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7화 (7/492)

00007  제 2 장 - 꿈에서  =========================================================================

‘처음에 나온 오크들은 무장을 하지 않고 그냥 나왔어. 그 뒤에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놈들이 나왔다. 같은 오크라도 신분이 다 다른 건가? 오크라도 다 똑같은 오크가 아니란 말인데…….’

소울은 그렇게 유추를 하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TV를 시청했다. 수백 마리의 오크 떼를 잡아 죽인 것은 결국 미군의 중대병력이 아니라 장갑차와 탱크 같은 기갑전력이었다.

무장을 하지 않은 일반 오크는 소총 몇 방을 맞으면 죽었다. 하지만 무장을 한 놈들은 그렇지 않았다. 기관총이나 구경이 큰 탄환에 맞아야 데미지를 입는 것 같았다. 나중에 등장한 덩치가 크고 전신을 갑주로 무장한 놈들은 중(中)기관총에도 쓰러지지 않고 난동을 부리다 결국 대전차 로켓포와 중(重)기관총의 대구경 총알을 맞고서야 쓰러졌다.

‘판타지 소설과 기가 막히게 일치하네. 역시 판타지 소설가들은 모두 잡아서 조사를 한번 해봐야해. 분명히 그들 중 하나는 다른 차원에서 온 외계인일거야.’

소울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끝까지 생방송을 지켜봤다. 인터넷을 열어보니 미군이 차원의 균열을 조사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면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난리가 아니었다.

당장 종말론이 터져 나왔고, 지구 위기설과 외계인 침공설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었다. 가관인 것은 방송에 나왔던 전문가라던 자들이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말을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되면 대성할 소질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소울은 그들을 콧바람으로 가볍게 비웃어주고 포털 사이트로 들어갔다. 해외뉴스를 보니 미국 국방성에서 긴급 발표문이 올라와 있었다. 시간을 보니 1분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뉴스 기사였다.

미국 국방성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면서도 차원의 균열 안에 대한 탐사는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을 못 박았다. 다만 이번 일로 인해 희생된 장병들과 유가족에게는 애도의 뜻을 표하며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에 참가한 미국 장병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고귀한 영웅들이라며 치켜세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이 잘 됐으면 과연 죽은 미군들은 얼마나 받았을까? 1명의 장군의 공을 위해 1만 명의 병사가 피를 흘려야 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군. 그렇게 조사를 해보고 싶으며 자기가 들어가지.’

소울은 고개를 살짝 흔들며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밥도 먹었겠다. 재미있는 해외뉴스도 시청했겠다. 그는 축 퍼지는 몸을 위해 잠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드르렁 드르렁!

신나게 코를 골며 자는 소울의 모습에 다른 환자들도 곧 낮잠을 자기로 결정하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곧이어 병실은 경쟁적으로 코를 고는 환자들로 인해 어색한 정적에 휩싸였다.

그 대열에는 창가 옆 침대에 누운 환자의 친구이자 거구인 아저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간병인을 위해 사용하는 낮은 침대 위에서 병실이 떠나갈 듯 코를 골아대고 있었다.

참 거시기 한 모습이었다.

* * * * *

“드림하우스다!”

1주일 만에 다시 드림하우스로 들어왔다. 병원에 입원한지 37일째다.

“일단 하늘부터 한번 날아보고.”

쓩!

정원에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올리고무릎을 살짝 구부렸다가 힘껏 뻗으며 팔을 쭉 펴자 너무도 쉽게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쐐애애애애액!

그래도 한번 해본 것이라고 두 번째 하늘을 날아보니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번에 못해본 여러 가지 비행기술을 이번 기회에 써먹어 보기로 했다.

높이 하늘 위로 올라가서 시저스 기동을 해본다던가, 구름 위를 뛰어 다닌다던가, 8자 모양을 그리며 날아본다던가, 몸을 팽이처럼 돌리면서 급커브를 튼다던가, 창공을 날아다니면서 해보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새도 아닌 인간이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였다.

소울은 정말 질리지도 않는지 마음껏, 아니 욕심껏 하늘을 날고 또 날다가 겨우 드림하우스로 돌아왔다.

쿵!

땅에 부딪치기 직전에 속도를 줄여 가뿐하게 내려서는 동작까지 10점 만점의 10점을 스스로에게 준 소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드림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정말 다른 사람도 이렇게 생생한 루시드 드림을 꾸는 걸까?”

소파에 앉아 탁자에 놓인 물을 마시면서 그는 생각했다. 루시드 드림, 일명 자각몽에 대해 그동안 나름 인터넷에 조사한 노력으로 인해 꽤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은 꿈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현실감이 넘쳐흘렀다.

“아차! RC를 안했구나.”

RC는 Reality Check의 줄인 말로 자신이 꿈속에 있는지 아니면 현실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행위를 말한다.

보통 가볍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중지를 꺾어서 손등에 닿는지를 보는 방법이 있다.

소울은 자신의 중지를 꺾어보았다.

“어라, 닿네.”

보통 중지가 손등에 닿는다면 꿈을 꾸고 있다고 봐야했다.

“꿈이라는 것은 확실하네. 그런데 내가 루시드 드림을 꾸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하지?”

소울은 ‘딜드’만으로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역시 ‘와일드’를 해봐야 확실할 것 같았다.

딜드는 Dream Induced Lucid Dream의 줄인 말로, 꿈을 꾸다가 어느 순간 ‘아! 꿈이로구나!’하고 깨닫는 것을 말한다. 와일드는 Wake Initiated Lucid Dream의 줄인 말로, 직접 루시드 드림을 꿔야겠다고 결심하고 꿈을 꾸는 방법이다.

루시드 드림을 꾸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들 말한다. 이완기와 과도기를 거쳐 안정기로 들어가면 어느새 꿈속이 된다는 것이다.

이완기는 먼저 침대에 누운 다음, 몸의 힘을 빼고 눈을 감는다. 호수나 구름 위에 떠 있는 상상을 하며 ‘나는 꿈을 꾸고, 자각할 것이다’라고 계속 반복하면서 자기암시를 주면 된다.

과도기는 삐! 소리가 들리고 패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며 심박동수도 빨라지게 된다. 안구에 진동이 오기도 하는데 모두 과도기의 현상일 뿐이다.

안정기에 접어들면 과도기 때의 이상한 현상들이 모두 멈추게 된다. 마음의 눈, 또는 꿈의 눈(dream eye)이 있다고 생각하고 눈을 뜨면 그곳이 곧 루시드 드림의 세계가 된다.

하지만 소울은 ‘와일드’로 자각몽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느끼는 것은 현실처럼 생생했다. 아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SF 영화에서처럼 잘못하면 나중에 여기가 현실이라고 착각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할 정도로 현실감이 강했다.

“확실히 뭔가 있어. 이건 절대 정상적인 것이 아니야. 그렇지만 누가 내 말을 믿어줄까? 그리고 꿈이 생생하다고 내 현실이 바뀌는 것은 또 뭐가 있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고나자 결국 자신은 현실도피, 대리만족,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각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소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다가 짝 하고 손뼉을 쳤다.

“꿈이라는 것이 뭐 별거 있어? 현실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껏 해보는 거지.”

그는 그렇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벌떡 일어나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 차고의 문을 열고 불을 켰다. 여전히 현란한 빛을 반짝이며 세계적인 슈퍼카들이 늘씬하고 잘빠진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녀석을 몰고 갈까? 그래! 네가 좋겠다.”

소울은 람보르기니 베네노 로드스터(Lamborghini Veneno Roadster)를 선택했다.

부릉 부릉 부르르르릉!

차를 몰고 드림하우스를 빠져 나가자 아우토반을 닮은 넓고 쭉 뻗은 고속도로가 나타났다. 소울은 망설임 없이 액셀을 밟고 달리기 시작했다.

부르릉 부르릉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소울은 액셀을 힘차게 밟고 달렸다. 엔진이 터질 듯이 울리며 타이어가 힘차게 돌아갔다. 기어를 잽싸게 바꾸자 차는 누군가 뒤에서 밀기라도 하듯 앞으로 쭉쭉 나갔다.

“이야아아아아호오오오오!”

소울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마 그 누구도 이렇게 람보르기니 베네노 로드스터의 액셀을 마구 밟아대진 못할 것이다. 하늘을 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이렇게 땅위를 미칠 듯이 질주하며 스피드를 만끽하는 것도 짜릿한 쾌감을 맛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다 문득 소울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은 자각몽을 꾸고 있었다. 차가 단 한 대도 없는 아우토반 위를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단 한 번도 사이드미러나 백미러를 보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는 의문을 가지고 고개를 돌려 백미러를 쳐다봤다. 없었다.

사이드미러를 쳐다봤다. 역시 없었다.

“무슨 차에 백미러와 사이드미러가 없지?”

소울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가서 확인해보자.”

끼이이익!

부르릉 부르릉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는 지난번처럼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차의 속도를 줄이고 180도 돌려서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구 액셀을 밟아 드림하우스를 향해 질주했다.

드림하우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자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드림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차를 지하주차장 안으로 몰고 들어갔다. 그리고 서둘러 차 안에서 빠져 나왔다.

소울은 지하 차고에 있는 모든 차들의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를 조사했다. 그 많은 차 중에 백미러와 사이드미러가 있는 차는 단 한 대로 없었다. 그는 순간 팔에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무리 꿈이라도 해도 이건 너무하잖아? 가만 백미러와 사이드미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거울이 없는 것 아니야?”

생각해보니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도 거울을 직접적으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체력단련실로 들어가 샤워실 문을 열었다. 아무리 살펴봐도 벽에 거울은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샤워실이나 세면대 벽에 거울 하나 정도는 붙어 있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었다.

우다다다다다다!

그는 체력단련실을 나와 지하실 계단을 타고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간 소울은 화장실 문을 활짝 열었다. 역시 거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는 1층과 2층의 모든 화장실을 뒤져봤다. 하지만 역시 거울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방이란 방은 전부 뒤지고 다녔다. 안방, 건넌방, 서재, 게스트룸 등 모든 방을 뒤지고 돌아다녔지만 거울을 찾지 못했다.

“왜 거울이 하나도 없지? 이게 무슨 뜻일까? 자각몽에서 거울이 어떤 중요한 열쇠(key)라도 되나? 아니면 자각몽의 규칙을 깨는 역할이라도 하나?”

소울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밖은 여전히 맑고 화창했다.

“가만 저건 통유리로 되어 있잖아. 그럼 내 모습을 비출 수도 있을 텐데?”

그는 벌떡 일어나 벽 한 면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통유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너무나 맑고 깨끗해서 자신의 모습이 비추기는커녕 정원과 수영장의 모습만 잘 보일 뿐이었다.

“이게 아닌가?”

소울은 깊게 심호흡을 하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소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뭔가 머릿속에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그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이 드림하우스에서 뭔가 특이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 아니면 뭔가 기이한 현상을 겪은 적이 있나?”

양쪽 관자노리를 지그시 누르며 그는 생각해봤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 루시드 드림이 깨질 뻔한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다.

“맞아! 그런 일이 있었지. 가만 그게 어디였지? 아! 드레스룸!”

소울은 다시 한 번 벌떡 일어나 드레스룸을 향해 달려갔다. 드레스룸의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가 뒤져봤지만 놀랍게도 거울로 보이는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분명히 여기서 난 내 자신을 봤어. 그런데 거울이 없이 어떻게 스스로를 볼 수 있었지?”

그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드레스룸 중앙에 약간 무대처럼 만들어진 초소형 플로어가 조명으로 인해 현란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쳐다봤다.

“여긴가? 아! 맞다. 바로 여기였어.”

소울은 초소형 플로어 위로 올라가 섰다. 그러자 자신의 시점이 바로 전지적 시점(全知的 視點)으로 바뀌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내 자신을 본 것이로구나.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왜 시점이 바뀌지 않고 여기서만 바뀌었지? 그리고 이게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으음, 그냥 드레스룸이니까, 당연히 내 자신을 봐야하는 곳이니까, 그냥 보이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보니 그게 정답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당장 뭐가 달라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모습을 전지적 시점으로 볼 수 있어서 좋은 점은 역시 옷을 입고 난 후의 자신의 맵시를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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