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제 2 장 - 꿈에서 =========================================================================
벤치프레스는 벤치에 누워 팔을 가슴 위로 밀어 올리는 동작으로 가슴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운동기구이다.
그는 겁도 없이 한쪽에 30kg씩 바벨을 올렸다. 양쪽 무게 60kg에다 봉 자체의 무게 10kg까지 더하니 무려 70kg이 됐다.
소울은 꿈속이라는 생각에 자신 있게 바벨을 들어올렸다.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역시 꿈속이라는 것이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할 만하네?”
소울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청소 알바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헬스 운동순서는 잘 알고 있었다.
기본은 역시 3대 운동이다.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이 3가지 운동을 제외하고 헬스를 논할 수 없다.
3대 운동으로 전신 곳곳을 자극 하고 무분할 루틴으로도 유명한 20-20-10세트를 1시간 안에 했다. 20회씩 10세트를 20일(주 5일 총4주) 동안 진행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꿈속이므로 굳이 20일이라는 숫자에는 구애받지 않아도 됐다.
3대 운동을 끝내고 나자 그는 3대 운동에 필적하는 당기는 운동인 ‘바벨 로우’와 상체운동의 대표적인 운동인 ‘밀리터리 프레스’를 15회씩 10세트로 진행했다.
운동순서는 벤치프레스, 바벨 로우, 밀리터리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순으로 했다.
여기까지 원래 두 달 동안 하면서 기초를 잡아야 했지만 소울은 꿈속인 관계로 다음 운동을 바로 추가 시켰다. 바로 맨몸운동의 진수 ‘딥’과 ‘턱걸이’를 10회씩 7세트를 한 것이다.
이렇게 7가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기본을 닦았지만 소울은 뭔가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뭔가 굉장히 허전하네. 뭘 빠트렸지?”
사실 그가 빠트린 것은 없었다. 그는 곧 자신이 왜 허전한 느낌이 드는지 알아챘다. 그것은 바로 땀이었다. 전혀 땀을 흘리지 않으니 지금 자신이 운동을 하는지 안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거기에다 아무리 무거운 바벨을 들어도 너무도 손쉽게 쑥쑥 올라가버리니 오히려 싱겁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도 첫날이니 꾹 참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 그렇게 운동이 끝나자 그는 샤워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서 그를 기쁘게 했다.
“가만 내가 지금 꿈속에서 왜 샤워를 하고 난리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무서운 고정관념이었다. 하긴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상식에 속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꿈속까지 이어지자 소울은 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 그는 대충 샤워를 마쳤다. 서랍을 열어보니 새 팬티와 티셔츠 그리고 반바지가 잘 개져 있었다. 그는 커다란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고는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뭐하지?”
그는 갑자기 막막해졌다. 루시드 드림을 의도하고 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루시드 드림에서 깨어나는지도 잘 몰랐다.
“어떻게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빠져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소울은 그냥 제일 간단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냥 자자.”
안방으로 걸어 들어간 소울은 넓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푹신한 침대 위에 대자로 누운 소울은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니 꿈속이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그는 다음번에 또 다시 이곳에 오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
*
눈을 뜨자 창밖에서 햇살이 비춰오고 있었다.
‘깨어난 건가?’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새벽이라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깨어 있지 않았다. 옆의 탁자에 놓인 물 컵을 집어 들었다. 반쯤 남은 물을 마시고 나자 머리가 맑아졌다. 어제는 머리가 굉장히 무거웠는지 지금은 머리가 깃털처럼 가볍기만 했다.
자신은 여전히 병실의 침대에 있었고 어제 같이 떠들던 환자들도 그대로 있었다. 루시드 드림이 아니었다면 정말 깊은 잠을 잔 것이 되겠지만 소울의 머릿속에는 드림하우스 안과 밖에서 있었던 일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되어 있었다.
그는 일단 침대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콸콸콸!
마치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오줌줄기가 정말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탁탁 털고 난 뒤 비누칠을 해서 손을 깨끗이 씻고 나자 드림하우스에서 운동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초콜릿 복근이?’
그는 얼굴을 들어 올려 화장실의 거울을 봤다. 거울속의 얼굴은 눈곱이 끼어있고 머리는 산발되어 영 꼴불견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어서 몸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환자복을 위로 들어올렸다.
“에라 이씨!”
거울에 드러난 것은 올챙이배처럼 톡 튀어난 배였다.
초콜릿 복근은 개뿔! 올챙이배도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상태인 것을 보니 루시드 드림에 관한 판타지 소설은 말 그대로 판타지 소설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달랑 하루 꿈속에서 운동하고 무슨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소울은 루시드 드림에 관해서 더 이상 기대를 갖는다는 것을 깨끗이 포기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아마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루시드 드림을 꿔보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을 것이다.
기왕 화장실에 들어온 것, 소울은 깨끗이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났으니 산책이라도 나가려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새벽에 하는 산책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침의 시원한 공기도 좋았고 환자복을 입고 병원 밖을 돌아다녀도 누가 자신에게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나이롱환자들이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의심이 됐다.
시계를 확인한 소울은 급히 병실로 돌아왔다. 아침 식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병실로 들어오자 자신의 침대 위의 탁자에 식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얼른 손을 씻고 침대에 앉았다.
매일 먹는 아침 식사지만 공짜로 먹는다는 생각에 그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이거 이러다가 대머리 되는 것 아냐?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고 했는데…….’
그는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걱정을 하면서 맛있게 아침식사를 먹고 TV를 틀었다. 식사 시간에는 모두 일어나기 때문에 TV를 트는 것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마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저 사람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했네?”
“그러니까 저 기계를 쓰면 초능력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일본에서 개발됐지?”
“일본이 뭐 어때서? 원래 기초과학과 첨단과학기술은 유럽의 선진국 못지않은 곳이 일본이야. 괜한 반일감정으로 엉뚱한 데 기운 쏟지 마. 저런 기계라도 빨리 발명한 것이 인류를 위해서 다행인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래.”
소울은 창가 쪽 환자와 매일 새벽같이 찾아오는 그의 친구가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기차화통을 삶아먹었는지 두 사내의 목소리는 복도에서도 너무나 잘 들릴 정도로 컸다.
‘아! 새끼들, 더럽게 시끄럽네.’
그는 짜증이 울컥 올라왔지만 환자의 친구라는 아저씨의 거구를 생각하고는 지그시 자신의 성질머리를 밟아 눌렀다. 성질을 불릴 때 부리더라도 이길 수 있는 놈한테 부려야 한다. 괜히 까불다가 쥐어 터지기라도 하면 자신만 손해였다.
소울은 용기를 저 아래 양심 바로 밑에다 꾸겨 넣고 바로 잊어버렸다.
‘대구에서 100만 명의 피해를 입었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사촌이나 친척 하나씩은 죽었다는 말이 되겠구나. 정부에서 저 기계를 도입한다고 했으니 나중에 나도 한번 가서 초능력자인지 확인해봐야겠다.’
그는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어이, 채널 좀 돌려봐. 뉴스가 영 재미가 없네. 역시 뉴스는 해외뉴스를 봐야해”
“아니, 뭐 이런? 맞는 말씀을 하시네요. 역시 해외뉴스가 재미있죠.”
소울은 ‘어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 사람이 창가 쪽 환자 친구인 거구의 아저씨인 것을 확인하고 바로 인상을 풀었다. 그리고는 싹싹하게 웃으며 바로 채널을 돌려 해외뉴스를 봤다.
“자식, 동작 빨라서 좋다.”
“감사합니다. 제가 동작이 빠르다는 소리는 좀 듣습니다.”
비록 속으로는 욕을 할지언정 겉으로는 웃음을 잃지 않는 소울이었다.
결과적으로 채널을 돌린 것은 소울에게도 좋았다. 해외에서 생방송으로 차원의 균열 탐사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중무장을 하고 차원의 균열로 들어가면 과연 얼마나 살아 나올까?’
소울은 왠지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괜히 들어가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해외뉴스를 방영하고 있는 채널에서는 전문가라는 자들이 나와서 또다시 입방정을 떨고 있었다. 차원의 균열에 대해 자기가 언제 가서 봤다고 자원의 보고(寶庫), 신세계 개척 같은 말을 한단 말인가? 모르긴 해도 저건 개소리가 분명했다.
천조국 미국에서는 과연 돈도 많은지 네바다 사막에 나타난 차원의 균열 근처에 1개 중대의 병력을 배치하고 1개 소대를 차원의 균열 안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모두가 생전 처음 보는 일체형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일체형 전신방탄 슈트였다. 1벌의 가격이 수만 달러가 넘는다고 했는데 과연 차원의 균열 안에 들어가도 제 값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1개 소대가 직경 5m가 넘는 검은 구멍 안으로 사라지자 중대는 모두 두 손을 들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차원의 균열 안으로 들어간 병사들의 허리에 걸어 놓은 줄이 끝도 없이 안으로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 줄이 끊어졌다.”
병실의 누군가가 TV화면을 보며 소리쳤다. 소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봤다. 줄을 감은 실패 같이 생긴 통이 더 이상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반대로 통을 돌렸다. 그러자 중간에 딱 끊어진 줄이 딸려 나왔다. 그런데 그 줄 끝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런 저거 몬스터한테 잡혀 먹힌 것 아냐?”
“맞아. 그렇지 않고는 저럴 리가 없지.”
그렇게 병실에서 갑론을박을 하고 있을 때 소울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차원의 균열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색이 점점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색인데 더 짙어지네? 가만 검은 색인데 어떻게 색이 더 짙어지지?’
그의 의문은 곧 풀렸다. 갑자기 차원의 균열 안에서 오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몬스터들이 나올게 되면 색이 좀 변하는 건가? 이거 TV로 봐서는 확실히 잘 모르겠는데?’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트르르르륵 트르르르륵!
기관총과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차원의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던 오크들은 순간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차원의 균열을 포위하고 있던 중대는 즉시 뒤로 물러서며 차원의 균열을 향해 화력을 집중시켰다.
차원의 균열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다만 그곳을 통과해서 이쪽으로 들어오려는 몬스터들만 차원의 균열 앞에서 쌓이기 시작했다.
“어라, 저 검은 놈이 커졌네?”
“정말인데?”
전문가라는 자들도 그런 현상을 발견했는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 같은 상기된 표정들이었다.
‘차원의 균열이 생긴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전문가가 어떻게 생기냐? 참 사기꾼 같은 새끼들도 많네.’
소울은 그들의 쌩쇼를 코웃음 치면서도 시선을 TV에서 돌리지 않았다. 차원의 균열을 가운데 두고 미군과 몬스터들의 싸움이 어지간한 영화보다 박진감 넘쳤기 때문이었다. 아마 이 방송을 내보낸 방송국은 이 장면을 수십 번은 우려먹으면서 광고주를 엄청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으아악!”
“아악!”
갑자기 병실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울도 아침에 맛있게 먹은 음식을 그대로 토할 뻔 했다.
갑자기 전신에 중무장을 한 오크 병사들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져 나와 미군들을 커다란 칼로 토막 쳐 죽였기 때문이었다. 워낙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라 방송국에서도 모자이크를 만들거나 카메라를 돌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시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방송으로 이것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구 곳곳에서 바닥에 피자가 만들어 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미군도 만만치 않았다. 뒤에서 대기 중인 스트라이커 장갑차에서 기관포가 발사되고 한꺼번에 수류탄이 날아와 오크 떼 가운데서 터지자 미군들을 잡아 죽이던 오크 병사들의 상당수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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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2015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