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제 4 장 - 난입 =========================================================================
“역시 생포하는 게 좋겠네요.”
“호호호, 제가 병원에다 잘 말해줄게요. 포상금이라도 나올 수 있게 말이에요.”
“잘 부탁합니다.”
소울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송강우는 소울이 덜컥 그녀의 말대로 한다고 하자 영 입맛이 썼다. 하지만 몬스터를 잡은 것은 소울이니 그가 원하는 데로 처분하는 게 당연했다.
“저, 묶을 것을 좀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가둬놓을 곳도 좀 알아봐 주시고요.”
“네, 그 정도는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정혜자는 귀엽게 주먹을 꼭 쥐면서 말했다. 아줌마가 은근히 귀여웠다.
정혜자와 간호사들이 가져다 준 끈으로 팔다리를 꽁꽁 묶고 침대보를 이용해 마치 미라처럼 똘똘 말아버린 몬스터 한 마리는 다용도실의 창고에 박아놓고 문을 잠갔다. 설사 끈을 풀고 침대보를 찢은 후에 탈출하려고 해도 부상을 입은 몸으로 다용도실의 좁은 창고 문을 쉽게 열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포한 몬스터의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하고 데스크 앞으로 오자 어느새 소울과 송강우는 영웅이 되어있었다.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7층 병동의 모든 간호사와 환자들이 나와서 그들에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소울과 송강우는 연신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가 감사하죠.”
“정말 용감하시네요.”
“너무 멋져요.”
…….
소울과 송강우는 자신들을 향해 두 눈에서 하트를 뿅뿅 발사하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이런 예쁜 얼굴과 착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간호사들이 있었다니……. 이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아닌 것 같은데?’
소울은 수컷의 본능을 살려 자신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짱 간호사, 몸짱 간호사, 늘씬 간호사를 차례로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다 입력했다.
얼짱 간호사 정윤이
몸짱 간호사 고하라
늘씬 간호사 채희라
“여러분! 아직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혹시라도 몬스터들이 방화문을 깨고 들어 올 수도 있으니 방화문 앞에 무거운 물건을 가져다가 놓고 완전히 폐쇄해야 합니다.”
“저희가 도울게요.”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간호사들과 나이롱환자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모두 의욕을 불태웠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다. 10여명의 나이롱환자들이 몸을 사리는 던 태도를 버리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간호사들까지 헌신적으로 나서자 3개의 계단 앞에 있는 방화문 앞은 금세 온갖 기물로 가득 차서 꽉 막혀버렸다.
일은 별거 아니었지만 성취감은 대단했다. 다들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행한 일을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간호사인 정혜자는 그 사이에 병원 내부 회선을 이용해 7층 병동의 상황을 원무과와 경비실에 보고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청했다.
‘아무래도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네.’
전화를 내려놓은 정혜자는 아무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원무과와 경비실은 물론이고 경찰서까지 하나 같이 전화를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긴장과 공포의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타탕!
총소리가 병원의 안팎에서 마구 울려 퍼졌다.
캬아아악!
크하아아!
몬스터들이 악을 쓰며 질러대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래층인 6층에서는 연신 사람들의 구슬픈 비명 소리와 단말마가 들려왔다. 자신들이 있는 7층과는 달리 6층에는 몬스터들이 병동에 난입한 것 같았다.
간호사들은 서로의 몸을 끌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환자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어깨가 축 쳐지고 맥없이 한숨을 쉬는 모습에서 인간의 무력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TV에서는 언제부터인가 개포동의 참사에 대해 긴급 방송을 하고 있었다. 한발 늦은 경향이 없진 않았지만 덕분에 경찰특공대와 전경들이 완전무장한 상태로 개포동과 도곡동에 투입되어 몬스터 퇴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탕비실 앞의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의논하며 근심을 나눴다. 하지만 미국 같이 개인총기와 무기가 허용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일반 시민이, 그것도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입장에서 뾰족한 타개책을 내놓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간호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환자들을 돌봤고 환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보는 사이, 소울과 송강우는 무척이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우, 아저씨, 이렇게 만들면 되겠죠?”
“좀 약한 것 같다. 넌 그냥 나중에 봉에다 덕테이프나 감아라.”
“네.”
송강우는 소울이 탕비실에 있는 식칼과 봉을 끈으로 조여 놓은 모양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그의 손에서 식칼과 봉을 빼앗았다. 소울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청소도구에서 뽑은 알루미늄 봉에 과도를 끼어 넣고 테이프를 감는 일을 했다.
함께 싸울 동료와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소울과 송강우가 열심히 무기를 만들자 옆에서 구경하던 나이롱환자들이 하나 둘씩 그들에게 다가왔다.
“소방도끼 하나, 봉에다 식칼을 붙인 창하나, 알루미늄 봉에 과도를 끼어 넣은 단창 둘이 전부네요?”
“뭐 그렇지요.”
7층의 대표적인 나이롱환자인 옆 병실의 마태권은 송강우에게 다가가 은근슬쩍 말을 붙이더니 소방도끼에 손을 댔다. 그러자 소울이 소방도끼의 자루를 잡아 자신의 무릎위에 올려놓고 알루미늄 봉에 과도를 끼어 넣은 단창을 넘겼다.
“아저씨는 이걸 쓰세요.”
“음? 응, 그래. 고마워!”
덩치는 산만하고 인상은 험하게 생긴 사람이 하는 짓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마태권은 가볍고 날카로운 단창이 마음에 드는지 허공에다 이리저리 찌르고 휘둘러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나쁘지 않네.”
“전 이소울입니다. 이쪽은 송강우 아저씨에요.”
“마태권입니다. 옆 병실에 있습니다.”
“아저씨는 어떻게 들어왔어요?”
“난 교통사고로 들어왔어.”
“3달째 입원하고 계신 분 맞죠?”
“응.”
마태균은 소울의 말에 흠칫 놀라며 살짝 눈을 피했다. 자신도 보상금을 많이 타기 위해 오랫동안 병원에서 죽치고 입원해 있는 나이롱환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소울은 갈비뼈 하나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절대 나이롱환자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사고 난 후, 한 달이 지나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의사는 거의 뼈가 다 붙었다고 놀라워했다.
소울은 자신이 특이체질인가보다 하고 넘겼다. 의사의 말 중‘거의’ 라는 말은 100% 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마태균처럼 최소 3개월 이상은 병원에서 떳떳하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도 소울을 보며 간호사가 교통사고 환자라고 말하자 퇴원하라는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자신은 떳떳한 환자이고 상대방은 나이롱환자니 소울은 괜히 갑이 된 기분이었고 반대로 마태균은 을이 된 기분이었다. 묘한 기류가 둘 사이에 형성되려던 찰나, 송강우가 중간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탁!
“다 됐다. 어때? 아까보다 훨씬 좋지?”
“어디 봐요. 오호! 이거 괜찮은데요? 확실히 아까보다 좋네요.”
송강우는 자신의 공구가방 안에 있는 공구를 이용해 나무 봉 끝에 홈을 파고 구멍을 뚫어 철사로 꽁꽁 묶은 뒤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 위에 덕테이프까지 감아 놓자 놀랍게도 멋진 창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다.
“강우 아저씨, 이 창 제가 쓸게요. 아저씨는 저보다 덩치도 크고 힘도 좋으시니까 소방도끼를 쓰세요.”
“정말 그래도 돼?”
“물론이지요.”
“고맙다.”
송강우는 말은 안했지만 은근히 소방도끼를 탐내고 있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소방도끼는 거구인 송강우에게 더 잘 어울렸다.
‘몬스터와 드잡이 질을 하는 데는 긴 창이 더 유리해. 굳이 소방도끼를 휘둘러 몬스터의 피를 온 몸에 덕지덕지 묻힐 필요는 없다.’
소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창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송강우는 소울이 자신을 위해 소방도끼를 양보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서로 만족하니 윈윈(Win-Win)인 셈이다.
“한 명이 더 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누구 추천하실 분 없으세요?”
“나? 없는데…….”
소울이 마태권을 바라보며 묻자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요새 세상에 누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남을 위해 위험하게 몬스터와 싸우려 하겠는가?
물론 소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을 위해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만약 7층에 몬스터가 난입한다면 그것은 곧 자신의 생명도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영웅으로 생각해주고 나중에 포상금까지 준다면 고맙게 잘 받아 챙길 생각이다.
최선을 다하다가 안 되면 탈출할 방법도 생각해놓았다. 탕비실 옆에 있는 완강기를 이용해 창문으로 탈출하면 된다. 물론 한 번도 완강기를 이용해 탈출을 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는 분명히 잘 해낼 자신이 있었다.
“할 수 없네요. 그럼 내가 단창 하나 더 쓰지요.”
“그래라.”
그렇게 무기 분배가 끝이 났다. 셋은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 옆의 휴게실로 갔다. 나이롱환자들이 그들을 보자 슬그머니 일어나 병실로 돌아갔다. 소울과 송강우 그리고 마태권은 무기를 단단히 쥐고 날카롭게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하긴 이런 일은 강제할 수 없는 일이야.’
시킨다고 들을 사람들도 아니고 이런 일은 그런 방식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 그들은 잠시 휴게실에 앉았다가 밖에서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자 모두 일어나 창가로 갔다.
유리창을 통해 밖을 살펴보니 놀랍게도 길거리에 몬스터들이 떼거지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은 물론 경찰특공대와 전경들이 눈에 보이기만 하면 달려들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타타탕!
트르르륵 트르르륵!
여지없이 총소리가 들리고 몬스터들은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경찰특공대와 전경들은 뒤로 빠르게 후퇴했다. 그들이 죽이는 숫자보다 총소리를 듣고 몰려나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배는 더 많았기 때문이다.
소울은 몬스터가 호전적인 것은 알았지만 저렇게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줄은 처음 알았다.
“강우 아저씨, 저 몬스터 이름이 고블린 맞죠?”
“응, 뉴스에 나온 것 보니까 저게 고블린이라는 몬스터라고 하더라.”
“이번에 나타난 몬스터가 고블린 한 종류만이라던가요?”
“그렇다던데?”
소울은 자신이 사로잡은 몬스터가 고블린이라는 것을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밖에서 돌아다니는 고블린의 숫자를 봤을 때, 우리 병원 안으로 들어온 고블린의 숫자가 꽤 되겠는데?”
“그러게요. 아래층에서 더 이상 비명소리가 안 들리는 것을 보니 모두 죽었나 봐요.”
“휴우,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고 참 곤란하네.”
“도와주기는 뭘 도와줘요? 그리고 누가 도와줄 수 있는데요?”
“그건 그렇지.”
강우 아저씨는 괜히 마음만 좋아서 쓸데없는 이야기로 사기를 죽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쾅 쾅쾅 쾅쾅쾅!
어디선가 망치질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지?”
“데스크 앞 승강기 옆에 있는 방화문 같은데?”
“가보죠?”
“그래.”
셋은 빠르게 데스크를 거쳐 승강기 옆으로 달려갔다. 방화문 앞에는 책상과 의자 등 온갖 기물들이 쌓여 있었는데 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쾅 쾅쾅 쾅쾅쾅쾅!
누군가 계단을 타고 올라와 방화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것도 단단한 몽둥이나 해머 같은 무거운 타격무기였다.
“어떤 놈이 방화문을 부수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어떻게 하지?”
“사람들을 불러서 도움을 청해야겠어요.”
“내가 가서 사람들을 불러올게.”
“태권 아저씨, 그 건강한 아저씨들 좀 데리고 오세요.”
“응, 알았어.”
마태권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병실로 달려갔다. 정혜자 수간호사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고블린들이 방화문을 깨려고 하는 것 같아요.”
“네에?”
정혜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소울은 자신이 너무 직설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방화문은 그리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고블린들이 해머 같은 것으로 계속 치다보면 언젠가는 뚫릴 수도 있어요. 모두 힘을 합쳐서 여기를 막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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