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같은 사람, 다른 대우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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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흑철검에 의해 복부가 뚫린 황종태. 거친 호흡을 토해낸다. [육질 강화]로 살가죽을 강화시켜 방어력을 높였어도, 흑철검의 공격력은 막강하다. 방패도, 갑주도, 가죽도, 전부 갈라졌다.
체력이 급속도로 깎여나간다.
파학.
검을 뽑았다. 마인의 내장까지 쑤셨던 흑철검의 검신에 진액, 핏물 등이 섞여 나왔다.
“크어억.”
복부를 다잡는 황종태. 앞발로 갈라진 틈새를 막아보지만, 피가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눈으로 자신의 두 쪽 난 방패를 바라본다.
“무슨 검이······!”
내 손에 들린 흑철검을 노려봤다. 경험해보지 못한 파괴력. 방어에 자신 있는 황종태의 방패를 가르고 복부를 뚫어냈다. 상정할 수 없었던 예리함이다.
“우리 전속 대장장이가 만든 검이야. 위력이 상당하지. 나도 이 검 때문에 고생 좀 해봤거든. 이걸로 널 베니까 기분이 두 배로 좋네.”
나는 흑철검을 쳐다봤다. 일반 S급 무기의 1.5배에 달하는 위력. 명백히 사기 아이템이다. 적이 이 검을 사용할 때는 상대할 방법을 강구하느라 여러모로 애먹었는데, 내가 사용하니 이보다 좋은 아이템이 없다. 역시 템빨이 최고다.
“크와앙!”
황종태가 급해졌다. 성난 포효를 하며 양손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내가 어떻게든 도끼날에 걸리길 바라는 듯하다. 힘으로 도끼의 속도, 회전을 더해간다.
하지만 이렇게 눈멀고 어설픈 공격에 당할 내가 아니다. 스치듯이 도끼를 피해줬다.
흑철검으로 찌르고, 베고, 가른다.
황종태의 손목, 허벅지, 가슴 근육을 찢어놓았다.
“크워억!”
발광하는 황종태.
무슨 수를 쓰든 피해만 늘어난다.
화아악.
[육질 강화]가 풀렸다. 체력과 마력 소모가 심한 황종태가 더는 스킬을 유지하지 못하고 방어스킬을 흩어냈다.
흑철검의 검면으로 황종태의 투구를 후려쳤다.
파앙!
그의 집중이 흔들리며 [금강], [철벽방어술]도 유지되지 못하고 풀어졌다.
검으로 걸레짝마냥 갈라져있는 황종태의 갑주를 쑤셨다.
점점 약해진 그는 [안티 포이즌]마저 풀려버렸다.
“끝낼 시간이네.”
나는 종막을 선언했다. 손을 털어 흑철검을 흩트리고 도준욱의 단창을 생성해냈다.
마인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데는 마인의 무기가 제격이다.
도준욱의 단창을 케이크에 초를 꽂듯 황종태의 몸에다 쑤셔 넣었다.
“억, 큭, 크윽!”
곰의 몸체에 창이 깃발처럼 꽂혀나갔다. 이번엔 마비독이 제대로 퍼진다. 황종태의 독내성으로도 견딜 수 없을 만큼 마비독을 투여했다.
“으어어어······.”
비틀거리다가 뒤로 넘어지는 황종태. 그의 육중한 몸에는 도준욱의 단창 수십 개가 꽂혀있었다.
“이, 이··· 죽일 놈의 자식. 이러는 이유가 뭐냐.”
황종태가 검은 안광에 내게 진득한 원한을 담으며 말했다. 마인인 그는 당최 마인에게 공격받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됐다.
“이유? 이러면 조금 설명이 되나?”
나는 손을 들어 연초록색 가면을 생성해냈다. 그걸로 얼굴을 가리고 열고, 가리고 열고 반복하며 내가 소문의 마인임을 인지시켜줬다.
“이런······! 씹어죽일······! 네가 연초록색 가면 마인······!”
그가 비통한 외침을 토해냈다. 마비에 의해 몇 번이나 말이 끊겨지지만 나를 향한 분노는 충분히 전해졌다.
“우리를 속여? 나를 속여? 이 변절자 자식······! 네가 우릴 배신했구나······! 너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거다······!”
길길이 날뛴다. 꼼짝도 못하고 쓰러진 채로 온갖 비난과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참 너희들은 웃겨. 내가 속였다고 화를 내는 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와. 니들이 여태까지 우리를 속이고 있던 건 생각 안 하는 거냐? 네가 여태까지 몰래 사람을 죽이던 건 괜찮은 거냐.”
내가 하는 건 마인이 했던 짓이다. 그가 속여 온 만큼 나도 그를 속였고, 그가 죽여 왔던 만큼 나도 그를 죽이는 거다.
김민환이나, 황종태나. 억울해하는 꼴을 보면 헛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다.
“너는······! 너는······! 변절자는 반드시 처단될 것이다! 네놈은! 그분들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거 참. 곰탱이 녀석이, 말은 되게 많군.”
“이 죽일 놈······ 커윽!”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황종태의 입에 단창을 하나 더 쑤셔 넣어줬다. 숨통이 강제로 막힌다.
“너는 네가 그렇게나 아끼던 도준욱이랑 함께 가라.”
지난 회차. 짝짜꿍이 잘 맞던 황종태와 도준욱답게 같은 결말을 맺어주기로 했다.
휘발유통을 생성해서 걸쭉한 기름을 황종태의 온몸에 빠짐없이 뿌려주었다.
[파이어볼]
불덩이를 손바닥 위에 생성해내었다.
황종태의 몸 위에 휘익, 던졌다.
기름이 불덩이를 반기듯 열기에 닿자마자 멀리 화염을 뿜는다.
화르륵, 크아아아-
잠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인간의 소리 같지도 않다. 곰으로 변한 마인은 단말마로 괴성만 뱉어낼 뿐이다.
화르륵, 타다다닥.
꿈틀거림이 멎고, 불길은 혼이 빠져나간 육질을 태워내고 있었다.
수십 개의 창이 꽂혀있는 사체. 드문드문 타오르는 검붉은 불꽃은 왠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연 많은 전사들이 시체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하다.
일성 길드에는 던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헌터들을 추모하는 의식이 있다.
각자가 가진 병장기를 땅에 꽂고 고개를 숙여 눈을 감고 애도한다. 전장은 항상 바쁘기에, 던전에서 싸움은 급하니까 짧은 시간, 마음을 다해 예를 갖춰 사자(死者)의 넋을 기리는 것이다.
흑철검을 생성해 검 끝을 땅에 꽂았다.
검의 손잡이를 잡고 눈을 감아 황종태를 위한 추모를 진행한다.
‘잘 죽었다. 황종태.’
그는 여태 던전에서 남몰래 희생자를 만들고 뭐라 애도했을까. 추모의식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를 위해 빌어줄 말은 이것뿐이다.
*
짧은 의식을 끝내고, 던전에 남은 싸움 흔적들을 제거했다.
[해제]
도준욱의 단창들을 풀어냈다. 파이어볼도 풀고, 휘발유통과 기름들도 없애버린다.
순식간에 던전에는 황종태의 시체와 아이언골렘의 강철조각들만 남았다.
황종태의 시체를 대충 포대로 둘러싸고 압축형 보관 주머니에 담았다. 아이언골렘의 조각들도 진공청소기와 빗자루, 쓰레받기를 활용하여 압축형 보관 주머니에 쓸어 담는다.
복제로 만져둔 물건들을 생성하니 뒤처리는 간편했다.
싸움의 흔적이 남은 던전 바닥. 소독약을 생성하여 콸콸 흩뿌렸다. 장화를 신고 밀대로 바닥을 쓸었다.
소독약도, 장화도, 밀대도 복제를 풀어 없앴다.
던전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말끔해진다.
이런 식으로 나와 황종태가 지나왔던 흔적을 전부 지워버렸다.
일을 마치고 진지에 돌아왔다. 짐꾼들의 텐트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
다음날 아침.
공략대엔 큰 소란이 일었다.
“대장님이! 대장님이 없어졌다!”
“황종태 님이 실종되었어!”
“뭐라고? 말도 안 돼. 어디 잠깐 훈련하러 나갔겠지.”
일성 길드원들이 날뛰었다. 처음에는 황종태가 단순히 자리를 비운 줄 알았다.
그러나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았다. 무전 연락도 되지 않았고, 그가 떠나는 걸 본 사람도 없었다.
반나절간 황종태를 기다렸다. 또 반나절간 황종태를 수색했다. 이 날은 황종태를 찾느라 모든 시간을 보냈다.
골렘던전 어디에도 황종태는 없었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공략대는 혼란에 빠졌다.
“어디로 가신 거지? 어떻게 된 거야?”
“혼자 3층에 도전하신 것 아닌가?”
“3층 던전의 문은 아직 안 열렸던데?”
“2층, 1층까지 뒤져봤지만 없어.”
공략대장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귀신에게 홀린 듯 공략대는 동요했다.
하지만 이들은 일성 길드의 공략대. 수많은 격전을 치르고 다양한 사건을 겪어봤던 헌터들이다.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일단 던전을 공략한다.
황종태가 없어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던전의 기현상이 원인인지, 정체모를 몬스터가 습격해온 건지, 아니면 혹시 내부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럴 땐 공략을 진행해야 한다. 던전의 균열을 닫는 게 우선이다.
황종태가 실종될만한 위험요소가 있다면 빠르게 던전을 없애 그걸 제거한다. 여기서 도망치거나 시간을 지체한다면 균열은 커지고 위험요소도 늘어날 뿐이다.
일성 길드는 전진을 택했다. 균열을 닫고, 이후에 황종태가 없어진 원인을 다시 찾기로 한다.
그게 일성 길드의 방식이었다. 낙오자가 생긴다고 멈추지 않는다.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하더라도 던전공략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여긴다.
헌터들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지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장이 없어졌습니다. 공략을 진행할 임시 대장을 뽑죠.”
“3층만 클리어하면 된다. 이후 공략이 완료되면 전후처리요원들과 힘을 합쳐 황종태 대장이 실종된 이유를 밝힌다.”
“임시 대장은 누가 좋을까요.”
“일단 서열은 이하연 님이 제일 높긴 한데······.”
일성 길드 헌터들이 커다란 군용텐트 아래에서 모였다.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회의를 진행한다.
“이하연 님. 공략대 임시 대장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의 시선이 이하연에게 꽂혔다.
긴장하는 이하연. 서열상으로는 확실히 그녀가 다른 헌터들보다 계급이 높다. A급 헌터에 해당하여 황종태처럼 일성 길드에 오래 몸담은 B급 헌터가 아닌 이상 모두들 그녀의 부하직원에 해당됐다.
임시 대장을 남에게 떠넘길 명분이 없다. 이하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잠시 실종된 황 헌터님을 대신하여 공략대의 대장을 맡겠습니다.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이하연이라 공략대 대장을 맡아본 적은 없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직위를 받아들인다.
“이하연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빨리 던전을 공략해버립시다. C급 골렘던전입니다. 황종태 님의 실종과 골렘은 아무 관련이 없을 겁니다. 빨리 던전을 클리어하고 실종원인을 찾읍시다.”
헌터들은 이하연의 지휘아래에서 빠르게 의기투합했다.
이하연의 명망은 높다. 그녀가 대장이 되는데 불만을 갖는 헌터는 없었다.
나는 짐꾼대장 백범일에게 이하연이 임시 공략대장이 되었단 걸 전해 들었다.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 여자. 대장 같은 걸 좋아할 성격이 아닌데.
더군다나 이 던전은 단순한 골렘던전이 아니다. 내 기억상 던전은 3층에서 A급 제물던전으로 변한다.
그녀에겐 과중한 부담이 될 거다. 일성 길드의 전력으론 A급 던전을 공략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나설 때가 되었다. 나는 처음부터 A급 제물던전을 공략하러 왔다. C급 골렘던전이 아니라.
품에서 공명석을 꺼내들었다. 이하연에게 줬던 공명석과 같은 종류의 공명석. 옥색의 맑은 빛깔을 보며 부드러운 표면을 만지작거렸다. 그걸 보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다.
우우웅.
공명석이 강하게 흔들렸다.
나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하연이 근처에서 공명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내가 준 공명석이 마음에 드나보다. 따듯한지 잘 품고 다니며 자주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하연의 복잡한 심경과 심란한 마음이 공명석을 통해 느껴져서 짧게 웃었다.
그런데 내 앞에 또 불청객이 찾아왔다.
김수로. 이 녀석은 오자마자 다짜고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성 길드원들의 분위기는 워낙 안 좋아 일단 짐꾼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황종태 대장이 실종되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큰일이 발생했는데요. 공략에 참여한 짐꾼으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내 목전에 다가온 마이크.
나는 고개를 들어 김수로를 보았다.
이 녀석은 흥미진진해 하고 있었다. 공략이 당초 계획보다 훨씬 위태롭고 불안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대박영상이 될 걸 직감하고 눈을 반짝인다.
‘······.’
단창을 생성할까 말까 망설였다.
운이 좋은 놈이다. 마인이 아니라서 황종태와 동시에 제거되지 않았다.
그래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처벌할 순 있었다. 당분간은 마음껏 재롱떨도록 내버려두기로 한다.