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8화 (8/492)
  • 00008  제 2 장 - 꿈에서  =========================================================================

    참 의미 없는 것에 놀라 괜히 오버해서 뛰어 다녔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자각몽 안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발견했으니 그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렇게 한 가지씩 드림하우스의 특별한 점을 찾아 내다보면 나중에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봤다.

    소울은 오늘도 체력단련실에서 헬스를 했다. 딱히 할 것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아직도 초콜릿 복근의 야무진 꿈을 못 버렸기 때문이었다. 노력 없이 이득을 얻으려는 얄팍한 생각인줄 알면서도 그는 그런 생각이 크게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았다.

    “아니면 말고.”

    체력단련을 끝내고 관성적으로 찾은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나온 소울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왠지 운동을 하고 나면 배가 고프다는 무의식이 부른 행동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보자 자신이 평소에 꿈꿨던 양문형 대형 냉장고 안에 온갖 육류와 김치, 반찬, 과일, 음료수 등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바나나 하나를 까서 먹어 보았다.

    “오! 맛있는데!”

    이건 무조건 좋은 일이었다. 인간의 사대(四大)욕구 중 하나인 식욕(食慾)을 단방에 해결해줄 수 있는 환상적인 일이 생긴 것이다. 앞으로 꿈속에서 그동안 먹고 싶었던 세상의 온갖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절로 입안에 침이 고였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진 안겠지? 가만 그런데 그런 요리는 어떻게 얻지? 설마 내가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하는 거야? 그럼 안 되는데…….”

    요리라는 것이 어디 하루 이틀 만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몇 년 아니 몇 십 년을 해도 제대로 된 맛을 낼 줄 모르는 요리사도 많다. 하물며 인스턴트 푸드나 데워먹고, 다 시어빠진 김치 넣고 김치볶음밥 정도나 할 줄 아는 소울에게 언감생심(焉敢生心)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다는 것은 보통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냉장고에 들어 있던 싱싱한 과일들을 잔뜩 꺼내 먹고 음료수도 마셨다. 그리고 냉장고를 한번 닫았다가 다시 열어봤다. 그러자 분명히 아까 꺼내 먹었던 과일과 음료수가 하나도 부족함 없이 그대로 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유레카! 이건 정말 좋은 발견이군. 뭔가 될 것도 같은데. 아직 어떻게 응용해야할지 모르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법칙 하나는 발견했군.”

    그는 머릿속에다 두 가지를 입력해놓았다.

    하나, 드레스룸의 초소형 무대 위로 올라가면 전지적 시점을 가지게 된다.

    둘, 냉장고 안의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문을 한번 닫고 열면 그대로 회복된다.

    이게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 규칙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하지만 최소한 자각몽을 꾸면서 이런 규칙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고기를 좀 구어 먹어보자.”

    그는 냉장고에 들어 있는 소고기를  꺼냈다. 안심, 등심, 갈비, 채끝살 등 소고기가 부위 별로 따로 냉장 포장되어 있었다.

    베란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야외용 전문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다. 불을 켜보니 바로 가스불이 들어와 활활 타올랐다. 불을 적당히 조절하고 고기를 올려놓고는 다시 부엌으로 돌아왔다.

    냉장고 안에는 상추와 깻잎, 마늘, 피망, 양파 등 각종 채소가 가득했다. 그는 커다란 소쿠리에다 채소를 가득 담아 왔다. 감자, 고구마, 양파, 가지를 바비큐 그릴의 한쪽에 올려놓았다.

    “그냥 먹으려니 좀 맹숭맹숭하네.”

    소울은 다시 냉장고를 열어 캔 맥주를 꺼내왔다. 차가운 캔 맥주로 인해 손이 시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생각해보니 한 번도 드림하우스 같은 집에서 자본적이 없었다. 베란다에서 야외용 바비큐 그릴을 이용해 소고기를 마음껏 구어 먹어 보는 것도 처음이지 싶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 오늘 배가 터지게 고기를 구어 먹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심을 스테이크로 구어 먹어봤다. 소고기 육즙이 씹을 때마다 입안으로 터져 나오는 맛이 기가 막혔다. 등심의 부드러운 맛, 갈비의 진한 풍미 갖가지 부위를 마음껏 구어 먹고 야채까지 바비큐 그릴에 구어서 먹으니 정말 진시황제도 안 부러울 정도였다. 거기에다 차가운 캔 맥주가 더해지자 ‘드림하우스 만세!’가 절로 외쳐졌다.

    소울은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전혀 배가 부르지 않았다.

    “다이어트 하는 여자들이 여기 오면 정말 환장을 하겠구나. 이렇게 고기를 때려 먹고도 배가 안 부르다니…….”

    그렇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본격적으로 냉장고를 털기 시작했다.

    밥을 하고 포기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등 각종 김치를 꺼냈다. 각종 전, 장조림, 어묵조림, 계란말이, 나물, 볶음 반찬 등을 몽땅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는 입속으로 마구 쑤셔 넣었다. 마치 한 10년은 굶다 죽은 아귀처럼 그는 미친 듯이 먹고 또 먹어댔다. 그렇게 원 없이 냉장고에서 꺼내 온 모든 음식들을 몽땅 먹어치웠다.

    “흐음, 이제 더 먹을 것이 없네.”

    소울은 베란다에 놓인 테이블을 훑어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의 문을 열어봤다. 그리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생각대로군.”

    그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냉장고는 조금도 줄지 않고 꽉 찬 상태 그대로였다. 그 모습을 보자 그는 왠지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잠깐 더 먹어 볼까? 하고 생각하던 소울은 가만히 냉장고의 문을 닫았다.

    “많이 먹었다.”

    아무리 꿈속이라지만 언제까지 먹기만을 탐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스스로 말한 대로 이미 성인 남성 한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의 수십 배는 먹어 치운 상태라 배가 부르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화장실로 가서 칫솔과 치약을 들자 ‘꼭 양치질을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지만 20년이 넘도록 해온 양치질의 습관은 꿈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이빨에 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도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뭔가 찝찝했다. 그는 교육의 위대함을 잠시나마 절감하고 화장실을 나왔다.

    “이젠 뭘 하지?”

    두 번째 자각몽을 나름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한 그는 갑자기 심심해졌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돌아할 때가 온 것이다. 아니 잠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

    안방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곧 고개를 갸웃하더니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서 가장 큰 방에 들어간 그는 퀸 사이즈 침대에 누웠다.

    “꼭 안방에 있는 침대에서 자야만 잠이 깨는 것은 아니겠지?”

    그는 심호흡을 했다. 몇 번 눈을 깜빡거리자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왜 병원에는 한 놈도 찾아오지 않지?”

    그동안 친구들이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친구들에게 그동안 연락을 전혀 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로 연락을 잘 안하는데 과연 친구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아니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혼자 생존해야 하는 정글인가 보다.

    “혹시 내가 까톡을 막아놓았나?”

    소울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 순간 자신이 처음으로 외부와 소통할 생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사물의 흐름이 느려졌다. 눈이 깜빡이는 시간이 극도로 늦어지며 의식이 뒤쪽의 어딘가에 있는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시야에 서서히 들어왔다.

    “저건 누구지?”

    스마트폰 안에서 나이 많은 노인네 한명이 자신을 바라보며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손을 들어 뭔가를 가리키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을 나무라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의 의식이 어디론가 빠르게 빨려 들어가며 뚝 끊어졌다.

    *

    *

    “으악!”

    소울은 짧게 비명을 지르며 상반신을 벌떡 일으켰다.

    “어이, 총각!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뭔 일 있어?”

    “악몽이라도 꿨나? 젊은 사람이 왜 저렇게 기(氣)가 약해?”

    “뉴스 좀 보게 좀 조용히 합시다.”

    소울은 천천히 의식이 돌아왔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안 좋은 꿈을 꿨나 봅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낮잠을 잔 것 같은데 그게 루시드 드림을 꾼 것 같았다. 그는 병실의 환자들에게 죄송하다고 머리를 굽신거리다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TV를 시청하면서 생각했다.

    ‘분명히 웬 노인을 본 것 같은데…….’

    소울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버튼을 눌러보자 깨끗했다.

    “…….”

    아무도 전화하는 이가 없었고 그 흔한 까톡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소울은 입맛을 다시며 스마트폰을 이불 한쪽에다 던져 버렸다. 성질은 내고 싶은데 부서지면 안 되니 이불이 뭉친 곳에다 던진 것이다. 자신의 그런 쫀쫀한 행동에 그는 괜히 더 짜증이 났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이런 상황이 되면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소울은 곧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화를 누그러뜨렸다.

    ‘내가 화를 내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스마트폰 던져서 깨지면 새로 구입해야 하잖아? 나만 손해지 뭐!’

    그는 냉정을 회복하자 자신이 잠시 혈기에 어리석은 행동을 할 뻔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똑똑똑!

    “저, 여기 이소울 씨 병실 맞죠?”

    그때였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울은 냉큼 몸을 일으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병실 입구를 쳐다봤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뚱보 하나가 자신을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것이 느껴졌다.

    ‘아! 저 오타쿠 새끼가 어떻게 여길 찾아왔지?’

    소울은 순간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 하나만 빼면 별로 친하지도 않고 접촉점도 없는 놈이었다. 아니 오히려 맨날 사소한 의견충돌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였다.

    ‘많고 많은 동창 중에 왜 하필 저 새끼가 병문안을 온 거야? 기왕 오려면 전희연이나 동창 중에 최고 미녀였던 장경화나 좀 오지.’

    소울은 뒤뚱거리며 다가오는 오태구를 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소울아, 몸은 좀 어때? 괜찮니?”

    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못 참겠다는 듯 얼굴 근육을 씰룩거리고 있는 오태구의 면상을 주먹으로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병문안을 온 놈인데 대뜸 턱주가리부터  돌릴 수는 없었다. 소울은 삐딱한 목소리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그냥 그래. 그런데 너 여긴 웬일이냐? 어떻게 알고 왔어?”

    “교통사고 났다며? 많이 다쳤냐? 어디 안 부러졌어?”

    “왜? 부러졌으면 네가 붙여주려고?”

    “하하하, 무슨 되도 않는 농담을 그렇게 하냐?”

    “으이구, 그냥 살만하다. 시간가면 다 나을 거니까 신경 꺼라!”

    “자식, 까칠하기는…….”

    그때부터 오태구는 소울 옆에 앉아서 그의 심기를 긁기 시작했다. 오태구는 소울이 나중에 먹으려고 자신의 침대 옆에다 가져다 놓은 홍삼드링크를 말도 없이 하나 빼들었다.

    “목이 말라서 말이지.”

    “그, 그래.”

    목이 말라서 홍삼드링크 하나 먹겠다는데 먹지 말라고 하기도 참 거시기 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오태구는 홍삼드링크 박스를 아예 자신의 앞에 가져다 놓더니 곶감 빼먹듯이 한 병씩 꺼내 마시면서 알고 싶지도 않은 동창들의 근황과 뒷담화를 까대기 시작했다.

    “재호가 졸업도 하기 전에 S전자에 입사됐다는 결정이 났다고 하더라. 카아! 다 아버지 잘 만난 탓이지. 하긴 아버지가 S그룹의 이사니 그 정도는 사실 문제도 아니지. 대호도 이번에 프린스턴 대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국내 연구소로 들어온다고 하던데, 하여간 부모 잘 만난 놈들은 어떻게 해도 잘 풀려! 미나 알지? 며칠 전에 구성이한테 들었는데 걔가 글쎄 민우하고 호텔에서 같이 자고 나오는 것을 봤다는 거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어쩜 벌써부터 그렇게 막 나가냐?”

    소울은 솔직히 오태구의 아가리를 잡아서 쫙 찢어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도 안 쉬고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어대는 그의 모습을 보자 없던 두통도 생길 것 같았다.

    “이제 좀 그만 하지 그래?”

    “뭘 그만해? 지금부터가 하이라이트인데……”

    오태구는 입에 엔진이라도 달아 놓았는지 빠르게 주둥아리를 털기 시작했다. 그동안 말 못해서 한이라도 맺혔는지 눈깔이 반쯤 돌아가서는 온갖 음담패설과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뿌려댔다.

    “잠깐, 그런데 너 오늘 왜 왔어? 정말 문병하러 온 거 맞아?”

    “응, 맞아. 나 너 문병하러 왔어. 아니면 내가 여길 왜 왔겠어?”

    “흐음, 좀 이상한데…….”

    “크흠,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소울은 오태구가 좀 수상했다. 정확히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요상한 냄새가 났다.

    ============================ 작품 후기 ============================

    이제 더 이상 바람이 안부는 것 같기도 하네요. 태풍이 끝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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