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OULNET-2화 (2/492)
  • 00002  제 1 장 - 급변하는 세상  =========================================================================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잘 알 것이다. 병원에서 할 일이라는 것은 삼시세끼 밥 잘 먹고, 약 잘 먹고, 똥 잘 싸고, 다시 디비자고…… 이런 것의 반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드르렁 드르렁 드르렁…….

    병실이 떠나가도록 코를 골며 퍼질러지게 잘 자던 소울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식사시간이다.”

    그는 마치 좀비처럼 비실비실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그가 눈곱을 떼며 하품을 하는 순간 식당카트가 지나가며 식판이 하나 들어왔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소울은 산발된 머리카락이 휘날리도록, 식당카트를 옮기며 식사를 날라주는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숟가락을 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기가 막히게 정확한 배꼽시계를 가진 소울은 단 3개월 만이라도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다 누리리라 다짐하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나자 바로 화장실에 들어가 똥 한번 시원하게 때리고 나서 칫솔과 치약을 들었다. 양치질을 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리모컨을 찾았다.

    “뉴스 좀 보겠습니다.”

    중환자처럼 붕대를 감고 돌아다니는 소울이 큰 소리로 외치고 TV를 켜자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말을 못했다.

    사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병실에서 드라마를 보며 눈물을 찔찔 짜겠는가? 냄새나는 사내들이 모인 병실에서 무난하게 볼만한 것은 뉴스나 영화밖에는 없다.

    희한하게 아무리 아픈 사람도 뉴스 시간만 되면 기어코 몸을 돌려서 뉴스를 시청했다. 마치 그것을 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되기라도 하듯 말이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로 전 세계적인 천재지변과 몬스터들의 나타난 지 1주일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났습니다. 지진과 해일로 인해 수천 명이 죽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생겼습니다. 천재지변이야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마구 죽여 대는 몬스터들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요? 오늘은 이 몬스터라는 것에 대해 집중 취재해봤습니다.”

    소울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아니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들 모두 말세가 다가왔다면서 혀를 찼다.

    “어렸을 때 도깨비를 봤다는 놈은 봤지만 저런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그러게 말이야. 도대체 저 몬스터들은 다 어디서 오는 겨?”

    “말세야! 말세! 세상이 망할 징조라고.”

    “거 재수 없는 소리 좀 하지마라. 말세는 무슨?”

    환자들은 다들 한마디씩 자기의 생각을 던지며 눈과 귀를 TV에 집중시켰다.

    “유엔에서는 작금에 일어난 천재지변은 조만간 진정세를 보일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도 몬스터 사태는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는 보기는 어렵다며 각국에 주의와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몬스터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정부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미 국방성 대변인은 지구 각지에 생겨난 차원의 균열이야 말로 몬스터들이 지구로 들어오는 통로라며 지구의 모든 나라들이 힘을 합쳐 차원의 균열을 막거나 봉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뉴스에서는 차원의 균열이라고 소개하면서 직경 5m의 새까만 원형의 공간을 보여줬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는 소울은 보기만 해도 오싹한 차원의 균열 안에서 몬스터가 나온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문질러 소름이 돋는 것을 진정시켰다.

    소울은 한참동안 뉴스를 시청하다가 리모컨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건 몬스터가 나타나건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 어차피 내 앞에서 일어나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그것보다 빨리 고시원 방이나 빼야겠다.’

    소울은 고시원의 총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방을 뺀다고 하자 총무는 친절하게도 다음날 아침 큼직한 캐리어 가방을 하나 가지고 왔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그냥 캐리어 가방하나 가져다 드린 것뿐인데요. 몸은 좀 어떠세요?”

    “간신히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당분간은 병원에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전치 12주 나왔으면 크게 다친 것 맞아요.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무섭다고 하니 이참에 푹 쉬도록 하세요. 보상금은 입원일수와 비례해서 준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넷으로 한번 알아보세요. 여유 있게 입원해 있으면 나중에 보상받을 때 금전적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시는 동안 부엌의 설거지 많이 도와주셨잖아요.”

    “그거야 다 같이 먹은 것 같이 치운 것뿐인데요.”

    총무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20대 후반의 고시생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시는 포기한 것 같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는데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가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습니다.”

    “아! 그래요. 잠시 만요.”

    소울은 그제야 자신의 소지품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졌다. 급히 침대 옆의 서랍과 캐비닛을 뒤져봤다.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은 캐비닛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지갑과 핸드폰은 다행히 서랍 속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이지만 운전면허증과 은행직불카드가 들어 있으니 잃어버리면 무척 곤란한 일이 벌어졌을 지도 몰랐다.

    “택시비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형편이 넉넉지 못해서......”

    고시원 총무는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받으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제 짐을 가져다주시고 방까지 빼주셨는데 제가 더 고맙지요.”

    “다행히 근처에 방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서 쉽게 방을 뺐습니다. 다 소울 씨 운이 좋은 거예요.”

    “혹시 제가 더 내야 하는 집세나 비용이 남았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며칠 방세가 남아서 은행계좌로 남은 돈 넣어드렸어요.”

    “아이유, 이거 정말 큰 신세를 졌네요.”

    소울은 비록 가슴에 통증이 일어났지만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 정말 찾기 힘들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은혜는 물에 세기고 원수는 돌에 세기는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소울은 총무의 이름도 몰랐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지갑에 총무가 준 명함이 있었지?’

    소울은 그와 얘기하면서 슬쩍 명함을 꺼내 빠르게 이름을 읽었다.

    정의현

    이름만 봐도 정의감이 투철하고 의리가 있고 현명한 사람인 줄 알 수 있었다. 거기에다 이렇게 친절하기까지 하니 오히려 세상에 당해 상처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소울이었다.

    ‘지금 내가 누구를 동정하고 있는 거야? 교통사고 나서 전치 12주가 나온 내가 더 불쌍하다. 그리고 이 사람은 대학까지 나왔잖아.’

    생각해보니 쥐가 고양이 생각해준 격이었다. 소울은 공동으로 쓰는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정의현과 나눠 마셨다. 맞은 편 침대에 누워서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교통사고 환자인 부잣집 노인을 문병하러 온 사람들이 놓고 간 것들이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마누라와 자식 놈들이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유산을 차지할 욕심인 것 같았다. 하지만 소울이 보기에 이 노인네가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덕분에 소울은 간병인이 없는 시간동안 환자에게 들어오는 음료수와 과일은 제 것처럼 집어 먹고 있었다. 환자의 아내가 간병인이 없을 때 긴급한 일이 일어나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던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심심찮게 문병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소울에게는 적지 않은 과일과 음료수를 공짜로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소울은 정의현과 같이 음료수를 마시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얘기를 하다가 1시간 만에 헤어졌다. 소울은 심심해서 그를 붙잡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고시원 총무인 정의현은 돌아갈 시간이 됐던 것이다.

    정의현이 돌아가자 불현 듯 소울은 부모님 생각이 들었다.

    ‘설마 강원도 두메산골까지 몬스터가 나타나지는 않았겠지?’

    그는 침대로 돌아갔다. 갈비뼈가 부러진 곳이 종종 아파왔지만 붕대로 잘 싸매서 그런지 살살 돌아다니는 것까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정말 갈비뼈 부러진 것 빼면 타박상이 전부라서 나이롱환자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뻔 했다.

    “어디보자. 일단 전화부터 하고......”

    소울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S전자에서 만든 갤포스 S3 였다. 핸드폰 가게에서 액정에 흠집이 난 것을 꼬투리 삼아 8만원 달라는 것을 6만원에 깎아서 산 중고 스마트폰이었다. 그것도 무려 LTE 가 되는 놈이었다.

    사람들이 보면 아직까지 구닥다리를 쓴다고 뭐라고 할지 모르지만 소울의 입장에서는 S3면 어지간한 앱 다 돌아가고 인터넷 잘 뜨고 전화 잘돼서 더 이상 나무랄 것이 없는 놈이었다. 특히 1만원만 넣어 놓고 전화만 받으면 더 이상 통신비도 더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은 무료 와이파이(WiFi)가 잘 되어 있어서 자신이 신경을 좀 쓰면 어딜 가도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소울은 간호사에게 물어 병원 와이파이 암호를 알아내고 일단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웹상에서는 뉴스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상황이 안 좋아 보였다. 음모론도 많았고 무시무시한 몬스터의 동영상도 많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실시간으로 끝도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대구 쪽에 좀비와 구울 까지 나타났네.’

    그는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도 몬스터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부모님이 계시는 강원도 두메산골에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말은 없었다.

    소울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가락을 애써 진정시키며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저에요. 소울이에요.”

    “그래. 넌 잘 지내냐?”

    “그럼요. 거긴 어때요? 별일 없지요?”

    “이런 산골짜기 마을에 무슨 별일이 있겠어. 별일은 읍내나 도시에 있다고 하던데. 너 지금 서울 맞지?”

    “예.”

    “그럼 됐다. 그리고 서울 밖으로 나갈 때는 조심해라. 요새 몬스터인지 괴물인지 하는 흉악스런 놈들이 나타나서 사람을 마구 헤친다고 하더라.”

    “네, 걱정 마세요. 여긴 몬스터 없어요.”

    “네 아버지는 지금 읍내 내려가서 없다. 통화하려면 나중에 연락하던가?”

    “아니에요. 그냥 한번 전화해봤어요. 그럼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너도 밥 잘 챙겨먹고 종종 전화해라.”

    “네, 그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래.”

    전화를 끊고 나자 새 메시지가 들어왔다. 열어보니 이제 3천원 남았다는 소리였다.

    “휴우, 다행이다.”

    소울은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세상이 내게 해준 것은 별로 없지만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는 하해(河海)와 같았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불만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포함한 삼남매를 모두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부모님의 노고까지 깎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현이와 소망이는 대학교 잘 다니고 있나?’

    자신과 다르게 똑똑하고 건강한 녀석들이다. 비록 돈이 없어 전 학기 장학금과 기숙사를 무료로 제공해준다는 지잡대에 들어갔지만 쌍둥이들의 천재성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처럼 언젠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제 보상금에 대해 알아보자.’

    세상에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소울에게는 당장 받아내야 할 보상금이 더 신경이 쓰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과 상관없는 나라에서 몇 만 아니 몇 백만 명이 죽어가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쓸데없이 통신이 발달해서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남의 나라와 대륙의 안 좋은 일까지 매일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이 정말 불쌍하다.

    인터넷은 요지경 세상이다. 이곳에는 없는 정보가 없다. 찾아보면 다 나온다.

    ‘최소 5백만 원에서 최대 2천만 원까지는 받을 수 있겠구나.’

    몇 시간 동안 눈알 빠지게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보상금 합의는 굳이 바로 해줄 필요가 없다는 ‘너입어’지식인에 나온 말을 따르기로 한 소울은 일단 대신보험 장나라 대리의 명함을 소중히 간직했다. 그렇다고 먼저 전화를 걸 필요는 없었다. 이미 한번 다녀갔으니 곧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 천천히 대화를 해보면 견적이 나올 것이라 믿었다.

    ‘평균적으로 1천만 원 정도는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 정설인데, 보험회사마다 다 다르다고 하니 일단 좀 두고 보자. 그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를 걱정해야 할 것 같은데…….’

    ============================ 작품 후기 ============================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선호작, 추천, 코멘트,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