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3화 (3/492)
  • 00003  제 1 장 - 급변하는 세상  =========================================================================

    목구멍이 포도청인 서민들에게 시간은 언제나 같은 편이 아니다. 대학도 못나온 놈에게 취직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고, 공장에 다니려고 해도 기술이 없어서 뽑아주지 않았다.

    그러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편의점 알바나 단순 노동직 밖에 없었다. 소울의 미래는 한마디로 아주 흐림이나 태풍경보가 발효된 정도였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10일 동안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것뿐이었다.

    “오늘은 또 얼마나 죽은 거야?”

    “뉴스를 보기가 무섭다.”

    “아이 참 시끄러워요. 뉴스 좀 봅시다.”

    병실은 제일 나이 어린 소울의 신경질 섞인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어디선가 싸가지 없는 새끼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소울은 개의치 않았다. 그 정도 욕은 그가 조폭새끼들에게 들어본 욕과 비교해보면 양아치 시다바리도 안 되는 정도였다.

    누군가의 말대로, 지금 전 지구적으로 하도 인명피해가 많아서 이제 몬스터에게 몇 백 명 죽은 것은 뉴스에서 방송으로 내보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몇 천만 명이 죽었다고 하고 또 어떤 나라에서는 몇 백만 명이 죽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그나마 육방부로 잘 알려진 나라라서 그런지 신속한 군대의 이동으로 겨우 100만 명밖에 사상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구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군. 만약 서울에서 좀비와 구울 떼가 나타났다면 아마 대한민국은 당장 절단이 났을 거야.’

    정부에서는 쉬쉬하고 있지만 이미 인터넷에서는 대구에서 일어난 참상이 담긴 동영상이 셀 수도 없이 유포되고 있었다.

    ‘정말 좀비나 구울에게 물리면 감염자가 되는 건가? 그러다가 죽으면 좀비나 구울로 다시 살아나는 건가?’

    전 지구적인 재앙이 벌어진지 아직 열흘이 지나지 않았다. 유엔을 비롯한 각국의 정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몬스터와 차원의 균열에 대한 조사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차원의 균열의 위치와 몬스터를 만났을 때 대처요령, 그리고 이들을 보면 전화해야 할 핫라인의 전화번호가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영상이지? 슈퍼맨이 나타났다고?’

    소울은 매일 반복되는 뉴스에 질려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폭발적인 다운로드 수를 보인 동영상들을 발견했다. 그는 아무런 생각 없이 그 동영상을 틀어봤다.

    “뭐야? 이런 미친,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가 있지?”

    소울이 발견한 것은 지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능력자들에 관한 동영상이었다. 실제로 자신이 한 일을 찍어서 올린 사람도 있고 우연히 발견해서 올린 사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능력자로 칭해지는 이들이 모두 슈퍼맨 같은 초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온몸이 터질 것 같은 근육질로 변해 몬스터들을 종이 짝처럼 쭉쭉 찢어 죽이는 영국 능력자가 보였고, 손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날아가 태워 죽이는 스페인 능력자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능력자는 두 손을 들면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졌고,  덴마크의 능력자는 손가락을 쭉 뻗으면 물줄기가 쏘아져 나가 몬스터를 꽁꽁 얼려 죽이기도 했다.

    능력자들은 유럽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주방에서 쓰는 커다란 식칼을 들고 고블린들을 학살하는 능력자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도 일본도를 들고 코볼트를 반 동강 내어 죽이는 능력자가 나타나 순식간에 영웅이 되었다. 인도에서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커다란 코끼리를 부리는 능력자가 나타났고, 이스라엘에서는 쇠로 된 숟가락을 손가락으로 톡톡 부러뜨리는 능력자의 동영상이 나와 쓸데없는 능력이라며 동정을 샀다.

    가장 충격적인 동영상은 바로 미국인 능력자의 동영상이었다. 마치 빛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몬스터들을 말 그대로 학살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미 다운로드 숫자가 1억을 넘어서고 있었다.

    아래쪽에 다른 동영상에는 그가 정부에 거액을 받아 초청되어 갔고 앞으로 미국의 안전을 위해 몬스터와 괴수들을 제거하겠다는 영웅적인 포부가 들어 있는 인터뷰가 올라와있었다.

    워낙 영웅(hero)을 좋아하는 나라라서 그런지 별명이 썬더인 미국인 능력자는 이미 북아메리카의 영웅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의 동영상과 연결된 또 다른 동영상에는 그가 길거리를 걸어가자 온갖 미녀들이 그에게 키스 세례를 퍼붓고 자신의 브라와 팬티까지 벗어서 전화번호와 함께 전해주는 광경이 나왔다.

    ‘우와아, 이거 엄청 꼴리게 만드는 동영상이잖아? 이 새끼 진짜 좋겠다.’

    소울은 썬더라는 능력자가 부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학교 여학생과 불장난 몇 번 저질러 본 것과 술집에서 일할 때 호스티스가 귀엽다고 자기 집에 데리고 가서 몇 번 같이 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로맨스를 겪어본 적이 없는 소울이었다. 그런데 동영상의 금발 사내는 주변에 쭉쭉 빵빵한 미녀들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새끼는 어떻게 능력자가 된 거지?’

    그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대답은 인터넷에 있었다. 자신과 같은 의문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입어’ 지식인에 물어본 사람만도 수천 명이 넘었다. 대답은 대부분 황당한 욕과 함께 끝이 났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제대로 대답을 해준 자들이 있었다. 그것은 모두 하나의 홈페이지로 링크가 되었다. 마이클 벌크라는 자가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였다.

    ‘뭐야? 이건 그냥 추정이잖아? 차원의 균열로 인해 나온 것이 몬스터만이 아닐 거라고? 그럼 또 뭐가 나왔단 말이야?’

    홈페이지의 주인은 나사(NASA)에서 일하고 있는 엔지니어이자 학자였다. 그는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밝히면서 차원의 균열을 통해 몬스터들이 살고 있던 타차원의 기(氣), 마나, 에테르, 에너지와 같은 것들이 지구에 같이 쏟아져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현재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 능력자들이 모두 타차원의 기운에 의해 오염되거나 또는 흡수해서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말이 안 되네. 그럼 왜 나는 능력자가 안됐는데?’

    그의 질문은 다음 장에 그 대답이 있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타차원의 기운을 동일하게 받았지만 그 기운에 자극을 받아 각성을 하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DNA와 고유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될 놈은 되고 안 되는 놈은 안 된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제일 짜증이 날 놈은 자신이 능력자가 됐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을 놈이겠군.’

    소울은 피식거리며 끝까지 마이클 벌크의 홈페이지를 다 읽고는 인터넷을 종료했다. 영어로 된 홈페이지 읽는 것은 굳이 대학가지 않아도 된다. 요새는 웹 브라우저가 자동으로 한글로 번역해서 보여주니까 말이다.

    “너무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는 것도 안 좋아. 지금은 밥 잘 먹고 빨리 회복을 하는데 전념을 하도록 하자.”

    소울은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인 밥그릇에 숟가락을 쑤셔 넣으며 그렇게 쿨 하게 걱정과 근심을 날려버렸다.

    * * * * *

    시간은 유수처럼 흘러간다.

    어느새 병원에 입원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온몸을 덮고 있던 타박상도 꾸준히 치료를 한 결과 딱지가 져서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하면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울은 어린 아이 피부와도 같은 속살을 손가락으로 푹푹 쑤셔 대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싸가지 없게도 그동안 한 번도 자신을 찾아와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이런 개밥은 호박잎에 싸먹을 놈이 다 있지? 최소한 한 번은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냐? 그냥 합의고 뭐고 고소해버릴까?’

    소울은 즉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순간의 즐거움은 영원한 즐거움이 아니야. 내가 고소를 한다고 해도 요새 있는 놈들은 능력 있는 변호사를 사기만 하면 형량을 말도 안 되게 줄일 수 있고, 정관예훈지 전관예우인지 하는 변호사를 만나면 그냥 무죄로 나오기도 한다고 했어.’

    법에는 좀 약한 소울인지라 귀동냥으로 주어들은 얘기만으로도 금세 자신감을 상실했다. 결정적으로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가 될지 모를 보상금이지 하루도 안 되어 사라질 통쾌한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고, 머리야. 요즘 왜 이렇게 머리가 무겁지. 혹시 메두사 인지 하는 그 병에 걸린 것은 아니겠지?”

    “메두사가 아니라. 메르스에요.”

    “흐엑,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소울은 갑자기 옆에서 저팔계 사촌 하는 간호사가 나타나자 깜짝 놀랐다.

    “왜 놀라요?”

    “아니 사람이 인기척을 내고 다녀야지요.”

    “병원에서 간호사가 인기척을 왜 내고 다녀요?”

    “아무튼......”

    그녀는 한마디도 지지 않고 거침없이 그의 팔을 잡고 맥박을 쟀다. 입에다 온도계를 푹 쑤셔 넣고 체온을 재기도 했다. 수은주가 들어간 구형 온도계를 소독한다고 소주에다 담가왔는지 온도계에서 소주 맛이 났다.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

    “체온은 귀에다 재는 것 아니에요.”

    “이 온도계는 입에다 재는 거예요.”

    “귓구멍에다 넣으면 삐 소리 나면서 체온 알아서 재주는 것 있던데 왜 그걸 가져 왔어요?”

    “아! 그거 고장 났어요.”

    “끄응.”

    저팔계가 사촌하자고 할 간호사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병실을 나가자 소울은 그녀의 뒤에다 감자바위를 하나 먹였다. 옆에서 소울을 지켜보던 환자들이 낄낄 대며 웃었다.

    “누구는 좋겠다. 은영 이한테 사랑도 받고.”

    “네에? 그게 무슨 소리에요?”

    대각선 방향에 있는 침대에 누워있던 얼굴이 네모난 오십대 환자 장사준이 눈을 크게 뜨면서 소울에게 말했다.

    “설마 너 모르고 있었냐?”

    “뭘요?”

    소울은 얼굴이 네모나서 매일 네모 아저씨라고 부르며 놀리고 있는 장사준이 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괜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잔뜩 눈에 힘을 주고 쳐다봤다. 그러자 더 이상 장난을 치다가는 경을 치겠다는 생각에 장사준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은영이가 너 좋아한다는 것 모르고 있었어?”

    “은영이라니요?”

    “어라? 이름도 모르고 있었네?”

    “설마 지금 저 마녀 같은 간호사의 이름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왜 아니겠니?”

    “네에? 그게 정말이에요?”

    “여기 계신 다른 분들에게도 물어봐! 내 말이 거짓말인지. 너만 빼놓고 다른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야. 안 그러면 뭐 하러 체온계 주머니에 넣고 일부러 구닥다리 수은주 온도계로 너에게 어필하겠어?”

    “체온계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있다고요?”

    “그래. 나도 봤다.”

    장사준의 말에 옆 침대에 누워있던 트럭 운전사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헉!”

    소울은 마치 해머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 맨날 자신을 구박하고 쌀쌀맞게 구는 간호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허공에 은영이라는 이름의 그 간호사를 닮은 딸을 등에 업고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순간 온몸에 왕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야! 너 왜 그래?”

    “안 돼. 절대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장사준은 네모난 자신의 턱을 박박 긁으면서 소울을 쳐다봤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그렇다고 그 말 한마디에 저렇게 맛탱이가 확 가버리다니......’

    그는 잠시 자신의 잘못을 생각해보며 다시는 입을 함부로 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소울에게 똑같은 소리를 해대며 신나게 놀리는 우(禹)를 범하게 된다.

    “안녕하십니까?”

    “어? 또 왔네요?”

    소울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병실로 들어오는 대신보험 장나라 대리를 보며 눈을 빛냈다.

    “하하하! 이 병원에 제 고객들이 몇 분 계셔서요.”

    “이 병원 담당이신가보네요.”

    “뭐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겸사겸사 해서 들렸습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그냥 그렇지요. 뼈라는 것이 한번 부러지면 쉽게 잘 붙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요.”

    말끔한 정장 차림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장나라 대리는 소울의 철벽방어에 바로 후퇴를 결정했다.

    “그렇죠.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럼 몸 조리 잘 하세요. 나중에 다시 들리겠습니다.”

    “가시게요?”

    “예, 오늘은 밀린 일이 좀 많네요. 하하하!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살펴 들어가세요.”

    ============================ 작품 후기 ============================

    여러분!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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