둥이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신 이곳을 두 명만 지원해주세요.”
“…….”
무기를 달라고 할 때는 큰 소리를 빵빵 치더니 당장 고블린들이 방화문을 두들기고 있는 곳을 지원해달라고 하니 그들은 얼굴이 딱딱해지고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 못한 정혜자가 소울의 앞쪽으로 나섰다.
“최우석, 강현우 두 분이 좋겠네요. 두 분이 제일 강해보이고 풍채도 좋잖아요.”
“나요? 내가 무슨 풍채가 좋아요?”
“하하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전 지금 컨디션이 최악이에요. 보기보다 약골이라고요. 별로 강하지도 않습니다.”
소울이 봐도 최우석과 강현우가 나이롱환자들 중에서는 가장 덩치가 크고 몸이 좋아보였다. 그들은 정혜자의 말에 모두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아무리 빠져 나가려고 해도 빠져 나갈 수 없는 그물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어머, 두 분이 저희를 지켜주시는 거예요?”
“보기만 해도 든든하네요.”
“어머나? 이 팔의 근육 좀 봐!”
정혜자의 뒤에서 갑자기 얼짱 간호사 정윤이, 몸짱 간호사 고하라,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가 나타나 최우석과 강현우를 둘러싸고 한 마디씩 해대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하하하! 당연히 제가 지켜드려야지요.”
“왕년에 제가 한 주먹 했습니다. 더는 걱정 안하셔도 좋습니다.”
소울은 정윤이, 고하라, 채희라 간호사가 두 사내의 팔을 살짝 만지면서 애교를 떨자 바로 말을 바꾸는 최우석과 강현우를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같은 남자로써 젊고 아름답고 예쁜 간호사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정혜자 수간호사에게 방금 부정적으로 말한 지 몇 초나 지났다고 저렇게 180도로 변하는지…… 참으로 뻔뻔한 놈들이었다.
“그럼 최우석, 강현우 아저씨는 휴게실에 있는 나무 의자 2개를 가져다주세요. 무기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동한, 이병태, 김순호, 오범근 아저씨 네 분은 둘씩 나눠서 2개의 방화문 쪽으로 가서 경비를 부탁드립니다.”
소울은 부탁조로 말했지만 미녀 간호사 삼총사가 옆에서 그들을 초롱초롱한 눈동자로 지켜보는 이상 그들에게는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우석과 강현우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소울의 말에 따라 휴게실에 있는 의자를 가지러 갔다. 나머지 네 명도 둘씩 짝을 지어 각각 하나씩 방화문을 경비하러 출발했다. 그들이 사라지자 소울은 정혜자 수간호사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각 방화문 당 간호사 한 두 분 정도만 있어줘도 저들의 의욕이 폭발할 것 같지 않아요?”
“호호호, 그러네요. 제가 알아서 잘 조치할게요.”
“감사합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나이롱환자들을 잡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정혜자는 즉시 간호사들을 소집해서 각 방화문 당 한 명씩 간호사를 보내 이들을 감시했다. 그리고 다른 병동에서 잠시 왔다가 7층 병실에 발이 묶인 미녀 간호사 3총사를 시간마다 지속적으로 순찰을 시키고, 경비를 서는 남자들에게 먹고 마실 간식을 제공해서 정말 의욕을 폭발시켰다.
쾅쾅쾅 쾅쾅쾅쾅!
소울은 승강기 옆의 방화벽을 지속적으로 두드리는 고블린이 이제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 더 무거운 물건들로 틀어막는 것 밖에는 말이다.
그 사이, 송강우는 나무로 된 의자 2개를 분해해서 8개의 나무 몽둥이를 만들었다. 몽둥이 끝에는 철판을 두들겨 붙이고 못을 박아 튼튼하게 만들었고 손잡이는 간호사들이 가져다준 하얀 테이프를 칭칭 감아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6명의 나이롱환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도 2개가 남아 비상용으로 보관할 수 있었다.
그때였다.
“꺄악!”
갑자기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승강기 옆의 방화문 한쪽이 우그러지며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은 상판대기를 가지고 있는 고블린 한 마리의 얼굴이 드러난 것이다. 간호사 한 명이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크하아 크하아아아!
고블린은 붉은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틈새로 자신의 손을 넣어 문의 손잡이를 잡아 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팔이 짧아서 쉽게 닿지 않았다. 물론 문을 연다고 당장 방화문이 열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앞에 쌓여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치우고 나오려면 고생깨나 할 것이다. 그것도 이쪽에서 넋 놓고 보고만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문제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간호사와 환자들이 고블린 한 마리의 모습을 보고 패닉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중간에 쌓아 놓은 물건들 때문에 저놈을 처리할 방법이 없네.’
소울을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식칼과 봉을 결합하여 만든 창을 보자 곧바로 해결책이 뭔지 깨달았다.
“이얏!”
소울은 크게 기합소리를 내며 방화문 쪽으로 다가가 창을 똑바로 찔러 넣었다.
푹!
캬아아악!
초보자의 운인지, 단번에 고블린의 어깨에 창이 박혔다. 그러자 고블린의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귓가를 긁어댔다.
소울은 그 소리에 더욱 이를 악물고 힘차게 앞으로 쑤셔 넣고는 옆으로 비틀어서 뺐다. 그러자 상처가 활짝 벌어진 고블린이 얼른 자신의 팔을 뺐다.
녹색의 고블린의 피가 방화문의 벽을 타고 흘러 내렸고 소울이 쥐고 있던 창의 식칼에도 녹색의 피로 범벅이 됐다.
푹!
캬악!
소울은 다시 한 번 창을 힘차게 내뻗었다. 이번에는 다른 고블린의 얼굴에 큰 상처를 입혔다. 재미있는 것은 고블린들이 호기심이 많은지 상처를 입은 놈은 놀라서 뒤로 물러나도 매번 새로운 고블린들이 틈새로 얼굴을 들이 민다는 점이다.
푹 푹 푹 푹 푹 푹!
소울은 이제 기계적으로 방화문의 구멍으로 창을 쑤셔 넣었다. 그때마다 귀청을 긁어대는 고블린의 비명이 줄을 이었다. 옆에서 같이 비명을 지르던 간호사들은 어느 순간, 모두 정신을 차리고 두 주먹을 꼭 쥐고 소울을 응원했다.
“소울씨, 파이팅!”
“또 나왔어요.”
“힘내세요.”
“힘 빠졌나 봐! 누가 좀 도와주세요.”
소울은 있는 힘을 다해 20번 정도 창을 쑤셔대자 두 팔이 덜덜 떨리며 온 몸에 힘이 쭉 빠져 나갔다.
“소울아, 교대하자.”
“네.”
송강우가 보고 있다가 얼른 소울이 내미는 창을 받아 가지고 그가 하던 것처럼 똑같이 구멍에다 창을 쑤셔 넣었다. 고블린은 지능이 별로 좋지 않은지 계속해서 새로운 놈이 틈새를 쳐다보다 눈이 찔리거나 얼굴이 뚫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것도 40번이 넘어가자 더는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언제까지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고블린은 없었다.
덕분에 7층은 고블린들에게 확실히 어그로를 끌었다. 방화문을 사이에 두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모여드는 고블린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그로인해 방화문은 더욱 빠르게 깨져가고 있었다.
“이쪽 방화문에도 고블린들이 몰려왔어요.”
“이쪽도요.”
간호사 둘이 각각 다른 곳에서 달려와 보고를 했다. 사람들의 표정이 그들의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 7층에 있는 계단 3개를 통해 올라온 고블린들이 3개의 방화문을 동시에 깨고 있었다.
“어떻게 해요?”
“방화문 양쪽으로 침대를 엎어서 바리게이트를 쌓는 것이 좋겠어요.”
“침대를 쌓아요?”
“네, 침대를 엎어서 쌓아놓으면 고블린들이 방화문을 깨고 나와도 한꺼번에 다수가 빠져 나오기 힘들 거예요. 또 침대가 고블린들의 시야를 막게 되니 이쪽의 상황을 보지도 못할 겁니다.”
“당장 간호사들을 총동원하겠습니다.”
“그래주세요.”
소울은 더 이상 남자의 체면이고 뭐고 없었다. 필요하다면 어린아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었다. 연약한 여자라고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죽으려고 환장을 한 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정혜자 수간호사는 자신을 포함해서 총 12명의 간호사를 모두 모았다. 4명씩 3조를 만든 그녀는 병실의 비어 있는 침대를 가져다가 3개의 방화문 양쪽 옆에 쓰러뜨리고 바리게이트처럼 쌓아 놓으라고 말했다.
“저희가 돕겠습니다.”
“하하하, 이런 일은 저희들이 해야지요.”
웬일인지 나이롱환자 6인방이 돕겠다고 자원해서 나섰다. 소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간호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미녀 간호사 3총사를 힐끔거리는 것을 보자 대번에 그녀들에게 잘 보이려는 수컷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일은 금방 끝났다. 빈 침대를 밀어다가 뒤집는 것쯤은 성인 남자 둘이 움직이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져도 저렇게 돕겠다고 나설까? 아무리 간호사들이 예뻐도 위급한 상황이 오면 저놈들은 제 목숨 구하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갈 놈들이야.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곳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니 그럴 염려는 없겠구나.’
소울은 아주 냉소적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도 저들과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생존본능이 깨어나면 아마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지동한, 이병태 환자 두 분은 서쪽 계단을 맡아 주세요. 간호사 두 분만 같이 가셔서 도와주시고 문제가 생기면 지금처럼 연락해주세요.”
“네.”
대답은 간호사만 했다. 지동한과 이병태는 소울에게 명령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방화문이 깨지게 생긴 상황이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김수호, 오범근 환자 두 분은 남쪽 계단을 맡아주세요. 역시 간호사 두 분이 따라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날씬이 간호사 채희라가 큰소리로 대답을 하자 김순호와 오범근의 얼굴이 저절로 활짝 펴졌다. 소울은 그들의 얼굴표정을 살피면서 최우석과 강현우를 바라봤다.
“최우석, 강현우 환자, 두 분은 이곳 중앙계단에 있는 방화문을 지키도록 하죠.”
“그럽시다.”
“그러지요.”
최우석과 강현우는 소울이 창으로 고블린들을 열심히 찌르는 것을 봐서 그런지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호의적으로 변해있었다.
서쪽계단과 남쪽계단에 있는 방화문을 지키기 위해 남자 둘과 간호사 둘이 짝을 지어 달려가자 정혜자와 나머지 간호사들이 소울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는 뭘 할까요?”
“으음,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아 주세요. 그리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모아서 비축해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간호사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혹시 마취주사는 어때요?”
“마취주사요?”
얼짱 간호사 정윤이가 소울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예쁜 얼굴이었다.
============================ 작품 후기 ============================
즐거운 시간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